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원주민
 
김동원/크리스찬리뷰
이번 호 내용은 ‘호주 원주민’에 대한 것이다. 그동안 개인적인 관심으로 참석한 호주 원주민 관련 여러 세미나와 컨퍼런스, 그리고 관련서적을 통해서 얻은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들은 그동안 필자가 방문하고 직접 만났던 원주민들과 그들의 공동체에서 함께 지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호주 원주민 전체가 아니라 필자가 다녔던 특정 장소와 특정 원주민 공동체와의 경험이기 때문에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최근 호주 정부는 호주 원주민들을 향해 ‘First Peoples’이라는 용어를 채택해서 사용한다. 호주에 최초로 살고있는 1세대 사람들이라는 의미인데, 호주 원주민들 ‘Aboriginal and Torres Straight Island 사람들’을 부르는 공식용어이다. 이것을 기준으로 한인 이민자와 같은 사람들을  ‘Second Peoples’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호주 연방정부 성립 이후 이민자들뿐 아니라 호주 식민지 정책에 따른 초기 정착 개척민들도 포함이 된다. 결국 호주 원주민이 아닌 사람들은 다 ‘Second Peoples’ 기준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호주 정부 설립 이후 초창기 호주 역사는 First Peoples과 Second Peoples 사이의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특히 1838년 6월 10일 NSW Myall Creek에서 일어났던 원주민 학살 사건은 아직까지도 호주 원주민과 백인 정착민과의 풀리지 않은 갈등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마이올 크릭 원주민 학살 사건을 추모하는 행사가 매년 6월 마이올 크릭 현장에서 열린다. ⓒ크리스찬리뷰

비록 2009년에 Myall Creek Massacre 지역이 National Heritage(국가 유적지)로 지정이 되었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결의 갈등이 있다.

필자는 이 유적지를 여러 번 방문하며 역사적인 사실들을 몇 가지 알수 있었는데,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28명의 호주 원주민들을 초기 정착 백인들이 살해한 사건이 1838년 6월에 일어났다. 그리고 무고한 호주 원주민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에 대한 학살이 알려지며 같은 해 11월 15일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시작이 됐다. 대부분의 원주민 학살 공모자들이 처벌을 받지만, 정작 학살을 주동한 The Flemming 형제는 무죄로 풀려나며 계속되는 연관 원주민 학살에 관여를 했다.

이 사건은 Genocide(민족 학살)의 상황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을 향해서 이루어진 것보다 휠씬 오래전에 호주 땅에 사는 원주민들을 향해 시도된 역사적인 증거가 된다. 이 사건 외에도 타스마니아 섬 원주민들 대량 학살을 비롯한 여러 학살의 사건들이 초창기 호주 역사를 채우고 있다.

이런 암울한 초기 호주 역사에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2007년 호주 노동당이 집권하면서부터 호주 원주민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시도가 정부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케빈 러드(Kevin Rudd) 호주 수상은 2008년 첫 연방국회를 다음과 같은 동의안으로 시작했다.

 “I move: That today we honour the indigenous peoples of this land, the oldest continuing cultures in human history... We are sorry!”

호주 원주민 사회와 특별히 Stolen Generation를 향한 호주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문이다. 그리고 당시 야당 대표인 Malcom Turnbull씨와 함께 다시 TV 인터뷰를 통해서 호주 원주민을 향한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문을 발표한다. 그리고 여러 정부와 민간단체들에서는 그해 5월 26일을 ‘National Sorry Day’로 정하여 매년 5월 26일 호주 원주민과의 회복을 위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추모의 길에 7개의 석탑에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그림과 설명이 적혀있다. ⓒ크리스찬리뷰

필자도 2008년 첫 ‘National Sorry Day’ 선포식에 가족들과 함께 참석을 해서 행사장에 있던 여러 백인, 원주민들과 함께 원주민기를 들고서 브리즈번 도심을 행진하기도 했다.  
 
▲추모 행렬 ⓒ크리스찬리뷰

그러면 회복을 향해 가는 상황에서 우리 한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인 사회에서 기회를 찾아서 호주 원주민 청소년과 청년 세대에 관심과 격려를 보내야 한다. 

호주 영화인 ‘Rabbit Proof Fence’를 보게 되면, ‘서양식 교육’이라는 명목 아래 많은 원주민 자녀들이 강압적으로 이동, 이주를 하게 된다. 그리고 가족과 고향을 잊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동 당시에 발견한 Rabbit Proof Fence를 기억하며, 기숙사에서 도망쳐 나와 그 Fence를 따라 몇 주간에 걸쳐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이 세대들이 지금 50대와 60대를 이루고 있다. 원래 호주 원주민 언어는 8개의 대표적인 표준언어와 그외 지역 사투리들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Stolen Generation 이후 많은 원주민 언어들이 사라졌다. 왜냐하면 원주민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어린 세대가 강압적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 이주해 서양식 교육을 받음으로써 지역 고유 언어를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는 약 6%의 원주민 언어만이 사용되고 있다.(한국인들은 일본 강점기를 통해 언어와 문화의 상실에 대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더욱 쉽게 마음에 와 닿을 줄로 믿는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 5년간에 걸쳐 북부 퀸스랜드 원주민 마을 세 군데(Weipa, Mapoon, and Naperanum)를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Stolen Generation 이전 노인 세대들에게 그 지역의 원주민 언어를 다음 세대에 가르쳐 줄 것을 꼭 부탁한다.

비록 원주민 언어가 문자어가 아니라 구두어여서 글씨로 써서 가르쳐 줄 수는 없지만 대화를 통해서라도 다음 세대에 원주민 고유 언어가 전달될 때, 이 땅의 First Peoples의 역할과 비전 또한 전달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First Peoples이 중심이 된 Second Peoples과의 화해와 화합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해 본다.

올해 1월 22일 BBC 뉴스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Lost indigenous language revived in Australia (http://www.bbc.co.uk/news/world-asia-20066624)’

초기 식민정착 당시 아들레이드 지역에 파견된 독일 선교사 부부에 의해서 지역 Kaurna 원주민 언어가 글자로 변환되어, 2013년 현재까지 원주민 자녀들에게 고유 언어가 가르쳐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를 쓴 Phil Mercer 기자는 원주민 언어인 Kaurna 언어로 이렇게 기사를 마치고 있다.

‘Purrunarninthi!’ - it is ‘coming alive!’

 
김동원|브리즈번 크로스웨이연합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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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1/28 [11:09]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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