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사역

김경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7/11/27 [14:56]
~쌓이는 불만~

“목사님, 교회에서는 찬송가만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중음악풍의 곡조에 가사를 붙여놓은 음악은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온갖 시끄러운 악기들 때문에 귀가 아플 지경입니다.”
 
“옛날 찬송가는 마음에 와 닿지가 않습니다. 요즘에 발표된 좋은 찬양곡들이 너무나 많은데 구태여 옛 것만 고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교회는 찬양에 너무 소홀한 것 같아요. 찬양 시간이 힘도 없고, 따라 부르시는 성도님들도 얼마 안되시는 것 같습니다. 찬양이 살아야 교회가 살 텐데...”
 
“성가대가 꼭 있어야 하나요? 너무 많은 예산이 성가대에 투자되고 있는게 아닌가 염려스럽습니다.”
 
어떤 이슈에 대하여 한 교회 내에서 교우들 간에 많은 이견들이 있는 것이야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겠지만, 음악 사역에 대하여는 이견의 폭과 깊이가 다른 이슈들보다 유난히 넓고 깊게 느껴진다.
 
잘 해야 본전이라는 말처럼 음악 사역이 잘 되고 있으면 그냥 무난히 지나가지만, 만족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염려되는 부분이 무엇인지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과 목회자의 귀에 꼭 전달되곤 한다.
 
게다가 음악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으신 분들은 음악에 대한 주관적 견해가 매우 확고하기 때문에 서로의 이견을 좁히는 일을 매우 어려워하고 (물론 음악 사역을 보다 잘해보려는 열정 때문이겠지만) 그것이 관계에 어려움을 가져다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모든 현상은 음악이 우리들의 신앙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에서 음악은 절대적인가요?~
 
예전에 어떤 교우와 이 이슈에 대하여 한참을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현대 교회에서 음악은 거의 절대적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음악을 제외한 주일 예배를 상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목회자 이외에도 워십리더(Worship Leader)를 별도로 두고 ‘찬양과 경배’ 시간을 인도하게 한다든지, 성가대 지휘자나 반주자는 다른 사역과 다르게 유급제로 할 뿐 아니라, 성가대 운영의 거의 모든 영역이 지휘자의 인도 하에 있는 점 (물론 목회자가 음악적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등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몇 가지 사례들이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그 교우와 이 문제에 대하여 장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가 서로 동의한 점 한 가지가 있다면, 신약성경이 음악에 대하여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마태는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나누시고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고 하였고 (마 26:30), 사도행전에는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혀있을 때 밤에 찬송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행 16:25).
 
성도들이 교회로 모였을 때는 그 중에 말씀과 계시와 방언과 함께 찬송시가 있었고 (고전 14:26), 바울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교회들을 권면하였다 (엡 5:19, 골 3:16).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고 독려하였지만 (히13:15), 이 몇 구절들을 제외하면 신약성경을 바탕으로 음악에 대한 체계적인 ‘신학’을 (기독론, 교회론, 성경론 등과 같은) 구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이 짧은 글에서 언급할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음악 사역>이 <말씀 사역>의 일부분이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 포인트를 충분히 설명하기 위하여는 보다 많은 지면이 필요하기에 다음 칼럼부터 몇 번에 나누어 이 이슈를 다루어 보기로 하겠다.〠

김경민|세인트 앤드류스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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