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

부산을 부산하게 한 주인공

송기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09/10/30 [10:56]

큰 바다 목회자

정필도 목사, 그는 큰 바다였다. 거대한 항공모함도 가뿐하게 정박할 수 있는 안전한 포구이기도 했다. 청탁(淸濁)을 다 넉넉히 수용할 큰 그릇이었다. 그의 아이콘은 기도하는 모습과 안아주는 모습으로 새겨질 수 있었다. 그는 서둘지도 않고 쉬지도 않은 장거리 마라토너였다. 그러나 그는 도전자였다. 그가 이룬 도전의 기록들은 짜릿하다. 일월산에서 공군 군목시절의 이야기이다. 당연히 ‘전 장병의 복음화’를 목표로 세웠다. 첫 주일을 맞아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교회에 갔다. 전 장병이 아니라 단 한 장병도 나오지 않았다. 장병들이 선뜻 교회로 발을 뗄 수 있는 부대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니 정성들여 준비한 설교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전략을 바꿨다. ‘기도 최우선 전략’을 세웠다.
 

▲ 한강 이남 지방 교회에서 최대의 교회를 일군 정필도 목사가 제9회 대양주 목회자 부부 세미나 주강사로 참석해 새순수양관 호숫가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주님께 날마다 울면서 ‘전 장병이 예수 믿게 해주세요’라고 매일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울면서 기도하면 응답이 빨라요. 하나님 앞에 우니 주님께서 ‘내가 너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도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내려와 십자가에 달린 다음에야 비로소 너를 구원할 수 있었다.

 전 장병을 구원하려면 네가 얼마나 희생해야 되는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마치 ‘이 장병들을 구원하기 위해 네가 죽을 수 있느냐?’는 질문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예, 주님!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 장병들이 예수님만 믿게 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이 기도의 응답으로 그는 비장의 각오를 했다. 부대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부인과 아이를 친정으로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장교 숙소로 들어갔다. 다행히 처가 형편이 넉넉한 편이라 군목 월급은 아예 장병들을 위해 쓰기로 작정했다.
 
“군목 봉급으로 과자봉지도 만들고, 커피 끓여 군종병과 함께 밤 1시든 2시든 초소를 돌며 과자도 커피도 권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다 먹은 다음 기도해도 되겠느냐고 하지요. 먹여놓고 전도하면 제일입니다. 거절못하지요. 딱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이 귀한 아들이 군대 와서 얻어터지고, 잠도 못자고 고생하는데 눈동자처럼 지켜주소서. 이 아들이 예수 믿어서 예수 믿는 가문되게 하시고, 성공해서 지도자가 되게 하소서. 힘들고, 배고파도 잘 견디게 해주소서...’ 아무도 안보는 산중에서 막 축복하면 이 아이가 울어버립니다. 이등병들입니다. 그렇게 일 주일을 도니 이등병만 열 명 정도 교회 나왔습니다.”

기적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일어났다. 새로 부임한 젊은 군목이 새벽 한두 시에 밤잠도 자지 않고 수상하게 초소를 돌아다닌다는 보고가 보안대를 통해 부대장에게 들어갔다. 이미 조사를 마친 부대장이 어느 주일 아침, 교회에 나타났다. 불신자로 무섭기로 소문난 부대장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예배 드리러 왔지.”
예배드리러 온 부대장이 한 마디 했다. “왜 이렇게 없어? 전 장병 다 모여!”부대장 한 마디에 외출나간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 장병이 5분 내에 다 예배드리러 모였다. 이것이 전장병이 처음으로 모인 예배였다.
 
“예수 안믿는 부대장에게도 성령이 임하니, 그분 덕분에 일 년 뒤에는 전 장병에게 합동세례를 주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부대장이 예수는 안믿으면서 신앙생활에 필요한 십계명, 주기도문 사영리를 외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내가 준비만 되어있으면, 주님의 큰 손이 나를 붙잡고 쓰시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 그는 경건의 문제에서도 타협하지 않았다. 역시 군목 때, 소령 목사가 음란한 글을 써놓고 음담패설을하며 막 낄낄대고 웃어댔다. 그보다 높은 계급이었지만 분연히 일어섰다. “목사님, 그 입으로 설교할 수 있어요?”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호통을 치니, 나중에 그가 새파랗게 벌벌 떨더라고 하였다. 그는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군목으로 3년 있으면서 어느 부대를 가든지 전 장병, 문관들 가족들까지 다 세례를 주는 쾌거를 이루었다. 심지어 불교회장인 부대장이 도와줄 정도였다. 사랑으로 기꺼이 자기를 희생할 마음이 있는 종, 기도하는 종, 경건한 종이면 아무리 환경이 안좋아도 상관없음을 그를 통해서 알 수 있다.
 

▲ 공군군목 시절 '기도 최우선 전략'을 세워 전 장병, 문관들 가족까지 세례를 주는 쾌거를 이룬 정필도 목사. 그는 군목생활을 마감하고 75년 6월 1일 부산수영로 교회를 개척, 부산을 복음화하는 성시화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주님과 함께 하는 목회


그렇게 군목 생활을 마감하고 부산에서 수영로교회를 75년 6월 1일 개척했다. 개척 과정은 아주 원활했다.
 
“수영로교회는 초량교회 정우창 장로님께서 ‘서원기도를 들어주시면 예배당을 지어 바치겠습니다’하여 서원이 다 이루어져 서원한대로 성전을 지어바치면서 시작된 교회입니다. 제대할 때 쯤 ‘예배당 지어줄게 서울 가지 말고 부산에 개척교회 하자’하여 수영로 로터리에 500명 들어갈 수 있는 교회를 2층으로 지어주셨습니다. 장소가 로터리라 좋았습니다. 모든 버스가 다 서는 곳입니다.”
 
부산 전체를 복음화하는 비전으로 개척한 장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절대로 부산에서 천 명 이상된 교회는 안나온다”는 역사와 경험이 입각한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이 경험과 역사에 도전하며, “절대로 죽어도 우리 교회는 1천 명이 넘습니다”하며 믿음의 말을 했다. 교회를 지어 입당하고 보니 170여명이 어디서 몰려왔는지 몰려왔다. 그리고 해마다 2배씩 늘어나 4-5년이 되니 4부 예배를 드릴 정도였다. 3-4년 후에 이미 천 명이 넘었다. 믿음의 말이 증명되는 기간이었다.
 
그렇게 나이스한 출발, 소위 ‘쭉쭉빵빵’ 성장 일로에 있던 그에게 또 한 번의 전환점과 맞아야 했다. 그렇게 급성장하고 보니 ‘내가 목회를 잘하구나, 설교를 잘 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가면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를 하겠구나!’하는 마음을 먹기도 했다. 그런데 그 수요일 상상치도 못할 큰 이변이 일어났다.
 
“그날, 피아노 반주자와 집사람만 어른이었고, 애들만 몇 명 오고 어른은 한 사람도 안나왔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큰 문제였다. 그는 문제를 문제로 풀지 않고, 기도 최우선전략의 생활철학에 따라 기도하기 시작했다. ‘지난 주일에 꽉 찼는데 수요일엔 왜 나오지 않습니까?’하며 주님께 답을 얻기 전에는 자리를 뜨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목요일에도 집에 안가고 계속 기도했다. 새벽예배 끝나고 ‘말씀 좀 해주세요’하고 매달렸다. 급하면 딴청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을 각오하고 주님의 응답에 매달려 끝장을 내는 것이 그의 주특기였다. ‘주님, 말씀 좀 해주세요, 제 잘못이 무엇인지요?’하고 애끓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갑자기 ‘니가 해? 내가 하지. 니가 해? 내가 하지! 니가 해? 내가 하지’하는 책망을 주님께서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이 엄청난 주님의 책망에 당황하여 ‘주님 잘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줄 알았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줄을 몰랐습니다’하고 고백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못한 말, 제가 잘 하면 되는 줄만 알았지, 주님이 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세요’고백했더니,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니가 세운 것이 아니고 내가 세운 것이다. 니가 설교 잘 해서 목회 잘해서가 아니라 내가 내 양을 모아주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 이후, 그는 ‘주님이 많이 모아주시면 대교회 되고, 조금 모아 주시면 작은 교회, 흩뜨려버리면 없어진다’는 교회론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머리털 하나도 참새 한 마리도 안떨어집니다. 교인 하나도 그대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으시면 한 주에도 몇백 명씩 들어옵니다. 일 년에도 7천 명씩 들어왔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주님이 담임목사님입니다. 나는 교육전도사입니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어느 주일 저녁예배 때도 너무 안나왔다. 앞으로 나와 앉으라 하니 뒤에는 텅 비었다. 찬양 인도하는 중에 기도했다. ‘주님. 심방 좀 해주세요, 누가 저같은 설교 들으러 오겠습니까? 저같은 목사 설교 들으러 누가 옵니까? 주님이 메추라기 몰아오듯이 몰아오십시오, 심방해 주십시오’기도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대표기도하는 집사가 기도 끝나고 아멘하고, 뒷문이 활짝 열리면서 지각생이 몰려오는데 꽉 찼다. ‘주님 수고하셨습니다.’여러 차례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그는 완전히 ‘주님과 함께 하는 목회’로 좌표를 설정하고, 철저히 주님만 의지하며 목회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저는 목회를 완전히 ‘주님과 함께하는 목회’를 합니다. 많은 일들을 제가 직접 만나고, 회의를 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빈자리가 있네요, 주님께서 몰아와 주십시오’하고 주님께 의지합니다. 완전히 제 머릿속에는 주님이 하신다는, 주님이 보내주셔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우리가 함께 하는 일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 사도 바울이 전도하고 교회 세우고, 아볼로가 목회했지만,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자라나게 하시는 분, 열매 맺게 하시고, 변화․회개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수고한 것에 대해서는 상을 받습니다. 주를 위해 산 것에 대해서는 행한 대로 상을 받습니다. 목회현장에서 실제적으로 자라나게 하시는 것, 생명의 역사, 열매 맺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목회의 주도권은 하나님이 잡고 계신 것이지요.”
 

▲ 황혼이 깔린 새순교회 수양관 호숫가에서. ⓒ 크리스찬리뷰  


좋은 사람과의 만남
 
정필도 목사, 그는 예수를 믿는 첫 해인, 초등학교 6학년 때 사명을 깨달았다. 판잣집에서 편모 슬하에 자라면서도 구김살 하나 없이 공부 하나는 기막히게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어느 날 강원도에서 전학온 한 친구(이범호)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전학 온 그 친구가 마침 반장이던 그의 자리가 비어 짝지가 되면서 그에게 전도한 것이 물이 스펀지를 빨아들이듯 복음이 그의 영혼 속에 쑥쑥 스며든 것이다. 그 친구가 인도한 창신교회가 그렇게 좋았다. 좋지 않은 게 하나도 없을 만큼 천국과 다름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은혜를 받았습니다. 공부하는 목적도 ‘훌륭한 목사’가 되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려면 공부를 잘 해야 되겠다고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목적을 다 세워놓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중고등학교 6년을 어떻게 신앙생활 할까 걱정되어 3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첫째, 어떤 일이 생겨도 교회는 안빠진다. 언제나 어떤 사건이 생겨도 교회는 안 빠진다. 둘째, 하루에 세 번 이상 기도한다. 등하교 때 기도하고, 저녁 먹으면 기도하고, 일 있으면 철야하고, 학교 가서는 졸아도 기도는 한다. 그것도 모자라면 삼각산에 가서 기도한다. 셋째, 성경을 한 장 이상씩 꼭 읽는다.’ 이렇게 정해놓고 중고등학교 때 항상 지켰습니다. 이 세 가지 결심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 성령이 가르쳐주신 대로 꼭 지켰습니다.
 
옛날 예배당 돗자리에 무릎 꿇고 기도하자마자 성령이 확 뒤엎고, 철야기도할 땐 추운 겨울이라 제일 피곤했는데도, 갑자기 따뜻한 담요로 씌워주듯이 따뜻했습니다. 갑자기 따뜻하니 은혜 받는 날이 많았지만, 못받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규칙적으로 기도하니 평생의 축복이었습니다.”
 
경기중고등학교 시절, 좋은 멘토가 생겼다. 사람을 잘 만나는 게 축복이었다. 주변에 인격적으로 존경받을만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문제가 있을 때 의논했다
 
“저를 전도한 친구의 형(이문호 장로, 미국에서 최근에 목사가 됨)이 당시 서울공대생으로 성령충만했어요, 그 형이 산기도 가면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믿어라’고 멘토링을 해주었습니다. 처음부터 그 형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면, 반드시 보너스를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도도 열심히 하고...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계획이었습니다, 은혜를 일찌감치 받으니 공부도 잘하고 한눈팔지 않았습니다. 그 형이 공부를 잘 했으니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에게 햇볕같이 맑은 날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교 2학년 때, 그의 가정은 너무 가난하고 못살고 빚만 가득했다. 사면팔방으로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세상 살아서 뭣하노?’하여 이런 세상 살기 싫어 죽을 길이 없나 연구해보니 길이 있었다. 바로 ‘금식기도하면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름 방학 때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이렇게 죄 많고 음란하고 악한 세상 살기 싫어요. 하나님, 이런 세상 싫으니 저를 불러가세요'하며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났지만 안죽었다. 창자가 달라붙는 것같았다. 불현듯 모세도, 예수님도 40일을 금식하며 지내도 안죽었다. 사흘 굶어도 죽겠는데, 고생하기 싫어서 죽으려 하니, 고생만 죽도록 하게 됐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을 안넘기려고 있는 힘을 다해 죽으려고, 살기를 포기하고, 죽기 위해 전심으로 기도했는데, 주님이 그 자리에 찾아오셨다. 현실 가운데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때 저를 찾아오신 주님께서 ‘너는 죽으면 안된다!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느냐?’고 세 번이나 애원하듯이 말씀 하셨습니다. 인격을 가지신 분이 오셔서, 말씀하시는데 도저히 그 말씀을 거절할 수 없어서, 금식을 중단하고 그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주님이 ‘날 위해 살아달라’고 애원하셨으니, 세상 것 다 포기하고 주님만 위해서 살리라 하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기적같은 삶이 열리기 시작했다. 서울대에 합격한 그에게 입학하기도 전에 4년 학비가 다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장학금이 들어왔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제적인 궁핍은 나아지지 않았다. 대학 4년 동안 입시생들 입주과외를 해야 했다. 12시에 자면 5시에 일어나 두 시간 가르쳤다. 그리고 4·19, 5·16 등이 일어났을 때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동생을 대학에 보내야 하니 시간이 없었다. 5시간밖에 못자니 살이 다 빠졌다.
 
“대학 졸업식 끝내고 교회 가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대학 4년을 왜 이렇게 보내야 합니까?’했더니, ‘내가 너를 그렇게 묶어놓지 않으면 네가 목사가 될 것 같으나?’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한가하면 경건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면 같이 공부하자고 착 달라붙은 여학생도 있었습니다. 학교 길목에 지키고 있는 여학생도 있고요. 그래서 속으로 ‘이 암사탄아!’ 하고 모른척하며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주의 종 만드시려 시간을 안주시고, 졸업을 하게 해주셨습니다.
 
경건하게 살려면 시간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한가한 시간에 사탄이 가장 잘 공격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느라, 성경 보느라, 좋은 책 보느라, 심방하는데 바빠야 합니다. 다윗도 낮잠 자고, 한가한 시간에 뭘 했습니까? 한가한 시간에 사탄이 역사하기 쉽습니다. 한가할 때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 강의를 마친 후 망중한에 빠진 정필도 목사(왼쪽)와 이규현 목사. 이규현 목사는 수영로교회 부목사를 지냈다. ⓒ 크리스찬리뷰    


눈물이 차야 교인이 찬다
 
경기중고, 서울대 - 소위 KS 정통파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신학교로 진학했다. 신학교 2학년 때, 30여 명 모이는 개척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없어 그에게 설교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새벽기도 7번, 수요예배 등 기본적으로 10번의 설교를 해야 하니 신학교 2년차로서는 힘에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울부짖는 기도밖에 할 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어린애도 울면서 부르짖으면 엄마 아빠가 내버려 두지 않지 않습니까? 안아도 주고 뭐라도 줍니다. 인간도 그러는데,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으시더군요. 제 설교가 부족한데도 주일마다 새신자가 들어왔습니다.
 
어느 날 특별히 낯선 어머니뻘 되는 분이 고개를 끄떡 끄떡 하더군요. 마음속으로 ‘큰 물고긴가?’ 생각하며 예배 마친 후 그 사람 놓칠까봐 나가는데, 아 ‘내가 이 교회 계속 나오기로 결정했습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은 기도대장이었고, 돈 걱정 없이 사는 분이었습니다. 기도대장! 하나님께서 돕는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교회가 있는데 우리 개척 교회에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이 분이 시간도 많고, 가난한 총각 전도사가 심방도 같이 갈 수 있으니 제가 마음껏 심방할 수 있었습니다.
 
심방할 때 택시값, 점심값 다 내셨습니다. 기도 부탁하면 결사적으로 기도해주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심방 다니면서 설교마다 은혜를 받아요. 한 번은 따라오지 않아 돌아보니, 저 나무 밑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집사님, 왜 거기 계셔요?’
‘전도사님, 내가 너무 좋아 꿈인가 생신가 너무너무좋습니다’하는 겁니다.”
 
신학생 정 전도사는 이 ‘기도대장’에게서 어느 날 하늘의 계시와도 같은 영감있는 말을 들었다.
 
“전도사님 예배당에 교인이 꽉 차길 원합니까?”
“그럼요. 당연히 차기를 바라지요.”
“그럼, 눈물이 차야 교인이 찹니다.”
 
그렇다! 눈물이 차야 교인이 찬다! 그에겐 그 말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배당은 못채워도 설교하는 단은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부터 울면서 기도했다, 많이 울어야 한다고 밤새도록 콧물 눈물 흘리면서, 눈물이 쌓이면 옆으로 돌아가면서 기도하고, 또 옆으로 옮겨가면서 설교하는 강단만은 기도로 채웠다. 4개월 째 주일예배 때 107명이 나왔다. 일 년에 3번 이사해야 할 정도로 교회가 부흥했다. 그보다 2배 되는 장소로 옮겨야 했다.
 
“그때 저는 목회를 몰랐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것도 몰랐습니다. 다만 눈물로 기도한 것뿐입니다. 성령이 하신 일입니다. 전도사가 부교역자까지 두었습니다. 주일학교, 중고등부까지 있었습니다. 20대 총각 전도사가, 결혼 못했으면서도 결혼식 주례도 하고, 장례도 집례했습니다. 그때 훈련받은 것이 평생 힘이 됩니다. 개척교회하면서 새로 오는 사람이 어떤 요구를 하는가도 이때 이미 경험했으니 수영로교회 때는 겁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때 경험했기 때문에 기도하면 이 교회는 될 것이고, 아니면 안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강도사 고시 앞두고,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준비하는데, 그는 목사 되는 것이 걱정이었다. 그렇게 훌륭하다던 사람들도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안수받는 것이 두려웠다. ‘하나님 영광가리는 일을 했다면 빨리 데려가 주세요’하며, 청계산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를 했다. 금식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고 먹기도 싫었다. 월요일에 시작했는데, 목요일에는 기도하는 중에 비가 왔다. 비 맞아가면서 ‘말씀하소서! 순종하겠습니다’하며 부르짖었다. 그 한 말씀을 들으려고 비를 맞아가면서 부르짖는 순간, ‘목사가 되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할렐루야!’하는데, 하늘을 보니, 비가 오는 새카만 하늘에 조그만 빛줄기가 비쳤습니다. 이 빛이 마치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본 것과 같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해 170명이 시험을 보았는데, 11명 붙었습니다. 예상문제를 못맞춰도, 공부를 안해도, 주님이 말씀하시면 책임을 지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 역시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 순간에 끝난다, 아무 것도 염려할 게 없다. 그렇게 수지맞는 일이다’는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그렇게 한번 목숨 걸고 기도해 보십시오. 날 거두시든지, 불을 내려주시든지... 아주 끝장을 내야 합니다. 그런 체험을 하면 생애가 바뀌고, 삶이 달라지고, 목회가 달라지고, 희한한 일들이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신학교 때는 개척교회만 집중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한국 최고의 교회였던, 충현교회, 영락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등을 모델화하여 연구했다. 각 교회 담임목사님들께 한 시간만 내달라고 부탁하여 예약했다. 질문지를 만들어, 그들의 ‘비밀과 비장의 카드’ 등 알고 싶은 것을 철저히 연구하여 그들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 리서치팀의 동역을 이루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로는 신성종(전 총신대 신대원장, 충현교회 담임목사), 예종탁(동현교회 담임목사, CBS 이사장) 목사 등이다. 신학교 수업 때도 항상 맨앞에 세 명이 앉았다. 공부도 다 잘했다. 월요일마다 모여서 스터디 그룹도 했다. 이들이 나중에 한국 교계의 지도적인 인물이 되었다.
 

▲   대양주 목회자 부부 세미나에서 아내 박신실 사모에게 축복기도하는 정필도 목사       © 크리스찬리뷰

 

바보 사모

 
목사 안수를 앞둔 그에게는 또 하나의 숙제가 떨어졌다. 노회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총각에게는 목사안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든 결혼을 해야 했다. 그때 교회 여전도사가 한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며 어떠냐고 물어 “글쎄요. 뭐 좋죠”라고 한 말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결혼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알고 보니 당시 부교역자로 섬기고 있던 신현교회 장로의 딸이었다. “교역자니 소문이 나기 전에 빨리 약혼식을 치르자”라는 전갈을 해왔다.
 
"당시 아내는 학교 다니는 학생으로, 학교만 다녔으니 결혼할 준비가 전혀 안돼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목요일에 ‘예스’했는데, 바로 그날로 월요일에 약혼하자고 했어요. 당사자는 만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토요일에 당사자를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하여 갔습니다. 그리고 주일 지난 다음날인 월요일에 약혼식 했으니 얼마나 웃겼습니까?
 
그런데 결혼식도 한 달 안에 하자고 했습니다. 둘은 이야기도 없는데 말입니다. 이야기도 안해보고 결혼을 한 것이지요. 결혼식 하니 둘만 한방에 남았습니다. 이제 큰일 난 겁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목사 부인될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학교 다니다 갑자기 시집가라 해서 시집 왔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해요?”
백지에 그림 그리듯이 ‘사모학’ 강의를 했다. ‘일대일 대화식 수업’이었다.
 
“사모는 ‘똑똑사모’와 ‘바보사모’가 있다. 똑똑사모는 말도 잘하고, 기도도 잘하여 교인들에게 인정받는다. ‘바보사모’는 그저 싱글벙글 하며, 뭘 물으면 ‘난 몰라요’ 한다. 그러면 뭘 할래?” “바보사모할래요”
 
이 수업은 특효약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준비된 것 없이, 교인들 만나면 그냥 싱글싱글 웃고, 뭘 물으면 ‘난 몰라요. 목사님께 물어보고 할께요’했다. 일년 후에 친구 목사들 사이에 “백년에 하나 날까말까한 사모가 났다”는 소문이 났다.
 
그러나 소문과 달리 부친의 ‘놀라운 추진력’으로 결혼한 박신실 사모는 엄청난 문화충격이었다. 죽고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쪽지를 써놓고 도망하려다 포기하고 17일 동안 아무 것도 안먹고 금식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리기도 했다. 그때 하나님의 놀랍게도 ‘네가 정 목사에게 시집간 것은 네가 간 것이 아니다. 내가 정 목사를 이렇게 쓰는 것이다. 이렇게 이렇게 하기 위해, 자녀들은 목사의 자녀들의 샘플처럼 세우기 위해서이다...’는 응답을 주셨다. 이 음성을 듣고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다. 무슨 소리를 해도 담대했다.
 
“제가 설교준비 하는 동안 다른 방에 가서 몇 시간씩 기도해 주고, 제가 작성한 설교 원고를 다른 종이에 깨끗하게 옮겨적어 주면서 설교할 때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을 낳은 뒤에는 아이들에게까지 아빠의 설교를 위해 함께 기도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쓰시기 시작하는데, 5천 명 모이는 자리에서 한 달 동안 세미나 할 정도입니다. 배짱이 대단합니다. 외국 나가서도 강사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변화를 준 것입니다.”

▲ 정필도 목사는 3박 4일간의 목회자 세미나에 아내와 함께 참석해 강의도 하고 강의를 듣기도 하며 대양주지역 목회자들과 우의를 돈독히 다졌다. ⓒ 크리스찬리뷰   


기도 최우선 전략
 
“하나님으로 일하게 하라, 내가 일하면 힘들지만 하나님이 일하면 쉽다.”  -정 목사의 철칙이었다. ‘하나님으로 일하게 하는 그 방법’과 교회부흥도 바로 기도 최우선 전략이었다.
 
“모든 것 내려놓고 하나님께 부탁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순종하고, 말씀대로 뜻대로 순종하고, 하나님께 부탁하며 울부짖습니다.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결혼주례도 장례식도 못합니다, 악수도 못하지요. 제가 하는 일은 기도와 설교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친해서 나오는 교회가 아닙니다. 성령이 모으시는 일입니다. 새벽기도 끝나면 보통 3시간 전후로 기도합니다. 영감 주시고 아이디어 주시고 메모하다 보면 주님이 하나하나 행하시는 것을 봅니다.
 
일꾼도 사람도 보내주십니다. 헌신된 일꾼이 얼마나 많은지요... 일년에 7천 명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70%는 교회를 평생 처음 오는 사람들입니다. 20-30대가 꽉꽉 찹니다. 제가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으로 일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발버둥치지 말고 기도밖에 없습니다, 결사적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기도라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
 
“어떤 문제도 하나님이 풀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는 문제로 풀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쉽게 해결하십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에 문제 생기는 건 엉킨 실과 같습니다. 내가 풀려고 하면 하루 종일 풀어도 더 엉킵니다. 주님께 드리면 주님이 푸십니다. 절대 문제 생기면 나서지 말고, 의논하지 말고, 말하지 말고 기도만 합니다. 한두 달이면 다 잊어버립니다.
 
특히 교역자는 성령께서 문제 풀어줄 때까지 충분히 기도해야 합니다. 목숨 걸고 끈기있게 기도하다 불 받고 주의 음성 들으면 영력이 생기고, 소문이 나고, 교회가 계속 부흥됩니다.”


영적전쟁에서도 기도가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역설했다.
 
“부흥회 인도하러 가서, 4-5차례씩 마귀가 절 넘어뜨리려고 진을 치고 있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정신 안차리면 부흥회도 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광지에 부흥회 가서도 관광 안하고 집회합니다. 영적 전쟁입니다. 새벽예배 드리고 나서, 12시까지는 거의 기도합니다. 점심 먹고 나서 또 기도하고 말씀 전합니다. 먹는 것, 보는 것 희생하고, ‘사례비는 주든지 안주든지 완전히 포기하겠습니다, 그건 주님의 뜻이고 모든 것을 희생할 터이니 주님 은혜만 임하게 하옵소서’하고 간절히 매달리고 그러니 집회에 은혜가 임하고 부흥합니다.”
 
교회 안의 영적 전쟁도 주목해야 한다고 경험을 들려주었다. 교회 지도자, 담임목사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사탄의 전술전략을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회장만 흔들리면, 교회는 무너집니다. 교회가 영력이 강하면 사탄은 머리를 숙입니다. 괴롭히는 사람들, 선동하는 사람들, 또 그걸 일러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언제 알려주느냐? 꼭 토요일 설교 준비할 때 일러줍니다. 이 모든 것, 다 사탄의 역사입니다. 보통 때 이야기해주지 않고, 토요일에 설교 준비시간에 말입니다. 목사를 위해주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람도 마귀새끼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두 번 다시 이런 전화하지 마시오. 나는 그 분도 사랑합니다’합니다. 절대 정보를 들으면 안됩니다.
 
목회자가 해주는 일은 사랑하는 일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대들거나 못된 짓하는 사람이 생기면 목회자의 영력이 떨어집니다. 그 사람 탓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몇 시간이고 목숨 걸고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강해지면 전체가 콱 숙입니다. 아무도 불평도, 반항도 하지 않습니다. 교역자는 누구든지 공격해 오면 말로 싸우지 말고, 결사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말로 싸우면 집니다. 공격하는 사람이 왔다는 자체가 위기입니다. 그 사람이 머리 숙일 때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 내가 이런 인간이라도 사랑할 수 있어야 목회할 수 있어요 하지요. 그럴 수 없다면 괴로워서라도 목회할 수 없습니다’하고 기도하면서 만나면 끌어안을 수 있을 때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그 사람이 변화되고 딴 사람이 됩니다. 안아주면 눈물 흘리고, ‘세상에 내가 몇 십 년 예수 믿어도 이런 목사님 처음 만났다’고 나팔수가 되어 다닙니다. 보너스이지요.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성령은 사랑의 영이십니다. 목사는 목회를 사랑으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그런 자세로 목회하면 안변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이야긴지 모릅니다.”

 

▲  열강하는 정필도 목사   © 크리스찬리뷰



 비전이 큰 교회가 큰 교회


이런 기도의 최우선 전략은 교회 대지를 구입할 때도, 교회건축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돈이 남아돌 정도였다. 새벽기도 한 다음 로터리를 땅밟기를 하면서 기도했다. 부산지역을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여리고성처럼 단단한 로터리 일대가 복음으로 점령되어야 했다.‘주님, 로터리를 다 주세요. 이 일대를 우리 교회에 붙여주세요!’ 몇 년을 그렇게 돌면서 기도하다가 문득 해기운쪽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날개짓을 하며 무서운 속도로 새카맣게 올라갔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 새를 봐라. 내가 저 새를 위해 예비해 놓은 이 공간을 봐라. 얼마나 크고 넓으냐? 다만 저 새가 날개치는 만큼 올라가고, 비상하는 만큼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내가 너를 위해 예비해놓은 것이 이렇게 넓고 많다. 다만 네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은 얼마든지 주겠노라’는 응답을 받았다.
 
이 응답받은 이후 기적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 만 평이 여기저기서 나왔고, 처음 예상한 것보다 3천 500평이나 더 많은 땅과 건물을 막 안겨주셨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었다. 응답을 받으니 믿음이 생겼다.
 
“교역자의 믿음만큼 믿음있는 교회가 됩니다. 돈보다 급한 게 믿음입니다. 믿음이 충만하면 헌금이 충만하고, 믿음이 없으면 헌금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성도들의 믿음을 키울까?’ 그 걱정을 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24시간 릴레이 기도를 시켰습니다. 아, 24시간 기도하는 동안 병이 낫고, 사업이 일어나고 하여, 헌금이 평소보다 더 나왔습니다. 믿음이 커지니 자발적으로 헌금이 더 나옵니다. 그 땅을 사서 성전을 짓는데 일 주일에 최하 15억 많으면 30억의 헌금이 들어왔습니다. 믿음이 충만하면 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부터 구축해야 합니다. 믿음 있으면 해결됩니다. 믿음이 작으면 헌금 안하고, 불평하고 방해꾼만 생깁니다. 가장 강한 믿음은 목숨을 거는 믿음이지요. 순교적인 믿음, 목숨을 걸고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목숨 걸고 나가면 그 사람 앞에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이나 마귀나 목숨 건 사람에겐 꼼짝 못합니다.” 

▲ 대양주 목회자 부부 세미나 개회예배에서 인사하는 정필도 목사 ⓒ 크리스찬리뷰    


부산 성시화
 
정 목사는 비전은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부산 전 시민에게 전 복음을 전하는 성시화가 오랜 꿈이었다. 이를 위해 이미 준비된 그릇이었다. 부산성시화 본부가 10년 전, 창립될 당시 모든 교파 모든 교단 대표들이 모였다. 거기에서 성시화본부장을 당연히(?) 그에게 맡겼다.
 
"제가 항상 부산복음화를 많이 외치고 하니 그분들이 정해주셨습니다. 일하기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저를 뽑아주어 제 소신껏 일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전교인들에게 회비내고 기도하게 하면서 성시화운동본부 예산 80% 이상을 우리 교회에서 감당합니다. 아예 부목사 중 한 명을 성시화본부 상근 사무스탭으로 두었습니다. 우리 교회 큰 빌딩 하나에 모든 선교단체에 무료로 사무실을 주었는데, 거기에 성시화운동본부 사무실도 있습니다. 큰 집회를 하면 너무 많이 모여서 헌금이 넘칩니다. 그래서 53사단 예배당 짓는다 해서 몇 억원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봉고버스도 사주면서 마음껏 일하도록 합니다."
 
부산성시화에는 재미있는 이벤트가 있다. 해마다 성탄절이면 예수님 탄생의 참된 의미를 전하기 위해 '예수 탄생 사랑의 대행진 행사'를 한다. 성탄절 오후 2시 부산 전역 15개 구, 군을 비롯해 해운대 해수욕장, 광안리 해수욕장, 부산역 광장 등에서 일제히 실시된다.
 
"성탄절이 되면 모두들 흥겨운 캐롤송과 화려한 트리, 산타할아버지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탄절의 대표적 이미지는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왜곡시킨 것입니다. 성탄절은 낮은 자리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나누는 사랑의 날로 회복돼야 합니다.
 
그래서 이 행사를 통해 바른 성탄문화의 정착과 함께 기독인만의 축제가 아닌 부산시민 전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발전시켰습니다. 이 행사는 경배와 찬양, 통성기도, 지역별 특별순서, 말씀선포, 결의문 낭독, 거리정화운동 순서로 진행됩니다. 모든 교회가 산타클로스로 분장하여 한 장소로 걸어오면서 전도하고, 해운대 같은데서 부산시장 모시고 전체가 축하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쓰레기도 다 줍고, 연말에는 극빈자들을 위해 쌀 모으기를 하여 1만 가마 모아서, 부산시내 고아원 양로원 등 도움을 요청하는 곳에 다 나누어 준다고 한다. 그리고 부활절에는 '십자군 대행진'을 한다. 로마병정과 예수님처럼 분장하여 4군데서 4팀이 연합집회하는 사직동 실내 운동장으로 행진한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매년 부활절마다 하니 이제는 익숙해지고 점점 업그레이드되기도 한다.
 
 "전국에서 모델이 될 만한 성시화운동이 아닌가 합니다. 성시화 통해서 전교회들이 하나 되니, 기독교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시장부터 국회의원들도 교회행사에 얼굴을 다 내밀 정도도 비중이 커졌습니다."
 
 
엑기스 한 방울
 
부산 최대의 교회, 아니 한강 이남 지방 교회에서 최대의 교회를 일군 정 목사 생애를 몇마디 ‘농축 엑기스’로 만들어 내면 무엇일까? 기도와 사랑으로 표현해도 될 듯하다. 특히 그는 사랑의 마음이 가득 담긴 설교를 통해 성도들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교인들은 세 종류가 있습니다. A급 신자는 칭찬할 것밖에 없는 사람이지요. 저 사람만큼만 되었으면 하는 신자들입니다. B급 신자는 중간입니다. C급은 아주 고약한 신자입니다. 이중생활을 할 수 있고, 술도 한 잔 하고, 교회에서 행세도 하는 문제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사들은 C급 신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A급은 내버려두고, B급은 대충하고, C급을 박살내고 그들이 은혜 받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설교 준비할 때 C급을 놓고 설교준비를 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찾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설교하는 목사는 교인들을 전부 C급으로 바꿔 버립니다.
 
사람은 취급하는 존재다. 멀쩡한 사람도 바보 취급하면 바보됩니다. 취급하는데 따라 바보도 되고 천재도 된다. 아이들에게도 정결한 교인으로 칭찬하고,  ‘너는 시집 잘 갈거야, 밤낮 누구든지 너를 데리고 가는 사람은 수지맞을 거야!’  해보면 말대로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C급을 상대로 설교하다보니 제일 화가 나는 사람이 A급 사람입니다. 그러니 C를 보지 말고, A급에 맞추어 설교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너무 행복합니다. 그들의 사진을 쫙 붙여놓고, 이 사람들에겐 좋은 것 주고 싶고, 나눠주고 싶고 A급 신자 놓고 사랑이 넘치는 심령으로 설교해야 합니다. 그러면 B급 C급도 A급으로 변하지요.
 
자기는 농땡인데 목사님이 날마다 칭찬해주니... 교인들 모두가 A급 신자 흉내라도 낸다. 아주 최고의 신자인 것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변하려고 합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 어디 가서도 사랑 못받고, 대접 못받았는데, 목사의 설교로 최고의 대우를 받으니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조는 사람, 고약한 사람보고 설교하면 목소리만 커집니다."
 
기도보다 성령보다 결코 앞서지 않는 그의 삶, 설교 한편에서도 사랑으로 성도들에게 다가가 갈등과 아픔을 치유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그의 엑기스는 눌러도 눌러도 콸콸 쏟아져 나오는 진액덩어리였다.☺
 

글/송기태 (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선교교회 담임목사)
사진/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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