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정치윤리와 난민정책 (2)

이안 패커/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6/27 [15:47]
이러한 천명은 호주 시민들의 호응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이로 인해 ‘태평양 정책’(Pacific Solution)이라고 불리는, ‘이민억제 정책들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또 하나 새로운 이민정책의 시작이었다.
 
그 이전에는 호주 정부에 난민의 경우는 ‘신청만 하면’ 호주 정착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 정책 이후 난민신청자 중에서 허락을 받은 사람만이 정착이 가능하게 되었다.
 
정부는 난민들이 착륙할 수 있고, 합법적으로 그들의 요구들을 수용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호주의 지역들을 재정의 했다(migration zone). 해군함들에 의해 구조 과정에서 망명 신청자는 호주 해군을 통하여 제 3국에서 호주 망명의 허가 절차를  거치도록 하였다.
 
따라서 나루우 섬, 크리스마스 섬 및 파퓨아뉴기니 등에 임시 거주지(난민 수용소)를 설치하였다. 어떤 사람들이든지 ‘국외 난민 심사’(Offshore Processing)를 위해 제3국가에 설치된 구금시설을 거쳐야 했다. 구금시설들은 크리스마스 섬, 마누스 섬(파퓨아뉴기니에서 떨어진) 그리고 나우루 (Nauru)에 세워졌다. 몇 개의 주된 구금시설들은 서로 가까운 섬들에 위치해 있다.
 
2001년과 2007년 사이에 실행된  ‘태평양 정책’을 위한 지출은 10억 달러 이상이었다. 이것이 초기엔 야당인 노동당에 의해  비판받았어도 그 정책들은 노동당 집권 시절 러드와 길라드 수상 정권에서도 계속되었다.
 
아직도 계속되는 이 난민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외 난민시설 즉, 제3국에서 일정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도 난민들을 연안에 있는 완성되지 않는 구금시설들로 옮기는 것 등이 규정된 법에 의해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형편없이, 즉흥적으로, 임기응변식으로 일관성 없이 처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권운동가들이나 난민단체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난민 수용소에서 많은 인권 유린 사건, 학대, 폭력들이 보도된 이후에 그 비판이 더욱 거세어가고 있다. 이 난민 시설을 운영하는데 연간 10억 달러 이상이 든다. 비용 문제는 물론 인권 문제 등을 제기하며,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진보정당들이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그런데 현 정부에 의해 난민 정책은 더욱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난민 정책이 더 강경해 질 것이다. 현 정부는 난민 정책의 실현에 있어서 군대의 개입을 허락하여, 난민을 통솔하고, 관할하고, 제지하는 데에 군대가 동원되고 있다. 이민성과 문화부의 군사비는 이전 노동당 정부의 억제 정책의 기록에 비해  보다 크게 억제하기 위해 확장되었다.
 
기독교 반응과 ‘그리스도인에 의한 반응’
 
난민 정책의 이슈들이 매우 복잡한 만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이는 흔히 그들의 ‘정치에 대한 참여도’에 따라 달라진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이라 하여도 이민정책에 대해 정해져 있는 원리와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그리스도인 정치인들에게는 정치활동 가운데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정치적 윤리에 대해 “정치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관계는 이상적으로 형성되기보다는 실제 삶에서 성숙해져 간다”고 하였다. 따라서 정치적 원리와 믿음을 동시에 놓고 우리가 행동으로 옮길 때 어떤 한 쪽을 타협해야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모든 상황들을 볼 때, 우리의 고민은 ‘기독교 윤리적 차원에서 우리는 어떠한 생각과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이다. 그리스도인다운 대응 방법을 찾기 위해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2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는, 어떤 그리스도인이나 기독교 정치인이 이민 정책에 대해 어떠한 견해나 입장을 표명한다 해도 그것을 꼭 기독교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주장 안에도 비기독교적인 주장들이 있을 수 있고, 특히 정치인들은 그들의 신앙적인 신념보다는 정치적 신념에 의해 그들의 입장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한 가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유가 이민 정책에 관한 이슈들이 복잡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난민 신청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책을 만들 때 한 가지에 원리에만 초점을 맞추려한다.
 
난민들이 단순한 하나의 이슈로 간주될 수 있을까? 가령 배를 타고 상륙한 난민들과 관련한 많은 미사여구와 논쟁들 안에 그 이슈가 하나의 측면, 하나의 원칙, 혹은 하나의 미덕만 다룸으로써 정착될 수 있다는 논리 혹은 상상력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바다에서 죽음을 예방해야 한다”(안전).
  “우리는 밀수범들을 막아야 한다”(법과 질서).
  “우리 또한 테러리스트들에게 공격받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국가 안보).
  “우리는  대기자들에게 공평하며 그들 중 ‘새치기’ 하는 자들을 막아야 한다”(합법적 절차).
  “우리는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자들 모두를 환영해야 한다”(동정).  
 
그러나 이렇게 한두 가지 원칙만을 고수하여 이민정책을 펴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일 뿐 호주정부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난민 정책의 길은 아니다. 그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분류되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한 많은 반응들 (Not every response by Christians)은  ‘기독교 반응’(Christian response)이라 불릴 수 있다. 어떤 반응들은 넓은 의미에서 문화적 영향들을 벗어날 수 없다. 또한 그것은 신학적 신념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사회적 혹은 정치적 지지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반응들은 난민들과 관련한 많은 이슈들 때문에 인식되어야 한다.
 
우리는 각양의 모습으로 반응하는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의 반응은 그들의 정치적 성향과 관련 된다(이것은 특정한 행동이나 정책을 실행시키지 못한다. 다만 그것은 우리가 정책이 만들어지는 어려운 것들을 화합하도록 일조할 수 있다).
 
크리스찬 정치가들은 그들이 만드는 정책들은 반드시 모두 도덕적인 것이 아니며, 어느 정도 그들의 주장을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안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정치적 삶과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공직자들의 영혼의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미덕의 문제”이다.
 
그들이 소유하고 외치는 원칙들과 신념들은 정치적 교묘함, 충성을 요구하는 소속 정당의 요구, 빚을 갚아야 할 사람들, 혹은 돈에 의한 협상에 의해 약화된다.〠
 
주요 정당(자유당, 노동당, 녹색당) 속의 그리스도인들
 
물론 호주의 정치인들은 여러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 그들 가운데 명확히 그리스도인임을 밝히는 자유당과 노동당 소속 두 정치가의 정치관을 들어보자.
 
첫째, 자유당 소속 정치인으로는 전 이민성 장관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을 들 수 있다. 그의 정치철학은 아래와 같다.
 
나의 믿음은 동정 그리고 친절과 함께 행하기 위해 자애, 공정함, 의로움과 같은 가치로부터 나오며, 그것의 목적은 우리의 자신의 인감됨에 공통분모를 인식하며, 다른 이들의 복지를 고려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누구에게나 잠재된 기회가 공정하게 돌아가는 것을 위해 싸우며, 공정치 못한 방법들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기대한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 일어서며,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 집 없고 헐벗은 자들의 편에 서며, 그리고 그것이 일어날 때,  그리스도인들은 신뢰할 만한 증인들로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원칙들이다.
 
그런데 그가 가진 정치 원칙의 소신은 이렇지만, 정치적으로 실행한 것을 보면 난민 정책에 결코 우호적이라고 볼 수 없다. 현실에 직면했을 때 본인이 가진 이상을 그대로 실천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가 취한 정치적 행동들은 난민들의 배를 다 받아들여주기보다 땅에 이륙하기 전에 바다에서 다시 되돌려 보내는 것이었다. 난민으로 호주에 들어오는 배들을 제지했던 것이다.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그의 선택은 ‘결과주의론적’이다. 그래서 이들은 불법망명과 불법이민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기독교적 정의를 이루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억제’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그의 결과론적 논지–즉 ‘결과는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많은 문제를 담고 있으며, 위험한 자기 정당화이다.
 
둘째, 노동당 소속 정치인으로는 케빈 러드(Kevin Rudd) 전 수상을 들 수 있다. 그는 정부에 입성하기 전에 존 하워드의 태평양 정책(John Howard’s Pacific Solution) 을 비판했다: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 직면한 또 다른 도전은 난민들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 가운데 나그네를 돌보라는 성경의 명령은 명확하다. 사마리아 여인의 비유는 어떻게 우리 가운데 있는 연약한 나그네에게 반응해야 하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호주 안에 이주자들을 위한 전 지역으로부터 호주의 땅이라고 제안하고 거의 독점적으로 태평양 정책을 의존하는 정부의 제안은 모든 기독교 교회들에게 큰 윤리적 염려의 원인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난민보호를 위한 유엔 협약 (UN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of refugees)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호주를 포함하는 서구사회가 1930대에 망명을 신청했던 독일과 다른 유럽 지역들의 많은 유대인들을 돌이켜 볼 때 이것이 많은 부분 홀러코스트 대한 공포 때문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러드 전 수상은 이민 학살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하며, 임기 초반 나루우의 난민 시설의 사람들이 호주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했다. 또 나우루에 있는 구금시설을 없애는 문제를 포함한 태평양 정책의 일부를 해체시켰다.
 
그러나 이후에 배로 입국하는 망명자들의 수가 더욱 증가하였다. 배로 입국하는 망명자들의 증가는 기독교 신념에 기초해 비판하였던 정책들을 수용하도록 러드와 그의 정부를 크게 압박했다. 기독교 신념에만 기초한다면 이들 모두를 받아주어야 했음에도 결국 그렇지 못하게 되는 현실을 맞이하게 되었다.
 
호주에서 3번째로 큰 정당인 녹색당(Green Party)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입된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대표적 발언권 가진 대변인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이들은 일관적으로 태평양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소수 정당 속의 그리스도인들
 
이제까지 호주의  주요 정당에 속한 대표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을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그밖의 다른 소수 정당 소속의 그리스도인들의 견해는 어떠할까? 이들은 큰 정당의 소속이 아니므로 자신들의 소신을 좀 더 강력하게 발언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가령 큰 정당의 책임자는 그 정당에 소속된 많은 의견들을 종합하여 대표 발언할 책임이 있지만, 소수 정당 정치인들은 소신 발언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소수 정당의 그리스도인들도 다수 정당의 그리스도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크게 2가지의 견해를 가진다.
 
한 쪽은 법 준수, 질서 준수해야 하며 불법 난민신청을 금해야 한다는 견해이며, 또 다른 한 쪽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이다.
 
어떤 사람들은 소수 정당 안에 그리스도인들이 모리슨과 러드의 주장을 견제하는 소리를 내줄 것을 기대한다. 또 계속적으로 그들은 정부에 지지와 반대하는 문제에 관해 자기 정당의 요구를 배제시킬 것을 기대할 것이다. 소수 정당 안에 그리스도인들도 법과 질서 그리고 ‘난민 억제’에 관해 주요 정당의 목소리를 그대로 반영한다.
 
기독교와 관련하여 호주의 정당들을 크게 2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사안중심의 정당들(issue-based parties) 과 기독교 정당들(Christian’ parties)이 그것이다. 
 
‘사안 중심의 정당들’은 흥미를 유발하는 시키기 위해 정치운동을 하는 작은 규모의 정당들이다. 이 정당들은 보통 보수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한다. 이례적으로 전통적 가족들과 이민자들의 사안에 중심을 두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정당의 실례로 ‘가족제일, 호주부흥당’(Family First and the Rise up Australia Party)을 들 수 있다. 비록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이 정당의 설립에 공헌했을지라도, 이 정당의 당원은 그리스도인들로 제한되지 않는다.
 
이 정당은 보수적인 대다수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으며, 애국심을 강조한다. 이 중에 염려되는 것은 극우 보수주의자(far Right)들이다. 이 그룹들은 극우파의 국제적 반응을 반영하며 유명한 인종차별운동들과 흡사하다. 한국과는 달리 서양의 극우 보수주의자들은 백인우월주의가 그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호주를 다시 찾자’(Reclaim Australia)라는 슬로건의 주된 초점은 이슬람을 막는 것인데, 단순히 여기에서 끝날지는 모르는 일이다.
 
기독교 정당들은 그 정당의 후보자로 서기 위해 명확한 기독교 신념들에 대한 헌신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두를 위한 정치와 정책들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독민주당(Christian Democratic Party)와 호주기독당(Australian Christians)이 여기에 해당된다.
 
‘Family First’당 소속 그리스도인들은 원래 무슬림도 환영했다. 무슬림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가족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지난 몇 년간 이 정당 안에 무슬림에 대해 경계하는 시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무슬림 이민자와 망명자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기독교 정당들은 호주 내 무슬림에 대한 염려와 함께, 위기라고 주장하는 것까지 다양하게 반응한다. 이민자와 난민 수용 문제에 관련하여 이 정당들은 무슬림들에 관한 의심과 연결시킨다.
 
물론 이들은 핍박 받는 기독교 망명자들을 긍정적으로 옹호하며, 매우 관대하여 최대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이것은 다원화된 사회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사회에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는 종교적 신념과 실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문화 정책 안에 살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많은 나라에서 종교와 문화는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호주 정부가 다문화권 정책으로 가기로 결정했다면 그 종교 역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일관적이기 때문이다. 다문화주의의에 대한 주장은 논리적으로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한 종교적 자유를 허락하는 방법을 찾는 것까지 확대된다. 여기에 윤리적 딜레마가 생긴다. 구체적으로 볼 때 우리는 핍박당하는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옹호적이며, 윤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어야 하므로,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기준을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정한 사람들과 윤리적 보편주의를 위해 옹호하는 사안들을 통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 옹호 그룹(Christian advocacy)
 
어떤 종류의 그리스도인과 상관없이 어떤 견해를 주장하거나 옹호하며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동가들 중 하나이다. 그들은 자유롭게 원칙을 주장한다. 또한 정치적 거래나 권력에 대한 부담과 상관없이 기독교 신념들을 표현하고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정치가들에게 압력을 하는 것에 자유롭다.
 
그리스도인들은 게다가 믿음과 이슈에 기초한 단체들-World Vision과 TEAR 등-을 통해 외친다. 이 단체들은 지속적으로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대신해서 그들을 옹호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지속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이 단체들은 아이들을 감금하는 문제에 관한 법적 효력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한다.
 
호주 정치인의 범주에 ‘호주 크리스찬 로비협회’ (Australian Christian Lobby)라는 전문적인 로비 그룹이 있다. 그들은 우선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대신에서 말한다. 그들의 목표는 그리스도인의 염려들을 대변하는 것이지만, 어떤 사안에 관한 그들의 입장들(예를 들어, 동성결혼 문제에 투쟁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 기후변화에 대한 의심)은 다른 기독교 단체들을 이간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정치적 현재와 미래와 관련된 시민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지역 주민들과의 접촉, 여론조사, 이야기 그리고 다른 시민들과의 토론을 통해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그들의 관점을 만드는 그룹들도 있다. 교회로서 그리스도인들은 경쟁적인 정책들 가운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역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구금시설들을 방문하는 것, 구금으로부터 풀려나 새롭게 공동체에 정착하는 자들 돕는 것, 정치가들, 정책입안자들 그리고 공무원들을 위한 기도를 포함한다. 그것은 또한 비폭력적인 행동들을 통해 구금시설 안에 아이들의 상황에 관해 이이를 제기하는 ‘사랑은 길을 만든다’(Love Makes a Way movement)는 그룹처럼 저항과 항의를 포함할 수 있다.
 
‘일반 은총’(Common Grace) 그룹은 이런 행동들을 지원하고 다양한 교단들을 대변하며 또한 대부분 복음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많은 교회들은 이 단체가 위험한 자신의 나라로 추방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의 반응에서 우리는 정부의 정책과 ‘법과 질서’에 관한 입장을 향해 우리의 편견과 함께 단 하나의 입장을 가져야 하는가? 혹은 우리의 입장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환대(hospitality)에 의해 만들어져야 하는가? 〠

이안 팩커(Rev. Ian Packer)|몰링 칼리지 교수(사회윤리학), 호주복음주의연맹(Australian Evangelical Alliance) 공공신학분과위원장으로 8년 동안 섬겼으며, ‘기독교와 사회복음주의센터 - Ethos' 부회장으로도 일했다.

번역/권순영, 김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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