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신학은 ‘성경 전체를 복음 중심으로 엮어내는 읽기’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 전체... 읽기’를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한쪽만으로는 온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을 중심으로’는 우리를 회복으로 인도한 복음이란 출발점에서 성경을 보지 않고서는 구원 역사에 제대로 도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엮어내어 읽기’란 각 부분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지에 초점을 맞춰 하나의 흐름으로 읽어나가야, 하나님을 자기 편한대로 해석하는 것을 막고,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참 인간상’을 제대로 회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경전체를 엮어나가는 가장 유용한 방법 중에 하나는 ‘언약신학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드러나,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문제가 어떻게 드러났는지 보는 것’이다. 언약신학은 하나님께서 성경전체를 통해 선포하거나 맺은 여섯 단계의 주요 약속을 말한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야 이 밖에도 많지만, 이후 역사까지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 주요 약속들은 크게 1) 창조언약, 2) 노아언약, 3) 아브라함언약, 4) 모세언약, 5) 다윗언약을 거쳐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7) 새 언약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러한 언약들은 모두 같은 형식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들을 같은 맥락으로 다루거나 더 중요하게 취급하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전체적으로 위의 여섯 언약들이 계속해서 다음 세대에 소망과 회복의 기준으로 등장한다는 면에서 더 무게를 가진다. 여기에 더해 새 언약의 성격을 예고하는 6) 예언자들의 선포까지 포함하면, 언약 개념을 통해 성경 전체는 하나님이 정점으로 한 하나의 맥으로 엮어진다.
언약신학은 한국신학의 주류인 보수주의 개혁주의전통에서는 매우 익숙한 개념이다. 그러나 언약으로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는 잘 설명해도, 창조세계 전체를 포함시키는데 여러움이 많았다. 골드워즈는 성경전체에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개념인 ‘하나님의 나라’를 언약신학과 결합시켰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자리를 의미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하나님과 그의 선택된 백성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전체를 포함하기 때문에, 훨씬 포괄적인 설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그래함 골드워디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참조하기 권장한다. 여기서는 개괄적으로만 전체 그림만 제시한다.
아담과의 언약에서 창조지인 하나님은 왕으로, 아담을 그의 백성이자 대리자로 두고, 에덴동산을 중심으로 창조세계 전체를 관할하신다. 하지만 아담은 하나님 대신 자신을 왕으로 두려고 하는 ‘죄’에 빠져, 결국 언약을 파기하고 창조세계는 파괴와 죽음의 길로 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와중에도 결국 희망의 약속과 계속될 기회를 주신다.
그렇지만 가인의 가문, 인간의 딸로 상징되는 죄의 세력은 점점 강성해지고, 결국 희망을 이어가도록 불림을 받은 셋의 가문까지 죄의 세상에 흡수되어 버린다.
하나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죄의 결과를 처리하기 위해 홍수로 심판을 하시지만, 노아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준비하시고 이를 무지개를 보증을 삼아 노아와 언약을 맺고, 홍수라는 끔찍한 사건이 보여주는 죄의 대가와 새롭게 시작한 축복의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노아의 자손조차 결국 ‘하나님 대신’ 왕이 되려는 시도로 바벨탑을 세웠다가 모두 흩어지고, 하나님은 또 다른 한 사람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주시기 위해 시작하신다.
그 주인공이 바로 아브라함이고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통해, 하나님이 왕으로 그의 백성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을, 가나안땅이란 배경으로 세우시고, 이를 통해 창조세계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 의지를 드러내며, 인간이 자발적으로 그 길이 들어올 길을 마련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의 모델’, 모든 민족에게 축복할 도구를 제공하셨다. 아브라함과 족장들의 삶은 오실 그리스도가 하실 일들을 ‘맛보게 해줌’과 동시에, 그리스도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약함과 죄의 현실을 계속적으로 드러냈다.
모델이 되는 이러한 사명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부여된다. 이것이 바로 시내산에서 맺은 모세언약의 기본이다. 대상이 아브라함에서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되면서, 그동안 아브라함과 족장들이라는 개인과의 관계에서 주로 드러난 하나님의 인격과 원리들은, 이제 한 민족으로 확대되고, 이를 위해 율법을 통해 더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설명된다.
여기서도 모세의 삶, 성막제도 등을 통해 그리스도가 하시게 될 사역들이 예고되고, 동시에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인간죄악의 현실이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 계속 확인된다.
이를 위해 다윗의 가문을 선택해 오실 그리스도를 예고하며 다윗과 언약을 맺는다. 그러나 왕국시대로 들어가면서 다윗 언약은 왕국의 정치적 보존에 동원되고, 하나님을 왕으로 제대로 고백하지 않게 되면서 공의가 사라진 이스라엘은 결국 껍데기만 남은 ‘믿음의 모델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이 상황에서 다시 한번 모세, 아브라함, 더 나가서 노아와의 언약까지 집어가며 이스라엘의 회개를 독촉한 이들이 바로 예언자들이다. 이들을 통해 회개가 없이는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결국 그동안의 모든 역사가 증명하든 인간이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확인하며 오실 메시야를 고대한다.
이러한 도전은 잠시 포로귀환을 통해 집단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조짐을 보였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대안이 더 간절해 진다. 이를 위해 오신 그리스도는 구약을 통해 부분적으로 드러나신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의지를 드러내시고, 이제 원래 아브라함이 선택된 이유였던 원 세상을 향한 구원의 도구로 자신을 십자가에 드리고, 부활을 통해 과거 율법과 지혜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통치하심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신을 제시하셨다. 이를 이루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이 언어와 문화, 공간과 시대를 초월해 주워지실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이 점에서 구약 전체는 아담의 실패 직후 약속된 그리스도의 역할을 예고하고, 또 오시지 않으면 안될 끔찍한 상황을 확인해주는 식으로 풀어나간다. 동시에 인간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고, 또 기회를 주시하는 그 사랑이 각 시대와 역사, 인지의 수준에 맞는 방식으로 드러나고 표현되고 설명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교훈과 시대의 필요에 맞춰 하나님은 더 발전적 방식, 더 자세한 내용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구원의 길을 계속 진행해 가셨다. 이점에서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는 주장이나 히브리서의 완전한 제사장으로 그리스도 이해는 ‘발전적, 단계적 계시’를 설명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점은 구약의 내용을 윤리적 교훈보다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책으로 보게하고, 성경 전체를 통해 드러난 그리스도의 인격을 모델로 우리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계속>
김석원|크리스찬리뷰 편집부장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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