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에게도 24시간은 있는 거에요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07/27 [16:16]

 

후배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평소에 그렇게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던 사이다.

 

“엄 선배, 나 백혈병에 걸려 강원도 조용한 곳에서 쉬고 있어요.”

 

얼핏 병원의 무균실의 백혈병 환자들이 떠올랐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그들은 균이 없는 방에 격리해 놓고 문 앞도 투명비닐로 차단해 놓은 걸 본 적이 있었다. 환자는 유리박스 속의 동물 같은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네. 병원의 무균실에 감금되어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그렇게 위로했다.

 

“나도 중환자실에 오랫동안 있었죠. 그러다 골수이식을 받고 나서 이 정도 자유의 몸이 됐어요. 그런데 말이죠, 병실에 있을 때 느낀 건 중환자에게도 24시간이 있다는 겁니다. 그 시간은 거의 정지된 채 아주 느릿하게 흘러가더라고요.”

 

그는 평소에 바지런한 사람이었다. 모임도 잘 만들고 교회에서는 장로로 일을 거의 혼자했다. 그는 백혈병인데도 목소리에 침울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생한 사람에게는 나도 그랬소 하는 게 위로의 말이다. 아픈 사람에게도 내가 아팠던 얘기를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도 마흔다섯 살 때 암이라는 의사의 통보를 받고 눈앞이 캄캄해져 집에 누워 천정만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지. 사흘을 그렇게 누워 있으니까 등이 쑤시고 못견디겠더라구. 갑자기 시간이 한없이 길어지는 것 같고 말이야. 그래서 일어났어. 죽기 전 날까지 하던 일 하다가 죽어야겠더라구. 백혈병 환자로 그 긴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

 

내가 되물었다.

 

“예전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도해봤죠. 그런데 내 몸으로는 너무 무리예요. 그 다음으로 역사를 공부했어요. 중앙아시아나 베트남의 역사까지 섭렵했죠.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떠오른 게 단편소설을 써 보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특징없는 평범한 인생이지만 나름대로 내가 느낀 삶을 소설 한 편으로 만들어 놓고 죽었으면 좋겠어.”

 

병이란 죽음을 생각하는 기회인 것 같다. 죽음이 어른거리는 순간에야 삶을 자각한다. 나도 그랬다. 얼마 안 남은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고 허둥댔다. 그런 자각이 있기 전에는 욕망에 빠지고 세상에 미혹됐었다. 돈에 정신이 팔리고 높은 지위가 부럽기도 했다. 헛된 명예욕으로 들뜬 행동을 하기도 했다.

 

젊음은 영원할 것 같았고 시간은 무한대라는 착각 속에 있었다. 병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하나님의 메시지였다. 중환자실의 침대 위에서 의료기계에서 나오는 파란 불빛을 보고 규칙적인 희미한 소리를 들으면서 인간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나도 수술대 위에서 후회했었다.

 

가족에게 사랑의 말을 하지 못했다. 돈보다는 관계를 그게 아니면 예술을 추구했어야 했다. 좀 더 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봤어야 했다. 지구호를 타고 우주여행을 하는 인생이었는데 금고 속에 들어가 여행을 한 셈이다.

 

바닷가로 밀려오는 하얀 파도를 본 게 언제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다. 병은 그런 걸 깨닫게 해 주는 소중한 손님이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후배가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나를 찾아왔다. 그를 근처의 한정식집으로 데려가 점심을 잘 먹이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살아 온 걸 단편소설로 써 봤는데 그게 도대체 써지지 않아요. 법률적인 글만 써와서 그런지 너무 딱딱해요”

 

변호사 후배의 말이었다.

 

그는 내용보다 어떤 틀에 더 매몰되어 있는 것 같았다. 훌륭한 소설가들은 좋은 문장을 위해 한평생 구도자 같은 수행을 한다. 소설 속의 아름다운 묘사들은 불가마 속의 도기처럼 고통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의 내공이 있어야 마침내 득음의 경지에 오른다. 표현 자체만 해도 그렇게 땀과 시간을 공물로 바쳐야 하는 게 예술이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나의 의견을 말해주었다.

 

“기성 소설가들이 만든 어떤 틀 속에 들어가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나만의 소리로 정직하게 써 보는 게 어떨까.”

 

변호를 하다가 무식한 부모가 재판장에게 올리는 진정서에 더러 감동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받침도 틀리고 삐뚤빼뚤한 한글이지만 그 글자에서 거칠었던 삶과 진한 사랑이 물큰하게 배어 나오곤 했다. 내가 말을 계속했다.

 

“정직하게 마음을 쓴 글이 보통 사람들의 넓은 공감을 얻는다면 그게 문학이 아닐까. 기성 소설가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수사학적 경지나 그들이 설정한 문학적 틀을 기웃거릴 필요가 있을까?”

 

세상은 주술을 걸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묶어 놓는다. 믿음 자체보다 목사나 장로 같은 형식이 앞설 때가 있다. 인간보다 자격증으로 상징되는 스펙이 앞서기도.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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