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성윤리, 그 기독교적 답변

기독교인의 성윤리와 동성관계

정미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10/24 [14:11]
▲ 정미연 교수     © 크리스찬리뷰


성경적 성윤리와 결혼관을 이해하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고 구원하신 목적을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율법적인 차원에서 이 주제를 다루면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지키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기 어렵다.
 
또한 동성관계를 포함한 성관계, 결혼제도도 단순히 성경에서 금하는 행동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의 관습이나 제도의 범위 안에서 과연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흔히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성윤리, 결혼윤리를 어떤 이들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비인권적인 편견이라고 비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다음 질문들에 우리는 각자가 경험한 환경과 문화를 바탕으로 대답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추적하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다른 여러 요소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도 있다.

1. 인간의 존재감, 자존감, 정체성,성향, 취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엇이 있는가? 

개인의 존재감, 자존감, 정체성, 성향, 취향 등은 '문화',      '이성',  '경험', ‘종교’ 등을 통하여 형성된다. 그리고 기독교인인 경우 ‘성경의 권위를 어떻게 보는가, 어떤 기독교적 전통/교단에 소속되어 있는가?’가 또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들을 통하여 우리의 가치관이 형성된다. 그 안에 성윤리나 결혼에 관한 선호도나 가치관이 포함되어 있다.
 
과연 인간의 핵심 가치와 정체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성이나 동성과의 성적관계는 이 핵심 가치나 정체성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 사랑이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와 목표, 혹은 삶의 이유라고 본다면 이성이나 동성 간의 성적표현은 핵심적이고 절대적으로 중요한가? 

 
2. 인간을 보는 견해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론적으로 인간에 대하여 '진화론적', '물질적', '동물적', '신체적', '기계적', '사회적', '전인적' 관점 등으로 보기도 한다.  
 
인간을 진화론적, 물질적, 동물적, 신체적, 기계적으로 보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인간을 영혼과 육을 지닌 전인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의 영혼이나 죽음 후에 존재하는 삶 (부활, 환생)이나 ‘세상’ (천국, 지옥) 등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인한다.
 
그리고 성적관계 역시 생리현상으로 보는 면이 강하다. 몸을 정신이나 영혼으로부터 분리하기에 특별한 도덕적 가치를 두지 않는다. 물론 현대인들 가운데 어떤 철학이나 종교적인 인간론을 논하지 않고도 단순히 성적 순결을 보수적인 관념이라 여겨 성적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도 인간을 통합적으로 보지 않고 동물적인 수준에서만 여기는 것과 다름없다.
 
더불어 이것이 오늘날 포르노 산업이 성행하는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너무 쉽게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르노는 가장 친밀하고 신비적인 인간의 사랑의 표현을 상업화시킴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지게 하고 있다.
 
세계에서 인구 분포로 성매매, 성노예가 가장 많은 지역 중에는 러시아를 포함한 구소련 지역이다. 구소련 지역에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러시아인들이 주로 ‘포주’ 역할을 하면서 불법적인 성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것은 가난한 프롤레타리아를 위하여 좋은 나라를 만들어보겠다고 공산주의에 헌신했던 사람들에게는 참 억울한 일이지만, 당연히 예측할 수 있는 결과이다. 유물론을 바탕으로 한 공산주의가 인간을 물질로 바라보는 가치관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유물론은 인간을 그저 육체의 덩어리로 볼 뿐, 영적 존재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을 상대로 도덕, 윤리, 죄, 타락 등의 개념을 다룰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평등하게 부여하기 위해 생긴 것이 공산주의였으나 결국은 인간의 가치와 인권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더 나은 체제라고 말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가 의도한 바는 선했지만 그 기반이 문제였기에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인 지금 구소련 국가에서는 돈을 벌기 위하여 인권을 무자비하게 희생시키는 인신매매, 성매매, 그리고 윤락산업이 성행하고 있다. 구소련뿐만 아니라 서부 유럽에 강제로 팔려오거나 혹은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는 가족을 위해 자청해서 서부유럽의 윤락소에 일하러 오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 공산주의 사상에 인간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 타락한 자본주의 사상이 혼합되어 빚어지는 악순환의 실체이다.
 
그리고 인간이 경시되는 지역에는 당연히 낙태도 성행한다. 낙태는 기원 전에도 성행했다. 특히 로마 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방법은 출산 즉시 아기를 죽이는 '영아살해(infanticide)'였다. 이는 상류층에서 성행했는데, 대부분 상속권과 관련한 문제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의 생명보다 물질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에는 '동물 학대'도 쉽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동물 학대가 다시 인권에 영향을 미쳐 인간을 마치 동물처럼 바라보게 하는 시각을 형성한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몸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는가 등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가치관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교회에서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며 외적 아름다움에 지나친 가치를 두는 예가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미디어에서 매 계절마다 선정하는 미적 기준에 현혹되어 의상뿐 아니라 사람의 외모를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로 이럴 때 교회도 세상의 기준에 지배받는 것이며 인간을 전인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의 조카 중 한 아이가 아기 때 코가 좀 낮았다. 아이가 유치원 나이 때 엄마는 나중에 코를 성형 시켜주겠다고 아이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엄마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내 코를 만들었는데 내 코가 뭐가 문제야?"
 
아이 엄마가 필자에게 전화를 해서 한참을 웃더니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어떤 말을 아이에게 했길래 아이가 이렇게 말을 하느냐”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카가 어렸을 때 “너는 손도 이쁘고, 눈도 이쁘고, 코도 이쁘게 하나님이 만들어 주셔서 참 감사해”라고 말한 후 “하나님, 이 아이 마음도 이렇게 이쁘게 성장하게 해주세요”라고 자주 그 아이를 안고 기도하며 그 아이도 대화했던 기억이 났다. 별 생각 없이 한 것인데 아이가 기도를 듣고 마음에 새긴 것이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금 숙녀가 되어가고 있는 이 조카는 본인의 외모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그 아이의 유쾌하고 밝은 성격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에 참 감사하다.
 
오늘날 '성형 수술'이 일반화되어 가는 것도 우리의 가치관의 변화로 인한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성형이 죄인가의 여부는 율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화상과 같이 성형이 꼭 필요한 경우가 있으므로 그 목적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절한 성형수술 후 자존감이 높아진 사례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소위 '성형 열풍'이라 말할 만큼, 성형이 ‘상품화’되어 광고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인간을 육체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그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기독교인이라면 이러한 현상에 이의를 제기하고, 자녀들이 이러한 현상에 휩쓸리지 않도록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외모에 관한 성경적 가치관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 차후에는 인간의 핵심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나누고자 한다.

 
3. 당신이 동의할 수 있는 결혼제도나 형태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결혼의 형태에는 우리가 익숙한 일부일처제 외에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open marriage’(합법적으로 결혼한 상황-일부일처-에서 양측의 허락 아래 다른 이성이나 동성과 개방적으로 교제하는 형태의 결혼생활), ‘스와핑’(swapping), 소아결혼, 특히 여아신부(child-spouse, especially child-bride), '근친상간의 결혼(사촌간 포함) 등이 있다.
 
이 중 특히 특정 무슬림 국가의 경우 결혼 연령에 제한이 없어 성인 남자와 어린 여자 아이의 결혼이 합법화된 상황이다. 여자 아이의 경우 보통 18세 이상 되어야 자궁에 나이테가 형성되어 아이가 태어날 때 무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보다 어린 나이에 어른 남성과 강제로 결혼이 이루어져 출산 중 사망하거나 혹은 성관계 시 내장이 손상 혹은 파열되는 등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결혼의 형태 중에서 한국에서 허용되는 결혼은 일부일처제뿐이다. 그 외 결혼 형태들은 역사적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져왔다. 통계에 따르면 개방된 형식의 결혼 생활이 만족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유별나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진보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지지하는 결혼의 형태는 동성결혼 한 가지를 빼고는 다 동일하게 일부일처의 결혼제도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70-80년대에 미국에서는 결혼 제도에 대한 반감이 매우 심했고, 서로 결혼하지 않고도 신뢰하면서 살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법이라는 사회적 억압으로 여겼고 이에 반해 동거야말로 조건 없이 서로의 신뢰를 순수하게 이행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에 따라 결혼율이 감소되었기 때문에 더불어 한동안 미국의 이혼율이 조금 감소된 시기가 있었다.
 
호주에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결혼 전 동거가 실제 결혼에 도움이 되는가?'에 관한 설문조사를 여러 번 실시하였다. 결과는 전혀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악영향이 크다는 것이었다. 결혼이라는 틀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좀 더 자유로운 동거를 통하여 그 틀에서 벗어나 보려는 사람들의 생각이 실제로는 더 나쁜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결국 동거나 개방적인 성생활이 미국 사회를 더 진보적이고 안정적으로 만들었는가를 질문한다면 대답은 ‘전혀 아니다’라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에이즈감염이 심각하게 거론될 때 개방적인 성생활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잠시 증가했으나, 에이즈 치료가 가능해진 지금 즉흥적 성관계가 다시 성행하게 되었다.
 
또한 지나치게 개방적인 성관계는 독단적인 현상이 아니라 술, 마약, 폭행 등 각종 사회문제와 동반되기도 하며 결국은 여러 방면에서 사회의 진보성보다는 타락성에 기여한다.
 
또한 법적으로도 미국의 경우 일정기간 동거를 하면 관습법상의 결혼 (common law)에 의해 서로 헤어질 때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결국 결혼식을 치루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도 결혼이라는 제도를 벗어날 수는 없다. 오히려 결혼을 전제해야 법적보호가 가능하다.
 
그동안 결혼 제도를 너무 가볍게 여기거나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로 생각하여 결혼반대운동이 왕성했고, 이것이 선진국과 개도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지금 남은 결과는 그것의 악영향들만 남았다.
 
지금은 결혼 제도가 상당히 무너져버려서 이제는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 국가가 혜택을 주는 시대가 되었다. 결혼제도가 국가와 사회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다만, 결혼 제도에 관해 주장을 펼 때에 복음주의 교회가 주의해야할 것이 있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이중성'이다. 교회가 동성결혼은 소리 높여 반대하면서 이혼, 혼전 성관계, 불륜 등에 관해서는 조용히 묵인하는 것을 세상이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안타까운 일은 통계적으로 이혼, 혼전 성관계, 불륜 등의 발생률이 교회 안에서도 일반 사회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러 차례 교회의 남성 지도자로부터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한 남성 청년들을 상담한 적이 있다. 서양의 경우 아주 드문 일도 아닌 것으로 보아 교회 안에서의 타락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이나 한국계 이민 교회는 과연 이런 일로부터 자유로운지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4. 당신이 허용하는 성관계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성 간의 성관계를 정상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특이하거나 문제되는 성적 관계로 '양성애자', '동성애자', '근친상간', '소아성애자(pedophile)', '성중독', '혼전 동거', '혼전 성관계', '혼전 스킨십', '약혼 후 결혼 전 성관계', 포르노(pornography)'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가족이나 친척 사이에서 성추행 등이 의외로 흔하다. 어릴 적 가족이나 친척으로부터 성적으로 학대를 경험 한 사람들은 그 죄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러한 성적인 경험 때문에 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중에 그러한 경험들은 그들의 결혼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사례도 있다.
 
필자가 사회복지 대학원 과정 학생일 때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한 자매는 키가 크고, 아름답고, 똑똑한 여성이었는데, 심각한 폭식과 과식증으로 인해 의사가 위 수술을 권유할 정도였다. 그와의 대화 중에 이 자매가 어릴 적 삼촌과 사촌오빠로부터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자신을 범한 그 사촌 역시 삼촌에게서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였다. 양쪽 부모님 다 일을 하셨던 그들은 방과 후에 삼촌댁에서 놀다가 부모님이 퇴근 하신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삼촌은 여러 조카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성추행, 성폭행을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이 자매는 주위의 남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면 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믿고 성장했다.
 
곧 성관계를 통해서만이 상대에게 호의를 표현할 수 있다고 인식하며 성장한 것이다.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자들에게 성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다.
 
러나 성인이 된 후 본인이 참혹하고 경멸스러운 범죄의 피해자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깊은 수치심에 빠져들었다. 이 자매는 과식으로 본인의 체중을 늘렸고 과체중으로 인한 본인을 학대하며 동시에 성적인 시선을 피하는 방어기제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성적인 유혹이 생길 때에도 먹는 것으로 그 욕망을 대신하였다. 이 자매는 자신이 뚱뚱해지면 남자들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므로 죄를 짓지 않게 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도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으며 긴 상담과정을 통해 비로소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근친상간을 포함해 성범죄는 충동적이기 때문에 처벌량을 늘려도 그 비율이 잘 줄어들지 않는다. 이런 경우 범죄자 재범 방지를 위한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또 범죄 예방교육을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각 가정에서 교육을 통하여 아동들이 성범죄에 미리 대처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몸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윤리관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혼전 동거, 혼전 성관계, 혼전 스킨십, 약혼 후 결혼 전 성관계 등에 대하여 교회의 기준이 세워질 필요가 있다. 특별히 교역자나 교사 등 학생들과의 접촉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사람들과 이러한 부분에 관해 대화를 나눌 필요 있다. 혼전 동거의 경우는 미국이나 호주 등 여러 국가에서 이미 통계적으로 결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거나,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포르노의 경우 그 중독 가능성 특히 결혼 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하여 깊이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 또한 포르노를 통하여 어린 아이나 동물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불법 행위가 자행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심각한 성적 가치관의 혼란과 변질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위험성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술의 경우는 성경에서 금하지 않는다.
 
와인의 경우 약처방으로 쓰이거나, 유럽에서 식탁에 오르는 음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술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 곳에 있다고 본다. 많은 국가에서 술 산업이 돈 세탁에 이용되고 있으며, 성범죄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5. 당신이 허락하는 성적 관계의 유형은?

 
이성애자(heterosexual: non cisgender)와 'GLBTQI'가 있다. 'GLBTQI'는 각각 게이
(Gay), 레즈비언(Lesbian),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sexual/Transgender), 동성애자(Queer), 양성소유자(Intersexual)을 말한다. 이외에도 무성애자(Asexual)가 있다.
 
Non-cisgender는 동성애자들이 만들어낸 단어로, '동성애자'를 의미하는 단어 'cisgender'가 기본형의 단어이며 주류이고, '이성애자'를 의미하는 단어는 그 앞에 부정 접두어 'non-'을 쓰게 만듦으로써 부정적 인식과 함께 비주류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Queer는 '이상한 사람들'이란 뜻인데 미국의 뉴욕에 많이 살고 있으며, 성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이 구별되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다. 'Intersexual'은 태어날 때부터 양성 모두를 가지고 태어난 경우이다. 이런 경우 보통 아기일 때에 부모의 동의를 받고 거세해서 여자를 만들어 준다. 그러나 문제는 2차 성장 후에 이런 아이들 중에 남성성이 강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2차 성장 후에 어떤 성으로 정체성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엔 2차 성장 후까지 기다려서 정체성을 확인한 후에 수술을 한다. 'Asexual'은 성적으로 관심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성적 관계 유형의 개념은 역사를 통해 변화해 왔다. 그러나 동성관계를 정상적으로 여기는 주장이 서구사회에서 시작된 지가 불과 20-30년 밖에 되지 않았다. 동성애 지지자들은 동성애의 역사가 깊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동성관계는 일부 고대문화, 가령 헬라와 로마 문화권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나 주로 성관계에 국한되어 있었고 일시적인 것이었지 결혼제도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서구사회에서 지난 20-30년의 기간 동안 동성관계 지지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동성애 지지를 광범위하게 이끌어 왔다. 특별히 어린이를 가르치는 학교 교사들 중에 동성애자나 동성애 지지자들이 있다. 아이들의 가치관을 바꾸어야 미래에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이 오기 때문에 이 부분에 동성관계 지지자들이 취업의 자유, 동등성을 주장하면서 학교 교사로 취직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아이들에게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에 걸맞는 멋진 일이고, 인권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심기 위해 노력한다. 21세기를 접어들면서 특히 동성관계를 한 번쯤 경험해 보지 않으면 진취적이지 못한, 촌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서양의 대학생들이 하게 될 정도로 오늘날 사회는 변하고 있다. 이 부분은 차후에 더 이야기해 볼 수 있다.  

 
6. 성경에서 말하는 성적인 죄들은?


성경에서는 '부부(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한 상태)' 외의 모든 성관계를 죄로 규정한다. 이러한 죄들에는 '간음', '매춘', '근친상간', '혼전관계', '동성관계', '수간(Bestiality)', '신전매춘(Temple prostitution), 우상숭배와 혼외 관계(Idolatry and Adultery) 등이 있다. 그러므로 특히 이슈가 된 동성애 등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다른 죄들의 심각성이 희석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성적인 죄는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부부 간의 성적인 관계는 하나님께서 주신 섬세하고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잘못 사용하면 부부 관계는 물론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손상된다. 히브리어 '헤세드' (Hesed)는 사랑, 자비, 충성, 신실, 은혜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스라엘과의 언약 관계를 표현하실 때 사용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결혼관계로 표현하신다.
 
현대인의 사랑의 개념은 흔히 드라마, 영화, 소설 등에서 표현되듯이 사랑과 섹스를 동일하게  본다. 이러한 풍조는 흔히 무분별한 성생활 문화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과 성적 관계를 생각할 때 항상 '인간은 누구인가?' ‘무엇을 목적으로 창조되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성관계는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의외로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7.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정체성의 핵심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정체성의 핵심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데 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관점은 '실제적(Substantive) 형상관', '관계적/ 사회적(Relational) 형상관', '기능적(functional) 형상관'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기능적인 면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으나 사회와 문화를 창조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나 인간의 기능성이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이라고 본다면 인간을 행동주의적 혹은 실존주의적인 사상에 의해 축소 평가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 분명 긍정적인 부분이 있으나, 뇌신경의 문제로 지적, 심리적인 장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나 신체적 결함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 가치에 부정적인 견해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능적 관점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하는 것은 그 의미를 축소시키게 되며 결국 이러한 관점은 핵심적이 아니라 부차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관계적, 사회적 형상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신 이유를 알 수 있다. 이것은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천국에서는 성생활이 없다. 그런데 천국에서도 부활 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남자와 여자로 남을 것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막연하게 아담과 하와를 우리의 부활한 모습의 표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 형상의 표본, 우리가 부활했을 때 표본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남자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이것이 제한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가톨릭이 주장하는 것처럼 여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직접 창조된 것이 아니라 남성성(아버지)을 통하여 이차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왜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셨으며, 부활 이후에도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유지하는가이다. 그 핵심은 남자와 여자가 같으면서도 서로 다르다는 데에 있다고 본다. 인간의 하나 됨(통일성/연합성)은 여성과 남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듯, 인간도 서로 다른 인격체이기에 연합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됨은 인간의 개인성을 극화시키는 표현이다. 따라서 인간의 개인성을 인정하는 전제하에 연합성을 논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 후에 우리는 결혼이나 성적관계를 초월하여 남자와 여자로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부활 전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연합성을 논할 때 결혼과 성관계가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한참 후에 결혼하고, 결혼을 안하는 경우도 있다. 결혼하기 전이나 결혼하지 않았을 경우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으로서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다. 결국 사랑이 전제요 목표인 인간의 연합성에 있어 성관계가 매우 중요하지만 절대적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결혼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바울의 말에는 전도를 위해서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결혼과 성관계가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부활한 이후 갖게 될 우리의 미래의 정체성에 현재 삶에서 미리 참여하며 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존 스토트(John Stott) 역시 자신이 독신의 은사를 받아서 결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독신의 삶을 선택하여 믿음으로 산다면 그 삶을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실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독신의 삶에 은사를 받은 이는 극히 소수일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 스토트가 말한 것처럼 한 그리스도인이 독신으로 살고자 헌신한다면 거룩한 독신생활에 필요한 모든 은혜 (gift)를 하나님께서 부어주신다고 믿는다. 결국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은 관계성 자체에 있는 것이지, 결혼이나 성관계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이러한 관계성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종종 본다. 바로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사는 '자폐증(autism)'을 앓고 있는 경우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이코패스(psycho-path)'의 경우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란 말인가? 결국 우리는 '관계적, 사회적 형상관' 역시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을 전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 형상의 핵심이나 '실제 또는 본질(substance)'은 무엇일까? 이것을 파악해야 '인간의 존엄성'의 기초가 성립된다. 하나님 형상은 기능적인 면도 있고 관계적인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실제(substantive)적으로 본다. 창세기 9장엔 노아시대 때 홍수 후,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을 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살인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그렇기에 하나님 형상의 실제는 죄로 인하여도 파괴되지 않는다. 다만 손상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각각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원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낸다.
 
사실 인권운동은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일어났다. 모든 사람은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와 함께 자유롭게 태어났다는 사상은 기독교적 인간론,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고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
 
인간의 기본 인권을 굳이 범죄자에게도 적용하는 이유는 사회의 안정성에 도움이 되지 해가 되지 않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죄자를 수사하고 체포하는 과정에서도, 그들이 감옥생활을 하는 중에도, 전쟁 때 포로가 된 적군에게도 기본 인권적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또한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는 "가난한 자의 얼굴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이는 가난한 자에 대한 동정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인간이라도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겸손하고 겸허하게 대하라는 것이다. 어떠한 범죄자가 되었건 하나님의 형상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죄는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하신 죄가 없다. 우리의 대화의 출발점은 인간의 존엄성이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형상의 실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형상에 대한 실제적인 관점에 더하여 관계성과 기능성도 함께 고려하면서 어떻게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8.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성의 의미와 관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간의 성적 관계를 '동물적 행동'이라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성경이 성적 관계를 죄로 취급하여 금욕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전체론적 관점(Wholistic/Holistic View)에서 영과 육을 따로 분리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Physical) 성적 관계가 영적으로(Spiritual) 하나님의 뜻에 합한 행위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성적 관계의 추구는 사회 공동체의 윤리에 부합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는 인간 창조의 기본적인 형태이다. 삼위일체에 대하여 고대의 한 학자는 "아들은 성령도 아버지도 아니고, 성령은 아들도 아버지도 아니고, 아버지는 아들도 성령도 아니다"라고 표현했다. 삼위일체의 개념에 있어서 완벽한 일체라도 개별성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은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로 각각 구별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낸다. 동성 결혼을 찬성하는 기독교인들 가운데에는 구약에서 동성 간의 성관계를 죄로 규정하는 구절들은 이미 시대에 맞지 않고, 신약에 있어서도 단지 바울이 만들어낸 신학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와 같이 일치성과 개별성이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 창조의 기본 형태를 설명한다면, 남자와 여자가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 시대를 초월한 성경의 기본적 가르침임을 알 수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신약 성경에서 동성 간의 성관계에 대해 유독 바울 사도만 금하고 있음을 그의 개인적인 견해로 본다. 그러나 이는 바울서신이 이방인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잘못된 성관계에 대해 다루어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도들의 서신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특별히 동성의 성관계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지, 그러한 성관계를 인정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동성애에 관한 신학적 해석을 '바울 신학'에만 국한시켜서 보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다. 성경 전체가 동성애에 대해 죄로 인식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물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어떠한 형태로도 하나님형상임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동성결혼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결혼 제도에는 맞지 않다.〠

정미연|몰링칼리지 교수(조직신학,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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