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버킷리스트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7/29 [14:22]

경주에서 살고 있다는 로스쿨 교수 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한번 만나서 점심이나 하고 싶다는 것이다. 얼마 전 자그마한 신문에서 그의 컬럼을 보았다. 진심이 담겨있는 좋은 글이었다.
 
약속한 날 점심 무렵 그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영혼이 맑아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우수의 그늘이 보였다. 그와 사무실 근처의 음식점으로 가서 불고기 백반을 주문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불고기 백반은 최고의 음식이었다. 친구들에게서 밥을 많이 얻어먹었다. 요즈음 나는 내가 땀 흘려 번 돈으로 남에게 밥을 사는 게 즐거움 중의 하나다. 로스쿨 교수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몇 년 전 제가 꼭 만나고 싶은 분으로 버킷리스트에 적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만나 뵙게 됐습니다.”
 
깜짝 놀랐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만나고 싶은 대상이 된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친구들이나 단체에서 화합하는 성격이 못됐다. 독불장군으로 행동하는 바람에 오히려 소외되는 게 나였다. 그렇다고 남에게 다가가는 용기도 없었다.
 
어려서나 늙은 지금이나 대부분의 시간을 나 혼자 지내는 편이다. 그러다 외로울 때면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친구는 잘 섬기겠다고 그런 기도가 통했는지 뜬금없이 찾아오는 천사들이 종종 있었다. 로스쿨 교수는 내게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놓았다.
 
“저는 판사 중에서 일호로 재임용에서 탈락이 된 사람입니다.”
 
법관들은 십 년마다 재심사를 한다. 탈락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판사 정원이 늘어난 요즈음은 물의를 일으키는 함량 미달의 판사들이 더러 탈락되기도 한다.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조용한 태도의 그에게서는 투사 비슷한 느낌이 풍겨 나왔다.
 
“왜 탈락이 됐습니까?”
 
내가 물었다. 실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한다면 그런 걸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물었다.
 
“판사로 있으면서 사법부가 바뀌어야 할 점에 대해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문제가 된 겁니다. 기고를 했지만 인사 문제나 개인적인 불평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사법부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대승적인 제 의견을 솔직하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사법부의 철벽은 판사의 개인적인 의견 발표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았다. 원래 그런 곳이었다. 이십 년 전 한 변호사가 사법부를 소재로 소설을 쓴 것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보이던 법원이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판사에서 나와 서울은 안 될 것 같고 해서 지방도시에서 법률사무소를 개설했습니다. 판사를 막 그만두면 전관예우라고 해서 의뢰인이 몰리는 시대였는데도 저는 두 달 동안 사건이 딱 하나만 들어왔습니다.
 
대법원에 항명한 판사에게 누가 사건을 맡기겠느냐는 소문이 퍼진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법과대학 교수의 길을 가게 됐습니다. 그곳 역시 보수의 두꺼운 벽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그는 틀린 건 틀리다고 말하는 성격 같았다. 그런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세상은 내편이냐 네편이냐를 따졌다. 내편이면 범죄를 저질러도 용서했다.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목숨같이 여기는 판사 자리를 바른 글과 바꾼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버킷리스트에 써 놓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를 보내고 밤늦게 법정 스님 생전의 낙엽 지는 어느 가을날 법문을 한 글을 읽었다. 사람은 죽어도 말과 글은 살아있다. 스님은 가치 없는 일에 시간과 능력을 탕진하면 인생이 녹슬어 버린다고 경고하고 있다. 쇠만 녹스는 게 아니라 인생도 녹이 슨다는 것이다.
 
스님은 남은 삶을 3년 정도라고 생각하고 삶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기울이라고 하고 있다. 찾아온 로스쿨 교수에게 배웠다. 나도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정말 그리운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겠다.〠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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