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복음주의와 부흥회

고준학/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4/25 [11:30]
▲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독창적인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    

복음주의는 언제나 신앙 부흥 그 이상의 것이 결부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출발부터 부흥 그리고 부흥에 대한 갈망이 중심을 차지했다. 1730년대 중반부터 퍼져나간 신앙의 불씨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비록 중생 혹은 회심이 청교도 신앙의 중심이었지만 이것이 좀더 폭넓은 의미에서 복음주의 신앙의 핵심이 된 것은 18세기부터이다.
 
많은 역사가들이 18세기를 복음주의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복음주의란 성서의 권위를 믿고, 회심의 경험을 강조하며, 전도를 그 사명으로 하는 신앙 형태를 말한다.
 
회심을 복음주의의 표어라고 말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17세기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에 이어 18세기에는 영국의 감리교 운동, 그리고 미국의 대각성운동이 일어났는데, 바로 이들이 강조한 것이 복음주의 신앙이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18세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런 운동들을 복음주의 운동이라고 부른다.
 
무엇 때문에 18세기의 기독교는 회심을 매우 강조하게 되었는가? 여기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개인주의의 등장이다.
 
지금까지 서구 사회는 기독교가 뿌리가 되었다. 따라서 서구 사회에서의 종교란 기독교를 말한다. 그리고 이 사회에 속해 있던 모든 인간은 무조건 기독교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여러 교회들 사이의 갈등이 이런 무조건적인 종교의 갈등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영국의 예를 들면 국교회와 청교도의 긴 갈등은, 결국 어떤 교회를 택할 것인가는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신앙 공동체의 기초는 개인의 신앙적인 결단이라고 보는 견해가 등장한 것이다.
 
이런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사람이 존 로크(John Locke)이다. 로크는 "종교의 관용에 대한 서신"에서 종교의 선택은 국가의 강요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었고, 이것은 신약성서와 초대교회에서 분명하게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자체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국가의 강제력이 없어도 널리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로크는 기적에 대해서 언급한다. 초대교회에는 기적이 나타났고, 국가의 힘보다는 기적의 힘에 의해서 복음이 전파되었다.
 
18세기 복음주의가 선택한 방법은 기적이 아니라 부흥회를 통하여 회심 혹은 중생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부흥회는 18세기의 기독교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근대 기독교의 산물이다. 부흥운동의 주요 측면인 야외 집회, 순회 전도자, 감정적인 설교 같은 것은 이전에는 금기시되던 것이었다. 이러한 부흥운동은 근대 기독교의 중요한 원동력으로 자리잡았다.
 
미국 대 부흥운동의 주역인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목사는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일어난 초기의 부흥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모두가 영원한 구원에 대해서 심한 걱정에 사로잡힌 듯 보였습니다. 회사의 모든 대화도, 모든 내용이 신앙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디에서도 다른 대화의 낌새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전체에 영원한 세계의 위대한 것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활기찬 경험적 신앙을 혐오하는 성향의 사람, 자기 이성에 큰 자부심을 지닌 사람, 마을의 명문가, 마을의 최고령 노인, 그리고 수많은 어린이들조차 놀라운 영향을 받았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가정의 어떤 사람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고준학|시드니유니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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