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나환자들의 친구’ 맥켄지 선교사

권순형/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3/26 [11:20]

본지는 지난 해 5월 ‘소록도여 안녕’의 저자 이명남 선교사를 초청, 시드니와 멜본에서 간증집회를 가진 바 있으며, 이후   '호주 맥켄지 한센 선교회'를 설립하였다.

▲ 1915년경 부산•경남지방에서 일했던 호주 선교사와 가족들. 왼쪽 앞줄 끝에 서있는 사람이 제임스 노블 맥켄지 선교사이다.     ©크리스찬리뷰


'맥켄지 한센 선교회'(The Mackenzie Leprosy Mission in Australia Incorporated/MLMA)는 “100년 전 한국에서 나환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한국 나환자들의 친구’(Friend of Korean Lepers)라고  불리는 제임스 노블 맥켄지(James Noble Mackenzie :한국명 매견시, 1910-1939 사역) 선교사의 희생적 사랑의 정신을 계승하여 중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 있는 한센 환자들에게 치료제 지원과 경제적 자립, 자녀 교육, 영적 회복 등을 통해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이루어 주기 위한 목적”을 갖고 설립되었다.

▲ 제임스 노블 맥켄지 선교사 (1940년)     ©크리스찬리뷰
 
 
▲ 맥켄지 선교사가 돌보았던 나병 환자     ©크리스찬리뷰
 
맥켄지 한센 선교회는 한국교회와 함께 이 사업을 전개해 나갈 것이며, 1차 목표는 중국(연변)에 한센복지센터를 세워 이곳을 중심으로 선교기지로 삼고, 아시아 지역의 한센인 복음전파사역에 구심점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10명의 선교사 파송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4월 15일(주일) 오후 3시에는 서울 상도교회에서 호주 맥켄지 한센 선교회 설립 축하 및 최승일 목사 이사장 취임 감사예배를 개최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 12:24)


▲ 데이비스 선교사와 그의 누이 메리     ©크리스찬리뷰

 
지금으로부터 123년 전인 1889년 10월 2일 조셉 헨리 데이비스 목사가 그의 누이 메리와 함께 한국에 선교사로 입국함으로써 호주장로교회의 첫 한국 선교사가 되었고 한국 선교의 문을 열었다.


▲ 데이비스 선교사가 죽은 지 20년 만인 1910년 그의 제수(왼쪽)와 조카가 부산 복병산에 있는 그의 묘를 찾았다.     ©크리스찬리뷰
 
그러나 데이비스는 한국에 온 지 6개월 후인 1890년 4월 5일, 부활절을 하루 앞둔 토요일 부산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호주장로교회로 하여금 한국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 주었고, 그의 희생적인 헌신과 죽음의 결과로 호주의 한국 선교가 유지, 계승, 발전되어 지난 123년간 약 130여 명의 호주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일했다.


▲ 상애원이 재개발되기 전 상애교회에서 바라본 정착촌과 오륙도 전경     ©크리스찬리뷰

 
한국 초대 선교사 중 한 사람인 매견시로 불린 제임스 맥켄지(Right Rev. James N. Mackenzie) 선교사는 1910년부터 1939년까지 29년간 주로 나환자들을 돌보았다. 부산에 있는 일신기독병원은 바로 그의 두 딸인 헬렌과 케더린에 의해 설립되었다.

천형병으로 알려질 만큼 나병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당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병인데 당시 한국에는 많은 나환자들이 있었지만 적절한 치료나 보호없이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있었으며 이들을 위한 사역은 필요하고도 적절한 것이었다.

영국구라선교회에 의해 시작된 나병선교회는 1909년 부산에 나환자수용소를 건립하였는데 그 후 호주선교부로 이관되었고, 1910년 2월 내한한 맥켄지 선교사가 이 일을 맡게 되었다.


▲ 제임스 노블 맥켄지 (한국명 매견시) 선교사 목회 20주년 기념비 제막식 (1930년)     ©크리스찬리뷰

 
이렇게 시작된 나환자수용소는 처음에 20여 명으로 시작되었으나 1914년에는 80여 명으로, 이후에는 650여 명의 나환자를 수용하는 나환자 정착촌으로 발전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상애원이다. 

본지  취재팀은 지난 2000년 3월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 2동 산 2번지에 위치한 나환자 정착촌 상애원을 방문하고 한센병자였던 역사의 산증인 이성곤 장로(당시 88세)를 만났다.


▲ 이성곤 장로     ©크리스찬리뷰

1946년 소록도교회에서 장로 안수 받은 한센인들 중 최초의 장로였던 이 장로는 나병으로 인해 한쪽 눈을 실명했고 오그라든 손과 발, 그리고 뒤틀린 얼굴이었지만 목소리는 놀랄 정도로 활기차고 힘이 있었다.

그는 맥켄지 선교사에 대해 “담대하고 용감했어요. 상애원에 문제가 있으면 총독부를 찾아가 따지고 꼭 해결하셨어요”라고 말하면서 “호주선교부에서 이 병원을 설립해 놓으니까 그야말로 생명이 살아나고 영혼이 살고 육신이 살아난 겁니다”라고 회고했다.    

이성곤 장로는 본지와 인터뷰 이후 다음 해 89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재개발되기 전 한센인 정착촌 상애원     ©크리스찬리뷰

 
지난 2010년 10월, 경남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구동태 감독)는 마산공원묘원 내에 순직 호주 선교사 묘원을 조성하고 그곳에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을 건립했다.
 

▲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 개관식     ©크리스찬리뷰

 
 
▲ 부산진교회 선교사 묘지를 방문한 선교사 후손들과 한인교계 인사들     ©크리스찬리뷰


경남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구동태 감독)는 호주 선교사와 후손들을 개관식에 초청했으며, 30여 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들은 선조들이 한국땅에 뿌린 복음의 열매들을 직접 확인하며 그들의 숨결과 향기가 묻어 있는 부산·경남지역 선교 현장들을 방문했다.


▲ 개발 후 상애원 자리에 들어선 고층아파트     ©크리스찬리뷰

 
그러나 매견시 목사가 1900년 초 당시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던 한센인들의 육체를 치료하고 영혼구원에 주력했던 상애원을 찾았을 때 그곳은 지역개발로 인해 2004년 정관 신도시로 이전, 그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게 되었고 그 역사의 현장이라도 확인해 보기 위해 선교사 후손들은 상애교회로부터 안내를 받게 되었다. 그때 안내를 맡았던 분이 이명남 선교사였다.   


▲ 이명남 선교사     ©크리스찬리뷰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한센병에 걸려 소록도에서 기적적으로 치유받고 1969년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한센병이 나을리 없다’며 명남 씨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소록도로 돌아 갈 수도 없었던 명남 씨는 부산 용호동의 한센인 정착촌 상애원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그곳에 정착하면서 일자리와 거처를 마련해 준 한 은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이성곤 장로였으며, 그의 양아들이 되었다.


▲ 이명남 선교사는 우연히 교회를 방문한 정상인 아가씨와 만나 주위의 건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이명남

 
이명남 선교사는 소록도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틈틈히 배운 오르간 실력으로 상애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맡았으며, 우연히 교회를 방문한 정상인 아가씨와 주변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골인하였다.

그는 어느 날 예배를 드릴 때 목사님의 설교가 마음에 와서 박혔다. 누가복음 17:1~19절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했는데 예수님이 고쳐 주신 열 명의 한센 환자들 중 한 사람만 감사했다는 내용이었다.


▲ 이명남 선교사의 자서전                            ©크리스찬리뷰

 
그는 설교를 들으면서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는데 나는 비겁하게도 감사하지도 못하고 한센병이었던 사실을 숨기며 피해가면서 살고 있지 않은가?”


▲ 연변한센요양원을 찾은 이명남 선교사     ©이명남

 
그래서 그는 수기를 쓰기 시작했고, 월급을 쪼개어 한센인들에게 옷과 의약품들을 가져다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확신하고 2000년부터 전문인 선교사로 헌신하여 연변 조선족 자치구, 인도, 필리핀 등 본격적으로 아시아권을 다니며 한센 환자들을 찾아 다녔다.


▲ 상애교회 사무실에 걸려 있는 역대 담임목사 사진들. 왼쪽 첫 번째가 초대 담임목사 맥켄지 선교사이다.                       ©크리스찬리뷰

 
이명남 선교사에게는 꿈이 있었다. 소록도에서 치유받고 부산 용호동 나환자 정착촌 상애원에 정착하면서 교회 사무실에 걸려 있던 한 장의 사진, 그 사진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호주에 가 보는 것이었다.


▲ 이명남, 김갑순 부부     ©크리스찬리뷰

 
그 주인공은 100여 전 상애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시무했던 ‘한국 나환자들의 친구’로 불리는 맥켄지 선교사였다. 그렇게 꿈 속에서만 생각하고 기도했던 것이 지난해 5월 크리스찬리뷰사 초청으로 40여 년 만에 현실로 이루어졌다. 

아내와 함께 호주를 방문한 이명남 선교사는 ‘감사드린 한 사람’이 되고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섭리하심 가운데 지나온 일들과 중국 한센 환자 선교사역을 보고하며 시드니와 멜본에서 10여 차례의 집회에서 한센병을 통해 만난 주님을 간증했다. 


▲ 멜본호산나교회 간증집회 전경     ©크리스찬리뷰

 
멜본에 도착하여 맥켄지 선교사의 묘지로 달려간 이명남 선교사는 감격에 젖어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 우리같이 천하고 부족한 한센인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멕켄지 선교사님의 묘지에 오늘 이렇게 서 있습니다. 이 감격, 이 감사 어찌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


▲ 100년 전 한국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했던 맥켄지 선교사 묘지를 찾아온 이명남 선교사(왼쪽 3번째) 부부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아버지의 묘지를 방문한다는 소식에 함께 동행한 루시와 실라 여사도 지난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듯 자리를 함께 했다. 한국 부산에서 출생한 그녀들의 나이도 어느덧 아흔이 넘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운다.


▲ 맥켄지 선교사의 묘     ©크리스찬리뷰

 
이날 본지 발행인은 루시와 실라 여사에게 한국의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하신 아버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고 그 맥을 이어가기 위해  <맥켄지 한센 선교회>설립 취지를 제안했고, 이 제안에 루시와 실라 여사, 그리고 젊은 날 자신의 청춘을 일신기독병원에서 헌신했던 바바라 마틴 선교사도 흔쾌히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후 호주 정부에 비영리법인으로 등록한 ‘호주 맥켄지 한센 선교회’(The Mackenzie Leprosy Mission in Australia Incorporated>의 목적과 사업은 “100년 전 한국에서 나환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한국 나환자들의 친구’(Friend of Korean Lepers)라고 불리는 James Nobel Mackenzie(한국명 매견시) 선교사의 희생적인 사랑의 정신을 계승하여 중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 있는 한센 환자들에게 치료제 지원과 경제적 자립, 자녀 교육, 영적 회복 등을 통해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이루어 주기 위함이다”라고 취지를 밝혔으며, 호주 정부(NSW주)에서 자선단체로 인가를 받았다.


▲ 지난 해 5월 14일 멜본에 있는 제임스 노블 맥켄지 선교사의 묘지를 찾아 온 이명남 선교사 부부를 반갑게 맞이한 루시와 실라 여사. 사진 왼쪽부터 실라 여사(4녀), 김갑순 사모, 루시 여사(3녀), 이명남 선교사, 바바라 마틴 선교사, 본지 권순형 발행인.     ©크리스찬리뷰

 
지금 한국의 소록도에는 620여 명의 한센인이 살고 있는데 모두 음성으로 판명된, 치료시기를 놓쳐 육체적으로 험한 분들이 있으나 전염성은 전혀 없고 일반인과 똑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록도는 없어 질 것이고 그곳을 관광지로 만든다고 한다. 새로운 환자가 발생해도 며칠 동안 집중 치료하면 치료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100여 년 전 호주에서 맥켄지 선교사가 부산, 경남지방에서 ‘한국 나환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님의 사랑으로 복음의 씨를 뿌렸다.


▲ 호주 맥켄지 한센 선교회 비영리법인 설립 증명서     ©크리스찬리뷰

 
이에,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은혜에 보답하고 빚을 갚는 길은 다시 한국에서 동남아 지역 등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맥켄지한센선교회 주요 사업으로는 첫 번째, 중국 연변 조선족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한센병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의 영혼을 구원시키고 함께 더불어 사는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한센 전문인 선교사 10명을 파송하기 위한 사역을 감당하고자 한다.


▲ 국세청에서 받은 자선단체 확인서     ©크리스찬리뷰

 
두 번째, 연변에 한센인을 위한 복지센터를 세우는 일이다. 중국에는 수백만 명의 환자가 있다. 남쪽 지방으로 갈수록 많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

길림성 곳곳에 살고있는 환자들이 갑자기 다른 질병이 발생해 수술을 받아야 하거나 응급처치를 해야 할 상황에서 연변으로 나와도 재울 곳도 없고 임시적으로 지낼 장소가 없어 어려움이 많고 호텔이나 여관은 아예 상상도 할 수 없고 병원에서도 치료는 해 주지만 입원은 시켜주지 않는다. 아직도 인식이 좋지않아 입원한 다른 환자들이 꺼려하기 때문이다.

한센복지센터를 세워 이곳을 중심으로 선교 기지로 삼고, 중국 한센인 복음전파사역에 구심점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독자 여러분의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린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선택하셨으니, 감사드린 한 사람이 되어 복음을 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한센병 환자 돕기에 동참하여 주고, 작은 물질이라도 꾸준히 후원하여 주면 그들에게는 희망이 되고, 복음을 전하는 씨앗이 될 것이다.


▲ 맥켄지 한센선교회 주요사업은 연변에 한센복지센터를 세우는 일이다. 연변한센병 요양원을 방문한 이명남 선교사    ©크리스찬리뷰

 
치료받은 한센인 전문인 선교사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를 희망하며 이러한 일들이 한국교회와 호주교회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마 25:40) 〠

 

글·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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