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성공했습니까?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11/22 [10:24]

 ©Sasint     

 

20년 전 바다 여행길에서 만난 늙은 의사의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그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뛰어난 능력으로 미국의 유명한 병원에 스카웃이 됐다고 했다. 해외 출국이 금지되어 있던 그 시절 그는 바늘구멍을 통과한 행운아였다.

  

그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미국에서 부자가 됐다. 의사생활 삼십 년을 마치고 성공한 의사로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는 자신의 성공 과정을 이렇게 자랑했다.

  

“서울의대에서 교수로 남으려고 했는데 세계적으로 알려진 미국병원의 문이 열렸죠. 1972년이었어요. 당시 가난한 한국의 간호원이나 광부들이 독일로 갈 때였죠. 저는 미국에서 의사로서 안정되고 유복한 생활을 한 셈입니다.”

  

그는 그가 본 미국 사회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미국 사회의 모든 가치관은 돈이예요. 한 번은 미국인과 싸우다가 자존심이 상해서 상대방 보고 백 불을 줄테니 사과하라고 했어요. 상대방이 백 불짜리 지폐를 쥐더니 ‘아이 엠 소리’하는 거예요.

  그

리고는 나보고 ‘너 바보니?’하면서 씩 웃더라구요. 돈만 생기면 뭐든지 하는 사회죠.”

  

그는 자신이 겪은 미국병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는 저승갈 때 여덟 번 수술한다는 말이 있어요. 우선 숨을 못쉬니까 인공호흡기를 하다가 목에 구멍을 뚫죠. 밥을 못 먹으면 위에 구멍을 뚫고 관으로 음식을 투입하죠. 욕창이 생기면 몇 번 수술을 하죠.

  

자기가 일생 번 돈을 마지막에 의료비로 다 쓰죠. 많은 사람들이 개인파산을 하기도 해요. 백만 불을 벌고 은퇴했다는 노인이 있었어요. 당시 미국에서는 대단한 금액입니다. 그 노인은 나이 60부터 은퇴해서 철저히 휴식하는 생활을 했었는데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걱정을 하더라구요.”

  

의료보험이 없는 미국에서 의료비가 얼마나 공포인가 알 것 같았다. 의료비 때문에 이민갔던 사람들이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돈 말고 미국에서의 의사 생활은 어땠어요?”

  

내가 물었다.

  

“그곳에서 의사생활을 시작할 때 곧 죽을 것 같은 환자가 있었어요. 저는 환자 옆을 뜰 수 없었어요. 한국 같으면 의사가 자리에 없으면 환자 가족한테 얻어맞기도 해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런 게 없더라구요.

  

더 이상 할 조치도 없고 죽는 사람은 죽는 거 아니냐는 사고방식이더라구요. 새벽 한 시쯤 그 사람이 죽었어요. 아들한테 연락했더니 나보고 시체 안치소에 넣어두라는 거예요. 내일 퇴근하고 가겠다구요.

  

나이 팔십 이상의 노인이 죽으면 거의 반 정도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렇게 냉정한 게 미국이더라구요.

  

나는 삼십 년 동안 그런 미국 병원의 밀폐된 수술실에서만 살았어요. 해가 뜨는지 밤이 오는지 모르고 살았죠. 수술실에서 나도 모르게 졸다가 맞기도 했어요. 그런 생활을 이제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주위 사람들이 저를 늙은이로 보는 거예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내 마음은 아직도 젊은시절 그대로인데 말이죠.”

  

그는 의사라는 선민의식에 성공했다는 자부심까지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성공을 강남의 타워팰리스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돈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그를 유심히 관찰했었다. 그는 정신적 기형아였다. 일정한 나이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철학도 이념적 지향이나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도 없었다. 인간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는 그냥 기능인인 의사일 뿐이었다. 의사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백색의 거대한 공장에서 찍어낸 규격품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성공했습니까?’라고 묻고 싶었다.

  

고교 동기로 나와 친한 의사가 있다. 아버지가 의사고 그 역시 명문 의대를 나왔다. 대학병원에 남아 교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친구였다. 어느 날 그가 갑자기 교도소 내의 의사를 지망했다. 의사들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 곳을 그는 자청했다.

  

그는 내게 교도소 의사를 해보니까 진료실보다 검사실에 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기주의자인 재소자들이 자기에게 잘 안해 준다고 고소를 해서 수시로 검찰청에 가서 조사를 받는다고 했다. 그는 수입도 포기한 성자 같았다.

  

한 번은 자기가 입고 있는 쟈켓이 시장에서 산 싸구려라고 말하기도 했다. 교도소를 그만 둔 그는 어느 날 그는 목사가 되어 해외선교를 떠났다. 그는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낮은 곳으로 간 의사였다. 그는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것일까.

  

한국에서 의료대란이 일어났다. 전공의들이 파업을 일으키고 그 대표가 미국병원에서는 맹장수술을 삼천만 원 받는데 우리는 꼴랑 삼십만 원이라고 불평하는 걸 들었다. 의사들은 무엇으로 살까?

  

나는 미국에서 돈 번 걸 자랑하던 여행길에서 만난 의사보다 말씀을 먹고 사는 내 친구인 의사가 더 성공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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