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들을 위해 사회 정의를 부르짖다!

인물 | 노엘 피어슨(Noel Pearson)

정지수/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5/24 [15:51]

▲ 원주민 변호사 노엘 피어슨은 호주 사회가 보다 평등한 사회가 되는데 방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호주 원주민의 권리와 이익을 증진하는데 앞장서서 일하고 있다. (사진= ABC NEWS 캡처)     

 

이번 호에서는 호주 원주민의 권리와 사회 정의 및 교육 개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원주민 변호사 노엘 피어슨(59, Noel Pearson)을 소개하려고 한다.

  

노엘 피어슨은 1965년 6월 25일 퀸즈랜드주(Queensland) 쿡타운(Cooktown)에서 호주 원주민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호주 원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호프 베일 (Hope Vale)에서 성장했다. 

  

이곳에서 그의 세계관이 형성되었는데, 그는 원주민들이 경험하는 불평등을 보게 되었고, 그 불평등에 도전하려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호프 베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피어슨은 브리즈번(Brisbane)에 위치한 기숙사가 있는 세인트 피터스 루터란 고등학교 (St. Peters Lutheran College)에 입학했다. 

  

그는 원주민들을 위해 사회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열망을 품고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시드니 대학에 입학해 역사와 법을 전공했다. 그는 시드니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원주민들의 권리를 위한 도구로써 법의 잠재력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시드니대학을 졸업한 후 피어슨은 원주민 권리 증진, 토지 소유권, 사회 정의와 같은 문제를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피어슨이 변호사로서 관여한 소송 중에 가장 큰 소송은 에디 마보(Eddie Mabo) 소송이었다. 

  

에디 마보는 1982년부터 토레스 군도(Torres Strait Islands)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받기 위한 법정 투쟁을 하고 있었다. 피어슨은 마보 소송에서 원주민 협상팀의 일원으로 참여해 역할을 감당했다.

  

이 소송은 유럽인이 정착하기 전에 호주가 어느 누구에게도 점유되지 않았다는 무지주의 원칙에 이의를 제기해 호주 영토에 대한 원주민 소유권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보 소송에서 피어슨은 그의 전략적이고 탁월한 법적 통찰력을 보여주었고 향후 원주민 변호 활동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1990년에 피어슨은 퀸즈랜드(Queensland) 케이프 요크(Cape York) 지역에서 원주민의 이익을 위해 변호하는 조직인 케이프 요크 토지 위원회(Cape York Land Council)를 공동 창립했다. 

  

토지위원회는 원주민 토지 소유권, 경제 발전, 문화 보존을 옹호하는 중심 플랫폼이 되었다. 토지위원회 내에서 피어슨의 리더십은 원주민의 목소리를 증폭시키고 원주민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정책 개혁을 추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피어슨은 교육 개혁에도 박차를 가했다. 교육의 변혁적인 힘을 인식한 그는 원주민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개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 되었다. 피어슨은 교육이 문화적으로 적절하고, 역량을 강화하며, 원주민 언어와 문화를 반영해야 한다고 믿었다.

  

▲ 노엘 피어슨(가운데)이 위클리프 오스트레일리아 CEO 배리 보르네만(왼쪽)과 번역가 데이비드 블랙먼으로부터 쿠쿠 얄란지 사전(1986년 허쉬버거가 만든)을 선물받고 있다.     

 

한편, 2000년도에 그는 퀸즈랜드(Queensland) 외다른 지역 사회의 원주민 아이들에게 고품질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혁신적인 교육 단체인 케이프 요크 원주민 호주 아카데미(Cape York Aboriginal Australian Academy)를 공동 창립했다. 

  

아카데미는 원주민의 언어와 문화 및 지역 사회 참여를 커리큘럼에 통합하는 교육에 대한 전체적인 접근 방식을 강조했다.

  

피어슨의 활동은 법적, 교육적 영역을 넘어 확장되었다. 그는 자신의 플랫폼을 사용해 원주민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작가와 연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에세이, 기사 및 연설은 호주 주류 사회에 도전이 되었고, 원주민의 관점에 대한 더 큰 이해와 공감을 촉진했다. 피어슨의 지적 공헌은 원주민 권리, 화해, 사회 정책에 대한 대중 담론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피어슨의 핵심 비전은 원주민의 자결권 획득과 경제적 권한의 회복이었다. 그는 원주민 공동체가 호주 정부의 정책과 개입에서 벗어나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의사 결정 기관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피어슨은 원주민 문제에 대한 하향식 접근 방식에 도전하면서 원주민의 리더십과 자율성을 두둔했다.

  

그가 원주민들을 위해 활동을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선구적인 지도자이자 원주민 권리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변호자로 칭찬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의 방법과 이념적 입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 노엘 피어슨이 2023 ANMF(Vic Branch) 대의원 회의에서 대의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그러나 피어슨은 자신의 원칙을 추구하며 흔들리지 않았고, 끊임없이 사회 정의를 추구했고 헌신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고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피어슨의 위대한 유산은 아직도 호주 사회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는 현재의 불평등에 도전하고 의미 있는 변화를 추진해 호주 사회에서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그의 적극적인 활동은 원주민의 권리 향상과 교육 및 지역 사회 개발의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졌다. 피어슨의 유산은 미래 세대의 원주민 지도자와 활동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그들이 정의와 평등을 위해 투쟁을 계속하도록 격려할 것이다.

  

피어슨은 호주 사회가 보다 평등한 사회가 되는데 방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변호사로 활동가로 지식인으로 호주 원주민의 권리와 이익을 증진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보다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를 향한 그의 비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정지수|본지 영문편집위원, 캄보디아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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