세 나라의 전쟁에 참전한 ‘존 바인햄’

글/김환기 사진/권순형 | 입력 : 2024/05/24 [15:25]

▲ 18세의 어린 나이에 입대하여 6.25전쟁 당시 1953년 6월 1일에제3대대 보병으로 배치되었다. 제대 후 조니는 정규군에 재입대하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크리스찬리뷰     

 

지난 4월 20일, 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에 ‘케빈 존 바인햄’(Kevin John Bineham) 씨 자택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이다. 91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건강하고 밝은 에너지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그는 정부주택에 살고 있다. 그가 방문했던 나라에서 수집한 다양한 소장품들로 집안이 가득 차 있었다. 지난해 11월 11일, ‘한국전쟁참전국기념사업회’의 대표단들이 시드니에 왔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그날 대표단들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과 관련단체장들을 오찬 모임에 초청하여 감사의 표시를 했다. ‘한국전쟁참전국기념사업회’(UNPK)는 한국전쟁 당시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한 UN 참전국과 참전용사들에 대한 고마움과 우호증진을 위해 설립되었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4주년과 정전 71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 전쟁 (1950. 6.25-1953.7.27)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남북한 사이의 이념적 대립과 더불어 국제적인 냉전 구도 속에서 진행되었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았으며, 남한은 주로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의 지원을 받았다. 

  

▲ 지난해 11월 한국전쟁참전국기념사업회가 개최한 참전용사 보은 오찬 행사에서 신광철 회장(왼쪽)이 조니 씨에게 기념 뱃지를 달아 주고 있다.©크리스찬리뷰      

 

전쟁의 배경에는 일제 강점기 후의 한반도 분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은 일시적인 군정을 목적으로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북부와 남부로 나누었다. 

  

그러나 이후 정치적 대립이 고조되면서 1948년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고 이는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의 정전협정 체결로 공식적인 전투가 종료되었지만, 평화협정은 체결되지 않아 기술적으로 양국은 여전히 전쟁 중이다. 한국전쟁은 많은 군인과 민간인의 사망자를 낳았으며 한반도의 분단 상태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전쟁은 남북한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고, 국제 관계에도 중요한 변화를 초래했다. 

  

▲ 2024년 안작데이에 시드니 시내를 행진하는 존 바인햄 참전용사. (둘째 줄 오른쪽에서 첫 번째)    ©크리스찬리뷰    

 

▲18세의 어린 나이에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존 바인햄 씨.©John Bineham

 

남북한은 전쟁을 중단한 후 서로 다른 길을 걸었고, 이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큰 격차가 발생했다. 남한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며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다. 

  

반면 북한은 고립주의 정책과 군사 중심의 경제로 인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국제사회와의 갈등도 지속되고 있다. 

  

한국전쟁에는 유엔군으로 총 22개국이 참전했다. 이들 국가는 병력 지원은 물론 의료 지원과 기타 다양한 형태로 한국을 도왔다. 

  

미국, 호주, 영국, 캐나다, 터키 등 16개 국가는 전투병을 파병했고, 인도, 노르웨이, 덴마크 등은 의료 지원을 했다. 

  

이러한 국제적인 지원은 한국전쟁이 단순한 내전이 아닌, 냉전 시대의 이념적 대립을 배경으로 한 국제적인 갈등의 일환으로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호주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신속하게 파병을 결정했으며, 총 1만7,164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호주군은 육군, 해군, 공군을 모두 파견하여 다양한 지역에서 전투를 수행했고, 특히 가평전투 등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 존 바인햄 씨가 한국 전쟁 중에 촬영한 사진들. 처참하게 전사한 군인들과 포로로 잡힌 중공군들의 모습이 이채롭게 보인다.©John Bineham     

 

전사자 340명, 부상자 1천216명을 기록했다. 한국전쟁 참전으로 인해 한국과 호주는 혈맹관계를 맺게 되었고, 1961년 정식으로 수교한 이래 경제적, 문화적으로 활발하게 교류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존 바인햄 (John Bineham) 

  

사람들은 그를 ‘조니’(Jonny)라고 부른다. 1933년 11월 1일 퀸즈랜드 툴리에서 태어났다.  조니는 18세에 호주군에 입대하여 호주 왕립연대 제3대대(3RAR)의 일원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호주에서 훈련을 마친 후 일본에 도착하여 2개월 훈련을 받고, 1953년 6월 1일 한국전쟁의 최전선에 배치되었다.  

  

조니는 한국 전쟁 후 조지 하이츠의 제1특공대 중대에서 활동하다가 제대했다. 이후 그는 정규군에 재 입대하여 인도네시아 내전에서는 공병대에서 복무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호주 제1특무부대와 함께 방첩 작전에 참여했으며, 베트남 현지인들과 중요한 관계를 맺었다. 

  

그의 임무에는 납치 작전 수행, 정보 수집, 때로는 그의 부대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물품을 거래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조니가 군대에서 보낸 시간은 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전쟁의 포탄 속에서 죽음을 통하여 삶을 배웠다. 그는 인터뷰 도중 전쟁은 나의 대학이었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군 제대 후 그는 그림, 글쓰기, 볼륨 댄스 등에 관심을 두었다. 그는 복무 기간 동안 상당한 양의 베트콩 예술품을 수집했으며, 후에 호주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다음은 조니와의 일문일답이다.

  

▲ 지와 인터뷰하는 존 바인햄 씨,©크리스찬리뷰     

 

조니와의 인터뷰 

 

- 우중 가운데도 반갑게 맞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4주년 되는 해입니다. 한국의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오늘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조니 씨를 만나서 인터뷰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먼저 자신을 소개해 주십시오..

  

“저는 퀸스랜드 출신으로 모험가입니다. 18살 때 무작정 시드니로 왔습니다. 낯선 땅에 직업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군 입대에 대한 광고를 보고 무조건 지원하여 입대를 했습니다. 입대한 사람 중에 한국전쟁에 참전할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전쟁에 참전을 하려면 21살 이하의 사람들은 부모 동의를 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22살이라고 말하고 한국전쟁에 참전하겠다고 했습니다. 호주의 역사 교육은 유럽 중심이어서 한국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습니다. 입대를 하고 기본교육을 호주에서 받고 일본으로 건너 가서 2개월간 재훈련을 받은 후에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지금도 생생한데 당시 부산은 빌딩이 하나도 없었고 흑먼지가 날리는 회색의 거리였습니다. 부산에 도착하여 트럭을 타고 거리를 통과할 때 길가에는 판자촌과 양철집들이 있었고 거리에는 피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친구와 제3대대에 배치를 받은 후 기차를 타고 서울 근처까지 갔다가 트럭으로 갈아타고 전선에 배치되었습니다. 도착하여 친구가 3일 전에 전사한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휴전이 가까워지면서 전투는 소강상태가 되었습니다. 

  

호주군 옆에 미군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부대에는 위스키가 없었습니다. 미군에게 가서 다른 물품과 위스키를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부대 정보 담당요원이 전사를 해서 저는 정보 담당으로 보직을 바꿔서 활동했습니다.” 

  

▲ 인터뷰 도중 조니 씨가 펜싱의 기본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크리스찬리뷰     

 

그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사진 속에는 수많은 시체들을 있었다.  

  

“7월 27일 휴전 전날의 마지막 전투는 후크 전투입니다. 저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휴전이 발표되는 순간 모든 총성과 포성은 멈췄습니다. 휴전 다음 날에 찍은 사진입니다. 총성은 멈추었지만,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시체 썩는 냄새는 코를 진동했습니다.” 

  

▲ 존 바인햄 씨가 휴전 후 촬영한 부산의 유엔기념공원.©John Bineham     

 

- 한국 전쟁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습니까?

  

“저는 말씀드렸듯이 퀸스랜드 출신입니다. 그곳은 따뜻한 아열대 지방이어서 눈이 오지 않습니다. 1953년 겨울이 왔을 때 저는 휴전선 근처에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눈이다, 눈이야!” 

  

창밖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눈을 한번도 보지 못한 저에게는 눈과 함께 성탄 파티를 했다는 사실이 정말 특별한 추억이었습니다.”

  

- 베트남 전쟁에는 왜 참전했습니까?

  

“저는 태생이 모험가입니다. 전쟁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지만 전쟁터는 저에게 살아 있는 대학입니다. 저는 한국 대학, 인도네시아 대학, 베트남 대학을 졸업한 사람입니다. 저는 전쟁 속에서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전쟁 때에는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어서 자료로 보관하였습니다. 베트남 전쟁 때에는 비디오 카메라를 가지고 갔습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갈 때도 촬영을 했습니다. 제 유튜브에 가면 그때 찍었던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 전쟁을 통해 배운 교훈은 무엇입니까?

  

“전쟁을 통해서 죽음이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이라도 잠을 자다가 내일 일어나지 못하면 그것이 죽는 것입니다. 저는 죽음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운명을 믿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전쟁은 제 인생을 바꾸고, 성격도 바꾸고, 저를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 현재의 유엔기념공원.©크리스찬리뷰     

 

“2020년 한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서울과 부산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다른 나라에 온 줄 알았습니다. 높은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고, 총천연색의 거리가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저는 한국전에 참전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흘린 피와 땀을 바탕으로 오늘날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계 속에 우뚝 선 나라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베트남을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한국을 생각하면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전쟁 때는 모두가 전투병이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때에는 호주군의 경우는 6명 중 1명만이 전투를 했고 나머지는 전투와는 관련 없는 다른 보직을 받았습니다. 미군은 우리보다 더했습니다.” 

  

- 건강의 비결이 있습니까?  

  

▲ 존 바인햄 씨는 검도, 그림 그리기, 글 쓰기 등 다양한 취미와 함께 불륨댄스를 즐기는볼륨댄서이다.©크리스찬리뷰     

 

“저는 아직도 건강합니다. 병원에서 91세의 노인으로 저와 같이 건강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체력뿐 아니라 기억력도 좋습니다. 저는 책도 10권을 썼고,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하여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언젠가 프랑스에 갔을 때 식당에서 어떤 사람이 인사를 하는 겁니다. ‘제 유튜브를 잘 보았다’며 인사를 했습니다. 생면부지인 프랑스 사람이 유튜브를 보고 저에게 인사했다는 사실에 사실 저도 많이 놀랬습니다. 

 

저는 환경문제에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지구 생태계가 많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심장병, 당뇨병, 고혈압 등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아마 저의 건강의 비결은 친환경적인 삶을 살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시나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보면 과거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됩니다. 미국의 가장 큰 경제 파트는 중국입니다. 우리는 서로 화해하며 살아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합력하면서 살기를 소망합니다. 

  

서양과 동양도 서로 협력하여 겸손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자세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얼마 전에 팬데믹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제 2, 3의 팬데믹이 올 것을 대비해야 합니다. 

  

지금 지구가 아파하고 있습니다. 인구가 증가되고 환경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빙하가 녹고 기후 이상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류가 연합하여 다가올 재앙을 미리 준비하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소장품을 살펴보았다. 벽에는 다양한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가 그린 그림이다. 그는 화가이다. 펜싱검이 여러 개 있었다. 그는 검객이다. 그는 자주 볼륨댄스를 즐긴다. 그는 볼륨댄서이다. 

  

그가 쓴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었다. 두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서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한 권은 시집이고, 다른 한 권은 세 나라의 전투에 참전하고 기록한 자서전이다. 그는 시인이자, 작가이다.〠 

 

김환기|본지 영문 편집장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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