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민답게 행동하라는 판사의 말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6/25 [16:30]


김민호 씨는 영세민 아파트에서 늦둥이 딸과 살고 있었다. 그는 시인이었다. 30년 전 을지로에서 그가 혼자 꾸려가는 초라한 출판사에서 책을 함께 만든 인연으로 그와 알게 됐다.
 
어느 날 그가 나의 법률사무소로 찾아왔다. 그는 아파트 단지의 사람들을 대표해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영세민 아파트 단지 앞에 갑자기 커다란 경찰서가 들어서게 됐다. 그 바람에 낡고 얕은 아파트가 햇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를 쓰는 그는 어린 딸과 하루 종일 어둠침침한 그늘에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서는 영세민들의 민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 건축법 시행령을 공부했다. 이웃의 일조권을 침해하는 경우 겨울에 하루 몇 시간은 태양빛이 들어올 수 있게 설계변경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법대로 해달라고 법원에 직접 소송을 제기했다. 그가 얘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제가 법정에 나갔더니 판사가 찬바람 도는 소리로 내뱉더라구요. 영세민이면 영세민답게 행동하라고 말이죠. 그리고 전문지식이 부족하면 변호사를 선임하라는 겁니다.”
 
판사의 말이 상처를 준 것 같았다. 영세민이면 영세민답게 행동하라는 말을 왜 했을까? 판사는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했다. 시인인 그가 작성한 서류들이 판사의 구미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돈 없으면 소송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을까? 같이 따라와 조용히 옆에 있던 주민이 주눅든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아파트 주민 대부분이 일용노동이나 거리에 나가서 장사를 해서 먹고 사는데 그나마 김 선생같이 배운 분이 있어서 우리를 대변해 주시고 그렇습니다. 판사님 말씀이 너무하신 것 같습니다.”
 
주민들을 위해 소송을 해 주던 김민호 씨는 그 얼마 후 영세민 아파트에서 쫓겨났다. 왠일인지 거기에 살 자격이 없다는 판정이 난 것이다. 내게 전화를 해서 아이와 갈 곳이 없다고 울먹였다. 그 얼마 후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었다.
 
뉴스화면에서 대법관 후보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같은 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했던 고교 후배가 내게 전화를 걸어 분노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형사 단독판사를 할 때 아파서 병원에 며칠 입원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내 사건을 같은 법원에 있던 판사한테 맡겼죠. 그런데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보석결정을 해서 내보내서는 안 될 놈을 내보내 버린 거야. 말도 안 되는 사항인데 청탁을 받고 풀어준 거죠.
 
내가 병원에서 돌아와서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따졌죠. 그 친구 판사 자격도 없어요. 윗사람이 뭐라고 하면 그저 네네 하는 타입이었어요. 그런 엉터리 판사가 대법관이 되다니 한심해요.”
 
“당시 법원의 분위기가 어땠어?” 내가 물었다.
 
 “판사들이 실비라는 명목으로 지역 변호사들한테 강제로 돈을 상납 받는 분위기였지. 그리고 매일 변호사들 순번을 정해 불러서 법원 근처 호텔에서 밥이나 술을 사게 하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판사들에게 “밥은 구내식당에서 먹고 변호사한테 얻어먹지 맙시다” 라고 했어요. 그리고 변호사들한테 판사실에 와서 돈 내지 말라고 했죠. 판사들이 입을 삐죽거리고 나를 소외시키더라구요. 그리고 재임용에서 탈락됐죠. 하여튼 그때 그랬어요.”
 
타협을 모르는 그는 부러지는 성격이었다. 변호사생 활을 하면서 별별 판사를 다 봤다. 나 자신이 상처를 받기도 했다. 법률교과서 외에 머릿속에 들은 것이 없는 판사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연줄을 타고 올라가 고위직법관이 되기도 한다.
 
법관은 일선에서 직접 정의를 실현하는 위치다. 그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가치관은 무엇일까? 헌법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다. 그게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 바탕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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