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페라리를 주문했어요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10/26 [15:52]

 

얼마 전 어떤 모임의 휴게실에 앉아 있다가 육십대 말쯤의 한 남자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내용이 우연히 귀에 들려왔다.

 

“은행의 대리가 사정사정해서 그 은행에 육십억 가량 돈을 예치시켰어. 너도 삼십억 가량 그렇게 해 줘라. 그래야 나중에 우리도 뭔가 부탁할 수 있지.”

 

아마도 여유가 많은 아버지와 아들의 통화인 것 같았다. 세상이 힘들다고 해도 그중에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휴게실에 앉아 혼잣말 같이 이렇게 내뱉기도 했다.

 

“이런 망할 놈의 세상이 있나? 우리 돈을 다 뜯어다가 백수놈들 먹여 살리려고 한다니까.”

 

그의 주변에서는 원인 모를 교만한 기운이 흐르는 것 같았다. 말을 섞을 기분이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나를 쳐다보는 눈길에서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나를 저울질 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이상하게 그와 그 후에도 자주 부딪쳤다. 가볍게 목례 정도는 하는 사이가 됐다. 어느 날 그가 말을 걸어왔다.

 

“아드님이 뭘 합니까?”

“유학을 가서 중의학을 하고 대체의학을 공부했습니다.”

“형편이 어떻습니까? 잘됩니까?”

 

그는 얼마나 버는지가 궁금한 것 같았다.

“먹고 살기 힘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녀석이 투잡 스리잡을 뜁니다.”

“어떤 일을 또 하는데요?”

“포르쉐라는 차를 파는 행사에 참석해서 일종의 안내를 하는 역할이죠. 하루 일당이 괜찮은가 봐요.”

 

아들은 카레이서 자격을 얻었다. 부자 고객을 포르쉐에 태우고 옆에서 다양한 기능들을 설명해 준다고 했다.

 

“포르쉐 그 차는 값이 얼마 안돼요. 기껏해야 일억 삼천만 원 정도될까. 우리 아들이 유럽 쪽에 수제 페라리를 주문했는데 칠억 정도 하더구만요. 배로 운송해 오는데 일 년이나 걸리는 구만”

 

“디스카버리 채널에서 오토바이나 차를 특별하게 개조하는 걸 보긴 했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차를 가지는 사람이 있었군요. 누군지 모르지만 아드님은 좋은 아버지를 뒀군요.”

 

내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아들은 자기가 벌어서 페라리를 사서 즐기는 겁니다. 나이가 서른아홉 살인데 아직 장가도 들지 않았어요.”

 

나로서는 삼십대에 그 정도의 여유를 가질 정도로 돈을 벌었다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직접 목격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법정을 가면 눈에 살기가 어린 민주노총의 피복조합이나 금속노조의 노조원들과 직접 마주치기도 한다. 시위를 하는 한 노조원은 자신은 공산주의자 박헌영 선생을 존경한다고 했다.

 

노동운동을 한다는 한 여성은 성남시의 골목골목에서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걸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광부의 아들인 한 가난한 마산의 변호사도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고 했다.

 

그들은 사회주의 이념을 순수하게 추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박탈감과 증오였다. 세상이 바뀌어 부자가 누리는 영광의 자리를 바꾸고 싶은 게 아닐까.

 

동학혁명 때도 많은 동학꾼들이 세상을 뒤엎고 바로 그 양반같이 되고 싶어 했다는 기록을 보기도 했다. 인촌 김성수 선생이 일제 강점기 민족대학을 만들기 위해 유럽을 돌아본 적이 있다.

 

그는 소련에서 스탈린의 딸이 귀족이 되어 비단 속옷을 입고 테니스를 치는 걸 보고 공산주의는 또다른 붉은 귀족의 나라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철없는 부자를 보면 얇은 유리 속의 어항에서 걱정 없이 편안하게 유영하는 금붕어 같은 느낌이다. 얼치기 혁명가들을 보면 물기 없이 갈라진 마른 강바닥 같다.

 

사회가 변하고 국가가 변하는 근본적인 개혁은 무엇일까. 나는 개개인의 영혼이 변하는 혁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있다고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는 마음이다.

 

이웃이 굶고 있으면 부자도 자숙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없어도 항상 감사하고 만족한 마음을 가지는 일이다. 물질보다 더 고귀한 어떤 존재를 알면 그런 혁명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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