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의미와 그 가치성

홍관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07/27 [16:13]

미국의 정치가 패트릭 헨리는 영국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하여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이 말보다 자유의 의미를 더 강력하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 사람에게 있어서 자유의 의미는 실로 죽음과 맞바꿀 정도로 고귀한 것이다.

 

자유의 가치성은 생명의 가치보다 귀하다. 그래서 인류는 더 온전한 자유를 얻기 위해 생명을 걸고 피 흘리기까지 투쟁해 왔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람의 마음에 자유 의지를 심어 주셨다. 그래서 사람은 나면서부터 자유를 갈망하고 자유를 얻기 위해 생명을 바치며 투쟁해 온 것이다.

 

금년이 일제의 압박에서 우리 민족이 해방된지 75주년이다. 해방이란 자유라는 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1910년 일본이 침략한 그날부터 우리 민족은 숨도 크게 못 쉬고 36년간을 살아야 했다.

 

내 집에 살면서도 손과 발이 묶인 채 자유를 빼앗기고 살아야 했다. 일본의 한일 합병이라는 미명으로 우리 한국민족의 주권을 송두리째 빼앗았다. 그들은 우리 민족의 주체사상을 말살시키기 위해 소위 황민 정책을 펼쳐 나갔다. 우리의 말과 글을 빼앗고 일본어를 국어로 대치시켰다.

 

공석에서는 우리 말과 우리의 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엄금시켰다. 더 나아가서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성(姓) 마저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고 이름조차도 개명토록 했다. 일제의 탄압은 점점 심해져서 자기 나라의 왕을 '신' (神)이라고 하면서 동방요배를 강요했다. 말을 듣지 아니하면 모조리 감옥에 집어넣었다.

 

모진 고문을 가했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처형했다. 우리 기독교에는 소위 신사참배라는 우상숭배를 강요했다. 신앙을 고수하는 참 신자들은 투옥되고 순교했다. 그러나 정의의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만행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드디어 1945년 8월 15일, 우리에게 행방과 자유를 되찾아 주셨다. 지금 우리는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유의 가치성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

 

요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자유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 가를 깊이 깨닫는다. 가족과 친지들이 식당에 마음대로 갈 수 없고, 성도들이 예배당에 함께 모여서 예배도 드릴 수 없다.

 

독재 국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자유 통제가 어이없게도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의 자유가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자유가 통제되면서 깨달아야 할 것은 그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에 대해 감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유가 주는 풍족함에 너무 깊이 빠져서 오히려 주어진 자유로써 죄악을 선택하고 육신의 정욕대로 방종하며, 주어진 자유로써 음행,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술 취함과 방탕 등의 (갈 5:19-21) 길로 행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는 주어진 자유로써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로써 성도의 본질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8:2) 그동안 넘치고 풍성했던 자유를 당연한 것처럼 생가하고 감사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진리이신 주님께로 돌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통한 하나님의 바라심이 아닐까!

 

 

홍관표|본지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 홍관표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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