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의 벽, 사회의 벽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9/24 [17:48]

대학을 다니던 생선가게 집 아들이 음악에 미쳤다. 그는 음악 인생을 가기 위해 학교를 때려 치웠다. 그러나 그를 심사한 평론가들은 그에게 프로가 될 개성이나 재능이 없다고 했다. 테크닉을 가진 뮤지션들은 세상에 널려있었다.
 
그는 방향을 돌려 복지시설을 찾아다니며 노래로 장애아나 노인들을 위로했다.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밤이면 혼자서 노래를 만들었다. 어느 날 밤 그가 묵게 된 시설에 불이 났다.
 
그는 연기 속에 있는 한 아이를 구하다가 안타깝게 죽었다. 세월이 흐르고 우연히 복지시설에 있던 한 여자아이가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가수가 된다. 그 여자아이는 무명으로 죽은 그 뮤지션이 만든 노래를 불러 대중의 가슴에 물결을 일으켰다. 죽은 무명의 뮤지션이 만든 노래가 소녀를 통해 살아난 것 같았다.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코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소설의 한 장면이다.
 
땅에 묻혀 썩은 씨가 그렇게 싹을 틔우는 경우가 있다. 하늘은 그렇게 천천히 인간의 소망을 들어주기도 한다. 소년시절 학교에서 선생님은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라는 말을 가르쳐 주었다. 노년이 된 지금은 운명이 내 인생을 휘감아왔다는 걸 깨닫는다.
 
하늘이 재능과 기회를 주지 않으면 어떤 일도 되지 않았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돌을 다루는 기술 나무를 다루는 기술 철을 다루는 기술 음악을 하는 재능을 각 인간에게 부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 소설과 비슷한 한국의 가수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에 미쳤다고 했다. 낡은 통기타 하나를 구해 밤이고 낮이고 노래를 불렀다. 대학을 포기하고 음악에 몰입했다. 결혼을 해도 그는 음악밖에 없었다.
 
단칸 셋방의 보증금을 빼내 악기를 사서 지방무대로 갔다. 오디션을 볼 때 업주는 얼굴이 못생겼다고 무대에 서는 걸 거절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음악에 인생을 걸었다. 마침내 그의 노래가 히트를 하고 어느 날 아침 그는 최고의 가수로 올라섰다. 수많은 팬들이 그에게 열광했다.
 
그가 어느 날 뉴욕에 갔다. 뉴욕의 뮤지션들을 돌아보면서 그는 절망의 벽에 부딪쳤다. 뉴욕의 삼류 뮤지션들도 그보다 실력이 좋은 것 같았다. 음악에 대해 정식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솔직히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상태에서 인기 가수가 됐다. 열등감과 절망 그리고 계속되는 라이브 공연을 이겨내기 위해 환각제를 복용했다가 그는 구속됐다.
 
그는 비 오는 날 감옥 안에서 노래를 만들어 내게 보내기도 했었다. 사람마다 자기가 뚫지 못한 벽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고 있는 경우를 본다.
 
한 원로 소설가는 문학계에서 권위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는 톨스토이 같은 작가들을 보면 자기는 삼류정도가 아니라 사류 오류도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죽는 날까지 글을 쓰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창조주는 재능의 벽을 만들어 예술가들의 품질을 가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름대로 비슷한 고통이 있지 않을까?
 
사회적 제도의 벽도 있다. 법원을 보면 서기로 수십 년을 근무해도 판사가 되지 못한다. 이 사회는 학벌과 돈이라는 두꺼운 벽이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한 번 탈락되면 패자부활전이 쉽지 않다. 학벌은 지식이나 지성이 아니라 구름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연줄이기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새로운 세상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돌아보면 세상은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변해왔다. 여론의 물결이 오랜 시간에 걸쳐 법조문 하나하나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걸 본다. 내가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또 죽은 후에라도 하나님의 연자 맷돌은 느리지만 곱게 빻고 있다고 믿는다.
 
그게 진짜 혁명이 아닐까.〠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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