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해온 필자의 관찰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은 NO를 들을 때 가장 싫어한다. 사람들은 항상 YES를 듣기를 원하고 좋아한다. NO를 들을 때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거의 없을 것이다. 아니 전혀 없을 것이다.
사람들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NO를 들었어도 어떤 사람은 크게 마음 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며 또 그와는 반대로 크게 마음 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이 점에 대해서 가장 나쁜 태도가 무엇일까? 나는 NO를 듣기를 아주 싫어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NO라는 말을 아주 쉽게 하는 것이 아닐까? 똑같은 사건을 가지고 그것을 내가 했다면 YES고 다른 사람이 했다면 NO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라는 자세이다. 소위 내로남불이다. 아주 나쁜 자세다. 세상에 특히 한국사회에 바로 이 내로남불이 만연하지 않은가? 모든 사람들이 NO를 듣기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깊게 긍정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NO라고 말할 때는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사람들이 NO라는 말을 듣기를 싫어하니까 나는 YES만을 말해주겠다’라는 태도는 어떻게 되겠는가? 심리학자들은 이런 유형의 사람의 내면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이 NO라고 말해야 할 때 NO라는 말을 못하고 YES만을 말하는 깊은 이유는 자신이 YES라고 받아들여지기를 원해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자식에게 NO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 부모가 있다. 그러한 부모는 그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하겠다는 차원에서 자식에게 No라는 말을 피한 것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차원만 있는가? 그런 차원만 있지는 않다. 그 다른 이면에는 자식에게 거절당하기를 원하지 않아서라고 하는 동기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자식으로부터 NO라는 반응을 받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NO를 안 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자식도 NO를 안 듣고, 부모도 NO라는 말을 안 했으니 모든 일에 YES만 일어나고 문제가 없는 것일까? 그렇다고 대답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NO를 안 주고 받는 그 순간만큼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문제는 그 순간이 아니라 그 후에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NO를 듣기를 싫어한다는 것이 모든 경우에 YES를 해야 한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YES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NO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할 때가 있는데 성경은 이 점에 대해서 누누이 말씀하고 있다.
잠언 3장 11절은 하나님의 꾸지람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하신다. 하나님의 책망을 싫어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 가르침을 앞서 말한 식대로 표현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NO라고 하실 때 경홀히 여기지 말고 거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NO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YES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함이 없다. 심지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NO라고 하셨을지라도 그것은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NO는 우리를 망가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세우시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일어나는 질문은 우리의 인생 가운데 만나는 가장 어려운 질문들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어느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다. 그 아버지는 생각하기를 "사랑은 YES 하는 거야, 사랑은 상대방의 요구에 YES 하는 거야, 우리 아들이 먹을 것을 좋아하고 또 그것을 달라고 하니까 나는 그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많이 줘야지, 그게 사랑이야"라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먹을 것을 준다.
아들은 당연하게 좋아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좋아하니까 자신도 좋아한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사랑만으로 끝날까? 그 아들은 너무 먹어서 아동 비만이 되었다. 그리고 나이가 아직도 어린데 벌써 콜레스테롤이 높아지고, 소아 당뇨가 생기고 다른 애들처럼 뛰놀지도 못하고 그저 먹기만 하고 몸만 커지고 있다.
그래도 아버지는 책임이 없는가? YES 해주었기 때문에? 아들이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대로 해주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잘 한 것인가? 그것이 진정한 사랑인가? 전혀 아니다. 아버지도 좋아하고, 아들도 좋아했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왜?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그 YES가 그 아들을 세워주고 유익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버지의 그 무분별한 YES는 자기 아들의 유익은커녕 아들을 죽이고 있었다. 정말 그 아들을 사랑한다면 NO라고 했어야 했다.
마찬가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NO라고 하신다. 사랑하기 때문에 NO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들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은 NO라고 하신다. 이것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싫어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혼동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NO를 잘 못 말할 때는 얼마나 많으며, 사랑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YES를 잘 못 말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상대방을 사랑하며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상대방이 아니라 나를 더 사랑해서, 나의 유익을 더 위해서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아니, 혼동하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그렇게 교묘하게 포장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하나님의 NO는 온전히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하시는 것이다. 전적인 사랑의 발로이다. 그것을 싫어하지 말라고 하신다. 무시하지 말라고 하신다. 거부하지 말라고 하신다. 마귀의 YES는 우리를 무너뜨리지만, 하나님의 NO는 우리를 세운다.〠
이명구|시드니영락교회 담임목사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연재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