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여행 같은 인생

송영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4/25 [14:45]


기차 여행의 추억

 

어렸을 때 추억 속에 가족과 함께 기차를 타고 시골에 내려가던 기억이 있다. 당시 기차는 지금의 빠르고 편안한 기차와는 달랐다.

 

기차 역마다 기차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만원이었다. 사람도 많고, 짐도 많고 자리가 없어 힘은 들었지만 기차를 타고 어디에 간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도 너무 좋았다. 기차에서 파는 삶은 계란, 오징어 땅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맛이었다. 삶은 달걀에 사이다 한 병이면 그렇게 행복했다.

 

우리의 인생 길이 마치 기차 여행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기대감 속에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 이 기차여행은 기쁨과 슬픔, 환상, 기대, 만남과 이별로 가득 차 있다. 기차 여행 중에 차창 밖으로 전개되는 풍경이 계속해서 다르듯이, 우리의 삶이 풍경이 다르다. 만일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모두 똑 같다면 도리어 지루했을 것이다.

 

기차는 순탄하게 넓은 대지를 달리다가도 내 힘으로는 도저히 넘기 힘든 험산 준령과 같은 과정을 넘어야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통과하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모든 순간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행복한 추억들 이다.

 

기차 길에는 각종 역이 존재한다. 종착역에 닫기도 전에 실패의 역, 질병의 역, 불평의 역 등에서 먼저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누구는 특석에서 누구는 우등석에서 누구는 자리도 없이 서서 간다고 힘들어 하거나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특석이 아니면 어떠한가? 조금 불편한 자리면 어떠한가? 힘들게 서서 가도 우리의 인생의 종착역은 같다. 우리 주님이 차장 되시고 마지막 종착지는 천국역이면 된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얼마 전 교인의 장례식에서 화장을 앞두고 장례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장지에 갔었다. 앞선 장례식이 있어 밖에서 기다리다가 우리의 정서와는 다른 광경을 보았다. 갑자가 채플에서 밝고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춤을 추는 광경을 보았다.

 

순간, 몇 해 전 존경하는 최영기 목사의 사모 천국환송예배가 기억이 났다. 사모는 오래 전 이미 암 선고를 받았지만 26년을 더 사셨다. 암에 걸린 몸으로 자신을 위해 살아가기도 아까운 인생, 목회자의 아내로서 힘들었을 법한데 도리어 “내일이 어떻게 될까 무서워 오늘을 어둡게 보내지 말라”고 하시며 최선의 삶을 사셨다.

 

사모는 장례식도 미리 주문했다. 자신의 장례식이 잔치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꽃도 조화가 아닌 화려한 꽃으로 장식 해주고, 천국환송예배에 참여하는 분들도 화려하고 예쁜 옷을 입고 와달라고 했다.

 

천국환송예배의 찬양도 자신의 평소에 좋아하는 찬양을 불러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사모는 정말 자신의 죽음이 천국에 입성하는 진정한 천국환송이 되기를 바랬다. 마지막 순서에 목사님이 나오셔서 “우리는 천국의 남문에서 만나기로 했다”며 우리 모두 천국의 남문에서 만나자고 했다.

 

어떻게 죽음 앞에서 이런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바로 이분들은 ‘정말로 천국을 믿고 사셨구나’였다. 인생을 마치 출장왔다가 보내신 분께 돌아간다는 믿음으로 사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회하다 보니 타향살이에 지쳐 고향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다. 가고 싶을 때 가면 되겠지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에 있는 분들이 더 많다. 하늘에 떠가는 비행기만 보아도 눈물을 흘린다. 그분들에게 이렇게 위로해 주었다. “우리가 가야할 곳은 하늘 본향이라고….”

 

우리는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크리스찬들은 영원한 본향 집인 천국을 의식하며 산다.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현실 도피적인 삶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사람이 현실을 더 성실하게 산다.

 

한때 많은 한국 사람들이 중동 가서 일을 했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은 힘든 일을 했다. 그럼 고향으로 돈을 보내 가족이 살 집도 마련하고, 자녀도 키웠다. 그 고생 가운데도 늘 언젠가 돌아갈 고향을 생각하며 버텼다.

 

그런데 당시 사회문제가 생겼다. 아내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남편들은 술과 도박으로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이유는 하나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고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 살고 나면 끝이라는 사람의 삶은 언젠가 무너진다. “내 인생이 뭐지?,” “내가 여기서 무엇하고 있지?” 것처럼 성실하게 살던 사람도 갑자기 방황한다. 우리는 인생의 목적지가 분명하기 때문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종착역을 안다면

 

돌아갈 것을 생각한다면 가볍게 살아야 한다. 여행을 해보면 알겠지만 나가면 불편하다. 며칠은 좋지만 아무리 좋아도 편하지 않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집에서 된장국에 먹는 것이 좋다. 여행 가는데 짐이 무거우면 정말 고생이다.

 

여행을 갈 때 돌아올 것을 생각해서 불편을 감수하고 간단해야 즐겁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호출하면 미련없이 돌아갈 수 있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짐만 가벼운 것이 아니라 마음도 가벼워야 한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를 완전히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다. 감정을 정리하지 못해 후회하고 꽁하고 무겁게 살지 말아야겠다. 살다가 보면 오해도 있고 나의 생각과 안 맞기도 하고 그게 인생이다. 너무 완전한 것을 기대하니까 즐겁지가 않다. 그냥 불편을 감수하며 사는 것이다.

 

마지막 종착역에 내리면 우리를 맞아 주실 분이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불편하고 힘든 인생 여정을 마친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환영과 위로를 해주실 것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히11:13-16 새번역) 〠

 

송영민|시드니수정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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