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원로의 기도문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02/24 [15:42]
▲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언론인, 저술가, 대학 교수를 지낸 국어국문학자 이어령 교수. 노태우 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다.     © 크리스찬리뷰



아내가 싱크대 앞에서 문이 반쯤 열려 있는 내 작은 서재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동영상 하나 보낼게 봐. 감동이야”
 
잠시 후 나는 카톡을 열어 아내가 보내준 영상을 튼다. 태극기가 보이고 붉게 아침이 열리는 동해바다가 나타난다. ‘독도 아리랑’이라는 노래의 연주가 애조를 띠고 들려오면서 글자가 밑에서부터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하나님 우리 조국을 구원하소서. 한국은 못난 조선이 물려준 척박한 나라입니다. 그곳에는 선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 나라는 벼랑 끝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이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험난한 기아의 고개 속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이 없습니다. 전란 속에서도 등에 엎은 아이를 버린 적이 없습니다. 숨가쁘게 달려와 의식주 걱정이 끝나는 날이 앞에 있는데 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싸움밖에 모르는 정치인들에게는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 팍팍한 서민들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주소서.”
 
나라를 걱정하는 이어령 교수의 기도문이었다. 뒤쳐진 자 헐벗은 자 노인에 대한 그의 사랑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이사회가 갈등으로 더 이상 찢기기 전에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성경 속의 예언자같이 그는 부르짖고 있다. 이 사회가 두 쪽으로 찢기는 데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는 것 같다.
 
며칠 전 이웃빌딩에서 개인법률사무소를 하는 칠십 대의 변호사와 근처 곰탕집에서 함께 점심을 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변호사를 하면서 학자같이 조용하게 사는 사람이었다.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좌파냐 우파냐 하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어요. 제 나이 또래는 전부 우파래요. 그러면서 생각이 다르면 전부 빨갱이 공산당놈이라고 욕을 해요. 어려서 한 번 세뇌된 반공 프레임 속에 빠져서 헤어나오지를 못하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싫어요.
 
또 반대쪽 사람들을 보면 세상의 모든 죄가 모두  한 계급이나 독재자 한 사람에게 있는 것같이 말하죠. 나의 불행은 모두 부자나 이제는 모두 죽어버린 친일파에게 있다는 거죠. 정신적으로는 그들도 썩어 있으면서 말이죠. 강남좌파라고 하던 조국 장관 보세요.”
 
나는 그의 말에 당연히 공감하는 입장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회색주의자라고 할까요? 좌도 우도 아니고 그냥 양심에 따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따라가는 입장이에요. 변호사를 사십 년 가까이 하다 보니 나 자신이 독특한 색깔을 지니게 됐어요. 변호사란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 거죠. 누가 나쁘다고 하면서 대중이 돌을 던져도 그걸 보는 나의 캐릭터가 따로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나는 곰탕을 먹으면서 조용히 그의 다음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요새 정국의 핵이 된 조국이라는 사람을 전혀 모릅니다. 그가 교수를 했는지 강남좌파인지 관심 없어요. 그렇지만 검찰이 그 부인에 대해 피의자 신문도 하지 않고 기소를 해 버린 건 분명 뒤에 후회할 거라는 생각입니다. 모든 게 바르게 가질 않아요.”
 
정치가 세상을 흘러넘치고 있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에 갔다가 광장으로 끝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봤다. 그들과 색깔이 다른 사람들은 서초동으로 몰리고 있다. 그들 서로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같은 나라에 살아도 이방인들인 것 같다.
 
여기서는 정의가 저기에서는 불의가 되고 있다. 그들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이성이나 잘못된 판단이 아니라 핏속을 흐르는 강한 증오의 감정인 것 같다. 나는 광장에서 독이 서린 표정들과 구호를 볼 때 섬뜩하다. 그렇게 독이 가득한 사람들이 과연 사회를 개선하고 국가를 바로 잡을 수 있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뀌어야 사회가 변하고 국가가 바로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시기에 사회의 원로 이어령 교수의 기도문은 잔잔한 물결같이 사람들의 마음 기슭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어령 교수가 은퇴할 때 한 시사잡지와 인터뷰한 글 중 한마디기 기억 저쪽에서 떠오른다.
 
낙엽은 아직 윤기가 있을 때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삶에 대한 은유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는 더 늙고 암이라는 죽음의 천사가 찾아왔다. 그 천사 뒤에서 예수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딸의 조용한 죽음을 보면서 이성주의자였던 그의 영혼은 성령을 맞이한 것 같다.

▲ 콜링맨 시드니 강연회에서 열강하는 이어령 박사 (2010. 4.)     © 크리스찬리뷰


등불에 전류가 흐르면서 빛이 나듯이 그의 영은 이 사회에 더욱 빛을 뿜어내는 것 같다. 어제 저녁 중앙일보를 보다가 그가 하는 이런 말이 적혀 있는 걸 봤다.
 
“나는 절대 병원에서 죽지 않을 겁니다. 나는 내 서재에서 글을 쓰다가 죽을 겁니다. 평생 방해받지 않고 글을 써야 하는 시간을 얻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는 인류가 혼자 하는 수공업이 딱 하나 남았다고 했다. 그게 문학이라는 것이다. 방 안에서 혼자 하는 죄수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곳에서 세상을 화해시키려는 그의 기도문이 나온 것 같다. 뜻있는 사람들이 기도 할 때인 것 같다.〠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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