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떻게 말할까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10/28 [12:38]

 

▲ 배우 겸 소설가차인표의 '위안부'등 일제 강점기를다룬 소설 '언젠가우리가 같은 별을바라본다면'이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필수 도서로 지정됐다 . 사진은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차인표 작가.  

 

탈랜트 차인표 씨의 소설이 옥스퍼드대의 교재가 됐다는 기사를 봤다. 그는 대본을 보면서 연기를 하다 보니 창작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글을 쓰고 또 썼다고 했다.

  

그는 아내가 “당신은 잘 될거야”라는 한마디에 힘을 얻었다고 했다. 아내의 소박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남편의 삶에 투영되어 좋은 열매를 맺은 것 같다.

  

말 한마디가 참 중요한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면 감사하는 댓글 하나에 마음이 천국으로 갔다가 빈정거리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찌르기도 한다. 한마디 말이 한겨울 추울 때 먹는 따뜻한 국밥이 되어 감사의 눈물을 펑펑 쏟게 하기도 한다.

  

“내가 잘못 했다”고 담백하게 사과를 해 본 적이 있다. 그 한마디가 빙벽같이 굳었던 상대방의 마음을 단번에 녹이는 것 같았다. 변호사를 하다보면 나의 한마디에 듣는 사람은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기도 한다.

  

내가 한 말인 걸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경우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고 해서 국정원장이 구치소에 갇혀 있을 때였다. 사실은 정보기관의 예산을 청와대에 지원한 것이다. 나는 팔십대 노인이 된 국정원장의 변호인이었다. 국정원장은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다. 어느 날 감옥에 있는 그를 찾아가서 불쑥 한마디 했다.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네요. 내가 너를 안다고.”

  

국정원장은 그 한마디에 엄청난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내가 왜 그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내 혀를 잠시 빌려서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몸이 없으니까.

  

그분이 나를 도구로 써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은 때가 또 있었다.

  

이십육 년 전 지독히도 뜨거웠던 여름날이었다. 나는 임시 감옥인 달구어진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쇠사슬에 온 몸이 묶여있는 탈주범 신창원을 만나고 있었다. 무술 교도관 대여섯 명이 옆에서 비오듯 땀을 흘리며 감시하고 있었다. 신창원이 나를 보자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돈도 없고 도와줄 그 누구도 없는 사람입니다. 왜 나를 변호하려는 겁니까? 나를 이용해서 언론에 이름이나 내려면 아예 거절합니다.”

  

그는 이미 자기를 포기한 것 같아 보였다. 사형을 원한다고 했다.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변호를 해주라고 부탁한 분이 계십니다. 제가 공짜로 변호하는 게 아닙니다. 보수는 그분한테서 받을 것으로 압니다. 일반 변호사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옆에 있던 교도관들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탈주범 신창원의 배경 인물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게 도대체 누굽니까?”

  

신창원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옆에 있던 교도관들의 시선이 바늘같이 내게 날아와 꽂히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오른손 손가락을 천정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탈주범 신창원과 그를 지키는 교도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천정 쪽을 향했다.

  

순간의 침묵 속에서 모두가 수수께기를 풀려고 하는 아이 같은 표정들이었다.

  

“아, 알겠다”

  

내 옆에 앉아있던 뚱뚱한 교도관이 소리쳤다. 그는 유도선수라고 했다.

  

“그런 분이면 내가 먼저 믿을게요.”

  

모두들 그제서야 이해를 한 것 같았다. 그들 마음의 골짜기에 울리는 신비한 메아리가 내게도 들리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건 그래도 괜찮은 경우였다. 제어하지 못한 혀 때문에 아주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이한 적도 있었다. 오래 전 마산교도소로 갔을 때였다. 그곳에서 왕같이 행동하는 전국구 건달 김태촌 씨를 처음 마주쳤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너는 양아치”라고 내뱉었다. 그의 얼굴이 머리끝까지 분노로 새빨개졌다. 건달의 세계에서는 그 말을 듣는 게 가장 치욕이라고 했다.

  

나는 그 후에 칼침으로 보복을 받을까봐 속으로 두렵기도 했었다. 성경 속의 예레미야처럼 나는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하고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써서 여러 번 재판정에 서기도 했다.

  

오늘은 한마디 좋은 말의 선한 영향력에 대해 쓰려고 시작했는데 엉뚱한 결론 쪽으로 갔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걸 전하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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