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6/27 [15:35]
‘百聞不如一見’(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 번을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듣고 수없이 같은 말을 반복해도, 단 한 번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강영우 박사는 어릴 적 축구를 하다 공에 맞아 두 눈을 잃고서 평생을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지만 하나님을 믿으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박사까지 되었습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행정부의 차관보가 되어 미국 장애인들의 복지에 힘을 쏟았고, 그 후에는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이 되어 세계 장애인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리고는 2012년 2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 강영우 박사가 남긴 마지막 유고집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육신의 눈으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지만 믿음의 눈을 가진 강영우 박사의 눈에는 희망만 보였습니다. 희망만 보였기에 그 희망을 따라 공부하고 박사도 되고 장애인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실로 강영우 박사님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지만,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그 무엇도 볼 수 없었지만, 믿음의 눈으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눈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눈을 뜨고 보고 있다고 해서 바르게 보는 것도 아닙니다.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이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희망과 미래와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 그것이 참되게 보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그 현상 뒤에 있는 진실을 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

예수님은“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마 5:22)라며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그래서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아지지만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이 성해야 합니다. 맑아야 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르게 보고 깨끗한 것을 보아야 합니다.
 
아동발달 분야의 권위자인 아놀드 게젤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린이는 한 쌍의 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시각 세계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그 세계는 직접 만들어야 한다.”
 
보는 것과 시각 세계는 다릅니다. 시각 세계는 보는 것이 저장되는 세계입니다. 마치 컴퓨터 작업을 하고 나서 저장을 하면 하드 공간에 새파일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두 눈을 가지고는 있지만 아직 아무 것도 보지 않았기에 시각 세계는깨끗합니다. 그 시각 세계에 아이들이 보는 대로 저장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왜 엄마를 좋아하겠습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안아주고 젖을 먹이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엄마인 것을 눈으로 보고 시각 세계에 저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각 세계는 분명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깨끗하고 순결하고 고상한 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과 더럽고 추하고 폭력적인 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의 시각 세계는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을까요?
 
자기 부모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와 밤낮 술마시고 싸움을 하고 욕설을 해대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와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더우기 보는 것은 시각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의 지각과 인식에까지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에게 들어오는 정보의 80%는 눈을 통해서 인지된다고 합니다. 책을 보고 사물을 보고 세상을 보는 것으로 우리의 시각 세계는 물론 우리의 지각 세계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가 그의 삶을 좌우하게 됩니다. 보는 것이 삶이요 보는 것이 삶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믿음의 세계는 더더욱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세계는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볼 수 없는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하루는 장막 안에 있던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시고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니라”(창 15:5-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늘과 별을 보여주시고 또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을 떠난 때가 이미 75세였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막 도착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때까지 아브라함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자식으로 백발의 노인이 돼버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별을 보여주시면서 “네 자손이, 하늘의 셀 수 없이 많은 뭇별처럼 번성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바로 그 하나님을 말씀을 덥썩 믿었습니다.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다 늦은 나이에 여전히 자식 하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새로운 땅에 도착해 발 붙일 곳을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뭇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고, 유업으로 삼을 땅을 주시겠다는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육신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실상을 자신의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자손이 하늘의 뭇별처럼 셀 수 없을 만큼 번성케 되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두 발을 디딛고 서 있는, 그 광대한 땅이 자신의 유업이 될 것도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단 한 명의 자식도 없는 그때에, 단 한 뼘의 땅도 없는 그때에,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무도 보지 못할 때, 자신만은 두 눈으로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눈을 떠야 보인다
 
최근에 신문에서 각막이식 수술로 시력을 되찾은 43세의 농부 김안찬 씨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두 눈을 잃은지 28년 만에 시력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일생 동안 갈망하던 한줄기 빛이 그의 오른쪽 눈으로 새어든 순간 김안찬 씨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이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동안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도 귀한 자식들의 얼굴도 보지 못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아내와 자식들의 얼굴을 보고서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의 피부가 너무 뽀얗고 고와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참으로 볼 것이 많네요.”
 
그렇습니다. 눈을 뜨면 사랑하는 사람이 보이고 눈을 뜨면 하나님이 보이고 눈을 뜨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세계가 우리 주위에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이 감겨 있기 때문에 , 꺼풀이 씌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을 뜨고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믿음의 눈을 뜨면 볼 수 있는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세계가 있는지 모릅니다. 믿음의 눈만 뜨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축복과 비전과 은혜들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을 뜨지 못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보지 못할 뿐이지, 믿음의 눈을 열기만 하면 엄청난 것들이 우리의 눈을 통해 쏟아져 내려올 것입니다. 〠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