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의 시작, 수메르 문명과 성서 XXIV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6/04/21 [14:34]

 

▲ 니푸르 출토 문학 점토판(기원전 약 1900~16 00년) 수메르 문학 전통이 전해진 고대 기록. © Penn Museum More info     ©

 

인류 최초의 도서목록- 지식을 정리하기 시작한 인간

 

지난 칼럼에서 우리는 수메르 문명이 에둡바라는 학교를 통해 기록을 배우고 전수하는 사회로 발전했음을 살펴보았다.

  

점토판 위에 문자를 새기던 학생들은 서기관이 되었고 그들은 법과 계약, 행정과 경제를 기록하며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인력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쌓여 간 기록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고 보관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중요한 단서는 니푸르에서 발견된 한 점토판에서 드러난다.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는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에서 이를 ‘인류 최초의 도서목록’(The First Library Catalogue)이라 부른다. 이 점토판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여러 문학 작품의 제목을 체계적으로 나열한 목록이다.

  

현재 펜실베이니아 대학 박물관에 소장된 이 점토판은 길이 약 6.4cm, 너비 3.8cm에 불과한 작은 크기지만, 그 안에는 무려 62편에 이르는 작품의 제목이 정리되어 있다.

  

서기관은 점토판의 양면을 활용해 정교하게 목록을 구성했고 일정한 기준에 따라 작품들을 배열했다. 이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이미 고대 사회에서 지식을 분류하고 체계화하려는 의식이 존재했음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점토판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두 점토판은 순서에는 차이가 있지만 상당수의 작품 제목이 일치하며 학자들은 이 둘이 동일한 전통, 혹은 동일한 서기관에 의해 작성되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즉, 이것은 우연히 만들어진 목록이 아니라, 일정한 목적과 기준 아래 작성된 ‘지식의 목록’이었다.

  

이 도서목록의 정확한 용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교육용 목록으로 보며, 에둡바에서 학생들이 배워야 할 문학 작품들을 정리한 것으로 해석한다.

  

또 다른 견해는 서기관들이 참고하기 위한 일종의 문학 자료 목록으로 본다. 분명한 사실은, 이 점토판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들을 인식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시도라는 점이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더 이상 기록을 단순히 남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모으고, 분류하고, 다시 찾아 활용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갔다.

  

기록이 ‘정보’라면, 목록은 그것을 ‘지식’으로 바꾸는 도구였다[현대 도서관학에서는 이를 색인(index)이나 목록(catalogue)이라 부른다].

  

수메르의 점토판 목록은 오늘날 도서관의 색인 시스템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책을 찾기 위해 목록을 검색하듯, 고대의 서기관들 역시 이미 어떤 텍스트가 존재하는지 파악하고 접근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점토판 위에 새겨진 이 목록은, 인간이 처음으로 지식을 조직하기 시작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성서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의미 있게 이어진다. 시편과 잠언과 같은 지혜 문학은 단순한 개인의 기록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고 정리된 공동체의 지혜이다. 이는 기록이 축적되고 정리될 때 비로소 공동체의 기준이 되는 ‘지식’으로 자리 잡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첫 시도가 바로, 수메르 점토판에서 발견된 ‘인류 최초의 도서목록’이었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알파크루시스대학 교수(Ph.D)

▲ 주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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