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권력의 타락 방정식 … 한국 리더의 비선과 악의 족쇄

비밀 비선과 권력 놀음한 리더의 정체와 실체

글|송기태, 사진|권순형·정창길 | 입력 : 2016/11/28 [09:38]
▲   크리스찬리뷰 12월호 표지  © 크리스찬리뷰

역사의 교훈도 무색

“역사는 참으로 인류의 범죄와 어리석음과 재난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의 일갈이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사실상 역사는 범죄와 불행에 대한 초상화일 따름이다.”
 
참혹한 역사의 기록, 처절한 역사의 투쟁, 추악한 역사의 흐름을 보고도 권력가와 정부는 역사로부터 얻은 교훈을 결코 따르지 않으며, 역사로부터 연역한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도 않는다.
 
그토록 선명하게 교훈하지만 ‘권력-부패-심판’의 사이클은 주인공과 무대, 사이클의 크기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은 다를지언정 결코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아니할 괴물처럼 보인다.
 
특히 권력가의 추락은 ‘비선 실세’의 타락에서 비롯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공식이다. 그 공식은 정치가 존재하는 한 피와 살처럼 붙어 있을 불변의 법칙이기도 하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잊을 만하면 툭툭 터지는 부패고질병!
 
절대 권력을 쥐게 된 대통령의 측근들에게 접근하려는 시도는 이처럼 집요하고도 끈질기다. 하물며 그 대상이 대통령과 ‘피가 섞인’ 사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 
 
‘황태자’ 박철언(노태우 정부), ‘소통령’ 김현철(김영삼 정부), ‘홍삼트리오’ 김홍일-김홍업-김홍걸(김대중 정부), ‘봉하대군’ 노건평(노무현 정부), ‘만사형통’ 이상득(이명박 정부)에서 보듯이 비선 실세들에 의한 타락방정식의 공식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돌고 돌았다.  
 
챙길 가족이 없다 해서 친인척 비리만큼은 없겠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박근혜 정부는, 친동생이 “피보다 진한 물이 있다”는 탄식처럼, 검찰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범죄 혐의 전반에 대통령이 상당한 공모관계에 있다”고 밝힘으로써 ‘타락방정식’은 차라리 ‘검증된 과학’에 가까운 사실이라고 해야 할 형국이 되었다.
 
특히 이번 ‘촛불행진의 국민적 분노’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공사를 분별하지 못한 채 ‘최순실’이란 한 민간인과 “최순실의 종(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 비서)”(운전기사의 말)들이 앞장서 국가를 개인기업화하며 헌법질서를 파괴한 데에 있다. 한 달 넘게 툭툭 터져 나오는 특종들을 보노라면, 차라리 이들의 검은 손이 개입하지 않은 분야가 어디인지를 헤아리는 게 빠를 정도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부하지만 다시 역사의 사례를 살펴보며, 기독교적 세계관과 담론을 형성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역사는 모든 것을 미래까지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 시드니 도심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촛불 집회(11월 12일/토)에 시드니 교민 8백여 명이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 크리스찬리뷰

마지막 황제와 라스푸틴
 
이제 오늘의 한국 상황과 매우 흡사한 역사의 장면들을 돌려보자. ‘사이비 종교와 권력’이 기묘하게 어우러지고, 비선라인과 지나친 고착관계가 불러온 비극은 제정 러시아 마지막 황제 홀슈타인 로마노프 왕조의 ‘악마’인 그리고리 라스푸틴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수도사로서, 기도로 병을 치유했고,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니콜라이 2세의 아내 알렉산드라 황후의 신망을 얻은 것도, 혈우병을 앓던 황태자의 병세를 완화한 덕이었다. 시의(侍醫)의 진단에 따르면 태자의 종기를 수술할 경우 혈우병을 자극해 사망에 이를 수 있어 어느 의사도 수술에 나서지 못했다. 아들의 병세를 듣고 기절한 황후에게 라스푸틴은 그 고질병을 기도로 치료했다.
 
그러자 그에 대한 황후와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신임은 확고부동해졌다. 이 장면을 목격한 당시 주러시아 영국대사 조지 부캐넌이 남긴 회고를 정치학자 김학준은 자신의 역저 <러시아 혁명사>에서 이렇게 인용한다.
 
“개인적 자력 또는 어떤 형태의 최면술에 의해, 라스푸틴은 귀여운 소년이자 부모들의 우상이었던 황태자의 고통을 여지없이 덜어주었다. 황후는 그때부터 라스푸틴을 연모의 감정으로 대했고, 라스푸틴의 타락한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절대로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녀에게 라스푸틴은 언제나 비난받을 수 없는 사람이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옛날의 성자들처럼 저주받고 박해받는 사람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라스푸틴의 궁정 지배는 더욱 뚜렷해졌다. 정부 고관 자리도 라스푸틴이 떼었다 붙였다 하자, 라스푸틴을 제거해야 한다는 중론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 총사령관이자, 니콜라이 2세 황제의 숙부 니콜라이 대공(大公)이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라스푸틴에게 총사령부를 방문, 장병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뒤 그를 전쟁터로 끌어내 죽이려 했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라스푸틴이 황후에게 니콜라이 대공을 총사령관에서 해임토록 황제를 설득하라고 말했다. 니콜라이 대공은 결국 해임되고 만다. 같은 경위로 외무대신과 내무대신이 차례로 자리를 빼앗겼다. 
 
▲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최순실 PC 청와대 문건’ 폭로 보도를 이달의 좋은 신문·방송 온라인 보도상에 선정했다.         © JTBC 화면 캡쳐

더 큰 코미디는 황제가 해임된 니콜라이 대공의 후임이 되어 전선에 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라스푸틴의 암살 음모는 거세졌고, 마침내 왕정주의자인 귀족 거부 펠릭스 유수포프가 그 총대를 메고 나섰다. 라스푸틴의 호색 기질을 익히 알던 그는 니콜라이 황제의 조카딸로 절세 미녀인 아내 이리나를 미끼로 라스푸틴을 자기 집 지하식당으로 유인, 육군 장교 수코틴과 군의관 라조베르트와 짜고 권총으로 사살했다. 그 시신을 네바 강에 버리는 것으로 막을 내리지만, 사건은 의문투성이로 종결된다.
 
라스푸틴이 숨진 지 석 달 뒤 2월 혁명이 발발했다. 10월 혁명으로 레닌 볼셰비키 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됐다. 황제와 황후, 아나스타샤를 비롯한 그들의 1남 4녀는 1918년 7월 17일 총살당했다.
 
이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의 조국, 아름다운 금수강산은 무당의 주술에 홀려 있는지도 모른다. 청와대를 삼킨 주술이 전국을 마비시키더니, 급기야 외신마저 지금의 정국을 ‘무속인 예언자 목사의 카리스마에 희생된 대통령’ 또는 그런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10월 30일자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샤머니즘이 판치는 나라’의 현실은 어떻게 진단하는가?
 
“최(순실)는 서울의 주한 미국 대사관이 2007년 보낸 외교 전문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목사로 묘사한 무속인 고 최태민의 딸이다. 한국에서 최태민은 1974년 어머니가 피살당한 후의 박근혜를 조종한 ‘한국인 라스푸틴’으로 여겨진다.”
 
“최태민이 박근혜의 인격 형성기에 몸과 영혼을 지배한 결과, 그의 자식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루머가 팽배하다.”

▲ 시드니에서 열린 1차 촛불 집회에 참석한 교민들.     © 크리스찬리뷰

명성왕후와 무녀 진녕군
 
뮤지컬과 드라마 때문에 과대 포장된 명성황후와 그가 총애한 무당 진녕군이 비선실세였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자 명성왕후는 충주 장호원으로 급히 몸을 숨겼다.
 
구중궁궐 편안한 삶에 익숙한 왕후가 궁벽한 민가가 편할 리 만무했다. 적적한 마음에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들였다. 이성녀라는 이름의 무당은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정확히 맞히면서 왕후와 함께 궁궐로 진출했다.
 
무당은 스스로를 관우의 딸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녀는 왕후의 몸이 아프면 ‘머리로 머리를 문지르며 배로 배를 문질러’ 고통을 잊게 하는 별난 치료도 서슴지 않았다. 양천제의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무속인은 칠반천인(七般賤人)의 하나로 천시를 받았으나, 왕후는 고종에게 간하여 이 무당에게 ‘진녕군’이란 군호를 내리게 했다.
 
국가의 가장 큰 권력가인 왕후의 총애를 받았으니 당연히 국정농단에 나설 수밖에. 얼마나 위세가 컸으면 윤영신, 조병식, 이용직 같은 간신배들은 왕후의 언니, 즉 진녕군에게 “의남매 결의를 하자”고 졸랐고, 그 덕에 모두 좋은 자리에 앉았다. 어떤 이는 자식을 양자로 주겠다고 했으니 위세만큼은 왕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아들 김창렬에게는 당상관의 관복을 입혀 실세 노릇을 하게 했다. 당연히 국고도 엄청나게 빼 먹었다. 훗날 임금 순종이 세자 시절 허약했는데, 그 병을 고친다고 굿을 벌였고, 금강산 1만 2천 봉에 쌀 한 섬과 돈 1천 냥, 무명 한 필씩을 가져다 놓게 했다. 말이 좋아 정성을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 그 쌀과 돈, 무명은 진녕군 일파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왕후는 진녕군을 싸고돌았다. 그에게 현혹된 왕비 명성황후는 진녕군을 관제묘(관우의 묘)의 북쪽에 살도록 하면서 제사를 주관하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북묘부인(北廟夫人)’이라고도 불렸다.
 
진녕군에 관한 기록을 남긴 사람은 매천 황현으로, 그는 <오하기문>에서 ‘요사스러운 무녀(妖巫)’로 규정했다. 
 
“무당은 무시로 상감(고종) 알현이 가능했으며, 장식을 하고 복장을 갖추어 입으면 상감 내외는 그를 가리키고 웃으며, ‘참으로 진녕군답다’고 칭찬하고 금은보화를 무수히 하사하니, 길흉화복이 그의 말 한마디에 좌우되고, 수령이나 감사도 왕왕 그의 손에서 나오게 되었다. 
 
▲      비아그라

대신들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은 다투어 그에게 달라붙어 혹은 자매라 호칭하고 혹은 양아들이 되기를 원했으니, 조병식, 윤영신, 정태호 등은 그중 두드러진 자들이다. 무당의 아들은 김창렬인데 잘 차려입고 외모가 의젓했다.”  
 
여기서 왕후 대신 박근혜를, 진녕군 대신 최순실을 대입해 보면 어떨까? 아들 김찰열과 당상관복 대신 정유라와 승마복을 대입하면 어떤가? ‘금강산 굿’ ‘북묘’ 대신 문화광광체육부의 각종 사업들을 대입해보면 어떤가?
 
또 비선 실세 언니의 딸로서 구속 수사 중인 딸은 “근혜 이모”라고 부른다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무대의 위치가 덕수궁에서 청와대로 바뀐 것과 등장 인물들이 달라진 것 외에 줄거리는 대동소이하다. 이렇게 역사의 기록을 보고도 진전이 없다. 나랏돈 빼먹고, 개인재산 불려가며 인사 전횡(그 대가도 무시 못함)하는 데 안 들키면 된다는 무사안일, 설사 들켜도 몇년만 감옥생활 하고 나면 불려놓은 재산이 있으니 ‘남는 장사’라는 강심장으로 아무 죄책감 없이 국정을 농단한 것이다.      
 
▲     © 크리스찬리뷰

코미디라기엔 너무나 슬픈
 
처음 이 사건이 터질 때의 장면은 코미디라기엔 너무 ‘웃픈’ 장면이었다. 비선실세가 연설문 고치는 게 취미라는 보도가 나간 뒤, 국회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은 “봉건시대에나 있는 일”이라고 단호하게 잘라서 말했다. 그러나 얼마 뒤, 대통령은 그 ‘봉건시대에나 있는 일’이 포스트모던 시대,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청와대에서 실제로 일어났음을 추인해 주었다.
 
한 마디로 최고 통치자가 권력을 사유화하여 자신과 가까운 자에게 권력의 마술지팡이를 통째로 넘겨준 것이다. 그 결과 나라의 모든 시스템이 엉망이 되었고, 비선이라는 이와 그 패거리가 온갖 이권에 개입하여 대한민국의 지축이 흔들릴 정도였다.
 
국민투표로 권한을 부여받은 박근혜 대통령이 ‘권한 밖’의 비선 실세에게 지속적으로 국정 자문을 받았고, 그 실세는 인사권은 물론 각종 이권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며 국정을 농단했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법률을 넘어 '헌법'을 위반한 것이다. 이 때문에 ‘헌정 중단’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고리 3인방’ ‘팔선녀’ ‘영세교’ 속된 말로 ‘듣보잡’ 이야기들이 밀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판도라의 문을 열자 온갖 추문과 썩은 냄새가 진동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다. 정계와 재계, 스포츠계와 문화계 할 것 없이 전방위로 마수를 뻗쳤음이 밝혀지고 있다. 
 
최순실이라는 인물과 그를 따르는 비선라인의 국정 농단에 나라가 휘청할 지경이다. 해외에서 ‘샤머니즘 숭배’에 휘둘린 대통령이라는 보도까지 나오며 국제적 웃음거리가 됐다. 과거 최순실의 부친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던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에 빗대었다는 미국의 정보보고 사실도 해외 언론에 보도됐다. 하지만 관련자들은 온통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융복합공연 ‘하루’ 관람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차은택 감독   

청와대에 들어가 무슨 실장이니 비서관이니 행정관이라며 위세 좋게 완장을 내보였던 인물들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근함을 내세웠던 이른바 ‘친박’들도 ‘독대는 없었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내뱉는다. 아직도 상처 입은 국민보다 대통령을 더 염려하는 정치인도 있다. 온통 ‘허상의 세계’요 ‘거짓의 세계’다. 꿈이라고 해도 믿기 어려운 형국이 연일 펼쳐지고 있다. 
 
그러자 국민은 분노했고, 100만이 넘는 국민이 자유민주 회복의 촛불을 치켜들었다. 어떤 언론은 이 비선 실세와 청와대 비서관들을 두고 환관(宦官)에 비유했고(집권당 대표는 스스로 ‘내시’라는 표현도 썼다), 또는 간신(奸臣)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 봉건 왕조 체제에서나 있었던 기상천외한 일이 우리의 조국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취임 이후 끊임없이 ‘십상시(十常侍) 논란’에 휩싸이더니 결국 ‘최순실’에 무너졌다. ‘독재자의 딸’ ‘레이저 레이디’ ‘배신자의 심판’으로 세워진 철옹성을 무너뜨린 것은 내부 부패였다.
 
▲     © JTBC 화면 캡쳐

이미지 정치의 허망함
 
이번 사건은 어쩌면 이미지 정치의 실상이 벗겨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잠깐 이미지 정치의 원조를 찾아보자.
 
키 크고 잘생겼던 워렌 G. 하딩 상원의원은 권력욕이 강하지 않았음에도 미국 대통령 후보가 됐다. ‘후광이 비치는 빛나는 외모’로 사람들을 압도한 그의 이미지는 지도자로서 제격이었다. 공화당 여러 정파에서 대선후보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해지자 타협책으로 하딩을 내세웠다.
 
그는 매력적인 외모와 높은 인기에 힘입어 너끈히 당선됐다. 그러나 그는 지적 수준이 낮아 철자법이 엉망이었고 능력과 의지가 부족해 대통령 직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만만한 인물이자 간판으로 선택됐을 뿐인 하딩은 임기 중 숨질 때까지 미국의 29대 대통령(1921~1923)으로 재직했는데 그 자신과 미국의 역사에 재앙이 되고 말았다.
 
하딩은 금주법을 시행하면서 자신은 백악관에서 술잔치와 포커판을 벌였고, 아내를 무서워하면서도 성 추문을 일으켰다. 고향인 오하이오의 친구들을 주요 요직에 임명해 그들이 사리사욕을 채우도록 방관한 것이 결정타였다. 내무장관 앨버트 폴과 법무장관 해리 도허티 등 ‘오하이오 갱’은 국가 소유의 유정을 거액의 뇌물을 받고 사업가들에게 넘겨줬다.
 
이권을 넘겨주는 데 반대한 해군 장관을 자기네 사람으로 갈아치우기도 했다. 하딩은 지도력, 위기관리 능력, 인사, 도덕성 등 여러 면에서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힌다.
 
대통령이 되기 전 박근혜는 ‘비운의 공주’ ‘선거의 여왕’ ‘손수건만 흔들어도 인기가 올라가는 사람’ 그리고 ‘원칙과 신뢰’로 포장된 우아한 이미지의 지도자로 기대받았다. 국가가 혼란스러울 때 짧은 단문의 메시지는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시켜주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야당 국회의원일 때, 여당 내 야당의원일 때 한 단면이었다. 그를 가까이서 보좌했던 한 대변인 출신 전직 의원은 “그의 단문 어법은 인문학적 소양 부족”이라고날카롭게 지적했다. 국가경영의 중차대한 임무를 띤 대통령이 되어서는 소통 부족과 인사 난맥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 광장에 13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운집했다.     © 국민일보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 등에서 보듯이 위기관리 능력도 낙제 수준이었다. 경제 민주화 등 핵심 공약을 철회하고 언론 통제와 교과서 국정화 등으로 민주주의 수준도 후퇴시켰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사상 최악의 추문이 되었고, 대통령 자신도 ‘피의자’가 돼 국민에게 깊은 실망감과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레임덕 정도가 아니라 민중의 회초리에 기절할 정도에 이르렀다. 내실 없이 이미지 관리에만 치중하다가 몰락한 대통령의 존재는 왜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에 앉으려 했는지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하딩은 “나는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며 이 직책을 맡지 않아야 했다”고 고백함으로써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기라도 했다.
 
한때 ‘정직과 신뢰의 지도자’였던 박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났는데도 검찰 수사가 공정하지 않아 수사를 거부한다며 공권력을 무시하고 있다. 최순실에게 임기 초반까지만 연설문을 넘겨줬다고 거짓말하기도 했다.
 
‘(의사) 결정장애자’처럼 거의 모든 일은 침묵으로 일관하다 기회를 잃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였고, 국회에서 정상적인 의결 절차를 따라 결정한 일들도 유아적인 대응(거부권 등)을 하는 자세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이해나 소양을 의심 할만한 민낯을 보여주었다.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나았을 최악의 현실이다.
 
▲ 광화문 거리에 앉아 있는 4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수녀들.  © 크리스찬리뷰

기상천외할 야사 출현
 
“역사는 기록과 기억을 두고 벌이는 후세인들의 논쟁”이라는 말이 맞다면, 먼 훗날 2016년 연말에 있었던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기록될까? 바닷가의 모래처럼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역사의 편린들- 그 비리들을 두고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할까?
 
비근한 예로 청와대의 약품구입에 관한 논쟁부터 호사가들의 펜 끝에서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2천만 원에 달하는 약품 구입만 해도 그렇다. 의료계는 의무실에서 사용하기에 어울리지 않은 약들이 많고, 청와대의 해명처럼 원래 치료목적과 다르게 사용할 경우 적잖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중에 주목 끄는 것이 청와대가 ‘정력강화제’인 비아그라를 대량 구입한 사실을 외신들이 앞다퉈 보도하며 국제적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 CNN방송은 11월 24일 “과연 비아그라가 고산병 치료에 도움 될까?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따금 산악인들이 고산병을 피하기 위해 비아그라를 사용하지만 임상적으로 증명된 게 없다”라고 보도했다.
 
▲ 청와대는 사망했다며 상여를 메고 촛불집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상복을 입고 있다.     © 국민일보

23일자 <워싱턴포스트>는 청와대의 비아그라 구입에 대해 “파란약(비아그라)이 파란집(청와대)으로 들어갔다”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야당에 따르면 청와대가 약 360정의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를 구입한 사실을 폭로했다”며 “비아그라 논쟁은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가장 큰 정치적 이슈가 됐다”고 설명했다.
 
23일자 <뉴욕 타임즈> 역시 “파란 집(Blue House, 청와대)의 파란 알약(blue pills, 비아그라)이 파란 농담(blue jokes, 음담패설)을 낳고 있다”고 한 발 더 나아갔다. NYT는 “청와대에서 수백 정의 비아그라 등 유사한 약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국 국민들 사이에 온갖 억측과 야한 소문들이 급속도로 유포되고 있다”고 전했다.
 
NYT는 박 대통령은 결혼한 적이 없다면서, 지난 2014년 300여 명의 죽음을 부른 세월호 참사 당시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애인과 함께 있었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등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방문하기 위해 비아그라를 구입했다는 해명 역시 자세히 다뤘다. 특히 케냐 나이로비뉴스는 “한국 대통령이 왜 케냐 방문을 위해 비아그라를 구매했나”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AP통신은 “이상한 정치 스캔들에 휩싸인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는 수백 개의 발기부전 치료제 구매를 방어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전했다. 영국 <가디언>은 “거대한 정치 스캔들이 터졌다”며 “한국 대통령이 360정의 비아그라를 구입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가디언>의 보도는 ‘국제 뉴스’ 부분에서 가장 많이 본 뉴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여기에다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차은택이 박 대통령과 수시로 심야 독대를 가졌다고 한 종편방송이 보도하고, 한 장의 사진이 화제로 떠올랐다. 24일 SNS에 최순실의 부친 고 최태민의 헤어스타일과 안경을 차은택 감독에게 합성시킨 사진으로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흡사하다. 네티즌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왜 차은택 감독을 중용했는지 알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증언은 박 대통령이 평소 장관이나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독대가 매우 드물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거기에다 박 정부가 들어선 후 청와대 본관에 침대 3개를 사들였다는 주장도 호사가들은 10년, 20년 후 아니 5년 후면 별별 ‘야동’으로 재해석할 것이다. 그만큼 리더와 공인은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대상임을 엄격하게 교훈해 준다.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단식하며 오른쪽 테이블 위에 성경책을 두고 있다.     © 조선일보

소위 기독교인?
 
현 여당 이정현 대표는 전당대회 연설에서 “모두가 근본 없는 놈이라고 등 뒤에서 저를 비웃을 때도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준 박근혜 대통령께 감사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 특유의 겸양이 묻어 있는 발언임을 감안하더라도 박 대통령 특유의 인사 스타일, 즉 충성심 유발 용인술’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교회 집사’임에도 ‘박근혜교’ 장로를 자임하며, 온갖 따가운 눈총을 감내하면서도 대표직을 고수, 위기에 처한 ‘박근혜 교주’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뜬금없이 단식할 때 옆에 성경책을 펴놓았던 그는 최순실 게이트가 발생 초기 이상한 발언을 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선악과를 따먹어서 쫓겨났는데 한 간교한 사람을 분별 못해서 대통령이 평생 업적을 다 잃었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두 번이나 했지만 성난 민심은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전국의 거리로 나섰다.     © 국민일보

마치 대통령이 뱀과 같은 최순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불쌍한 아담과 하와처럼 비유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엊그제는 야당에서 탄핵에 동참하라는 요구를 하니 ”배신자가 돼 달라, 변절자가 돼 달라, 예수를 팔아먹는 유다가 돼 달라,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가 돼 달라는 말“이라고 일갈했다.
 
그러자 한 야당의원은 “기독교 신자로서 귀를 닦아내고 싶을 정도의 모욕감을 느낀다. 민간인에게 국정을 맡겨서 국가시스템을 망친 피의자 신분의 대통령을 어떻게 인류를 구원한 예수에 비유할 수 있느냐. 만약에 그렇다면 탄핵을 찬성하는 상당수의 국민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이 되는 거냐?”며 반박했다.
 
그는 2년 가까이 신천지 신자를 정책비서로 채용했으며, 소위 ‘친박’ 좌장격인 S원이 ‘신천지 고문설’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으며, 역시 친박이자 교회 장로인 L 전 의원은 신천지 주최 체육대회에서 축사를 하기도 했다. “표가 있는 곳이라면 지옥까지 따라간다”는 정차의 속설처럼 이들은 청탁을 가리지 않고 마구 들이키고 있다.  
 
▲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씨가 영국항공편으로 인천공항에 입국하는 장면이 한 시민에 의해 포착됐다.    

기독교의 책임은 없는가?
 
여기서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력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1980년, 총탄에 부친을 잃은 다음 해 몇 달 되지 않아, 한국의 어느 신학교 기독교육학과에 입학한 적이 있었다. 그때 상황을 기록한 글-“신학교에 찾아온 한 여성, 그리고 그를 외면한 사람들!”-이 인상에 남았다(http://blog.daum.net/bk1981/17445).
 
 “본인이 1980년 학기 초,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어느 날 … 교정에서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니, 소형 자동차에서 어느 한 처자가 내렸는데, 신학생들이 그 자동차를 둘러싸고 그 처자를 향해 소동을 벌이며 고함치는 소리였다.
 
그 전 해, 10·26 대통령 시해 사건이 있었고, 그 신학교에 이십대 처자가 홀로 신학교를 찾았다. 그가 바로 박근혜 현 대통령이다. 양 부모를 다 총탄으로 잃고 홀로 된 미혼의 처자가 찾아왔을 신학교, 어디 몸을 숨기거나 의탁할 만한 곳을 찾아서 왔을 신학교, 왜 그녀가 하필 신학교를 선택하여 왔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를 감싸 줄 구석은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신학교를 찾지 않았겠는가 생각한다. 그러나 신학교 안에는 그 외로운 영혼의 처자에게 내어 줄 어떤 자리도 없었다.
 
본인을 포함하여 정치 바람을 탄 학교, 학생들 어느 누구도 그 애처로운 처지에 함께 눈물을 흘려주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 부끄럽다. 아마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때에, 신학교에서, 신학생들과 한국교회가 함께 맞아주고 눈물 흘려주었다면, 최아무개와, 듣자하니 박수무당 수준의 목사였다고 하는데, 이렇게 깊은 관계까지 안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본인은 비록 은퇴하였으나, 나의 적을 둔 교단을 향해, 아니 자칭 높은 수준의 종교단체들을 향해 한마디 한다면, 대국적 정치도 좋고 어떤 앙가스망도 좋으나 애처롭고 외로운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시던 주님의 말씀은 잊지 말자는 말이다. 자비하신 주님께 부끄럽고 죄송하다.
 
당시 27세의 나이의 박근혜 양은 기독교교육대학원에 입학했지만 등교할 때마다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소동을 일으켰고 얼마 후 학교를 그만 뒀다. 내가 당시 소동을 일으킨 학생들에 관해 말하자 일부 교수들이 반발하면서 그 학생들을 두둔했다. 
 
▲ 한양대에서 열린 새마을 체전에서 최순실 씨의 안내를 받으며 참석자들과 인사하는 박근혜 총재. (1979. 6.10)     

나는 그들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각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것이다. 그 개인이 독재자의 딸이건, 아니면 나와 정치적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이건 관계없이, 우리는 모든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원한다. 민주화 세력은 지금까지 그것을 위해 싸워왔다.
 
근혜 양이 학생으로서 갖고 있는 수업권은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그녀의 권리였다. 자유민주주의는 나의 적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자유로운 선택과 법적 권리를 내가 인정할 때 시작된다. 집단이 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위협을 가하고, 그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갖는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인민민주주의라는 집단주의 이념이 가르치는 태도며, 바로 인민재판의 멘탈리티다.”
 
은퇴한 선교사의 이 글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쩌면 선지학교에서 그녀가 하나님의 새롭고 산 진리의 길을 찾도록 친절하게 안내하진 않았더라도, 최소한 심판자의 자리에서 ‘독재자의 딸’이라며 정죄하거나 그의 길을 막아서지만 않았더라도, 최태민, 최순실 같은 인물들과 고착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 
 
▲ 타살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빈소    

어쩌면 당시 그녀는 광야에 방황하는 어린양처럼, 인생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아픔을 안고 그 공허한 가슴에 채울 생수를 찾아 선지동산을 찾아왔는지 모른다. 수가성 여인도, 간음한 여인도, 귀신들린 여인도, 배신자도 수용하신 예수님을 가르치는 신학교에서 예수님과 가장 대척점에 선 바리새인의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닌가? 약자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갑자기 의인’같은 바리새인이 되기 쉬운가? 
 
‘만일 그때 청와대 외에는 사회경험을 거의 해보지 못했던 그녀가 선지학교 기독교 공동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면 어떠한 일이 있었을까?’하는 부질없는 가정법을 세워보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교회 동사목사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정창길ㅣ 크리스찬리뷰 한국 주재 사진기자
사진제공=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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