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대로 생기는 얼굴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10/24 [11:43]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트렌드 중 하나는 ‘아름답게 사는 것’입니다. 오래 사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는 아름답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뷰티 산업이 거대한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피부과, 화장품, 미용서비스, 성형 등 뷰티 산업의 고객이 중산층에서 대중으로 확대되면서 연평균 10.1% 고도 성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고, 또한 아름다움을 오랫 동안 간직하길 원합니다. 따라서 이같은 트렌드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아름답게 사는 것일까요? 외적인 모습만 아름답게 꾸미면 저절로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요?
 
예수가 가룟 유다가 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란 그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나눈 마지막 유월절 만찬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위해 모델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11명의 제자의 모델을 찾아 차례대로 그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가룟 유다의 모델을 찾지 못해서 그림을 완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의 한 교회를 방문해 예배를 드리던 다빈치가 무릎을 탁하고 쳤습니다. 성가대 석에서 열심히 찬양을 하고 있는 청년이 눈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다빈치의 눈에 비친 그 청년의 모습은 마치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사가 찬양하는 것처럼 아름다웠고, 예수님의 모델이 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 청년의 이름은 ‘피에트로 반디네리’였고, 다빈치는 그 청년을 모델로 예수님을 그렸습니다. 이제 가룟 유다 한 사람만 남았는데, 또 오랫 동안 그리질 못합니다. 가룟 유다처럼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배신자의 이미지에 걸맞는 모델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7년 동안이나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한 사람만 그리면 되는데 여전히 가룟 유다의 모델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로마 시장이 다빈치에게 사형수 중에 모델을 찾아보라고 제안을 했고, 다빈치는 가룟 유다와 가장 잘 맞는 이미지의 사형수를 찾아내 마침내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마친 후에 사형수가 다빈치에게 물었습니다. "다빈치 선생님,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전에 예수의 모델을 했던 피에트로 반디네리입니다." 그는 예수의 모델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의 유혹에 빠져서 마약과 알콜에 찌들어 살며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형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빈치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던 피에트로가  7년 만에 악마의 얼굴을 한 가룟 유다의 모습이 되었을까?’ 이때의 충격으로 다빈치는 두 번 다시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는 대로 생긴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얼굴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로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은 늘 교회 일에, 신앙 생활에 헌신적이고 성실하십니다. 또한 매우 지성적이고 이해심도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에게 한 가지 컴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외모였습니다. 특히 얼굴이었습니다. 본인 스스로 너무 험악하고 무섭게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구와 이야기를 할 때에도 정면으로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삐딱하게 옆으로 보면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흔히 생긴 대로 논다”라고 말을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생긴 대로 노는 것이 아니라 논 대로 생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놀았는지가 우리의 외모와 생김새를 만들어갑니다. 그런 면에서 장로님은 참으로 잘 노신 것 같습니다.”
 
그분의 얼굴에서는 분명 그리스도의 향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분의 외모에서는 깊은 신앙의 연륜과 교회를 향한 사랑, 하나님에 대한 열망이 묻어 나왔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잘 놀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외모는 노는 대로 생깁니다. 정말입니다. 경건하게 노는(?) 사람은 경건해집니다. 그러나 불량하게 논다면 그는 분명 불량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기 치는 사람이 사기꾼이고, 거짓말하는 사람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처럼, 노는 대로 생기게 됩니다.
 
어떻게 노는냐에 따라, 다시 말해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따라 누구든 천사의 얼굴이 될 수도 있고, 악마의 얼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거울을 한 번  보십시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내가 무얼 하고 놀았는지,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천사의 얼굴을 지닌 스데반
 
스데반이 공회 붙잡혀 왔습니다. 모든 고발이 끝나고 스데반이 답할 차례입니다. 공회에 모인 사람들이 스데반을 쳐다봅니다. 스데반을 고발한 회당 사람들을 비롯하여, 제사장, 장로, 서기관, 그리고 거짓 증인들과 백성들이 모두 스데반을 주목합니다. ‘과연 스데반이 어떤 말을 할까?’ 사람들이 스데반을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얼굴이 신비롭게 보입니다. 보통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행 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은 스데반의 친구나 동료가 아니었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려고 거짓 증언을 하고 고발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눈에도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스데반이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어떻게 스데반이 천사처럼 보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스데반이 어떻게 놀았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스데반을 가리켜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행 6:8).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할 정도로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스데반은 공회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거짓 증언과 고발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공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스데반의 적입니다. 오직 홀로 서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내면은 고요합니다. 왜냐하면 은혜와 권능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천사는 아름다움의 상징입니다. 천사처럼 아름답다는 것은 그의 외모가 정말 아름답다는 것이고, 천사와 같은 마음은 그의 마음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공회에 있는 스데반은 정말 아름다왔습니다. 그의 대적들이 보기에도.
 
스데반이 화장을 했겠습니까? 성형을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설교하다가 붙잡혀 왔습니다. 그런데도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그의 내면에 가득한 은혜와 권능이 그의 얼굴에 묻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링컨은 사람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태어나면서 가지게 되는 얼굴을 부모로부터 물려 받는 것이지만, 40대 이후의 얼굴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40대 이후의 얼굴은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어떻게 놀았는지 얼굴을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외모를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수많은 대적들 앞에서도 천사 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지닐 수 있는 비결은 단 하나입니다. 은혜와 권능으로 충만한 삶이었기에 그의 얼굴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볼 수 있었고, 그 모습은 과연 천사의 얼굴과도 같았던 것입니다.
 
외모가 아름답기를 원한다면 먼저 그 삶을 아름답게 일구어 가십시오.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십시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권능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분명 천사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이 시대의 스데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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