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정치윤리와 난민정책

이안 패커/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5/30 [11:59]
서론

오늘의 주제는 호주에서의 다문화 정책 및 이민법, 난민 및 망명 정책에 관한 것이다. 기독교 윤리는 우선적으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인정하는 제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형태와 관련되어 있다. 기독교 윤리는 한편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인종, 종교, 문화가 다른 타인들과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 모범 그리고 구원의 성취 (즉, 그의 삶,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이다.
 
그러나 대다수 친밀하고 잘 훈련된 기독교 공동체조차 신학적 신념과 현실적 삶의 방향과 목적이 다른 이웃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 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윤리학은 개인적 윤리학인 동시에 정치적 윤리학, 즉 우리가 어떻게 타자들과 함께 사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신념은 가끔 믿지 않는 자들의 도덕적 신념과 공통된 부분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지배적인 문화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 그들과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게다가 ‘복음주의 윤리학’으로서 기독교 윤리학은 세상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다는 ‘좋은 소식’ 즉 ‘복음’을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사실 그 ‘좋은 소식’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 신념은 종종 정치적 질문들과 사회적 이슈들에 세상이 예상치 못했던 답변과 관점을 제기하곤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윤리관이 복음을 기초로 형성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자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과 대조되는 행동들을 향해 과연 그것이 정당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세상에 도전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하나의 문제는 바로 다문화로 이루어진 나라에 사는 우리의 다양한 경험들에 관한 것이다. 상대주의, 문화적 차이, 그리고 인종차별과 관련한 많은 질문들과 어려움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호주로 온 망명자들에 관한 호주 정부의 정책에 관한 심각한 많은 문제들이 있다. 또 망명신청 및 난민신청에 대해 여려 다른 견해와 어려운 이슈들이 있다.
 
그래서 이 이슈들을 다루는 것에 나는 여러분들을 초대한다. 이것은 호주와 같은 나라에 사는 시민들 혹은 거주자들로서 신실한 그리스도들의 삶과 은혜로 충만한 선교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호주같은 다양성이 뚜렷한 사회에서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신앙을 지켜가며 신실하게 살 것인가에 대해 함께 나누어 주길 바란다.  
 
호주의 간략한 역사적 배경
 
먼저 호주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 설명하겠다. 호주는 비교적 역사가 짧다. 주지하는 대로 근대에 접어들면서 유럽 여러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확장해 갔다. 18세기 영국이 식민제국 건설을 위한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식민지 쟁탈 속에 근현대의 결과로써 태어난 국가 중에 하나인 호주는 어려웠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우리에게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남겨 놓았다.
 
이렇게 ‘도착한 자들’ (침략자들/정착민들)과 토착 원주민들과의 관계는 문제투성이였다 (이것은 오늘 여기서 우리가 다룰 수 없는 특별한 문제이기도 하다). 잘 알다시피 호주 원주민들과 호주에 새로 정착한 유럽인들 사이에는 여전히 긴장과 어려움이 있다. 영국인들은 처음 호주에 도착했을 때 기본적인 전제는 그들은 이 땅의 주인은 아무도 없는 소위 ‘소유권이 없는 땅’(empty land)이라고 간주했다. 따라서 이 주인 없는 땅은 영국 정착민들과 이민자들에겐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땅으로 보였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곳이라는 ‘꺼릴 것 없는’ 야심으로 호주 땅 곳곳을 점령하며, 식민지의 개발은 주도적으로 해나갔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영국 외 다른 유럽 국가의 사람들도 호주에 이주하여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골드러시(Gold Rush) 시대에는 중국인들도 금을 찾아 이주하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은 중국인들을 한편으로는 적대감을 가지고 바라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 잘 모르기 때문에 신비롭고 기이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중국인들은 유럽인들의 인종차별, 학대, 놀림, 비하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렇게 중국인들을 포함한 아시아 이민자들은 인종차별주의자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것은 이질적인 동양인들 혹은 호주 시민들을 압도할 거대한 이민자들 혹은 침입자들의 집단으로 여기는 그들의 큰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0세기 접어들어 오늘의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인 ‘이민제한법’(Immigration Restriction Act of 1901) 이 생겼다. 이를 쉽게 설명하는 말이 바로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이다. 이 법의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영국인들은 호주를 영국의 정통성을 지니게 하기 위해 백인 위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정착한 백인 거주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영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호주는 영국에 속해 있는 임시 정착지라고 여겼다.
 
호주의 백인들은 자주 대영제국 (특히 잉글랜드)을 ‘집’으로서 언급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호주인들은 그들의 ‘집’을 보호해야 할 사명을 받았다고 느꼈다. 그래서 1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호주는 전쟁 위협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백인들은 유럽으로 돌아가 영국을 대표해서 전쟁에 참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민의 변화를 초래했다.
 
한 가지 측면은 많은 유럽 영토의 파괴적 손상은 동정심을 유발하여 유럽인들의 전쟁 직후 큰 규모의 이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호주에서도 이민법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호주 백인들 역시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유럽에 동정심과 동질감을 느꼈고,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에 '열린 마음(open mind)'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2차 대전 후 많은 유럽 이민자들이 호주에 오게 되었다.
 
또 다른 측면은  2차 대전에 일본의 공격을 받은 경험으로 인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오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또한 있었다. 특히 일본의 공격은 많은 해안의 작은 인구로 이뤄진 거대한 유럽대륙에 취약성을 고조시켰다.
 
이 두 가지의 태도가 경계심, 긴장감, 동정심 등 호주로 오는 이민자들에 대한 호주 백인들의 복잡한 심정을 양산하게 되었다.
 
특별히 당시 남부 유럽의 이민자들(예를 들어, 그리스인들과 이탈리아인들)은 지배적인 영국문화 (‘Anglo’ culture), 즉 언어, 관습, 음식, 취미, 그리고 거대한 가족 네트워크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영국 이외의 유럽인들이 이주를 시작할 무렵, 여전히 호주는 대부분이 영국이민자들이었고, 그래서 음식과 문화, 전통 등의 차이 때문에 비웃음과 조롱을 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온 남부 유럽 사람들이 호주에 와서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영국화’되어야 했다. 이 지중해 지역의 사람들이 영국 문화에 흡수되는 과정은 그들에게 커다란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호주 주류 문화로 편입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최대한 많은 백인들을 수용하려 했던 시도(assimilation) 때문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이러한 태도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1970년 초, 수상이었던 에드워드 고프 휘틀람(Edward Gough Whitlam)에 의해 이민 정책에 대한 전폭적으로 개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회의 분야에 급진적인 성향을 가진 개혁적인 정책들이 노동당 정부 (Labor government)에 의해 제정되었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백호주정책의 폐지와 정부의 정책으로서 다문화주의를 옹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문화 정책'이 호주 정부의 기본 정책이 되었다.
 
흡수의 기대보다 오히려 그 운동은 국가의 공통된 헌신의 기치 아래 다문화를 찬사하는 생각을 향한 것이었다. 즉 그 이후부터는 이민자들의 다양한 문화들이 백인 특히 영국 문화에 흡수되기를 강조하기보다는, 각자의 문화를 지키고 보존하며 다양성을 유지하고 사는 것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모두가 호주를 자신들의 국가로 받아들이고 책임 있는 시민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구조 안에서 백인의 주류 문화에 의해 수용되는 다문화가 어느 정도인지에 관해 논쟁이 있어왔고 현재도 계속해서 진행 중이다.
 
즉 ‘호주’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얼마만큼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으며, 얼마만큼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나 될 수 있을 지에 대한 많은 이견들이 있었다. 그리고 법적, 이론적으로만 만들어진 이 정책은 곧 시험에 놓이게 된다.
 
베트남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베트남이 패한 후 호주가 수많은 베트남의 난민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휘틀람 정부 이후 호주는 베트남 전쟁 이후 배를 타고 건너온 많은 베트남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 마지못해 이루어진 것이다. 동양의 난민들을 대거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초반에는 반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수상이었던 말콤 프래저(Malcolm Fraser)가 이끄는 보수적인 자유당 정부 (Liberal government)는 호주 이민법을 개정하고, 이민성(Department of Immigration)의 재정을 400%까지 증가시켰다. 그 결과 1977년~1983년 사이에 5만 명의 베트남 난민들이 잘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호주의 이민 정책은 크게 다음과 같은 3가지의 변화를 거쳐왔다고 볼 수 있다.

  1) 이민자 정착 허용 시기
  2) 이민자 권리 주장 시기
  3) 한 국가이지만, 다문화 보존 시기
 
위와 같은 호주 이민 정책의 역사는 표면상으로 볼 때는 해피스토리(Happy Story)이나, 내면적으로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호주가 다문화되어 가는 상황을 놓고 많은 반대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21세기 와서 여러 명의 정치인들이 다문화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다문화주의’는 1) 더 큰 타협을 위한 하나의 큰 움직임, 2) 자신의 문화의 자유로운 표현의 권리를 더 주장하는 것, 그리고 3) 변화하는 인구로 인한 상대주의적인 문화적 현실로 다뤄져 왔다.
 
21세기의 정치적 반응
 
특히 퀸즈랜드 안에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요소들로 말미암아, 더 다양해진 문화의 출현을 반대하는 반응들이 있어왔다. 대표적인 인물로 한때 퀸즈랜드의 자유당 소속이었다가, 호주원주민 정책에 부정적인 발언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유당에서 쫓겨나 한나라당(One Nation Party)을 창당한 폴린 핸슨(Pauline Hanson)을 들 수 있다.
 
비록 짧지만 관심을 받았던 그 정당은 지지자들로부터 후원을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호주에 다른 지역들에도 불만과 인종차별 (핸슨은 ‘비판은 인종차별이 아니다는 것’을 주장했다)을 확산시켰다.
 
그를 지지한 사람들은 첫째, 정치적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 그리고 둘째, 무언가 불만에 가득 찬 사람들 등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가 최근의 이민자들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어느 나라나 역사적으로 보편적 사실 중에 하나는 다문화 정책에 대한 가장 강경한 반대자는 가장 최근에 이민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다.
  이후 폴린 핸슨은 그녀가 제기하고 비판했던 정책들을 정부가 실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주장처럼 이민 정책에 대한 견해와 발언들에 대해 처음엔 호주 정부가 반대했지만, 지금은 정책적으로 받아들이며 반영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9.11 사태, 발리 사태 그리고 호주가 미국과 더불어 알카에다 및 그밖에 테러리스트들의 소탕 작전에 참여하면서 또 다른 난민들이 호주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2002년 노르웨이 선박(MV Tampa) 한 척이 전쟁 중인 아프카니스탄에서 피난 온 난민들을 구출하여 호주로 와 난민신청을 하게 되었다. 그 선박은 그 난민들을 내리도록 허가할 수 없었다. 그것은 노르웨이와의 외교적 문제를 야기시키기 때문이었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있던 존 하워드(John Howard) 수상의 자유당 정부는 전시 체제 아래 패배가 예상되자, 이 선박을 적절히 이용하여 대중의 표심을 자극했다. 2001년 10월 하워드 수상은 다음과 같이 공포했다.
 
“호주 정부는 아직 배에 있던 난민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고, 호주 정부가 난민들이 온다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할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며, 누구를 언제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호주 정부의 권한이다.”〠 <계속>


▲ 이안 패커 교수(Rev. Ian Packer)   ©Morling College
 이안 패커(Rev. Ian Packer): 몰링 칼리지 교수(사회윤리학), 호주복음주의연맹(Australian Evangelical Alliance) 공공신학분과위원장으로 8년 동안 섬겼으며, ‘기독교와 사회복음주의센터 - Ethos' 부회장으로도 일했다.
번역/권순영, 김현산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