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고시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5/27 [16:34]

며칠 전 탈북자들을 돕는 목사를 만났다. 이 세상에서 수많은 처참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묻는다고 했다. 목사는 비참한 삶의 마지막 기간이라도 회개하고 구원받아서 천국에 가야지 죽어서 다시 더 나쁜 지옥에 가면 얼마나 슬프겠느냐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천국이나 극락이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가는 길은 어디 있을까? 아마도 경전이 그 길의 안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수는 자신이 천국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다. 예수의 삶과 진리를 기록한 게 성경이다. 부처는 그가 남긴 법을 따르면 죽음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설파한 진리를 담은 게 불경이다. 경전들을 보면 유치해 보이는 신화와 기적이 가득하다.
 
역사적 고증도 제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또 과학적 증명이 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수천 년을 생명력을 가지고 오늘날까지 살아있다. 어느 호텔을 가도 또 감옥 속에서도 경전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지성들이 삶의 황혼에 귀의하는 게 경전이었다. 총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들은 천국을 가는 안내서임을 감지하는지도 모른다.
 
고려대 총장을 지냈던 김상협 교수의 평전을 쓴 일이 있다. 그가 살았을 때 남긴 여러 자취를 살폈다. 평생 정치학을 공부하던 그의 독서여정의 종착역은 경전이었다. 칠십을 넘기자 그는 성경과 불경 그리고 사서 삼경 등 경전을 섭렵했다. 다음 세상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길안내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밤에 잠을 자다가 조용히 저세상으로 건너갔다. 의사들은 그의 죽음이 통증이 없는 심장의 정지였다고 했다. 내가 알던 강태기 시인은 자동차 수리공 시절 두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천재였다. 그는 일생 많은 책을 읽었다. 그는 내게 젊어서부터 읽던 모든 책들을 정리하면서 그래도 죽기까지 옆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 뭔지를 생각했다고 했다.
 
그것은 성경과 논어라고 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은 젊어서 교사도 하고 사업도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북한산 자락에 집을 짓고 경전을 읽는 삶에 들어갔다. 한 신문의 종교 면에서 ‘도전 성경 천독’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현실의 교회활동에 회의를 느낀 한 목사가 일 년으로 예정하고 길을 떠났다.
 
조용한 산 속 오두막에 방을 얻은 그는 성경을 펼쳤다. 열 번 백 번 읽어도 특별히 깨닫는 건 없었다. 그렇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읽는 재미가 생겼고 그래서 계속 읽었다. 로마서를 천 번 읽었다. 어느 순간 그는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생각이 자신을 뚫고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 그는 그 순간 눈 껍질이 벗겨지면서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졌다고 했다.
 
성경읽기는 눈을 뜨는 작업이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는 잡은 것이다. 그는 성경을 거듭해 읽는 것은 에너지를 충전해 삶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대기업을 경영하는 회장인 고교 동창 한 명이 차 안이나 집에 경전을 두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경전에서 좋은 기운이 스며 나온다는 것이다. 원불교를 믿는 그는 경전은 어떤 종류라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토스토엡스키의 책을 보면 러시아의 엄마들은 아들이 전쟁에 나갈 때면 복음서의 한 장을 아들의 옷 속에 몰래 부적같이 숨겨 실로 꿰매어 주었다는 내용도 나오고 있다.
 
나이 먹은 나는 요즈음 천국 고시를 준비하면 어떨까 생각하곤 한다. 이십 대 고시공부 시절 암자의 뒷방에 틀어박혀서 법서를 읽고 또 읽었다. 십 년 가까이 되니까 법서 안에서 들끓던 수많은 말들이 몇 단어로 압축됐다. 뭔가 보이는 그때가 합격하는 순간이었다.
 
경전을 읽고 또 읽으면 어느 순간 눈앞에 어떤 정경과 그 속의 길이 보이지는 않을까.〠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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