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성시화대회 참가
멜번 일정을 마치고 일행은 9일(토) 오후 시드니로 이동했다. 오후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10일은 주일이어서 시드니새순장로교회(담임목사 송선강) 3부예배에 참석하고 예배 후 성도들과 함께 교회 식당에서 점심을 나누었다. 교회가 우리 일행을 위해 교회 성도들과는 다른 알찬 식단을 만들어 제공했다. 이 자리에서 담임목사에게 백서와 선물을 전달했다.
식사 후 시티로 이동하여 시드니 성시화 십자가 행진 집결지인 벨모어공원(Belmore Park)으로 가서 거리 행진에 동참했다.
시드니 중심가인 선트럴역에서 엘리사벳 스트리트를 거쳐 마틴 플레이스 광장까지 약 1.5km 시가행진을 마친 후 마틴 플레이스 야외 특설 무대에서 찬양축제와 기도회를 가졌다. 이날의 성시화 십자가 행진과 축제 행사는 올해로 18회를 맞았다.
경남성시화운동본부는 2010년 3월 방문 당시 이 행사에 참석한 후 2번째 참가한 행사였다.
이날 저녁 식사는 시드니성시화운동본부가 마련한 식탁이었는데 식사 전에 시드니성시화 대표회장 김병근 목사에게 백서와 선물을 전달했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백서를 간략하게 소개했고 일부 참석자들이 백서를 구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있었지만 우리가 가져간 백서는 20권뿐이어서 나누지 못해 아쉬웠다.
NSW 주립 도서관 (데이비스 선교사 일기 원본 소장)
3월 11일(화) 오전 10시,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의 일기 원본을 보기 위해 뉴 사우스 웨일즈(New South Wales) 주립 도서관을 찾았다.
NSW 주립 도서관에는 이미 많은 시민들이 자리를 잡고 독서를 하고 있었다. 직원의 안내로 도서관 책임자 헬렌 데나체(Helen Denaceh)를 만났다.
이미 우리 일행을 위해 데이비스 선교사의 일기 원본을 비롯한 한국과 호주의 선교 관련 문서들이 별도로 전시되어 있었고, 4명씩 조를 지어 관람할 수 있었다. 우리는 관람을 시작할 때 먼저 백서 2질을 헬렌 데나체 씨에게 전달했다.
백서를 전달하고 백서의 구성과 내용에 대해 필자가 간략하게 소개하자 헬렌은 감탄을 연발하며 반색했다. 그녀는 "우리도 이 분야의 정리된 자료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라며 "귀중한 자료에 감사하다"라고 연신 고마워했다.
실제 이날 전시된 자료는 지극히 단편적인 것뿐이었지만 NSW 주립도서관 지하에 있는 고문서 특별 보관실에는 수많은 한호 선교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제 우리가 전달한 백서는 이곳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 사료로 남게 될 것이다.
NSW 주립도서관 방문을 마친 일행은 인근에 있는 호주 최초로 기독교 예배를 드렸던 장소를 방문했다.
시드니 중심부인 헌터 스트리트와 블라히 스트리트(Hunter St & Bligh Streets) 모퉁이에 236년 전 첫 교회가 세워졌던 자리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1788년 1월 20일, 호주에 도착한 리차드 존슨 목사(Rev. Richard Johnson)는 2주 후, 즉 1788년 2월 3일 커다란 나무 아래서 호주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죄수들은 깨끗이 자기 몸을 씻어야 했고, ‘첫 번째 함대’로 호주에 온 모든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해야 했다. 이날 오전 10시에 해병대가 연주하는 북소리에 맞추어 예배가 시작되었다.
리차드 존슨 목사가 설교를 했는데 설교 본문은 시편 116편 12절 말씀이었다.
설교 원고는 전해지지 않아 그가 어떤 설교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가 호주에서 처음 드리는 예배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는 설교를 했을 것 같다.
8개월간의 향해 기간 동안 32명이 죽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사히 호주 시드니까지 와서 정착촌을 건설하고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며 새로운 정착촌에서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삶을 살자고 설교했을 것 같다. 당시 예배에 참석했던 왓킨 텐치(Watkin Tench) 선장은 “예배에 참석한 죄수들과 해병들 모두가 다 경건하게 예배를 드렸다”고 말했다.
호주 선교사 초청 선상 오찬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초청하여 시드니 하버 런치 크루즈(Magistic Lunch- eon Cruises)를 가졌다. 유람선을 타고 미항인 시드니 항을 볼 수 있는 코스였다. 바닷가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도 배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오늘 점심 초대에는 선교사 3명과 황기덕 목사가 참석했다.
임경란(Mrs Kelly Yim) 선교사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5년간 서울에서 영등포 산업선교회 소속으로 일하였고, 안도선(Anthony David Fran- cis Dawson)선교사는 1979년 대전에서 시작해 1985년까지 대전과 서울로 옮겨가며 일했고, 로한 스콧 잉글랜드(Rohan Scott England)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에서 6년간 역시 영등포 산업선교회에서 일했다.
이날 참석한 선교사 세 명은 경남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 분들이었지만 우리는 호주 선교사로 파송 받아 한국을 위해 일한 이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감사를 전했다.
그러나 배리 콜빈 선교사(Bary Colvin, 1954~58, 부산)와 앨리슨 크로프트 선교사(Alison Croft, 1960~64 마산)는 고령으로 인해 건강이 좋지 못해 참석하지 못했고 스티븐 빅터 라벤더 선교사( Stephen Victor Lavender, 1976~78 서울)와 데브라 자넷(데지) 카슨 선교사(Debra Janet Carestens, 1990~1993 서울)은 다른 일정이 있어 참석을 하지 못했다.
뉴카슬 거주 서두화 선교사 자택 방문
3월 12일(화) 오전 9시, 호텔을 출발하여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뉴카슬(Newcastle)에 거주하고 있는 서두화 선교사(목사)를 만나러 갔다.
목적지까지 약 2시간 반이 걸렸다. 자택을 방문하고 아들 크리스토퍼(Christopher John, 약칭 크리스)의 부축을 받으며 버스에 오른 서두화 목사는 아들과 함께 오찬 장소인 뉴카슬한인장로교회로 이동했다.
그는 97세의 나이에도 매우 정정했다.
서 목사는 오래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 이메일을 통해 지인들에게 문안 인사를 보내는 SNS(Social Network Service)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하루 5km 정도산책을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귀가 어두워 대화는 어렵지만, 필자가 백서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더니 매우 기뻐했다. 특히 아들 크리스가 2010년 10월 2일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을 개관하면서 1차 초청했을 때 방문하였고, 당시 선교사 사진 전시관에 있던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와 찍은 모습의 사진을 향해 “이게 나다”라고 했던 사진이 백서 속에 있는 것을 보고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서 목사 부자는 2차 초청(2019년 10월)때도 한국을 다녀갔었다.
서 목사는 식사를 끝내고 아들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말로 “먼저 부족한 저를 대접해준 것에 감사를 드린다”라며 “귀가 어두워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만나서 너무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서 목사는 “이 기쁨을 오랫동안 간직하겠다”라며 “여정을 마치고 잘 돌아가기 바란다”라고 또렷하게 인사했다.
이날 서두화 목사와 경남성시화 일행을 위한 점심 대접은 뉴카슬한인장로교회에서 정덕수 집사를 비롯한 다섯 명의 성도가 봉사했다.
오찬 모임 후 일행은 121년전(1903년) 건설된 노라 헤드 등대(North Head Lighthouse)와 펠리컨 서식지인 디 엔트런스(The Entrance) 등의 관광 명소를 거쳐 호주 한인 최대 수경재배 토마토농장(Swan Hydroponics, 대표 김창흥 장로)을 방문했다.
수경재배로 일 년에 천 톤이 넘는 토마토를 수확하여 호주 울워스(Woolworth)에 납품해 오고 있는 김창흥 장로는 한국에서 원래 목장을 운영하던 목축업자였다.
그가 목장에서 일한 햇수까지 합친다면 40년이 넘는 생활을 흙과 함께 생활해온 흙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흙에 대해서, 자연의 이치에 대해서, 웬만한 농사에 대해서 훤히 꿰고 있었다. 그는 특히 자연의 섭리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많이 배운다고 강조했다.
시드니 겸역소(Q-Station) 방문
3월 13일(수) 마지막 날, 오늘은 시간 여유를 갖고 오전 11시 출발해서 점심 식사 후 호주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호주 이민사에 보존되어 있는 시드니 검역소(Q-Station)와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맨리 노스헤드(North Head, Manly)를 둘러봤다.
Q-Station은 호주의 관문이다. 배를 타고 내린 이민자들은 반드시 이곳을 거쳐 검역이 끝나야 자유의 몸이 된다.
정박지에서 약 50m 레일이 깔려, 화물은 열처리 소독실로, 사람은 소독 시설이 된 샤워실로 향한다. 소독 후 건강한 사람은 왼편 언덕으로 걸어서 숙소로, 환자는 오른편 언덕에 자리 잡은 병실로 각각 배치된다.
이날 안내를 맡은 김환기 사관(라이드구세군교회 담임, 크리스찬리뷰 영문 편집장)은 “19세 초부터 20세기 중반까지 152년 동안 검역소가 운영되었으며, 지금은 그때의 시설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숙박 시설로 꾸며 휴양시설로 운영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시드니를 바라볼 수 있는 반대편 해안을 낀 검역소는 호주 이민사에 아픔을 가진 격리시설에서 이제는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휴양지로 변모했다.
수요예배
마지막 날 저녁에는 50년 전 시드니에서 최초로 세워진 시드니한인연합교회(담임목사 조삼열) 수요예배에 참석했다. 이날 예배에는 이종승 목사의 설교와 이경은 목사의 축도로 진행됐다.
예배 후 준비해 간 백서와 선물을 조삼열 목사에게 전했고, 이어서 경남·부산·울산 기독교 뿌리 찾기 활동을 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공로로 크리스찬리뷰 권순형 발행인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권 발행인에게 이곳에서 감사패를 전달한 것은 이 교회가 이민와서 처음 출석했던 모교회서였다.
권 발행인은 경남성시화운동본부가 창립되고 ‘호주선교사 묘원’을 조성한 후 경남성시화 임원진이 2009년 9월 28일 호주를 첫 방문 한 이래,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을 건립하는 과정에 호주 선교사들의 유품들을 수집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호주에 소장된 자료를 모으는 것은 당시 그가 발행한 ‘크리스찬리뷰’ 보도가 아니었으면 짧은 시간에 기념관을 건립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선교사들의 생존과 가족들을 파악하고 네크워크를 형성하여 그들을 경남으로 초청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이번 일정도 권 발행인이 기획하고 전 일정을 동행하며 안내하면서 도움을 주었다.
에필로그
우리는 이번 여정을 통해 부분적이나마 경남·부산·울산 기독교 뿌리를 찾아본 보람있는 시간을 가졌다. 데이비스 선교사와 관련된 스카츠교회, 선교사의 길을 안내했던 투락교회, 그의 모교회인 오크트리 세인트 메리 교회, 그리고 그가 세운 코필드 그라마 스쿨을 방문하면서 그의 짧은 생애가 너무나 방대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그를 기리는 모습에서 135년의 세월을 잊게 했다.
무엇보다 대학생 때 인도에 선교사로 갔던 여동생 사라와 한국에 같이 온 누나 메리 선교사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지금도 국내에 소개된 여러 논문 중에는 누나와 누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내용이 있어 혼란스러웠다.
멘지스 선교사의 행적 또한 이외의 수확이었다. 그녀가 모 교회를 떠나 투락교회에서 파송을 받았다는 사실은 당시 호주교회의 선교에 대한 인식 차이를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91세의 민보은 선교사나 97세의 서두화 선교사를 만나 함께 식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방문의 백미였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는지, 두 분의 한국에 대한 애정이 아직도 식지 않고 있음에 감사드린다.
그 당시 호주에서 해외 선교의 중심지였던 멜번에는 이외에도 선교사들의 모 교회와 파송교회, 그리고 그분들의 행적을 찾고 발굴해야 하는 일들이 많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자료가 부족하고 일할 사람도 부족하다. 날이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 같아 아쉽기 만하다.
이번 일정에 함께 한 분들의 고마움도 빼놓을 수 없다. 크리스찬리뷰(발행인 권순형) 전 편집진이 동원되어 가이드로 헌신했다. 더욱이 멜번에서 선교사들과 교회서 식사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해 준 멜번순복음교회 최주호 목사, 서두화 선교사와 만남에서 점심 식사를 준비한 뉴카슬한인장로교회의 정덕수 집사를 비롯한 성도들에게 큰 고마움을 전한다.
시드니 북쪽에 위치하여 현재 담임목사도 없는 상태에서 봉사자들 다섯 명은 직장에서 하루 휴가를 내고 헌신했다고 한다. 이들 모두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일행은 3월 14일(목) 오전 7시 호텔을 출발하여 시드니 공항에 여유있게 도착했지만 비행기 출발지연으로 인해 출국이 늦어졌다. 필자가 집에 도착한 시각은 15일(금) 오전 7시, 시차 2시간을 고려해도 26시간이나 걸렸다. 만 하루의 여행이었지만 너무나 지루하고 힘겨웠다.
그러나 135년 전 데이비스 선교사는 40일에 걸친 긴 항해 끝에 부산 땅을 밟았고, 이틀 후 제물포(인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호화 유람선도 아니고 짐을 싣는 상선을 이용했기에 목숨을 건 여정이었다.
데이비스뿐만 아니라 그 뒤에 한국에 왔던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이처럼 목숨을 건 항해를 자원했다. 나라조차 잃고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이 땅의 국민들을 위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생각하며 찾았고 젊음을 불살랐다.
도착하자마자 병으로 목숨을 잃은 분도 있었고 대부분이 풍토병과 싸워야 했다.
그들은 왜 이 땅에 목숨을 바쳤던가? 고난의 길을 왜 자원했던가? 우리는 이번 여행을 통해 한국 땅을 밟은 호주 선교사들과 이를 지원한 교회와 관계자들의 헌신을 다시 한번 기리며 감사를 드린다.〠 <끝>
성재효|경남·부산·울산 기독교 뿌리 찾기 백서 편집인, 창원섬김의교회 장로, 사회복지법인 실버덴 대표이사 권순형|본지 발행인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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