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 (로마서 12:1 )
“오늘은 제가 세 번 예배드리는 참 복 받은 날입니다.” 수년 전에 교회 장로님 한 분이 주일 낮과 오후 청년 예배에 이어 저녁에는 친지 장례 예배에 참석하실 계획이라며 하셨던 말씀이다. 그렇다. 어떤 형태이든 예배는 복되고 예배자는 복된 사람이 분명하다.
공동 예배를 위해 모일 때 우리는 지금껏 살아온 삶의 근원이요 원천이 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회개한다. 또한 앞으로 살아갈 삶의 주재자께 위탁과 순종을 다짐하면서 개인 예배를 위해 흩어진다.
이렇게 마치 회전문을 통과하듯 우리는 매 순간 마주하는 생의 장면을 하나씩 매듭지어 과거로 떠나보내면서 동시에 미래로 걸어 나간다.
자주 예배하면 예배는 점차 생활의 일부가 된다. 한 번 생활 속에 들어온 예배는 자연스럽게 예배와 삶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한다. 예배는 점차 실생활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급기야 예배하듯 생을 살 수 있게끔 훈련을 지속하는 단계를 거친다.
궁극적으로는 구원받은 성도의 한평생 전체가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
영적 예배는 삶으로 드리는 예배다.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 정해진 순서에 따라 예배드릴 때 갖는 기쁨, 감사, 경외, 순종, 헌신하는 마음의 자세가 생활로 계속 이어져야 한다. 성도의 삶을 사는 생활의 예배가 살아있는 산 제사, 참 예배, 영적 예배다.
한 좋은 예가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립보서 2:17)라는 말씀에서 발견된다.
빌립보 교인들의 삶과 바울 사도의 삶이 비빔밥처럼 하나로 어우러져 교향곡처럼 울려 퍼진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이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가 될 수 있다니 놀랍다.
격리되어 솟구친 산(山) 위에서 격양되어 드리는 예배가 아니고, 산에서 내려와 낮은 생활 속에서 차분히 드리는 산(living) 예배에 더 집중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공동 예배가 끝났을 때 진정한 삶의 예배는 비로소 시작한다. 자신이 사는 삶 속에서 삶으로 예배하는 그래서 예배가 삶이고 삶이 예배가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더 바랄 것이 없는 이런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하려는 열망을 가진 자들이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영과 진리로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 아니겠는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라는 말씀에 대한 철저한 되새김이 필요하다. ‘몸을 더럽힌다.’, ‘몸을 정결하게 한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몸은 주로 악의 근원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예수 믿기 전과 후로, 이전에 불의의 무기로 사용되던 몸이 이제 의의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의를 행하는 도구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거룩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산 제사로 드리는 일에 좀 더 대담해지자.
예배자가 된다는 것은 별생각 없이 살다가 주일 한 시간 동안에 찬양 몇 곡 부르고 기도문 읊조리고 성경 말씀 떠올리고 익숙하게 봉헌하는 정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신앙의 이름으로 거룩한 예배와 속된 생활을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에 놓아두는 어리석음을 멈추자.
이분법적으로 예배와 생활을 철저히 구분하고 사는, ‘쉽지만 역겨운 위선’을 버리자. 그리스도인은 결코 조현병을 앓는 이중인격자가 아니다. 꿇어 기도하고 앉아 성경 읽고 서서 찬양하고 모여 예배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에 종사하더라도 흩어져 주의 다스림이 실현되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을 살아 삶의 전 영역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도록 하는 첨병의 역할을 다하자. 성(聖)스러움을 접하는 속(俗)은 자연스럽게 소멸하기 마련이다.
“자~, 이제는 가야 할 시간입니다.” 다음 예배를 위해 자리를 뜨는 장로님의 뒷모습에서 나는 예배당 건물이나 제의적 예배에 갇히지 않고 오늘도 삶의 예배를 위해 출정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를 본다.
한평생 수많은 예배를 드려 오고 계신 장로님의 인자한 웃음과 따스한 손길, 겸손한 말, 품위 있는 몸가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에서 선을 행하기에 분주한 삶 속에서 나는 오늘도 짙게 배어나는 기도의 향기를 맡고, 찬미의 선율을 듣고, 작은 예수의 걸음을 본다.〠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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