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루스 날개를 단 검사들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11/25 [12:49]

십오 년 전쯤이다. 지붕에 눈이 소복하게 덮힌 대전교도소를 가서  이십 년째 복역하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났었다.
 
그는 매에 못 이겨 살인범이라고 허위자백을 했었다고 하면서 검사에게 말하면 살 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청계천 고가도로 밑의 거지였다. 그는 냉정한 검사에게 한이 맺혀 있었다. 성공한 수재에 대한 기대가 컸나보다.
 
국민들이 원하는 영화의 주인공 같은 검사상이 있다. 그런 검사가 있었다. 재벌회장들이 거액의 비자금을 대통령에게 뇌물로 준 걸 심판하는 법정에서였다. 젊은 검사는 빼돌린 그 돈 중에는 노동자들의 피땀이 섞여 있지 않았느냐며 법정에서 울먹였다.
 
목소리가 떨리고 눈에 물기가 고였었다. 세월이 흘렀다. 눈물을 흘리던 그 검사가 전관 로비로 수백억 원을 벌고 탈세의 주범으로 감옥에 가는 기사를 봤다. 무엇이 그를 변질시켰을까. 민정수석의 추한 모습이 신문의 톱기사로 연일 오르내린다.
 
검사장이 부자와 유착해서 수백억의 주식을 받은 사건이 국민들의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검사가 재벌의 심부름꾼이 되고 정치의 시녀로 등장하는 영화가 공감을 얻고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고 하늘 끝까지 날아올라 보려는 영혼이 변질된 일부 검사들이 검찰을 망치는 것 같다.
 
가난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검정고시 출신 검사가 있었다. 명문학벌과 부로 그물같이 촘촘이 조직이 된 검사사회에서 그는 외톨이였다.
 
벽지를 떠돌던 그는 어느 날 산더미같이 쌓인 힘든 미제사건 기록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미운털이 박힌 그를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합법적인 압력이었다고 했다. 지청장 출신 중견 검사가 서울 중앙 검찰청의 요직을 한번 보라고 했다. 정치인의 아들, 고위 관료의 아들 권력가의 사위들이 포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형사부 요직에도 형사부 출신 검사가 있나 한번 살펴보라고 했다. 대부분이 특수부나 공안부출신이 간다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엘리트 귀족이 따로 있는 것 같다. 정치자금과 뇌물죄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한 정치인의 변호를 맡았었다. 뒤에서 여러 소리가 들렸다. 권력 핵심의 뜻을 거역해서 출마한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소문이었다. 선거 사흘 전에 압수수색이 이루어진 점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의심했다.
 
변호사인 나는 담당 검사에게 뇌물죄는  빼달라고 했다. 직무에 대한 대가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담당검사는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은 ‘수사’가 아니라 ‘정무’라고 했다. 그는 매일 저녁 높은 곳에 보고하고 그 명령을 따를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빨리 자백을 하시고 법원에서 집행유예로 빠져나가라고 했다. 검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수사가 아닌 ‘정무’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경악했다. 예상대로 뇌물죄는 무죄가 되고 그 정치인은 석방이 됐다. 검찰의 본질이 뭔가 묻고 싶은 사건이었다.
 
검찰이 변해야 할 것 같았다. 불란서와 독일의 검사 동일체 원칙은 인사권을 가진 권력핵심의 명령이 전류같이 일선검사에게 흐르라고 도입한 게 아니다. 독점하고 있는 기소권력도 나누어야 한다.
 
거대한 부정과 비리가 드러나도 기소만 하지 않으면 되는 사회는 썩은 세상이다. 국제형사재판관 한 분은 내게 수사권과 공소권은 반드시 분리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적을 무너뜨리기 위한 무리한 기소와 수사를 병행하는 폐해가 바로 그 이유다. 검사는 법을 바로 세우는 소명을 다해야 한다. 〠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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