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의 손으로 쓴 완벽한 수.목 드라마

시론-대한민국 제20대 총선

송기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4/25 [12:47]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4월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입구에서 제20대 마포을 지역구에 출마한 손혜원 후보와 더컸유세단 단장인 정청래 의원과 손을 맞잡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정청래 의원은 공천 심사과정에서 탈락했으나 당에 대한 서운함을 딛고 경선에서 떨어지거나 불출마 선언 당내 인사들과 ‘더컸유세단'을 조직, “우리의 작은 눈물로 총선 승리의 마중물이 되고 싶다"며 전국을 순회하며 94명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서 더민주당이 20대 총선에서 대승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 국민일보

드라마 쇼는 끝났다. 각본 없이 진행된 빅쇼의 결과는 드라마틱하면서도 준엄했다. 그 ‘위대한 수목드라마'의 종영날인 지난 4월 13일 저녁부터 14일 아침 TV 화면은 환타지였다.
 
빨강, 파랑, 연두, 노랑, 회색의 다섯 가지 색깔로 칠해진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의 지도는 기막힌 환상이었다. 마치 봄꽃이 만연한 고향의 봄 동산을 보는 것 같았다. 다섯 색깔의 조화로 우리의 조국 산하에 민주의 꽃이 활짝 피어 평화롭고 따뜻한 기운이 넘쳤으면 하는 상념에 젖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뜬 자막 122•123•38• 6•11은 ‘로또복권, 당첨번호마냥 찬란한 빛을 발했다. 그 빅쇼를 보고 마주친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같이 밝았다. 심지어 주연이 처참하게 망가졌는데도, 주연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던 관객들조차 시무룩한 기색이 아니었다. 다들 스스로 뭔가 큰일을 해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사실 멀리 외국에 살면서 그 큰일에 참여하여 보태준 것도 없고, 아니 참여할 자격조차 없었으면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그 ‘유쾌한 관객의 반란'을 자신의 무용담인 마냥 늘어놓았다. 

▲ 웃음짓는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김종인 대표와 침통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의원(왼쪽)     © 국민일보

122, 123, 38, 6, 11.
 
반공이데올로기 시절 북에서 남파간첩에게 내리는 지령 같기도 하고, 난수표 같기도 한 이 숫자를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정치에 관한한 4천만 유권자가 모두 ‘정치평론가'라 할 만큼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는 즐비한 ‘평론가들'도, 사계의 권위를 자랑하던 여론조사 기관, 내노라하는 정치분석가, 결정적일 때마다 훈수를 뜨며 ‘한 인물씩 하는' 언론인들도 예외 없이 이 숫자는커녕 근접하게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이 숫자는 과히 4천 만 유권자가 함께 ‘붓두껑으로 찍어댄' ‘정치 로또' 당첨번호라고 할 만한다. 그만큼 이 숫자가 함축하는 의미는 한국 정치판을 뒤흔든 빅뱅의 상징이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졌고, 원내 1당과 2당이 뒤바뀌었다. 창당한지 불과 몇 달 만에 3당이 출현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등 정치지형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그랬다. 민심이 참으로 오묘하게 정치권에 할 말을 다 했다. 제멋대로 달려가던 집권 여당은 좀 자숙하라고, 제1야당은 오만한 여당을 견제할 힘은 주겠지만 역시나 자만하지 말라고, 그리고 제3당은 제1야당을 견제하고 캐스팅보터 노릇을 할 기회를 주겠지만 얼마나 잘하는지는 지켜보겠다고. 흔히 말하는 황금분할 구도로 맡겨진 역할을 잘하라는 의사표현이다.
 
이 정치로또 숫자에 보수층도 만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선거 이틀 후 한 여론조사의 유권자인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9.3%가 선거 결과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진보층(86.5%)과 중도층(72.0%)은 그렇다 치고 보수층이 56.5%나 여소야대 결과에 만족을 표시했다는 것은 의외다. 보수층의 이반이 여당 참패의 주된 요인의 하나였음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흙수저'가 날린 분노의 폭풍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절규하며 쫓겨난 그가 누구인가? ‘선거의 여왕'으로부터 주홍글씨보다 더 붉은 ‘배신의 정치'로 낙인 맞고, 핍박당하며 ‘순교자'가 된 전직 원내대표이다. 이후 코미디보다 코믹한 소위 ‘진박놀이'가 정치판을 희화하기 시작했다.
 
‘진박-찐박-조롱박'으로 조롱받으면서도 꾸준히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나대던 ‘진박 감별사'들의 주접 속에 쪽박-피박으로 이번 드라마에서 정점을 찍었다. 그 대척점에선 ‘짤박-탈박-가박-비박'으로 일군을 이루어 모든 것은 박의(몸소 박) 레이저 눈길에, 박을 위한 진박들의, 박에 의한 짤박들의 ‘갑질과 을노릇'으로 점철되다 박장대소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 드라마의 각본, 주연, 감독, 조연, 관객을 분석하면 오만한 권력의 민낯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낯 뜨겁다. ‘어쩜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교만하고, 안하무인인 권력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명목상 관객이지만, 사실은 모든 권력의 주인인 국민을 박대한 대가는 쓰렸다. 이제껏 패배라는 말을 자신의 사전에 굳이 기입하지 않았던 ‘선거의 여왕'으로 이 각본의 작가이자 감독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대형 선거마다 져본 적이 거의 없는 불패신화를 깨뜨린 주연(공천관리위원장)과 조연(출마자)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쯤 되면 자신의 배우 캐스팅의 실력을 탓해야 하는데, 애꿎은 관객(유권자) 탓만 했다. ‘배신의 정치'를 심판하라 일렀거늘 감히 배신을 때리다니. 분노한 ‘표의 홍수'에 믿었던 텃밭이 무너져 내리고, 문전옥답도 다 떠내려간 다음에 내보인 반응도 ‘무덤덤' 그 자체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은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을 터이다. 역대 정권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였으니 자존감의 상처는 얼굴조차 들 수 없을 정도였다.   
 
정당은 집단 지성의 집합소다. 자율성과 다양성, 자존감이 작동돼야 인위적 간섭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런데 집권당은 ‘샤워실의 바보'가 돼 버렸다. ‘푸른 기와집'에서 ‘차가운 물(배신의 정치)’을 틀자 얼음장처럼 굳어지더니, ‘뜨거운 물(진박)’로 급변하니 그물 놓칠까봐 말을 못했다. ‘불통'이란 말이 정권 내내 상징어처럼 굳어있었다.
 
젊은이들은 3포를 넘어 5포 시대에 접어들어 불평이 하늘을 찔렀지만, 변변한 추상같은 호령에 눌려 ‘높으신 어른'들의 상소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진영논리에 갇혀 늘 그 소리에 그 소리만 하는 언론의 말은 바가지 긁는 소리로 귀찮게만 흘러들었다. 국민을 주인이 아닌 구경꾼, 객(客), 졸(卒)로 얕잡아 본 것이다.
 
그러다 이번에 흙수저들이 일어나 젓가락질 하던 그 손가락으로 이심전심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것은 ‘붓 두껑의 민란'이었고, 총칼 안든 혁명이었다. 이렇게 민심의 철퇴를 맞았음에도, 굳이 ‘회초리'를 맞았다고 그들은 강변하고 있다. 그 철퇴의 파열음에 권력이 균열되는 소리는 쩍쩍 크게 울려 퍼졌다. 툭하면 데모로 응원해주던 ‘어버이연합'이란 관변단체까지도 이제는 대놓고 청와대에 대드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 업히면 낙선, 업으면 당선. 4.13 총선 유세 때 김무성 대표의 등에 업혔던 30명의 후보 중 28명이 낙선했다. 이에 ‘어부바의 저주'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사진은 노원병에 출마한 이준석 후보를 김무성 대표가 업어 주었는데 이 후보는 낙선했다.     © 국민일보

선무당의 칼춤
 
주객전도는 공천과정에서 극에 달했다. 공천관리위원장이란 ‘완장' 찬 인물의 교만은 바벨탑보다 높았다. 대놓고 칼 몇 자루를 준비한다고 했다. 당연히 있어야 할 대변인도 간사도 임명하지 않고, 혼자서 통반장 대변인까지 다했다. 일흔 나이를 젊게 보이느라 노타이에 색색의 자켓을 바꿔 입어가며 마이크 앞에 서서 뱉어대는 말 한마디 한마디와 보디 랭지지에 우수수 표 떨어지는 천지를 진동했다. 
 
그런 자리일수록 세련되게 소리 없이 일을 처리하고, 이해 당사자들에게 상처 주지 않아야 할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요, 예의다. 칼자루 쥐어준 쪽을 너무 믿고 칼춤 추는 모습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채 두 달도 ‘완장질'을 하면서, 당헌당규를 말하는 선출직 당 대표를 향해 “바보 같은 소리한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망치 쥐면 두드리고 싶어하고, 칼을 쥐면 찌르고 싶어 한다."는 권력의 속성, 권력의 생리, 권력의 본능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거기에다 ‘누님의 동생, 작은 완장' 역시 당 대표를 향해 ‘죽여 버려'라는 육두문자를 여과 없이 토해냈다. 최소한의 조직윤리도 ‘엿 바꿔 먹고' 배타적 조폭윤리, 조폭언어만 난무하는 정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그렇게 드러난 민낯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추악했다. 자칭 ‘대한민국 최고 리더 집단'이라고 자처하던 ‘최고위원'들은 모였다 하면, 욕설이 난무했다.
 
약한 사람에겐 인상을 부라리고, 권력자에겐 입안의 혀처럼 날름거리는 그 모습이 집권여당 중심부의 자만이었다. 이러고도 야권분열의 어부지리로 180석, 못해도 160-170석은 ‘따놓은 당상'이란 오만과 편견으로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며 계산기를 두들겨 댔다. 사실은 야당의 분열이 아니라, 여당의 자중지란, 적전분열로 야당이 ‘금 뱃지를 쓸어 담았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다.   
 
말이 좋아 컷오프지, 누군 자르고 누군 꽃가마를 태우는 기준은 오직 하나, ‘그곳 어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인물인지 아닌지가 유일한 가늠자였다. 뜨거운 감자인 전직 원내대표에 대하여는 ‘폭탄 돌리기'하고, 문전옥답에 단지 ‘진박'이란 이유로 허접한 씨앗을 심으려다 분노한 여론에 떠밀려, 옥새파동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걸쳐 보여줘도 모자랄 온갖 약점과 추악한 모습을 단 한 달 만에 압축하여 파노라마로 보여주었다. 그러니 지지층의 연민, 동정, 정나미, 열정은 소리 없이 증발하고 말았다.
 
흰개미가 집안의 나무를 갉아먹으며, 가옥을 무너뜨리듯, 흰개미 같은 ‘진박 감별사'들의 진상도 이에 못지않았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밀어주고 당겨주며 팀워크를 자랑했지만 경선하면 뚝뚝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선무당의 칼춤과 감별사들의 난도질 끝에 불쑥 내민 공천 명단에 객은 토를 달 수 없었다. ‘자, 이제 골라보시라!’ 아무튼 찍어야 했다. 명령받은 주권? 아니 그것은 객권(客權)이었고, 졸권(卒權)이었다.
 
객과 졸로만 취급받던 소위 ‘핼조선의 흙수저'들 똘똘 뭉쳐 날린 분노의 하이킥! 20대 총선은 그것이다. 그러니 뒤집어질 수밖에. 졸과 객의 분노는 무서웠다.
 
텃밭과 문전옥답과 집토끼는 당연하고, 접전 지역 반타작만 하여도 160석은 거뜬하다고 두드리던 계산기는 박살나고 말았다. 집토끼는 옆집에서 채가고, 접전지역은 하나도 못 건졌고, 오히려 텃밭과 문전옥답에서도 농사 못 짓는다고 쫓겨났다. 대신 지리멸렬한 야당이 경합지역에선 모조리 득세했다. 오죽했으면 불패신화를 이어왔던 아성 강남, 송파, 분당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겠는가. 받아들일 세입자가 마땅치는 않았지만, 총 122석 중 70%를 야당에 줬다. 여당은 대구 본가에서도 혼쭐이 났고, 문중이라 여겼던 부산에서는 더 곤욕을 치러 결국 종갓집을 비웠다. 약간 큰 야당은 본가인 호남에서 쫓겨났는데 수도권이 불러주는 통에 얼떨결에 대갓집을 차지했다.
 
이런 어부지리가 있을까, 표정 관리에 애를 써야 할 판이다. 분노의 표심에 힘입어 호남에 입주한 중간 야당은 타 지역에서 더러 선전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본가에 셋방살이라도 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객으로 졸로 취급받던 주권의식의 분노는 정당의 원적(原籍)을 거의 갈아치울 만큼 무서웠다. 주인이 당연히 계약을 연장해 주는 ‘텃밭정당'은 없다는 것을 선언한 선거였다. 지저분하게 쓰고, 관리도 잘하지 않으면 반드시 쫓겨난다는 쇠도리깨질을 한 것이다.
 
바야흐로 ‘월세 정당'이 탄생했다. 여야 3당은 이제 주인의 엄격한 인스펙트를 받아 언제라도 짐을 싸야 할 불안한 ‘월세정당'이 되었다. 세입자를 평가할 기회가 매년 찾아온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그리고 2020년 총선. 수도권이 이번에 생긴 신생 작은 야당을 호출할 수도 있고, 집권당은 경북으로 퇴각할지도 모른다. 정권은 수도권 중산층의 향배에 달렸다.
 
폭풍의 언덕은 수도권이었고, 분노의 표심이 향한 진앙지는 청와대이다.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임에도 군주론적 나 홀로 통치양식에 단단한 장벽을 둘러쳐진 모습을 보고 시민들은 진저리를 쳤다. 이번 표심은 ‘물태우'라 불리든 군사정권 시절 치른 13대 총선보다 훨씬 분노한 모습을 보인다. 세상에 민주정부가 군사정부보다 박한 성적표를 받다니...
 
당시 군사정권이 민정당 125석, 평민당과 통일민주당 합쳐 129석, 공화당 35석 분포였다. 정권은 줬지만 독재본가 민정당을 견제하라는 요청이었다. 어떤 사안이든 합의하지 않고는 파열음이 터진다. 2016년 표심은 군사정권 단독으로 받은 의석수보다 큰 야당이 1석 많다. 이 함의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처절히 살펴보고, 표심의 맹렬한 호소를 읽어 내야 한다.
 
이미 의회권력은 야당이 접수한 상태이다.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주의 원리에 조금이라도 허점만 보이면, 현 정권은 ‘레임덕' 정도가 아닌 ‘데드덕'이 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 김무성 대표가 이준석 후보 지원 유세에서 안철수 후보를 뽑아달라는 말실수 때문일까? 노원병에서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 후보가 승리했다.     © 국민일보

칠면조 같은 오만한 권력
 
유권자들의 선택은 놀라웠다. 부동의 보수층과 야권분열이라는 ‘양손의 떡'을 믿고 안하무인의 모습을 보여준 여당과 정부에 실망한 민심이 철저히 고개를 돌렸다. 
 
‘선거의 여왕' ‘40%대의 지지율'이란 신기루에 도취되어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공천 학살에 ‘조무래기'들은 태연하게 선거 직전에 빨간 옷을 입고 선거 접전지를 거들먹거렸다. 그래도 이길 거라는 그들의 오만에 염증난 국민은 ‘선거탄핵으로' 심판했다. 
 
“배신의 정치인은 필요 없다"는 몰염치가 부른 참사다. 20대 국회의 미래를 이끌 만한 새로운 정책, 비전은 내놓지 않은 채 틈만 나면, “국정의 발목을 잡는 국회를 심판해 달라"며 ‘남 탓'만 하던 그들을 향해, 그 같은 ‘저질 드라마'를 다시는 시청하지 않겠다고 흙수저들은 레드카드를 꺼내며 시민혁명을 일으켰다.
 
선거 막판에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집단탈북을 이례적으로 공개하며 ‘안보 이슈'를 부각시키며 치밀한 정치공학적 접근도 판세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더 이상 그런 ‘잔머리'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는 시민의식의 성숙이 입증됐다. 오히려 통일부, 국방부가 탈북 사례를 공개ㆍ확인해 주면서 외교안보 당국의 신뢰성에만 흠집을 냈다. 시민의 수준을 얕잡아 본 그들의 불감증이 부른 자업자득이다.
 
그렇게 원한 맺힌 민심은 사나웠다. 오만한 사육사를 물어버리는 맹수와 같았다. 침묵하던 다수의 투표는 놀라울 정도였다. 집권세력은 16년 만의 충격적인 여소야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유권자의 분노는 직접적으로는 시대착오적인 배신자론으로 멀쩡한 의원들에게 어설픈 표적 칼날을 휘두르며 패권주의적 블랙 코미디를 공연하는 사이 민심은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존영(尊影ㆍ얼굴 사진) 반납 요구는 대형 사고다. 그것은 정치의 상상력 빈곤과 천박함을 드러냈다. 쉽게 바뀌지 않은 선거 심리가 있다. 권력 오만에 대한 저항감이다. 그 감정은 변혁적 선거의 원천이다.
 
뜨거운 민심, 뼈아픈 철퇴를 맞은 여당은 민망할 정도로 재빠르게 변심했다. 선거 기간 내내 “무소속 출마자들의 복당은 절대 불가"라고 외쳐대더니 원내 1당 자리를 내준 투표 결과가 나오고 하루 만에 ‘복당 적극 환영'을 표방하고 나섰다. ‘그때그때 달라요'의 칠면조처럼 변색하고 나왔다.
 
당 대표가 선거결과를 책임지고 사퇴하자, 대표 권한대행이 된 집권당 원내대표가 불과 2주 전 “복당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공언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사족처럼 하나 덧붙이자. 일찍이 헤르만 헤세는 “정치가가 성서의 말을 인용하여 좋은 일이 있었던 예는 없다"고 공언했다. 이 경험칙에 맞춘 예언적인 말에 비춰보면 집권여당 대표자의 ‘참을 수 없는 가벼운 말 한 마디'는 그 정당의 수준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도 ‘눈에 뵈는 게 없는 양 기고만장하던 여당이 투표 한 방에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자 유권자들은 ‘바늘구멍에 여러 마리 낙타가 들어가는' 짤방(잘림 방지용 이미지)을 만들어 공유하는 등 한껏 조롱을 즐기고 있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야권도 언제 ‘훅 갈지' 모를 일이다. 가까이는 원 구성 협상부터 멀리는 대권 후보 경쟁까지, 야권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내년 대선과 내후년 지방선거에서 또 다른 ‘민심 폭탄'으로 한방에 훅 갈 수 있어서다. 다시금 절감하건대, 투표는 역시 힘이 세다. 
 
▲ 총선을 5일 앞두고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 집단 탈출을 공개하며 안보이슈를 부각시키려 했으나 성숙한 시민의식이 관계 당국의 잔머리에 넘어가지 않았다.     © 국민일보

보도용 반성
 
감사의 말이나 사과의 말이 얼마나 진정한 것인지를 알아차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표정에도 어느 정도 나타나게 마련이고, 행동의 변화나 개선이 빨리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반성합니다"라고 하는 추상적인 말의 진정성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진정한 반성의 ‘물증'과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엉터리 반성의 가장 큰 특징은 상투적인 어휘의 남용이다. 그 까닭은 ‘위기의 모면'만을 노리기 때문이다.
 
반성을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벌어 그 순간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잘못했다고 상투적으로 말했을 때 “네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니?”라고 되묻는 선생님이 야단치는 분보다 더 무서웠다. 일단 위기만 넘기자고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종종 머리를 깎고, 석고대죄를 하고, 읍소를 하고, 큰절을 하면서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반성인가 아니면 시간 벌기인가? ‘국민이 주인입니다. 진정 섬기겠습니다.’ 정권마다 읍소한 ‘머슴론'이나 ‘섬김서약'이 어디 한두 번인가? 이 모든 것도 그동안의 ‘학습이론'에 비춰보면, ‘표 앵벌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그들의 상투적인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가장 흔한 표현이 ‘뼈를 깎는 반성'인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 아까운 뼈를 깎을 필요는 없다. ‘재발 방지'와 그에 대한 확고한 보증만 있으면 된다.
 
선거 얼마 전, 정확한 판세예측으로 이름난 그들의 연구소가 불길한 예측을 내놓자 다급해졌다. 그들이 반성과 다짐의 노래라고 불렀던 ‘반다송'은 어떤가. 총선을 6일 앞두고 김무성, 최경환 오세훈, 나경원 등 그 정당의 간판급 인사들은 카메라 앞에 서서 “정신 차릴게요, 안 싸울게요, 일 할게요"라는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이들은 선거전이 중반으로 갈수록 지지층 이탈이 심상치 않자 선거운동 방향을 느닷없이 ‘사죄' 콘셉트로 틀었다. “계파 갈등을 않겠다"며 비빔밥을 함께 먹으며 보도용 사진도 찍었다. 전날까지도 “운동권 정당을 심판해 달라"고 설파했던 사람들은 갑자기 길바닥에 넙죽 엎드려 “죄송하다"고 외치고, 백배사죄와 삭발을 감행하며 ‘사죄 쇼'를 벌였다.
 
그런 사죄는 그저 ‘표 앵벌이용'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앞뒤 맥락도 없는 ‘닥치고 사과'가 지지층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천박한 인식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사죄 퍼포먼스'를 기획한 인사는 “고개 빳빳이 들고 잘난 척하는 것보다는 계속 사죄하는 편이 낫다"며 ‘사죄의 배경"을 설명한다.
 
이들은 선거가 참패로 끝나자 또 “죄송하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위기관리용 1회용 사진에 그친다는 것을 유권자는 다 알고 있다. 이들에게 “이렇게 국민을 우롱해도 되느냐, 도대체 진정성이 눈곱만큼은 있었느냐?”고 묻는 것은 한국 최대의 ‘우문'이 될 것이다.
 
진짜 사죄를 해야 할 지금, 때를 만난 듯 당권 다툼에 나서려는 ‘진박들의 진상'에서는 초상집에서 유산 다투는 패륜아의 모습과 불난 집에서 튀밥 주워 먹으려는 거지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여기에 한 이름씩 올린 이가 바로 국회조찬기도회 회장과 그 멤버라는 데, 더욱 절망감을 느낀다. 
 
여기에다 공천관리위원장을 하며 이번 참패의 총연출자로 데뷔한 자는 전혀 반성도 책임지는 모습도 없이, 총선 결과에 대해 ‘남 탓'으로 떠넘기는 도덕불감증은 마지막 남은 연민의 정까지도 잘라내게 한다.
 
▲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유승민 의원이 대구 동구을에서 75.7%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한편 유 의원은 대통령 ‘존영'(사진)을 반납하라는 요구를 거절한 바 있다.     © 국민일보

민심 못 읽는 난독증
 
총선 참패에 대한 청와대 반응은 차갑다. 54자(摠)의 대변인 명의 논평으로 대신했다. 남의 집 불구경하는 듯한 내용을 담은 단 두 줄짜리 논평으로 총선 참패를 어물쩍 덮으려 했다. 권력에 중독된 나머지 아직도 민심의 회초리가 따갑게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20대 국회에 대한 요구, 짤막한 선거 결과 분석이 전부다. 반성이나 다짐은 없다. 인적 쇄신론은 허공으로 떴다. “통치(統治)를 접고 협치(協治)를 하라"는 주문은 봄바람에 흩날렸다. 완벽한 현실부정이다.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총선이 끝난 지 닷새 만에 최고 권력자가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내놓은 선거 결과에 대한 입장이다.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반성과 변화를 기대하던 국민들에겐 다소 어리둥절한 표현이다. 그리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앞으로 국민의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서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고 사명감으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무리하도록 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20대 국회가 민생과 경제에 매진하는, 일하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정부도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의를 겸허히 받들겠다는 대목과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하겠다는 원론적인 대목을 집어넣긴 했으나, 총선 민의에 응답하는 사과와 반성은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의 ‘립 서비스'마저 사라진 대신 오만의 극치였다.
 
그의  이날 발언에는 최소한 현 정부의 지나온 3년을 복기하면서 반성이 필요했던 부분을 언급하고 향후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와 각오가 담겼어야 했다. 기초연금 공약파기와 세월호 대응 실패, 비선실세 논란, 경제난과 남북관계 파탄, 원내대표 찍어내기와 공천개입 논란 등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가 총선 민의에 담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디테일이 빠지다보니 “민의를 수렴하겠다, 국회와 협력하겠다。ア는 언급이 국민들에게는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또 국회와의 협력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흔들림 없는 국정수행'을 강조한 모순어법은 향후 국회와의 갈등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민주주의의 요체에는 대표성과 책임성, 반응성이 있다. 야권 분열 속에서, ‘지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좋은 조건에서 치룬 선거임에도 정부여당은 여소야대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고서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민심을 못읽는 난독증이 의심된다. 상황인식이 대단히 안이하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열정, 책임 의식, 균형감각
 
한국민에게 4월은 총선의 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원초적으로 4월은 ‘잔인한 달'이자 ‘저항의 달'이다. 잔인한 달의 이미지는 학창시절 배운 T S 엘리엇의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 장시 ‘황무지' 덕분에 심어졌다. 4월의 이미지는 그렇게 필자의 가슴 속에 자리 잡았다.
 
4•19의 시인 신동엽은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노래했다.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 그래서인가. 해마다 4월이 되면 혁명을 꿈꾸고, 반역의 피가 끓고, 저항심이 불끈 솟아나는 듯했다. 
 
▲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후보(오른쪽)가 제20대 총선 개표 결과 당선이 확실해지자 마포구 망원동 선거사무소에서 정청래 의원에게 꽃다발을 걸어주고 환호하고 있다. 손혜원 후보는 정청래 의원이 컷오프되자 비례대표 1번을 포기하고 정청래 의원 지역구에 출마, 득표율 42.3%로 국회에 입성했다.     © 국민일보

이번 총선혁명은 기존 정치체제는 물론 가식과 허위, 부정과 부패 등 모든 부조리를 갈아엎고 새로 시작하라는 소리로 들린다. 신동엽이 ‘껍데기는 가라'고 부르짖었듯 알맹이만 남긴 채 모든 것을 갈아엎어야 할 때이다. 이런 요구를 하며, 시민들은 분연히 일어섰고, 기회를 실현할 수 있는 쪽으로 한 뼘쯤 다가갈 수 있는 결과를 얻었다.
 
이번 총선혁명의 메시지 중 하나가 ‘친박은 싸가지 없는 보수'라는 사실이다. 친박이 전면에 나설 경우 앞으로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총선 후 “이제 반기문도 박근혜가 밀면 안된다."고 한 윤여준 전 장관의 말이 이속에 함축되어 있다.
 
국민들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총선 이후 친박의 방자한 언행을 보면 2선으로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국정을 뒷받침한다'는 지나가는 소가 들어도 웃을 말을 토해내고 있다. 어리석고 불행한 일이다. 당을 살리려면 분장사라도 데려와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반대 진영의 김종인 대표를 영입한 것처럼.
 
자신의 차기 대통령 선거를 1년여 앞둔 2006년 12월 초, 당시 호주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동포들을 (세워놓고) 한 간담회 자리에서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 ‘편 가르기 사고방식'에서 자신도 벗어나지 못한 ‘과오'의 측면이 있었다면서 “앞으로 정치의 영역에서 더 가야 할 부분이 있고, 그것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때 필자는 바로 앞에서 그의 음성을 들으며 임기 마감을 앞둔 대통령의 독백처럼 받아들였다. 정치의 기본은 상대를 인정하는 타협하며 민심을 움직여 가는 것인데, 그렇게 철퇴로 얻어맞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집권여당은 양심을 깔고 앉아있는 ‘권력놀음'만 하고 있는 모습이 참담하게 한다.   
 
독일의 정치회학자 막스 베버는 만년의 저작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라고 했다. “모든 희망의 좌절조차 견디어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 그 어떤 상황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또 베버는 정치인의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특히 책임 윤리를 강조했다. 신념을 갖되 정치의 결과가 신념(의도)에 어긋난다고 해서 세상의 어리석음을 비난해선 안 되며, 인간이란 어리석고 비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해 정치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리스 7현의 한 사람인 비아스는 “지배자의 자리에 있게 되면 그 인품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지도자를 배신하면 그 사람이 배신자이지만, 여럿이 계속 그를 배신하면 지도자가 배신자가 된다. 대통령은 자신의 사람들 여럿이 재임 중 곁을 떠나거나, 야당으로 건너가 자신과 맞서는 초유의 경험을 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배신의 정치를 응징하고자 했던 그들이 국민에 의해 재기하는 역응징 과정이었다.
 
깨어있는 민심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헬조선의 흙수저'는 결코 객도 졸도 아니고, 가장 강력한 주인이었다! 〠

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교회 목사
사진 제공=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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