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하나님과의 행복한 동행입니다

상도교회 창립 70주년 특별 인터뷰 최승일 목사

정윤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7/06/26 [11:50]
▲ 교회당 건축보다는 사람을 세우는 일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싶다는 최승일 목사. 그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 크리스찬리뷰

최승일 목사는 ‘목회를 인회’라고 했다. 2011년 10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였다. 목회는 참고 인내하며 견디어 가는 것이라는 그의 목회 철학이 함축된 표현이었다.
 
2017년 6월 21일, 기자는 다시 최승일 목사를 상도교회 목양실에서 만났다. 상도교회 70주년 감사축제가 열리는 기간이었다. 그에게 다시 물었다.
 
“목사님 목회란 무엇입니까?” 
 
▲ 상도교회 창립 70주년 기념 및 바로크 싱어즈 창단 20주년 감사 찬양예배     © 상도교회

그는 이번에는 “목회는 하나님과의 행복한 동행입니다”라고 답했다. 목회자로서 누리는 최 목사의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그가 멘토로 따르는 목회자, 그리고 함께하는 성도들과 그는 행복한 커넥션을 이뤄가고 있다.
 
그와 1시간 10분 남짓 대화하며 언급한 3명의 목회자가 있다. 먼저 하용조 목사였다. 하 목사는 그의 멘토였다. 목회가 너무 힘들 때, 하 목사를 찾아갔다.
 
“목사님 저 목회가 힘들어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하 목사는 조용히 말했다.

▲ 상도교회 주일예배 전경     © 상도교회
 
“정말 목회하기가 힘들면 전체를 보지 말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그 사람들만 섬기고 목회할 수 없겠어요? 그렇게 해보고 안 되면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최 목사는 멘토인 하 목사가 준 목회적 팁(TIP)이 자신의 목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고마워한다.
 
상도교회 건물은 40년이 됐다. 그래도 그에게서 ‘건물을 새로 건축하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현재 건물로도 충분하다며 “건축할 재정이 있다면 사람을 세우고 선교하는 데 사용할 마음이다”라고 답했다. 이런 마음은 옥한흠 목사님을 통해서 배운 교회론의 요점에서 나왔다. 교회는, 건물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성도들의 진정한 부흥도 숫자의 증가에 있는 게 아니라 성도들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과 열정이 피어나는 것이라고도 정의했다.
 
그의 나이 57세. 은퇴를 말하기에는 너무 빠르다. 그래도 그에게 물었다. 65세 또는, 오래 목회하면 70세에 은퇴하는 현 추세에서 현역 목회자 이후의 삶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라고. 최 목사는 이미 생각해 놓은 게 있다. 동남아든, 어디든, 깨어진 교회들, 사정이 어려워 목회자를 못 모시는 교회에 가서 2년 정도씩 사례를 받지 않고 지켜드리고 교회가 든든히 세워질 때쯤 나오는 사역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개척교회를 성장시킨 경험을 토대로 그는 성도들이 늘어나면 후배 목회자를 청빙하고 자신은 빠지는 방법으로 적어도 5개에서 7개 교회를 세우는 개척 교회를 돕는 사역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말씀 전하는 최승일 목사     © 크리스찬리뷰
 
“그렇게 사역하다보면 80세 정도가 되지 않을까. 특히 나는 이민교회에 관심이 많다. 이민교회를 개척해서 18년간 목회하며 이민자들의 생리와 그들의 상처를 알기에 나는 스스로 이민목회 스페셜리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외국의 한인교회를 돌며 세우고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
 
이민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 그는 9년 후가 될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가 되면 이민자들의 교회 중 연약한 교회를 찾아다니며 무보수로 설교와 위로를 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김동호 목사에게서 그는 은퇴 이후의 삶을 조금 더 상세히 그리게 됐다고 한다. 김동호 목사는 은퇴 이후 해외를 다니며 선교사들에게 ‘안식년’ 주기 활동을 한다고. 이처럼 설교자를 세우기 어려운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교회와 성도를 세우는 일을 하기 원하는 게 최 목사의 향후 10년 이후의 삶이다.
 
목회는 하나님과의 행복한 동행이라는 최승일 목사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했다.
 
- 상도교회가 70주년이 됐다. 목사님도 부임하신지가 11년이 넘어간다. 상도교회의 70주년은 어떤 의미가 있나?
 
“부임은 2006년 11월 26일에 했지만 제가 2006년 10월 둘째 주에 왔으니 나도 상도교회에서 목회한 지 10년하고도 8개월이 돼 간다. 70주년이란 숫자는 사람에게는 모든 걸 내려 놓고 은퇴를 준비하며 성숙해 가는 단계다. 마무리하는 단계,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더욱 성숙해 가는 단계, 그래서 70주년의 교회라면 그에 합당한 사명이 있어야 한다.
 
철없는 노인도 있거든요. 철없는 노인도 있잖은가. 연수를 자랑할 게 아니라 그 기간 동안 얼마나 우리가 성숙해야 할까. 어떡하면 성도들이 더욱 자부심을 갖는 교회로 성장시킬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
 
- 70주년을 맞아 가장 감사한 것은 무엇인가?
 
“11년 동안 한국에서 목회하며 지켜본 한국교회는 물량주의, 다툼, 분쟁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이게 가장 두드러졌다. 건물 짓는데 과도한 투자를 하는 모습도 봤다. 하나님의 전보다는 탐욕스런 지도자의 모습과 목사의 자존심, 사람들로부터 ‘우와 큰 교회다!’라고 평가 받으며 만족스러워하는 모습들이었다.
 
가장 감사한 것은 장로님들과 교인들이 한 달 동안 70주년을 기념하고 기뻐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임직하고, 찬양 집회를 하고 나아가 선교사 파송까지 한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건물이 아닌, 사람이 교회라는 본질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지금 상도교회 본당은 1977년에 세웠다. 40년이 됐다. 나보다도 오히려 장로님 중에서 ‘바꿀 때가 됐다’고 하시는 경우가 있다. 사실 본당 위의 주차장 쪽을 확장할 수도 있다. 그래도 교인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건축할 재정을 갖고 사람을 세우는 일에 더 투자하고 싶다.
 
70주년을 맞아 우리는 6월 한 달을 ‘설립의 달’로 보냈다. 한 달 내내 마음이 하나가 됐다. 건물을 키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보내고(몽골 선교사 파송), 사람을 세우고(임직), 불러 모으고(행복플러스 태신자 잔치),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뜻에 성도들이 마음을 같이 모았다는 게 참 감사하다.”


▲ 아·나·바·다 알뜰 바자회     © 상도교회
 
- 목회자로서 건물에 대한 마음을 비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깨졌다. 옥한흠 목사님 통해 깨달은 게 있다. 한스큉의 교회론을 들으면서다. 교회론의 요점은 건물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바로 세우는 게 올바른 교회관이다. 이 내용을 마음에 받았다. 사실 나는 건물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18년 이민 목회할 때 8번을 이사했다.
 
물론 과욕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만큼 모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건물 달라고 기도도 많이 했다. 호주를 떠나면서 1천500여 명 성도들이 예배할 수 있는 건물에 사인할 정도로 교세가 확장됐다.
 
그러나 건물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 상도교회 본당은 사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40년이 된 본당이지만 아름답고 예쁘게 지어졌다. 이 건물을 그대로 지키고 싶다. 하나님이 내려 놓게 만드셨다. 이것보다 더하면 욕심이다. 욕심이 지나치면 죄가 될 수 있다. “
 
- 상도교회는 70년이 된 장로교회이다. 담임목사가은 바뀌어도 교회의 리더인 장로들은 교회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파워도 적지 않을 듯하다. 14명의 장로(은퇴 13, 원로 3명)들과의 융화와 화합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
 
“현직 장로들의 부친들도 상도교회 장로인 경우가 많다. 현존 장로들의 반수 이상이 그렇다. 대를 물려서 장로가 된 분들이다. 교회에 대한 애착은 누구보다 크고 그분들의 교회 질서에 대한 존중과 자부심은 누구보다 강하다. 그런데도 장로들이 ‘변해주셨다.’ 내가 처음에 왔을 때 장로들은 “목사님, 우리 상도교회는요!” 이런 식으로 많이 말씀하셨다. 그러다가 이제 나도 10년차가 되니까 그분들이 원하는 질서 외의 것을 하려 할 때도 이해해 주신다.
 
당회 들어가도 긴장이 없다. 사실 당회 들어가기 전에 토요일이 되면 잠을 못잘 때도 있었다. 수면제를 먹고 잔 적도 있다. 지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당회에 들어가면 전쟁이나 각을 세울 생각이 아니라 편하게 들어와서 진행이 되다 보니 감사할 정도다. 그만큼 장로들이 많이 도와 주신다.”

▲ 창립 70주년 근속 제직 표창과 원로·은퇴 장로 위로회     © 상도교회
 
- 70주년이 된 상도교회의 자랑은 뭔가?
 
“성도들이다. 참 좋은 성도들이다! 좋은 성도가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다. 눈이 가려져 각을 세운 분들도 시간을 지내고 함께 하다보니 정말 귀한 분들이라는 깨닫게 됐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걸, 단지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는 분들이었다. 좋은 교인들이 있다는 게 상도교회의 가장 큰 복이자 자랑이다. “
 
- 상도교회 성도들의 어떤 부분이 좋다는 건가?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기다려 주신다. 참아 주신다. 함께 하자고 했을 때 동참해주신다. 그것만으로도 좋다.” 
 
- 2006년 연말 한국에 온 후 목사님께서는 많은 문화충격을 겪었을 줄 안다. 지금은 어떤가. 아직 이해되지 않는 한국문화가 있는지?
 
“내가 호주 이민자 1.5세대로서 18년을 목회했고 호주에서 총 30년을 살았다. 지금도 부모님과 가족들은 호주에 살고 있다. 아직도 ‘호주에선 이랬는데, 저랬는데’라는 생각이 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사회대로의 흐름과 문화가 있다. 그건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호주에선 이랬는데’ 하기보다 내가 한국 문화의 옷을 입어야지라고 마음을 바꾸고 산다. 이 문화의 옷을 입고 흐름을 이해해야 한국교회의 리더가 될 수 있다.
 
호주와 비교하다보면 내가 행복해질 수가 없고 한국 성도들을 훈계나 하고 야단만 치는 사람이 될 거 같았다. 지금도 정과 전통으로 흘러가는 한국 사회에 대해 더 이해하고 배우고 싶다. 사회를 더 배우게 돼서 이 사회의 일원이 된 게 감사하다.
 
그래도 호주에 가면 금새 호주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긴 한다. 식구들이 호주에 있어서 여전히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호주에 들어가는 순간, 다시 호주 문화 속으로. 한국에 나오면 한국 나름의 문화에 적응하려 한다.”

▲ 창립 70주년을 맞은 상도교회는 6월 한 달 동안 행복플러스 태신자 초청 잔치, 임직식, 비빔밥 행사, 기념음악회, 선교사 파송예배 등 다양한 행사를 가졌다.     © 상도교회
 
- 57세가 되셨다. 보통 은퇴가 70세, 빠르게는 65세다. 목사님께서도 은퇴 이후 교회와 사역을 생각하실 때가 된 것 같은데 어떠신가?
 
“동남아든, 어디든, 깨어진 교회들, 사정이 어려워 목회자를 못 모시는 교회에 가서 2년 정도씩 무보수로 지켜드리고 교회가 든든히 세워질 때쯤 나오는 사역을 하고 싶다.
 
나는 교회를 개척한 경험이 있다. 성도들이 늘어나면 후배 목회자를 청빙하고 나는 빠지고, 적어도 5개에서 7개 교회를 세우는 개척 목회를 돕는 사역을 하고 싶다. 그렇게 사역하다보면 80세 정도가 되지 않을까.
 
특히 나는 이민교회에 관심이 많다. 이민교회를 개척해서 18년간 목회하며 이민자들의 생리와 그들의 상처를 알기에 나는 스스로 이민목회 스페셜리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외국의 한인교회를 돌며 세우고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
 
미국에서 집회를 했을 때 때 성도들이 너무 좋아했다. 성도들이 설교 후에 “우리 마음 속속들이 어떻게 그렇게 다 이해할 수 있었어요?”라며 감사해 했다.
 
지금 김동호 목사가 하는 일이 그렇다. 김 목사는 선교사들 휴가 보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게 뭐냐 하면 태국·인도네시아 등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시는 거다. 40~50여 명의 작은 교회들은 몇 년이 되도 한국에 나올 수가 없다. 그 선교사들 중 한주도 교회를 비울 수가 없고 맡길 수가 없는 분들이 있다. 그런 교회에 가서 사례를 받지 않고 무료로 사역을 한다.
 
선교사들 입장에선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이게 일명 ‘선교사 안식년 보내기 운동’이다. 나도 머릿속으로 은퇴 이후 그런 삶을 구상 중이다. 김 목사를 만났을 때 내게 말씀하셨다. ‘9년 후에 같이 동역하고 도와줄 사람을 미리 기도하고 준비하라’고.”

▲ 상도교회는 창립 70주년을 맞아 원로·은퇴 장로 위로회를 가졌다.     © 상도교회
 
- 기자와 2011년 10월에 인터뷰를 가졌다. 그때 ‘목회(牧會)는 인회(忍會)’라고 정의했다. 당시 “목회는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참다보면 아무리 싸우던 대상도 결국은 내 사람이 됩니다. 싸움을 아무리 잘하는 사람도 교회에 싸우러 오지는 않아요. 그 사람을 싸우게 하는 요인, 그를 힘들게 하는 요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싸움꾼이 되는 겁니다. 그런 마음을 이해하고 서로받아주면 모두 순한 양이 됩니다.”
 
어떠신가? 지금 이 마음 변치 않으셨는지. 그리고 이런 목회자들의 마음은 사실 숯검댕이 되는 거 아닐까. 스트레스와 인내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마음의 짐도 있지 않나?
  “그렇다. 목회를 ‘인회’라고 했다. 그러나 참다 보니, 섬유 근육통이 온 적도 있다. 신경 계통이 상처를 받아 염증이 생기는 증상이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찔끔 날 정도였다. 설교 준비를 해야 하는데 누워도 아프고, 앉아도 아프고, 서도 아팠다. 주일을 준비해야 할 토요일에도 아팠다. 
 
‘내일 어떻게 단에 설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근데 겉으론 멀쩡해 보였다. 그러니 사람들은 답답해 했고 ‘어디가 아프냐?', '운동을 더해야 한다’고 조언해 줬다.
 
병원에서 오십견, 뼈, 관절 담당 전문의를 다 만났는데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부목사가 어느날 TV에서 봤다며 “목사님, 증상이 섬유 근육통인거 같아요. 통증의학과 가서 섬유 근육통 진단 받아보세요.”라고 말했다. 통증 의학과를 갔을 때 진료를 한 의사가 말했다. “심한 육체적 충격이나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때 생길 수 있는 게 섬유근육통인데 그게 목사님의 증상이다”고 했다. 신경 세포가 상하는 거다.

▲ 창립 70주년 축하케익 자르는 최승일 목사와 당회원 그리고 임직자 대표들     © 상도교회
 
혈액에서 뽑아낸 염증 수치를 보더니 의사가 깜짝 놀랐다. 혈액에 통증 수치가, 일반인의 10배 이상이었다. 의사가 “이렇게 아팠는데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느냐?”고 말했다. 내 통증을 이해해 준 의사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섬유 근육통으로 2달간 고통을 받을 때도 있었다.
 
당시 통증 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지금도 먹고 있고, 이제 거의 회복이 된 상태다. 그때는 어깨 위에 벽돌을 20개는 얹고 있는 듯한 통증이었다면 지금은 한두 장 올라간 느낌이다. 그게 2012년의 일이었다. 지금은 몸이 많이 좋아졌다. 
 
내가 하용조 목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목사님께 “저 목회가 힘들어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하 목사가 이렇게 말했다. 정말 목회하기가 힘들면 전체를 보지 말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그 사람들만 섬기고 목회할 수 없는가? 그렇게 해보고 안 되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는 것이었다.
 
이 말씀이 내게 정말 중요한 목회의 팁이었다. 하 목사가 조언해 준대로 나는 그렇게 했다. 그 전까지 내 의견과 주장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내가 이민 1.5세대 아닌가. 게다가 이민목회 18년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지를 목도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하 목사의 조언을 받은 후 다 내려놓고 목회를 하였다.
 
장로들과의 관계 속에서 섬기고, 또 섬기고, 또 섬겼다. 처음엔 ‘교회에 싸움꾼이 들어왔네’라고 생각했던 분들도 계셨다. 그런데 이젠 ‘최 목사는 싸움을 싫어하는 사람’, ‘싸움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여겨질 정도다. 나도 목사지만 큰 소리 안칠테니 여러분도 목소리 크게 내지 말아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 다시 질문하고 싶다. ‘목회란 뭔가?’
 
“하나님과의 행복한 동행이다. 70주년을 맞아 은혜 가운데 상도교회가 다툼없이 흘러가는 걸 보는데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동행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목회는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여기까지 동행해 주셔서 70주년 전통의 교회를 따스하고 행복하게 보내게 하셨다. 성도들이 계속 하는 말이 ‘너무 행복하고 좋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한국 장로교회에선 쉽게 나올 수가 없는 표현인 거 같다. 그렇다고 내가 능력이 있거나 대단한 설교가여서가 아니다. 탁월한 리더십이 있어서도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많이 예뻐해주시고 나를 많이 봐 주셔서 그렇다.”

▲ 몽골 울란바타르시 송긴하르칸구 제9 고등학교에서 펼친 의료봉사     © 상도교회
 
- 상도교회의 연혁을 보면 해외 선교에 지속적 관심을 갖고 있는 걸 본다. 몽골 의료선교, 중국 단기선교, 태안기름유출 봉사활동, 필리핀 비전트립(2009년), 국내의료선교(2009년)를 지속적으로 해 왔다. 선교에 많은 인력과 에너지를 투입하게 된 이유가 있나?
 
“상도교회는 내가 오기 전부터 선교사역이 활성화돼 있었다. 40주년이 됐을 때, 지금부터 30년 전 일이다. 이미 그 당시에 칠레에 3백 병상의 병원을 지어줄 정도로 선교사역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공사대금이 40억 원이 들어가는 대공사였다. 이를 위해 원로 목사께서 칠레를 20여 번을 다녀오셨다.
 
박병원 장로는 의사로서 몽골, 중국의 문호가 개방되지 않았을 때 선교를 시작하셨던 분이다. 그의 열정이 상도교회를 선교하는 교회로 흐름을 만들었다. 내가 상도교회로 부임할 것을 선택한 것도 ‘선교하는 상도교회’의 모습이었다. 상도교회에서 청빙을 할 때 내가 3번 거절했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결정하게 된 동기는 상도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라는 것이었다. 이 전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교회 표어가 ‘부흥을 꿈꾸는 교회’이다. 이렇게 정한 이유는 뭔가?
 
“양적 부흥도 부흥이다. 하지만 그건 한 부분이다. 진정한 부흥은 성도들의 마음이 영적으로 뜨거워지고 그리스도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열망과 열정이 생겨야 전도·선교·거룩한 일을 드러내기 위한 소명의식이 생긴다. 소명자로서 하나님께 쓰임 받겠다는 생각을 가진 성도가 늘어가는 게 진정한 부흥이다.”   

▲ 상도교회 당회원 - 캄보디아 단기 선교 헤브론병원 방문     © 크리스찬리뷰
 
- 2017년 6월 11일 진행한 70주년 임직 감사예배에서 항존직 근속, 권사 20년(3명), 서리집사 근속 20년(18명), 10년(21명)이었다. 항존직과 집사님들께 덕담을 해주었을 듯 한데 어떤 말을 했나?
 
“하나됨이었다. 내가 시드니온누리교회에서 목회했을 때 온누리비전교회가 되는 걸 반대했던 성도들이 있었다. 그때 반대하는 성도들이 나를 찾아와서 했던 말이 있다.
 
‘목사님, 저희는 반대합니다만, 당신은, 기도하는 지도자입니다. 목사님이 기도해 보시고 이 일을 하신다면 우리는 비판하더라도, 비판적 지지세력으로써 목사님 곁에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임직을 받은 분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비판적 동의를 하는 분들이 되셨으면 좋겠다. 잘못을 지적하시면 달게 받겠다. 그러나 싫더라도, 비판할 게 있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라면 따라 줄 수 있다는 여지를 갖고 계시면 좋겠다.”

▲ 그리이스 아테네 일대를 중심으로 펼친 청년부의 난민선교     © 상도교회
 
- 마지막으로 호주 크리스찬리뷰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호주에 대한 소식을 고국에서 간간히 듣는다. 호주의 시드니 한인교회들이 어려움을 당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가슴이 아프다. 이민자들에게는 사실 교회가 집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흔들리면 이민생활 자체가 너무 힘들다.
 
교회가 흔들리면 그 심각성은 정말 크다. 교회가 행복하지 못하면 마음이 흩어지고 삶에 재미와 흥미도 없어지고 삶의 탄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민자들의 삶은 교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기 때문이다.
 
▲ 인도네시아 (Indonesia Batam) 선교     © 상도교회

하나님의 교회들이 정말 흔들림 없이 갈 수 있도록 멀리서나마 기도하고 있다. 조금 더 참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양쪽이 다 참을 수 있기를 바란다. 흔들린다는 건 갈등이 있다는 거다. 그 갈등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못 풀면 세상에서도 풀 길이 없는 거다. 그건 이미 교회가 아닌 거 같다. 
 
▲ 이민목회 18년, 한국목회 11년을 맞은 최승일 목사는 예수의 사랑, 은혜, 성령의 교통으로 호주 이민교회의 어려움들이 풀려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크리스찬리뷰

하나님의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혀 있는 걸 풀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아무리 화가 나고 기분이 안 좋아도 예수님의 사랑, 은혜, 성령의 교통으로 교회의 어려움이 풀려갔으면 좋겠다. 〠

정윤석|크리스찬리뷰 한국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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