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한국전 참전 용사 초청 보은 오찬 행사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11/28 [11:27]
▲ 쉐라톤 호텔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초청 보은 오찬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양국 국가를 합창했다.                      © 크리스찬리뷰

미국에서는 한국 전쟁을 제2차 세계대전의 대승과 월남전의 대패 사이에 있었던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고 한다. 3년여간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도 아무런 결론 없이 1953년 7월 27일 휴전을 했다.
 
휴전이란 잠시 전쟁을 쉬는 상태이다. 지금도 한국은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한국 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아닌 결코 '잊어서는 안될 전쟁'이다.
 
시드니 총영사관에서는 매년 한국 전쟁 참전용사들을 초청하여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올해는 11월 9일 11시, 쉐라톤 호텔에서 보은 오찬 행사를 가졌다. 11시가 되자, 보훈처에서 만든 '정전기념일 자유의 수호자들'의 홍보 영상상영이 있었고, 시드니대학에 재학 중인 유관호 군과 혼스비여고의 김서영 양의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편지 낭송'이 있었다.
 
개회식은 'Turn towards Busan'을 향한 묵념으로 시작되었다. 부산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사망한 장병들의 묘지가 있다. 
 
유엔기념묘지(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 UNMCK)는 2001년 3월 30일 한국어 명칭을 '재한유엔기념공원'으로 변경했다. 대연동에 위치한 '재한유엔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로서, 세계평화와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들이 잠들어 있다.
 
이곳 기념묘지에는 최초 1만 1,000여 명의 전사자가 안장되어 있었으나, 그 후 유가족이나 본국 정부의 요청으로 그들의 조국으로 이장되었고, 현재는 2,300구의 유해만이 안장되어 있다.
 
한편 한국전쟁 중 참전 21개국 중 17개국(의료지원국 중 노르웨이 포함)에서 4만 896명의 유엔군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날 행사에는 NSW지역 참전용사와 가족 120여 명, 한인 참전용사 30명을 비롯해 NSW 주 대릴 매과이어(Daryl Maguire) 정무차관, NSW 참전용사협회회장인 노엘 잭슨(Noel Jackson), 린다 볼츠(Lynda Voltz) NSW 상원의원, 이안 크로포드(Ian Crawford) 제독 등의 외부인사와 시드니한인회를 비롯한 교민 단체장 등 17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행사를 주관한 윤상수 총영사는 "여러분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이 있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시드니에 사는 10만여 명의 교민은 물론 양국 간의 돈독한 협력과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며 "한인 2세들에게 전쟁의 아픔과 희생의 의미를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고, 한국은 여러분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며 인사말에 대신했다.
 
'주 대릴 매과이어' 정무차관은 "정부를 대신하여 따뜻한 환대와 매년 이렇게 성대한 만찬을 베풀어 주심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참전용사협회 회장인 '노엘 잭슨'은 “호주 참전용사를 대신하여 참석한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특별히 올해 4월에 부임한 윤상수 총영사를 환영하며 감사한다”고 전했다.
 
전 시드니한인회장이며 참전용사인 백낙윤 씨는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맥아더 장군의 말을 인용하며 참전용사의 마음을 대신하였다.
 
이날 '평화의 사도 메달' 및 호국영웅기장 수여식도 있었다. 사도 메달은 로랜드 킨디어(Roland Kindear)와 밥 모리스(Bob Morris), 영웅기장은 조병주, 서병필 씨가 받았다. '로랜드와 밥'씨는 건강상의 문제로 참석하지 못하고 동료들이 대신 받았다. 
 
▲ 연로해진 참전용사     © 크리스찬리뷰

참전 용사들은 거의 85세가 넘었다. 현재 한국 전쟁에 참전한 1만 7천 명 중 이제 3천여 명만 생존해 있다. 모두가 내년을 장담할 수 없는 나이들이다. 작년에 만났던 많은 분들을 올해는 볼 수가 없었다.
 
한국 전쟁의 영웅 그린 중령의 미망인 올윈 그린(Green) 여사를 만났다. 그녀는 9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건강하다.
 
1부 행사를 마치고, 2부는 식사를 하면서 문화공연이 이어졌다. 한국의 얼과 정서를 담은 이우회 씨의 대금 연주에 이어, 테너 김창환 씨의 물망초, You raise me up, 아리랑 등 홀을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노래가 있었고, 한국문화 경연대회 대상을 받은 랜드윅 하이스쿨의 키몬 트리아다필로(Kimon Triadafiillou) 학생은 한복을 입고 흘러간 한국가요를 메들리로 구성지게 불렀다.
 
식사 중 '존 히젤톤'(John Hizelton)씨 부부를 만나 간단한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한국 전쟁이 끝나고 '평화 유지군'으로 한국에서 근무를 했다.
 
 "한국전 당시에 나는 일본에 있었다. 미국에 이어 호주가 두 번째로 한국 전쟁에 참전할 수 있었던 것은, 2차 대전 후 호주군이 일본에 주둔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는 '평화 유지군'으로 한국에서 14개월 동안 근무했다. 당시 모든 것이 파괴되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Nothing’이라고 강조했다.
 
"잿더미 속에서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 낸 것은 기적이다. 6년 전 한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기적이란 말 외에 다른 어떤 말로도 오늘날의 한국을 설명할 수 없다."
 
그는 기적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작은 보조역할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에 너무 기뻐했다. 
 
"남편이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조용히 옆에 앉아 있던 부인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가슴에 달린 많은 훈장들이 그의 삶을 대변하여 주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남한에는 ‘유엔 평화유지활동’ (PKO, peace-keeping operation)이 1956년까지 있었다. 1956년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군대는 철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UN의 이름으로 미군이 분쟁 당사국 중, 한 곳의 방위를 책임지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 시작한다. 
 
▲ 평화의 사도 메달과 호국영웅기장을 수여받은 참전용사들이 윤상수 총영사(가운데)와 기념촬영을 했다.                 © 크리스찬리뷰

특히 1971년 한국전쟁의 당사자이자, 정전협정의 조인국인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이 '중화민국'(대만)을 밀어내고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면서 이런 모순이 커졌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과 미국은 UN군사령부를 대신해 1978년에 '한미연합군사령부'를 설치하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호주는 한국 전쟁 당시 미국에 이어 2번째로 참전을 결정하여 우리나라를 위해 신속하게 해군 함정과 공군, 육군 병력을 파병한 나라이다. 파병 규모는 경항공모함 HMAS, 시드니함을 비롯하여 해군 함정 13척, 육군 3개 대대, 공군 1개 전투비행대대 등 전쟁기간 동안 1만 7천여 명이 참전하여 가평, 마령산, 사리원 전투 등 수많은 전장에서 용맹을 떨쳤다. 참전기간 동안 1천216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그 중 340명이 전사했다.
 
‘한국은 영원히 감사합니다.’(Korea is forever grateful)  란 주제로 열린 2016년 보훈 오찬 행사는 사회자의    '잊지 맙시다'(Lest we forget)란 마지막 말로 막을 내렸다. 〠

글/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본부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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