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역파송 선교사 이호잣 목사

글/김환기 사진/권순형 | 입력 : 2024/08/23 [15:16]

▲ 한국에서 9년 동안 불법으로 살다가 예수 믿고 종교난민 비자를 받고 귀화한 이호잣 목사. 2014년 그는 한국 최초의 ‘역파송 선교사’로 가족과 함께 터키로 떠났다.©크리스찬리뷰     

 

2017년 2월 20일, ‘호주 시니어 미션’(SMA, Senior Mission Australia)이 창립되었다. ‘호주 시니어 미션’은 선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함께한 선교공동체이다. 시니어 미션은 시니어들이 직접 선교사로 활동하거나 선교사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니어들의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선교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2024년 8월 초, ‘호주 시니어 미션’은 특별한 분을 초청하여 집회를 가졌다. 한국 최초의 ‘역파송 선교사’이자 한국 최초의 종교 난민비자를 받은 이호잣 선교사이다. 

  

그는 이란인 무슬림으로 원래 이름은 ‘호자트’였다. 한국으로 귀화하면서 ‘이호잣’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는 ‘이란 이 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1993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2002년 한글을 배우기 위하여 ‘나섬공동체’을 찾았고, 그곳에서 예수를 믿고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2004년 나섬에서 ‘몽골공동체’를 섬기고 있던 배은경 선교사를 만나 결혼했고, 2007년 나섬 공동체 대표인 유해근 목사의 권유로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자국인도 쉽지 않은 신학 공부를 외국인이 하기에는 너무 높은 벽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중간에 포기하려 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너는 혼자 공부하는 게 아니야, 나와 함께 하는 거야.”

  

그는 서울장신대와 장로회신학대 신대원을 졸업했다. 2013년 10월 마침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서울 행당동 무학교회에서 목사 안수식이 열렸다. 

  

불법체류자로 한국에 와서 각종 차별과 멸시를 당하던 그가 목사가 됐다. 그는 이란으로 돌아가 선교를 하고 싶었다.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그는 본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기도 중 이란과 노비자를 맺고 있는 터키로 선교의 방향을 돌렸다. 터키에는 많은 이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이란인에게는 제3국으로 나가는 관문과 같은 곳이다.  

  

2014년 그는 한국 최초의 ‘역파송 선교사’로 가족과 함께 터키로 떠났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역파송 선교사란?

 

‘역파송 선교사’란 외국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이주민이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선교사로 활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 온 외국인 근로자나 유학생이 한국에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신학 교육을 받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특히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현지인이 선교사로 활동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역파송 선교사’는 현대 선교 전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적인 선교 방식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오늘날,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현지인이 선교사로 활동하는 것은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이들은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국 공동체 안에서 신앙의 본보기가 되며 그곳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호잣 선교사와 인터뷰 

  

지난 8월 1일 시드니주안교회에서 이호잣 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시드니에서 ‘나함사’(나섬 공동체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김두제 권사와 ‘호주 시니어 미션’의 배용찬 장로도 함께 했다. 

  

이 선교사 부부는 8월 1일(목) 시드니주안교회 목요찬양집회를 인도하고 8월 3일 혼스비에서 몽골학생들을 만났다. 8월 4일 시드니제일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8월 5일 ‘호주 시니어 미션’ 집회에서 간증을 전한 후 8월 7일 출국했다.   

 

-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 소개를 해 주시죠. 

  

“1993년이 이란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다른 나라로 하나 둘씩 이란을 떠났습니다. 저는 한국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란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2주 비자를 받았습니다. 그후 20년 동안 한국에서 살다가 2014년 ‘역파송 선교사’로 터키로 갔습니다. 예수를 믿고 개종했다는 이유로 이란에는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란의 블랙 리스트(black list)에 올라가 있습니다. 처음 한국 올 때는 3-4년 후면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지 못하고 계속 한국에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온지 9년 동안 불법으로 살다가 예수 믿고 종교난민 비자를 받고 귀화했습니다. 

  

한글을 배우기 위해서 나섬공동체에 간 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결혼도 하고 신학 공부를 마치고 목사가 되었고 이제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정말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신학 공부할 때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하고 한 달만에 그만 두고 싶었습니다. 공부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공부를 포기하려고 기도할 때마다 주님의 음성이 들었습니다. 

  

“너는 혼자 공부하는 게 아니야. 나와 함께 하는 것이야.”

 

학우들과 교수님들이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교수님들도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어서 다른 나라 말로 배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잘 알고 있었기에 저의 고충을 이해하여 주었습니다. 

  

마침내 모든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목사 안수를 받고 2014년 최초의 ‘역파송 선교사’가 되어 터키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 이호잣 목사와 부인 배은경 선교사가 본지 영문편집장 김환기 사관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 자리에 배용찬 장로와 김두제 권사가 함께 했다.©크리스찬리뷰     

 

- 한국에서 9년 동안 무슨 일을 했나요? 

 

 “한마디로 제 마음대로 살았죠. 저는 2주 비자가 끝나고 불법체류자가 되었습니다. 처음 3년 정도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오성 스폰지 공장과 합판 공장에서 일했고, 6년 동안은 한솔 인쇄소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알라를 믿는 무슬림이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알라를 만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높은 곳에 가면 신을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 등 한국의 많은 산들을 다니며 언젠가는 신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설악산에 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를 듣고 따라가 보니 절이었습니다. 스님들이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주며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때 스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글을 배워야 불경을 읽고 스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한글을 배우기 위해 교회를 갔습니다. 

  

그 교회가 ‘나섬공동체’입니다. 주일이 되면 나섬 공동체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옵니다. 목사님은 식사 전에 간단하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이란 사람을 위하여 통역할 사람을 찾았을 때 저도 모르게 손을 들었습니다.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 이호잣 선교사 가족 사진. ©이호잣     

 

- 그러면 이란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요? 

  

“저는 3명의 형이 있고, 누나가 2명있습니다. 형들과 같이 슈퍼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가방 만드는 일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습니다. 이란에서는 비전을 찾을 수가 없어서 떠나게 된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몇 년 후에 누나 두 분에게 방문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작은 누나는 한국에 와서 예수를 믿고 유해근 목사님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큰 누나는 터키에서 형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 부인 배은경 선교사는 어떻게 만났나요?

  

“저는 주일에도 일을 했습니다. 일이 끝나고 교회에 가면 식사 시간이 끝난 상태입니다. 그런데 몽골 공동체를 섬기고 있는 배 선교사가 저를 위해 밥을 따로 챙겨주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 가까이 사귀다가 2004년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38세, 배 선교사는 34세였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배선교사가 말을 거들었다. 

  

“밥이 문제죠!”(함께 한 사람들이 같이 웃었다). 배 선교사는 자기 언니도 구세군 사관이라며, 이름은 ‘배미용 사관’이라고 했다. 참 좁은 세상이다. 그녀는 필자의 사관학교 1년 후배이다.” 

  

- 왜 이란이 아니라 터키로 갔나요?

  

“저는 종교 난민으로 한국 국적을 받게 되었습니다. 5년 후 한국으로 귀화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귀화 서류 중 하나는 이란 대사관에 가서 이란 국적 포기 서류를 가지고 와야만 했습니다. 

  

이란 대사관에서는 요청하는 서류를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주일 후에 이민국에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귀화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놀라우신 분입니다. 

  

이란을 떠난지 30년이 넘었지만 저는 한 번도 이란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에 이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터키와 이란은 노비자 협정을 맺고 있습니다. 

  

많은 이란 사람들이 터키를 오가고 있습니다. 또한 터키는 이란 사람들이 제3국을 갈 수 있는 관문 역할도 합니다. 그래서 이란 대신 터키로 선교의 방향을 바꾸게 된 것입니다.” 

  

▲ 시드니주안교회 목요찬양집회에서 간증하는 이호잣 목사.©크리스찬리뷰     

 

- 배 선교님, 자녀는 몇명인가요?

  

“19살 아들과 17살 딸이 있습니다. 국제학교는 돈이 많이 들어서 현지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년 3월 한국에 있는 대학을 지원하려고 합니다. 

  

터키 교육은 한국과 많이 다릅니다. 의무적으로 이슬람교 교리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터키에서는 예고를 다녔습니다. 그래서 꿈은 애니메이션 작가 혹은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습니다.”

  

- 무슨 비자를 가지고 있나요? 

  

“거주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까지 직업이 없어도 비자를 쉽게 연기할 수 있었는데, 올해 1월 1일부터 비자법이 바뀌었습니다. 집을 사서 재산을 가지고 있거나 직업 비자를 갖거나 학생 비자만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거주 비자만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은 세 명 중 한 사람은 돌아가야 합니다. 저희들도 내년 5월에 비자를 신청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저희는 교회를 공동명의로 구입해서 더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교회가 아닌 협회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교회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섬 페르시안 교회’를 후원하여 주고 있습니다. 2005년 4월 5일에 첫 예배를 드리고 벌써 네 번째 교회를 옮겼습니다. 

  

처음 교회는 가정 교회였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터키는 이슬람 국가와 같이 심한 단속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터키는 이슬람 국가입니다. 교회라고 해서 제재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단속이 있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습니다. 

  

건물 내에서는 괜찮은데 건물 밖에서 문제가 생기면 닫게 됩니다. 코로나 시대를 계기로 줌 예배도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 현재 사역하는 지역은 어디인가요? 

  

“우리 교회 이름은 이스탄불에 있는 ‘나섬 페르시안 교회’입니다. 교인들은 60-70명 되나 매주 모이는 사람은 40명 정도입니다. 교인들이 교대로 나옵니다. 배 선교사만 빼고 다 이란 사람입니다. 

  

주일 예배 때 십자가를 걸고 평일에는 뗍니다. 한국 문화원으로 등록되어 있고, 평상시에는 음식, 문화, 피아노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다른 지방의 가정교회들도 돕고 있습니다.” 

  

-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갖고 있나요? 

 

 “때가 되면 이란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가족이 있는 곳에 교회도 세우고 싶습니다. 현재 ‘나섬 페르시안 교회’를 다녀간 이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비밀리에 성경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감옥에 갔다가 온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법이 바뀌면 언젠가 반드시 가고 싶습니다. 이란에서 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고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예수님께서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 이호잣 목사는 터키에 있는 페르시안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이호잣     

 

이란에 큰 교회를 세우고 많은 이란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란을 위하여 할 일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김환기ㅣ본지 본지 영문편집장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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