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이영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11/26 [11:01]

이 땅의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버림받고, 소외당하고, 죽어가는 영혼이 되어버린 ‘호주 원주민’. 그들의 존재를 알게 하시고,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시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신지 10년째 되던 2000년 어느 날, 부푼 마음을 안고 한국에서의 삶을 뒤로 한 채 호주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민교회를 설립하게 되었고, 그 후 10여 년 동안 기도와 물질로 원주민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를 후원함으로 원주민 선교에 동참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2011년 ‘한인 호주원주민선교회’(KMIA, Korean Mission for Indigenous Australia)가 창립되었고, 이에 소속되어 활동함으로써 교회를 통한 간접적 지원이 아닌, 본격적으로 원주민에게 다가가는 직접적인 선교의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본 선교회는 호주 원주민 선교에 뜻을 같이 하는 8명의 목회자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원주민 선교의 중복투자를 막고 올바르고 합리적인 선교가 이루어지도록 도우며 선교지 개척에 앞장서고 있다. 이를 위해 본 선교회에서는 ①정기 세미나 ②선교 인식여행 ③원주민 종족입양 ④원주민 선교에 관한 정보 공유 등을 주된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번 여행도 본 선교회의 사업목적에 의해 계획된 여행이었으며 각 선교지를 방문하여 원주민 선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선교사들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지난 8월에 이어 두 번째 참가하는 이번 선교 인식여행(Mission Awareness Trip)은 좀 더 많은 부분에서 도전이 되는 귀한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연속되는 도전의 시간들

11월 5일(월), 본 선교회의 이사들로 구성된 여섯 명, 주정오(열린문교회), 김성주(새빛장로교회), 정기옥(안디옥장로교회), 오성광(시드니중앙장로교회), 김종찬(시드니엘림교회), 이영식(한민장로교회) 목사는 시드니 공항을 출발하여 4시간 40여 분의 지루한 여정 끝에 노던 테리토리(Northern Territory)의 주도인 다윈(Darwin) 공항에 도착했다. 소나기가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후끈한 열기와 끈적한 습도는 우리를 압도했고 이번 여행에서 펼쳐지게 될 고된 일정이 예고되었다.

공항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던 반가운 얼굴들, AIM (Australian Indigenous Ministries)의 대표인 트레버(Trevor) 목사와 로비(Robie) 그리고 AIM의 후원자인 건축전문가 네일(Neil)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부엌시설을 갖춘 트레일러를 장착한 중형버스를 타고, 시드니로부터 다윈까지 그 먼 길을 달려와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를 마중 나왔던 것이다.

우리의 첫 사역지는 ‘Humpty Doo AIM Centre’였는데, 그곳에서 사역하는 여러 명의 선교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Simon과 Tirzah 선교사 부부는 하이스쿨에서 과학교사로 재직하면서 원주민을 돕고 있었고, Rhonda라는 미국 출신의 선교사는 20대 처녀의 몸으로 이곳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선교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출신의 Yane와 Roni 부부는 두 자녀와 함께 이곳의 관리를 맡아 수고하고 있었다.

어떤 자리, 어떤 모습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주님의 일에 헌신하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삶을 다 바쳐 주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선교의 일에 앞장선다는 것은 무엇보다 더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커다란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우리 일행이 준비한 작은 저녁 밥상은 참으로 조촐했다. 미리 준비해 간 재료로 장만한 소박한 저녁상을 마주하고 앉은 다른 모습, 다른 성별의 그들과 우리는 음식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며 함께 기도했다.

다음 날 아침 8시, 우리를 태운 버스는 호주의 남북을 연결하는 Stuart Highway를 타고 남동쪽으로 달려갔다. 몇 시간을 달려도 지평선이 사라지지 않는 끝없는 평원은, 만일 이곳에 혼자 버려진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길 만큼 넓고 또 넓었다. 드넓은 평원 한 가운데로 곧게 뻗은 길을 달리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감탄함과 동시에 인간의 작고 연약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석양이 질 무렵 우리는 Northern Territory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Katherine’에 도착했다. 이곳이 호주인지, 아프리카의 어느 도시인지 잠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Katherine의 거리는 원주민들로 가득했다. 

삼삼오오 길가에 모여 앉은 사람들, 분주하게 거리를 거니는 맨발의 사람들, 경찰이 출동해서야 싸움을 그치고 씩씩거리며 제 갈 길로 가는 사람들, 그들은 나고 자란 그곳에서 그렇게 각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거리의 풍경은 호주의 여느 도시와 별반 차이가 없음에도 그곳에 자리하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생경스러웠다. 그들의 눈에 우리의 모습 역시 그렇게 비쳐지지 않았을까?

버스 안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도드렸다. ‘먼저 듣게 된 복된 소식을 저들에게도 들려주게 하소서. 그 일에 저희들을 도구로 써 주소서.’
 

폐쇄적인 커뮤니티

Katherine을 떠나 한 시간쯤 더 달려 도착한 곳은 우리의 두 번째 사역지인 ‘Barunga’라는 작은 원주민 마을이었다. 그 마을 한 가운데 자리 잡은 AIM Community Church까지 들어가는 진입로 주변은 원주민들의 집들로 즐비했다. 그러나 동네를 지나는 동안 뭔가 형언할 수 없는 적막감과 쓸쓸함이 우리 일행을 사로잡았다. 분명 사람이 살긴 하는데 왠지 흉가 같고, 인기척이 나긴 나는데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교회 마당으로 들어설 때 절대로 교회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주의사항이 전달되었다. 그만큼 외부 사람에게는 폐쇄적인 커뮤니티라는 것이다. 

▲원주민 어린이와 인사하는 이영식 목사 ⓒ김성주

▲반갑다 아가야! 원주민 어린이와 인사하는 김종찬 목사 ⓒ김성주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준 사람은 3년째 이곳에서 사역하고 있는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 소속의 Jerod와 Cherie 선교사 부부였다. 이들은 미국에서 사역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곳으로 이주해와 어려움 가운데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또한 우리는 이곳 원주민 학교 교장 Anita와, 이 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Jocelyn을 만날 수 있었다. 골 깊은 주름을 지닌 이들 두 원주민 여성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대하듯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둘러앉아 Jerod 선교사의 능숙한 기타 반주에 맞추어 찬송을 불렀고, 잠시 후 Anita가 고린도전서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성경공부를 진행해 갔다. 그들은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가 만든 원주민 언어(Kriol)로 된 성경책과 찬송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영어 알파벳을 빌려 쓴 그들의 글자와, 소리 나는 대로 적힌 영어 단어가 자연스럽게 혼합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주민들 가운데는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Jerod 선교사는 글 읽는 방법을 DVD로 제작하여 보급하는 방법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날 밤 우리는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그들과 함께 먹고, 쏟아질 듯 박힌 밤하늘의 별을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땀이 가시지 않았지만, 아직 우기가 시작되지 않은 덕에 모기는 없었기에 감사했다. 숙소가 따로 없는 관계로 예배당 서늘한 콘크리트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잠을 청하며 둘째 날을 보냈다.
 

베일 속에 가려진 원주민 전통 장례식

셋째 날, 오늘은 가야할 길이 멀었기에 어슴푸레하게 날이 밝을 무렵 일찌감치 짐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한참을 달리다가 버스를 멈춰 아침 식사를 하던 중 캥거루 한 마리가 의심도 없이 다가와서 우리가 내민 시리얼 그릇을 맛나게 핥아 먹었다. 우리가 선해보였는지, 캥거루가 도전적인 녀석이었는지, 여하튼 경계심도 없이 다가온 캥거루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재미난 경험이었다.

잠시 후 우리 일행은 근처에 있는 미온 온천에 들러 잠시 피로를 풀었고, 또 다시 달려 McArthur 강을 끼고 조성된 ‘Borroloola’라는 곳에 도착했다. Borroloola에는 2천여 명의 원주민과 약 20여 명의 백인이 살고 있는데, 그 소수의 백인들이 이곳 전체의 경제를 주도한다. 마켓과 우체국을 비롯한 다른 기관들도 역시 백인들이 운영하며, 나아가 원주민들에게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도 이들이 도맡아 관리하는 은행 역할도 겸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좀 과하다 싶지만, 그러나 원주민 자신들이 스스로의 삶을 꾸려 나갈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리가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Borroloola Community Church의 교우들과 저녁식사 후 기념촬영 ⓒ김성주

이곳에서도 역시 AIM Community Church에 우리의 짐을 풀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당시 이 마을에 초상이 났다. 우리는 원주민의 장례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지만, 그러나 금세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들의 장례식은 외부인이 절대로 참석하거나 볼 수도 없을 뿐더러,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는 마을에 머물 수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베일에 감춰진 그들의 전통을 경험하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지만 어쩔 수 없이 교회 울타리 안에 머물며 저녁을 지었다.

Vincent와 그의 친지들 그리고 우리 일행은 닭고기 덮밥으로 즐거운 식사를 함께 했다. Vincent는 이곳 교회에서 10년 동안 사역하던 백인 선교사 부부가 2011년 건강 악화로 후송 조치되면서 세우고 떠난 원주민 지도자이다. Vincent를 중심으로 교회가 유지되고는 있지만 모든 상황은 참으로 열악했다.

예배당은 언제 예배를 드렸을까 싶을 정도로 방치되었고, 떠나간 선교사 부부가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책과 도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 교회 역시 우리가 간절히 중보해야 할 부분들이 너무도 많은 연약한 곳이었다. 

▲KMIA 이사들을 환영하며 하모니카 연주하는 Malon씨 ⓒ김성주

하나님의 계획은...?

셋째 날 밤, 선교사 부부가 10년을 머물렀던 사택을 일행의 숙소로 사용했으나, 그리 넓은 공간이 아니었기에 역시 딱딱한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잠을 청해야 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열악한 잠자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첫 날부터 계속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왔다. 원주민들과 10년 세월을 함께 하며 그들을 가르쳐도 능력 있는 지도자 한 사람 세우기가 어려운 원주민 선교의 현실을 직시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 일어설, 아니 일어서려는 노력조차 할 수 없이 망가져버린 그들의 한계를 보았기 때문일까?

선교의 치열한 현장에서 육체적으로 병들고 정신적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그래서 원주민들에게서 아무런 소망도 기대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낙심한 선교사들 때문일까? 그도 저도 아니라면 우리보다 좋지 못한 환경에 거하는 원주민들을 향한 단순한 연민 때문일까?

내 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이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과연 무엇인지, 또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이곳에까지 보내셨는지 궁금했다. 과연 우리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지 답답했다.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생각과 질문들이 머리와 마음에 똬리를 튼 채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살짝 잠이 들었나보다. 선잠을 깨보니 새벽 4시경, 말씀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사야 9장 2절의 말씀이다. 이렇게 이들에게 빛이 비취는 이유에 대해서는 6절 이하에 설명이 된다. 바로 한 아기가 태어났기 때문인데 그는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평강의 왕이란 이름을 가지신 메시아,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를 통하여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이사야는 예언했다.

그렇다. 나는 원주민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지친 선교사들에게 무엇으로든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애당초 나와 그리고 우리 일행은 아무것도 가진 자들이 아니었다. 다만 주께서 우리를 보내셨고,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찾아왔을 뿐이다. 오로지 그분께서 위로하시고, 그분께서 친히 공급하시며, 그분께서 모든 것을 인도하실 뿐, 우리는 단지 기도하며, 그분의 선한 일하심에 내 몸을 도구로 내어 드리는 것 밖에는 없는 것이다.

교회 마당으로 나왔다. 서늘한 새벽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무겁게 똬리 틀어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잠 못 이루게 하던 생각들이 주님의 말씀으로 하나 둘 정리됨을 느끼며 깊은 감사가 흘러나왔다. 희뿌연 안개 속 검은 실루엣의 예배당이 소중해 보였고, 정리되지 않은 마당 한 켠 너저분하게 서 있는 나무들도 사랑스러워보였다. 아직 모두가 잠들어 있는 청아한 새벽, 나는 그렇게 미명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한껏 받고 있었다. 


강인한 원주민 엄마

그날 아침 우리에게 마을을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전갈이 왔다. Vincent가 우리를 위해 장례식을 현지에 가서 치르도록 마을 사람들을 회유했던 것이다. 오후에 한 차례 세찬 소나기가 퍼부었다. 붉은 흙에 빗물이 떨어져 흐르니 꼭 당근 주스를 쏟아 놓은 것 같았다. 비가 개인 후 Vincent의 안내로 원주민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런데 경로를 잘못 선택해서 초상이 난 마을 들어가게 되었지만 재빨리 차를 돌려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마터면 그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좁고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도착한 마을은 Vincent가 함께 하지 않으면 들어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집집마다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 고장 난 채 방치되어 있는 자동차,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가재도구들, 마치 수마가 할퀴고 간 재난의 현장 같았다. 몇 명의 원주민들을 만나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나서 겨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Vincent의 안내로 들어갔던 원주민 마을의 평온한 정경 ⓒ김성주 
 
우리는 한 원주민 여성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녀는 아빠가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는 세 아이의 엄마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빠가 버리고 떠난 사랑스런 아이들을 보듬고 살아가는 강인한 엄마였다. 우리는 이 아이들을 주님 안에서 잘 키워서 훌륭한 사람들로 만들라고 그리고 당신은 멋진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간곡한 말로 위로했다.

▲원주민 마을에서 만난 세 아이의 엄마인 미혼모 ⓒ김성주

그날 저녁도 우리 일행은 소고기 덮밥을 만들어 원주민들과 함께 했다. 나와 정기옥 목사가 밥을 짓는 동안 나머지 일행들은 원주민들과 둘러 앉아 성경공부에 참여했다. 오성광 목사는 자신의 신앙 간증을 그들에게 들려주어 큰 은혜를 끼쳤다. 그렇게 우리는 Borroloola에서의 이틀 동안의 사역을 마무리하며 감사했고, 기도했고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원주민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

새벽이 오는 것은 다시 길을 떠나야 함을 알리는 신호이다. 습관처럼 차에 오르고, 지난 밤 편치 않은 잠자리 덕분에 모두가 혼수상태로 일제히 돌입했다. 버스는 Northern Territory의 주 경계를 넘어 Queensland로 접어들었고, 장장 10시간 이상을 달려 마지막 사역지인 ‘Camooweal’에 도착했다.

이곳은 Jono 선교사와 그의 부인 Grace가 사역하는 곳이다. Jono 선교사 부부는 이곳 Camooweal을 베이스로 하고, 각 지역의 원주민 마을을 돌며 사역한다. 그들이 사역하는 마을과 마을의 거리는 무려 500여 Km, 남한 면적보다도 더 넓은 지역을 이들 선교사 부부가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7년째 이곳에서 사역하고 있는 이 선교사 부부를 보며, 호주 원주민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내가, 우리가 할 수 없는 험하고, 귀한 일들을 대신 감당하는 저들의 노고에 감사했고, 저들을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함을 새삼 깨달았다.

후끈한 열기로 우리를 반겨주던 Darwin 공항에서의 첫 날이 어제 같은데, 시간은 말없이 흘러 여행의 마지막 장소인 Mount Isa 공항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이곳에서 Brisbane을 거쳐 Sydney로 향하는 비행기에 피곤한 몸을 실으며 지나간 일 주일을 돌이켜 본다. 두 번째 선교 인식여행, 이번 여행은 지난 번보다 훨씬 더 깊은 내륙으로 들어갔기에 힘은 들었지만,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또한 좋지 못한 환경에서도 어느 누구 하나 불평 없이 서로를 섬기고, 챙기고, 도와주어서 더 없이 행복한 여정이었다. 비록 주인의식과, 정체성 그리고 삶을 향한 강한 의지가 결여된 호주 원주민들을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는 아픈 날들이었지만,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뜨거운 심장을 느낄 수 있는 큰 은혜가 있었음에 더욱 감사를 올려드린다. 많은 시간이 흘러 다시 찾을 다음 번 여행을 기약하며, 그때 내가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있는 또 다른 하나님의 기적은 무엇일까 소망해 본다.
 

이영식|한민장로교회 담임목사  
김성주|새빛장로교회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