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근대사진전 여는 본지 권순형 발행인

호주 선교사 눈으로 본 구한말 경남지방 풍경들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입력 : 2013/08/30 [16:20]
 
▲ 호주 여자선교사(왼쪽부터 멘지스, 무어, 페리)들이 처음 구입해 살았던 초가집에 한국인들이 방문했다. 왼쪽에는 일본인도 보인다.(1892~1894, 부산)     ©크리스찬리뷰

「푸른 눈으로 바라본 경남의 근대 민속 사진전」이 창원 성산아트홀 제4전시실에서 9월 10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2013 경남 민속 문화의 해’ 행사의 일환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1890년대 말엽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호주 선교사들이 경남ㆍ부산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며 촬영한 희귀사진들로 조선인들의 표정과 풍경을 담은 사진 100여 점이다.

본지 권순형(62) 발행인이 호주 선교사와 가족들이 소장한 원본 사진들을 받아 촬영, 또는 정밀 스캔해 사진 훼손부분들을 복원하고 색상 보정 등의 작업을 거쳤다.
 
▲ 짚신 장수(1891~1893년, 부산)      © 크리스찬리뷰

120년 전 사진 속에 담긴 한국사랑
 
이번 공개되는 사진에는 1890년대 초 악사들, 짚신장사, 호주 선교사들이 구입해 살던 초가집 등과 1920년대 초 항아리 장수 부부, 갓을 만드는 사람과 동네 구경꾼들, 벌거벗은 아이들이 눈길을 끄는 진주 농가의 여름 풍경, 엿장수와 아이들, 연자방아, 장례식 풍경 등이 담겨있다.

색다른 기생사진(1890)도 관심거리다.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태의 기생은 이색적인 자세로 카메라 앵글을 쳐다보고 있다. 지금까지 옛 기생사진은 기방이나 생활공간의 평범한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이번에 공개되는 기생사진은 한껏 치장하고 나름대로 멋을 부린 모습으로 옛 기방 안팎의 풍류를 짐작케 한다.
 
▲ 부산진교회 최초 교인 가족. 심인택 부부(앞줄), 아들 심상현 부부, 아들 심취명. 심취명은 부산진교회 초대장로, 제2대 담임목사를 지냈다.(1894, 부산)      © 크리스찬리뷰

특히 부산지방 최초의 교회인 부산진교회 초대 장로이며 제2대 담임목사(초대 담임목사 겔슨 엥겔. 한국명 왕길지)인 심취명 목사 가족사진이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심취명의 원래 이름은 심상호였다. 1896년 6월 10일 심상호는 이 지방 최초로 아담슨 목사의 주례로 김봉숙과 기독교 예식으로 결혼하였다. 그는 1903년 장로로 택함을 받았고 1904년 장립하여 이름을 심취명으로 개명하여 서울 이남 최초의 장로가 되었다. 후일 당회장 엥겔 목사의 권유로 평양신학교에 입학, 수학한 후 1909년 목사 안수를 받음으로 이 지방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또 한국 한센병 환자들의 친구로 불리는 제임스 노블 맥켄지(한국명 매견시 1910- 1939년 부산에서 활동) 선교사의 넷째 딸인 실라(93)가 한국 친구, 애견과 함께 노는 사진도 공개돼 눈길을 끈다. 부산에서 태어난 실라 할머니는 현재 멜본에 거주하고 있다.
 
▲ 조선시대의 기생(1890년대, 경남)      © 크리스찬리뷰

또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국보 31호인 경주 첨성대에 올라 기념촬영(1937)을 하는 사진과 부산에 호주 선교사와 가족, 선교사 관계자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호주양복점’까지 생겨난 사실을 알려주는 사진 등도 시선을 끈다. 간판을 보면 AUSTRALIA를 AUSTLAREA로 잘못 표기했다.
 
▲ 첨성대(국보 31호)로 수학여행 기념사진(1937)      © 크리스찬리뷰

그 뿐만 아니라 국권 피탈 이후 일제 강점기의 일본군 헌병 분대의 모습과 일본 상인들의 상술이 만들어 낸 가로등, 6. 25전쟁 시 피난민촌의 모습 등은 과거 역사의 아픈 단면들을 보여준다.

권순형 발행인은 “이번에 전시되는 사진 한 장 한 장은 120년 전 선교사들의 봉사, 섬김, 희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며 “진정한 기독교 정신이 무엇인지, 선교의 참된 뜻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당시의 생활상과 풍속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진도 많아 근대사 복원과 민속학 연구 등에도 소중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 한국(부산)에서 출생한 맥켄지 선교사의 넷째 딸 실라와 한국 친구, 그리고 애견들.(1936, 부산) 실라는 현재 멜본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의 언니(셋째 딸) 루시(96)도 멜본에 거주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사장되다시피 된 희귀사진들 발굴 첫 공개
 
권 발행인은 한ㆍ호 선교 100주년인 1989년부터 한국파송 호주 선교사들이 남긴 희귀 사진자료들을 후손들로부터 입수해왔다. 그는 “처음에는 100주년 특집기사를 준비하면서 교회사에 필요한 선교사의 사역이 담긴 사진들만 발굴했지만 지난해 4월 경남성시화운동본부가 오늘날 경남이 있기까지 호주 선교사들의 헌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이를 경남도민에게 알리겠다며 사진을 요청해와 그때부터 생활상, 풍물, 민속 등이 담긴 사진자료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작년 초 경남성시화운동본부에서 전화가 왔어요. 사진전을 하게 됐다고요. 경남성시화운동본부 임원 목사님들이 당시 김두관 도지사와 식사를 하면서 한호수교 50주년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자연스럽게 호주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나왔대요.

작년이 한ㆍ호 수교 50주년이었거든요. ‘올해가 한`호수교 50주년이지만 호주 선교사들은 120년 전부터 부산ㆍ경남지방에 와서 선교를 했다.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고 교회도 세우고 문맹퇴치도 했는데 우리 경남도민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좀 알려야 되지 않느냐. 우리가 사진 수 천여 점을 갖고 있는데 사진전을 개최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김두관 도지사와 얘기가 진행이 되면서 1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그래요. 그러니 될 수 있으면 빨리 한국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전화였어요. 그래서 작년 4월에 한국으로 나갔지요.
 
▲ 멘지스 선교사의 첫번째 한국어 선생으로 부산에서 최초로 세례받은 심상현 씨 (1894. 4.24, 부산)      © 크리스찬리뷰

그런데 가서 사진을 보니까 거의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을 지을 때 제가 준 사진들인데 전시회를 할 만한 사진들은 별로 없었어요. 왜냐하면 복사에 복사된 것, 또 상태가 안 좋아서 크게 사진을 프린트해서 전시할 정도는 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인쇄된 책자와 화보집에 있는 사진을 찍어서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거에요. 그렇게는 안되고 원본사진을 찾아서 스캔을 하거나 사진을 찍어서 해야 된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리고 호주에 들어가서 원본사진들을 찾아보겠다고 했어요.”

권 발행인은 시드니와 멜버른 등 호주 전역에 흩어져 사는 한국 파송 선교사와 후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수천 컷의 사진을 모았다.
 
▲ 조선시대의 악사(1891~1893년, 경남)     © 크리스찬리뷰

“사실 그동안 선교사 후손들 집에 갔었을 때 우리가 관심있게 촬영한 것들은 선교 현장사진이었지 경남도청에서 원하는 사진들은 아니었어요. 경남도청에서 원하는 것은 120년 전 생활상이라든가, 인물, 풍경 등이었어요. 특정종교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호주에 돌아와 2010년에 한국에 모시고 갔던 선교사님들 가족들 후손들에게 사진을 보내주던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직접 가겠다고 일일이 전화를 걸고 편지를 보냈어요. 그런데 답장을 보내온 사람이 별로 없어서 직접 찾아다녔습니다.”

▲ 산등성이 정경 (1920년대 진주)      © 크리스찬리뷰

권 발행인은 두 번째로 한국에 파송된 제임스. H. 맥케이(한국명 맥목사) 목사 후손과 29년간 부산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고 귀국한 제임스 노블 맥켄지(한국명 매견시) 선교사의 딸 그리고 31년간 진주ㆍ마산ㆍ부산 등지에서 사역한 프랭크 윌리엄 커닝햄(한국명 권임함) 선교사의 손녀딸 등을 만나고 NSW와 멜본 고문서보관소 등을 뒤졌다. 서울 한미사진미술관 큐레이터 김선영 씨에게도 협조를 구했다.

▲ 가마꾼(1890년대, 경남)      © 크리스찬리뷰

맥케이 목사는, 부산에 도착해 선교 활동도 하지 못하고 풍토병으로 33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데이비스 목사에 이어 호주에서 파송한 두 번째 선교사. 그의 부인 사라는 1892년 풍토병으로 사망했으며 맥케이는 1893년까지 부산에서 사역하다가 귀국했다.

맥켄지 선교사는 1910년 입국해 1939년까지 활동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장녀 헬렌과 차녀 캐서린은 1952년 부산 일신부인병원(현 일신기독병원)을 세우고 환자들을 돌봤다. 지난해 세계 한인의 날(10월 5일)을 맞아 헬렌에게는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그의 셋째 딸 루시(96)와 넷째 딸 실라(93)는 현재 멜본에 거주하고 있다.

▲ 포구의 여인들(1910년대, 경남)      © 크리스찬리뷰

커닝햄 선교사는 1913년 한국으로 건너가 1941년 일제에 의해 한국을 떠나기까지 28년간 사역했다. 해방 후 1947년 다시 한국으로 건너간 그는 한국전쟁으로 한국을 떠나기까지 다시 3년간 사역하였다. 학자적 능력과 언어의 재능이 탁월하였으며 성경교사로 신구약 개역위원으로 한국교회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그의 며느리 그웬(89)은 현재 시드니의 한 양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 농가의 여름 풍경(1920년대, 진주)      © 크리스찬리뷰
 
손해보고 힘들어도 의미있는 일
 
“멜본에 가서 선교사 가족들을 찾아가 사진 좀 보자고 하니까 앨범들을 건네주더라고요. 그런데 워낙 양이 많고 거기서 촬영하기가 상황이 좋지 않아 호텔로 가지고 가면 안 되겠느냐고 하니까 흔쾌히 앨범들을 주는 거에요. 촬영한 다음에 돌려달라고요. 얼마나 고마운지요. 그것을 가지고 호텔로 돌아와 촬영하고 스캔을 하는데 시간이 엄청 걸려요. 밤새도록 아내와 함께 작업을 했어요.

데이비스 선교님 다음에 맥케이 선교사 손자 집에 갔어요. 변호사인데 쌀뒤지에서 앨범을 꺼내는데 1800년대 원본사진이 다 있는 거에요. 누렇게 변한 것들이 얼마나 반갑던지.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목사 된 심취명 씨 사진, 당시의 기생, 보물 같은 사진들이에요. 이런 사진들은 보기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사진을 찍거나 스켄하고 자료 찾느라고 여러 날을 호텔에서 지냈어요. 돌려줘야 되니까요. 그런데 고마운 것이 나를 믿고 그 귀한사진들을 선뜻 내줬다는 겁니다.

▲ 항아리 장수 부부(1920년대, 진주)      © 크리스찬리뷰

맥켄지 선교사 셋째 따님 루시 할머니도 선뜻 앨범을 건네주었어요. 그 교회에 나가는 목사님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보여주지도 않더니 어떻게 그것을 가지고 왔느냐고 놀래더라고요. 민보은 선교사님 같은 분들도 서로 연락을 해서 사진들을 받아 주시고, 이렇게 협조가 잘 됐어요.

시드니에서도 커닝햄 선교사 며느님은 양로원에 들어가 계시고 손녀 따님을 만났어요. 그분도 자료를 집에 가지고 가서 끝내고 갖다 달라고 선뜻 내주더라고요.”

권 발행인은 “사실은 이번 전시회는 지난해 7~8월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김두관 도지사의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로 인한 사표로 예산집행에 어려움을 겪다 전시회 자체가 무산되었었다”며 “금년 경남민속의 해를 맞아 다시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 엿장수와 아이들(1913~1941년, 경남)      © 크리스찬리뷰

“사진 제공을 해준 선교사들과 후손들에게는 언제 전시회를 한다고 이미 알렸는데 전시회가 무산되어버리니까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어요. 그분들은 벌써 전시회를 한 줄 알거에요.

그런데 금년 2월말에 경남성시화운동본부 이종승 목사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홍준표 도지사가 취임하면서 사진전을 다시 하기로 했는데 예산이 5천만 원으로 깎였다는 거에요. 그래서 4월 초에 또 한국으로 나갔지요. 그러나 도청 담당자와 월요일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연락이 없는 거에요. 경남성시화운동본부 담당하는 목사님께 전화를 했지요.

▲ 나룻배에 호주 선교사의 차량을 싣고 바다를 건너고 있다.(1910년 대 경남).     ©크리스찬리뷰

도청에 들어가야 되지 않느냐. 그랬더니 도청에서 사진 파일을 주면 대행사를 입찰해서 한다고 하니 만날 필요가 없다고 그래요. 또 무산이 되는가 걱정을 하며 일단 부산으로 내려가 이규현 목사님을 만났어요.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수영로교회에서 이 전시회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말씀을 드렸어요. 왜냐하면 WCC 총회 개막식이 10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잖아요. 그곳에서 전시를 하면 효과가 있겠다 싶었지요. 그랬더니 이 목사님은 수영로교회가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뜻있게 하려면 부산지역 교회연합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며 한번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여 저는 서울로 올라왔어요.
 
▲ 거창에서 진주가는 길가에서 행인이 호주 선교부 지프차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1958년)             ©크리스찬리뷰

그런데 WCC 총회에 맞춰 전시회를 하려면 김삼환 목사님이 위원장이니까 상의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직접 찾아뵙는 것보다 박종순 목사님을 통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박 목사님께 전화를 드리고 다음날 박 목사님을 만났는데 그때 도청에서 전화가 온 거에요. 오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안 오냐고요. 약속을 해준 분이 그쪽에서 다 알아서 한다고 하니 만날 필요가 없다고 해서 그곳까지 갔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고 하니까, 뭔가 잘못 알고 있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직원을 서울로 보내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후 다음 날 서울에서 도청 담당자를 만나 얘기를 나눴는데 경남성시화운동본부 담당 목사님이 대행사 선정 문제를 잘못 이해를 하셨어요. 만나서 충분히 대화를 했어야 되는데 대화가 충분히 안 되었던 것 같아요.”
비록 시간과 노동력, 제작비가 엄청나게 필요한 작업으로 적자가 나는 것은 뻔한 일이지만 의미있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특별히 이 일을 통하여 경남 도민은 물론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적 간접적으로 호주 선교사들의 사역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케빈 러드 호주 총리, 프레드 나일 호주 기독민주당 총재가 특별히 전시회 축사를 보내왔습니다. 호주에서는 그만큼 이번 사진 공개와 전시회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선교사님들과 그 후손들에게 늦었지만 약속을 지켜 다행입니다.”

▲ 호주 정부를 대표해서 케빈 러드 총리가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크리스찬리뷰

한국 방문 일기
 
권 발행인은 지난 8월 4일 경남근대사진전 준비 차 한국을 다섯 번째 방문하면서 적은 ‘한국 방문 일기’를 건넸다. A4 4장 분량의 일기장에는 9일간의 한국 일정이 가득히 적혀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겸손과 함께, 한정된 지면 때문에 그 아름다운 사연을 여기에 모두 옮겨 적을 수는 없었다.

▷경남근대사진전 준비 차 지난 8월 4일 아침 대한항공편으로 시드니를 출발하여 10여 시간의 비행 끝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장마도 끝나고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 속의 인천공항은 출입국하는 여행객들로 인해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뉴스에선 이날 인천공항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내국인들이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출국 전 전시할 사진 점수, 사진 사이즈, 액자 사이즈, 도록 제작 등의 내용들을 확정하고 전시 계획과 도록 제작을 위한 100점의 사진을 2벌씩 프린트하여 숙소로 정한 이대 국제기숙사 사무실로 배달을 마쳐놓았다. 그리고 방을 배정받아 밤샘 작업을 하여 2권의 앨범을 만들어 다음날 대구로 내려갈 준비를 끝냈다.

▷둘째 날 아침 일찍 친구 성기덕 사장이 승용차를 갖고 이대 숙소로 와서 편안하게 대구로 향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는 언제나 복잡하여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는데 많은 시간이 지체되어 대구에서의 약속시간을 지킬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대구행은 지난 2011년 ‘아름다운 동해의 섬’ 사진전시회를 할 때 액자를 제작해 주었던 김건오 사장에게 이번 전시회 액자도 맡겼기 때문이다. 미리 견본 사진 2장을 보내놓고 샘플 액자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해놓았기 때문에 이를 점검하고 주문을 확정짓기 위해서였다.

또한 2011년 1월, 울릉도로 사진 촬영을 갔을 때 목포에서 울릉도까지 일 주일 동안 나를 수행하며 촬영하는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울릉군에서 경북도로 파견 나와 있는 주재원 김철환 계장과의 약속이 잡혀있었다. 김 계장은 2년 전 대구의 액자공장을 소개해 주었을 뿐 아니라 거리상 내가 직접 액자 제작과정을 지켜볼 수 없기 때문에 나의 대리인으로 액자 제작과정을 책임 맡아 진행해 줄 것을 약속해 놓았기 때문이다.

액자공장에 도착하니 김 계장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제작해 놓은 액자를 점검했다. 원목으로 제작한 16R 사이즈의 액자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원목의 질감을 잘 살렸고, 마감도 매끄럽게 하여 전시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란 기대감이 생겼다.

김건오 사장은 이미 100점을 제작할 자재들을 확보해 놓았기에 사진만 보내주면 일 주일 정도 작업하여 전시 일정에 차질 없이 창원 성산아트홀 전시장으로 배달해 줄 것을 약속했다.
 
▲ 전시 액자점검을 위해 액자 공장을 방문한 권순형 발행인(왼쪽 2번째)과 성기덕 사장(오른쪽). 왼쪽은 김건오 사장.     ©크리스찬리뷰

밤늦게 마산 사보이호텔에 여장을 풀고 내일로 약속되어 있는 경남도청 문화예술과, 행사 대행사, 경남성시화운동본부 관계자들과 가질 미팅을 위해 자료를 다시 점검하고 새벽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셋째 날, 창신고 교장을 지내고 은퇴하여 지금은 크리스찬경남 신문사 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인식 장로와 창신대학교 설립자인 강병도 장로를 호텔에서 만나 사진전시회와 관련된 진행사항에 대해 의견을 나눈 후 강병도 장로는 다음 약속 장소인 통영으로 서둘러 떠났다.

오후 2시부터 경남도청 내에 있는 ‘2013 경남 민속 문화의 해’ 준비 사무실에서 경남도 문화예술과 강승제 사무관, 손성훈 주사보, 경남성시화운동본부장 박시영 목사, 크리스천경남 총괄사장 이인식 장로, 행사 대행사 임재삼 전략기획실장, 정한솔 사원 등 8명이 준비과정에 대한 설명과 전시회 계획 등 구체적인 진행 사항들에 대해 점검해 나갔다. 그러나 당초 1억 원의 예산이 반으로 줄어 5천 만원으로 행사를 진행하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권 발행인은 경남도청 관계들과 전시회 개최에 따른 제반사항들에 대해 협의했다.     ©크리스찬리뷰

예산의 반은 대행사, 홍보, 전시장, 액자설치 및 철거, 개막식, 운영 인건비용 등으로 사용되다 보니 그동안 전시회를 위해 7차례의 한국방문과 사진 수집을 위해 수차례에 걸친 국내여행에 들어간 경비 지출도 적지 않았는데 이에 대한 예산 책정이 미미한 실정이다.

아무튼 사진 스캔과 복원, 프린트, 액자, 도록 제작 등은 내가 책임을 맡아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미리미리 준비해 왔지만 이번 미팅에서 한 가지 당황스러웠던 것은 사진 일부를 교체해 달라는 것과 사진(액자) 사이즈를 다양하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고 여유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확정해 놓은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화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귀국 후 14일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하여 빨리 보내줘야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아 2시간 30여 분에 걸친 미팅을 마치고 오후 5시경 호텔로 돌아와 저녁도 거른 채 사진 교체를 위해 65장의 샘플 사진을 선정하여 웹하드에 올려놓으니 하루를 넘겨 새벽 1시가 지났다.

▷넷째 날, 부산에서 이명남 선교사가 나를 픽업해주기 위해 아침 일찍 호텔로 왔다. 그동안 사진들을 정리하며 출처(촬영년도, 지명 등)와 제목 등에 대해 고심해 왔는데 부산지역에서 호주 선교사들의 사역을 연구하며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여러 관련서적들을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경석 장로(부산진교회 은퇴)를 만나 미비된 사진들에 대해 고증을 받고 확인된 사진들도 재확인하기 위해 부산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 고증을 위해 부산을 방문, 왕길지 기념관에서 김경석 장로(오른쪽 2번째)와 만났다.     ©크리스찬리뷰

 왕길지 기념관에서 김경석 장로를 만나 고증을 받는 동안 일신기독병원 원목 정인규 목사가 합류하여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오후 1시 50분 부산발 KTX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도 노트북을 꺼내놓고 와이파이를 잡아가며 이메일을 체크하고 바바라 마틴 선교사를 비롯한 몇몇 지인들에게 전시회 관련, 이메일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서울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오후 2시 6분. 논스톱으로 달려 정확히 2시간 16분 만에 서울에 도착한 것이다.

서울역에서 여동생 내외가 나를 픽업하여 이대 국제기숙사까지 데려다 주었고 잠시 여장을 푼 다음 인사동으로 나가 김웅남 전 시드니 총영사를 만나 그간 은퇴 후의 생활에 대해 여담을 나눴다.

이날 밤 늦게 경남도에서 13장의 사진을 교체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톤 교정(복원) 작업을 위해 파일을 찾아 디오아트 도성기 사장에게 보내고 새벽까지 편집 작업을 서둘렀다.

▷다섯째 날, 횃불재단 관계자들과 2014년도 차세대 디아스포라 세계선교대회 홍보를 위해 연합뉴스를 방문, 왕길환 기자와 면담을 갖고 협력을 당부했다. 이날 오후 디오아트로 가서 톤 교정과 복원작업을 점검하고 변경된 사진 사이즈대로 차질 없이 프린트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때 연합뉴스 왕길환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시회가 한 달여 남았으니 인터뷰를 하자는 것이다. 이에 작업을 중단하고 약속 장소로 나가 1시간여 동안 인터뷰하고 20점의 사진을 다음날까지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다시 디오아트로 가서 사진 작업을 마무리 짓고 기숙사로 돌아와 연합뉴스에 보낼 사진들을 정리하여 간단한 사진 설명과 함께 보냈다. 숨 막히게 돌아가는 빠듯한 일정 속에 쉼을 갖고 싶지만 매일의 일정 속에 전혀 틈새가 보이지 않는다.

▷여섯째 날, 도록 편집을 위해 진흥출판사로 가서 최석환 이사를 만나 가편집된 원고를 검토했다. 그러나 13장의 사진을 교체하게 되어 편집에 큰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일단 가편집된 원고를 기초로 하여 다시 전체 내용을 조절하기로 했다. 이날 오후 디오아트에서 완성된 파일들을 보내주어 이것들을 재정리하여 전시계획과 도록 편집 작업을 서둘지 않을 수 없었다. 파일에 번호를 적어가며 순서를 잡아가는 작업이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아무래도 시간 여유를 갖고 꼼꼼하게 순서를 정해야할 것 같아 귀국 후 작업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 도서출판 진흥에서 도록 편집을 위해 미팅을 가졌다(최석환 이사와 임성철 이사)     ©크리스찬리뷰

▷일곱째 날, 세계한인언론인협회를 횃불재단 관계자들과 방문, 김현주 사무국장과 만나 내년 7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차세대 디아스포라 세계선교대회 홍보와 관련된 사항들에 대해 협의했다. 저녁시간에는 편집 작업으로 시간을 보냈다.

저녁 늦게 최석환 이사가 이대 숙소로 찾아와 도록 편집 수정안을 전달했다.

▷여덟 번째 날, 주일아침 대학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이인규 권사가 이대로 픽업을 와서 올림픽공원 인근에 있는 한미사진미술관으로 갔다.

지난해 4월 경남성시화로부터 사진전 제안을 받고 사진 수집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몇 점의 사진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는데 그 이후로는 연락을 하지 못해 큐레이터 김선영 씨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다행히 주일에도 개관하기 때문에 오후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대구에 함께 갔던 성기덕 사장도 인근에 사업체가 있어 한미사진미술관으로 왔다. 전시장을 둘러보며 전시계획을 세우고 도록 편집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김선영 씨로부터 지난해 말 국립현대미술관과 한미사진미술관이 공동개최한 ‘대한제국 황실의 초상 1880- 1989’ 도록 한 권을 증정 받았는데 도록을 편집하는데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 황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저녁에 엄상익 변호사를 만나 전시회에 따른 저작권과 관련된 사항들에 대해 협의하고 경남도와 체결할 협약서 초안을 검토했다.

▷아홉째 날, 마지막 날이다. 아침 일찍 서울역으로 나가 도심 터미널에서 짐을 부치고 최삼경 목사가 픽업와서 내년도 성시화대회 강사로 선정된 손봉호 박사를 만나기 위해 다니엘학교로 갔다.(손 박사는 홍정길 목사와 함께 나의 서울 체류 중 일본을 다녀왔기에 이날밖에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다니엘학교는 발달장애학생을 위한 특수학교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소재하는 대한민국의 교육기관이다. 발달장애인 학생을 위한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통합된 형태의 학교이다.

손봉호 박사는 다니엘학교 강당을 빌려 교회당으로 사용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이날 여전도회 모임에 설교를 맡았기에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시드니기독실업인회(CBMC) 초청으로 시드니를 다녀간 적이 있는데 시간을 계산해보니 19년의 세월이 흘렀다.

▷13일 아침 시드니공항에 도착하여 카푸치노 커피 한 잔을 사들고 공항 문밖을 나서니 화창한 날씨에 공기도 맑아 닫혔던 숨통이 열리는 것 같았다. 마치 악몽을 꾼 것 같은 9일간의 한국 일정이었다. 14일, 15일 양일간은 사진들을 재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과 밀린 업무들을 처리했다. 사진 제목도 모두 정했고, 프린트 작업과 액자제작, 도록 편집 등의 일정도 확인하며 대부분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마무리했다. 다음 주부터는 9월호 편집하고 배포를 마치면 바로 한국에 나가야 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쉴 틈조차 없다.
 
내년 서울과 호주에서 순회전시회 계획
 
권 발행인은 “1889년 10월 호주장로교회의 조셉 헨리 데이비스 목사가 한국 선교사로 파송 된 지 올해로 124년이 됐다”며 “그동안 126명의 선교사가 파송됐는데 이들의 후손들로부터 당시 한국과 관련한 사진과 자료들을 발굴해 세상에 알리는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의지를 내비쳤다.

“경남성시화운동본부와 함께 한국에서 순직한 8명의 선교사를 기리는 기념공원과 기념관을 지을 때도 그동안 수집했던 모든 사진과 자료들을 제공하고 선교사와 후손들로부터 유품들을 기증받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과 호주의 우호증진을 위해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그는 1986년 여름휴가 때 시드니로 휴가를 왔다가 매료돼 이듬해 가족과 함께 훌쩍 호주에 정착했다.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의원 겸 시드니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년에 서울에서 전시회를 가질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횃불재단을 비롯한 몇몇 곳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고요. 내년 서울에서 차세대 디아스포라 세계선교대회가 열리는데, 그 기간에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추진 중입니다.

▲ 경남근대사진전이 개최될 창원 성산아트홀 입구 전경     ©크리스찬리뷰

그리고 서울 전시 후 가능하면 시드니, 캔버라, 멜본, 브리즈번, 골드코스트, 아들레이드 등 호주 순회전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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