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의 성지순례(2)

김환기 사관의 성지학술연구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2/01 [15:43]

서울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어둠을 뚫고 2009년 9월 2일 이스탄불 공항에 착륙했다.  별다른 검사 없이 공항에서 나오자, 내 이름을 들고 기다리는 터키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차는 ‘라마단의 축제등불’로 밤을 수 놓은 이스탄불 거리를 질주하였다.   

 
이스탄불 (Istanbul)

▲ 이스탄불 시내 야경 ⓒ김환기    

‘2010년 유럽 문화의 수도(Europe Capital of Culture)’, ‘천의 얼굴을 가지고 또 하나의 얼굴을 가진 도시’, ‘동방과 서방의 길목’, ‘성과 속의 공존’, ‘기독교와 이슬람의 조화’, ‘어제와 오늘의 대화’ 등의 수 많은 수식어를 사용하여도 2%가 부족하여, 또 다른 용어를 찾아야 할 것 같은 도시이다.

이스탄불은 무려 1,600년 간이나 두 제국의 수도로 동방과 서방의 중심 도시였다.  1차 대전에서 참패한 오스만 제국은 열강의 위협 속에서도 이스탄불을 끝까지 사수하기 위해, 대부분의 에게해 섬들을 그리스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이곳에는 성소피아 성당, 톱카프 궁전, 술탄 아프멧 사원, 고고학 박물관, 비잔틴 지하 저수지, 돌마바흐체 궁전 등 많은 유물들이 있다.  

 
성소피아 성당 (Hagia Sophia)

 
▲ 성 소피아 성당 ⓒ김환기    


성소피아 성당은 돔으로 만들어진 건축물 중 백미로 꼽힌다.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명령에 의해, 시작한지 5년 11개월 만에 537년 12월에 낙성식을 가졌다.  중앙의 큰 돔은 지상에서 56.69m이고, 돔의 직경은 32.37m로 웅장한 느낌을 준다. 

기독교 성당으로 지었으나 오스만 제국이 점령하고 나서는 모스크로 사용했고, 1934년부터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부에는 이슬람교 장식과 기독교 성화가 공존하여 있다.  로마 황제가 아기예수를 앉고 있는 마리아에게 봉헌하는 모자이크 성화가 눈에 띈다. 두 손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성’을,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성당’을 드리는 장면이다.  

 
톱카프 궁전 (Topkapr Palace)

 
▲ 톱카프 궁전ⓒ김환기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메흐메드 2세 황제는 기독교 제국이 남긴 궁전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오스만 황제에 걸맞은 새로운 궁전을 콘스탄티노플의 중심지에 짓기로 했다.  ‘마르마라 해와 보스포러스 해협’과 골든 혼으로 둘러싸인 곳에 톱카프 궁전을 세운다.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국사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최고 기관이었다. 

궁전에는 세 개의 문과 그에 딸린 넓은 마당이 있다.  셋째 문을 통과하고 마당을 지나면 해협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장소가 나타난다. 이곳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 찍는 포인트가 되었다.   

 
고고학 박물관 (Archaeology Museum)

 
▲ 고고학 박물관ⓒ김환기    


박물관은 약 6만여 점의 고고학적인 발굴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들 유물의 역사는 기원전 7000년부터 시작하여 20세기에까지 이르고 있다.  대표적인 전시물은 1887년 시리아의 시돈에서 있는 왕실 가족묘 발굴 작업에 발굴된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이라고 한다.  손으로 만질 수 없도록 유리관을 씌워 놓았다. 나는 왜 알렉산더 것이라고 하는가에 대한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마케도니아 출신으로 천하를 호령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관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박물관의 주장에 의하면 석관에 새겨진 부조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석관 부조에는 그리스 군대와 페르시아 군대 간의 전투 모습, 잘 생긴 청년이 페르시아 병사를 쫓는 모습이 있다. 바로 그 청년이 ‘알렉산더대왕’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돌마바흐체 궁전 (Dolmabahce Palace)

 
▲ 돌마바흐체 궁전 ⓒ김환기    


돌마바흐체 궁전은 압둘메지드 황제(1839-1861)에 의해 1843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856년에 완공되었다.  18개의 홀과 332개의 방을 갖고 있는 거대한 호화 궁전이다.  내부 장식에만 총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투입되었을 정도로 실내 장식은 웅대하고 매우 화려하다.  천장에 매달린 상드리에 한개의 무게가 4톤이나 되는 것도 있다. 

바다를 향한 문 쪽 걸어가면 아름다운 정원과 푸른 마르마라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방이 있다.  이곳에서 터키인의 추앙을 받던, 국부 ‘아타튀르크’가 1938년 11월 10일에 잠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갑바도기아’(Cappadocia)이다.  로마에 ‘카타콤’(Catacomb)’이있다면,  ‘갑바도기아’에는 1985년 세계유산(World Heritage)에 등재된 ‘지하도시’(Under ground City) 가 있다.

 

김환기
호주구세군 다문화 및 난민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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