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다문화주의의 한계 (3)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7/12/28 [12:50]
그러나 얼마 후 그러한 판단을 곧 수정하게 되었다. 물론 다행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놀림과 모욕을 당한 경험은 없지만, 필자가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당한 편견과 차별의 경험은 오랫동안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 외에도 자녀 일로 인해 학교에서 겪었던 무례한 대우(incivility)와 배제(exclusion)의 경험을 당하면서 호주의 다문화주의의 한계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필자의 경험 외에도 내가 알고 지내는 많은 한국인들 또한 비슷한 경험들을 고백하고 있다. 이처럼 호주가 백호주의를 포기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백호주의의 잔재가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호주 한인사회의 경제는 전적으로 호주의 이민정책과 다문화 정책에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색인 이민에 우호적인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그로 인해 증가하는 한인 이민자들과 학생들로 인해 한인 사회의 경제는 활력을 얻어 한인 사회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반면에 유색인 이민에 우호적이지 않은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한인사회의 경제는 움츠려 들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비단 한인 이민사회의 풍속도만은 아닐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호주에 존재하는 많은 수의  소수민족공동체도 동일하게 겪는 아픔일 것이다. 이처럼  다문화정책과 이민정책에 따라 소수민족 공동체의 경제와 삶의 질이 영향받는다면 이것은 아직도 호주의 다문화 정책이 소수민족을 포용하고 배려하는 성공적인 정책을 이어 왔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정용문의 리서치에 의하면, 호주 한인들의 경제적 지위는 호주인 평균 소득의 64%에 불과하고 이민자들은 언어적 장벽, 모국에서의 기술과 교육에 대한 불인정, 직장 내에서의 차별대우와 고용 불안정 등 차별을 겪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한 호주 사회 안에서 한국인 커뮤니티는 사회적 배제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은 취약 집단으로 호주 ‘사회통합위원회’(Board of Social Inclusion)가 규정했었다고 보고한다.  물론 이것을 호주 다문화주의의 한계 때문만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기에는 호주 한인 이민자들 의 삶의 우선 순위와 가치관 그리고 행동양식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문경희의 지적대로 백인이 관리하고 백인 기준에서 다양성이 정의되고 통제되는 다문화주의는 반드시 문제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호주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호주 사회에서 관리자는 늘 백인이고 관리 대상자는 소수 민족 공동체(주로 유색인)라고 하는 인종적 위계질서가 암묵적으로 존재한다(문경희, 2008: 287). 그러므로 소수민족들이 호주 주류사회와 상호작용하고 사회 전반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호주의 다문화주의가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해 이규영과 김경미는 “국민들의 폭넓은 이해와 동의에 기초해서 시행되지 않고 국가 이익에 대한 정치 엘리트들의 판단에 의해 관철된 하향식의 국가 주도형 정책”(이규영/ 김경미, 2010: 464)이었다고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웬다 타반이 지적하듯이, 영국계 백인들의 비유럽계 이민자들에 대해 근본적인 태도가 변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유색인들에 대해 불만이나 적개 감정이 커져 가는 것은 호주 다문화주의 정책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Tavan, 2005. 4).
 
이것은 우리에게 법과 제도로써 사람의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성공적으로 보이는 호주의 다문화 사회 안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인종 간, 민족 간의 차별과 갈등은 법과 정책만으로 바꿀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5. 호주 다문화주의의 한계와 인종차별
 
그웬다 타반이 강조하듯이 호주 국가건설은 영국계 백인으로 구성한다는 건국 초기의 신념과 편견은 몇 세대를 이어오며 존재하지 않는 인종 간 위계 질서를 뿌리내렸고, 백인 이외의 다른 인종에 대해 지독한 적대감과 차별을 유전시키고 있다(Tavan, 2001: 182).
 
물론 많은 수의 백인들은 호주 정부의 다문화주의 정책에 동의하며 더불어 같이 협력하며 사는 다문화사회를 만끽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 간 차이에 대한 백인들의 인식들을 조사한 연구물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83.1%가 인종 간에 우열이 있다고 믿는다(Dunn et al, 2004: 416). 
 
아직도 백인들은 인종적으로 유색인이나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므로 온전한 호주의 정체성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다른 인종을 배제하고, 사회의 주류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백호주의 정책’이 한창일 때 태어난 65+ 이상의 나이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더욱 심화되어 나타나고 있다(윗글: 418).
 
뿐만 아니라, 케빈 던과 재큐라인 K. 넬슨의 공동연구에 의하면,  인종차별에 대한 표본조사를 통해 조사에 응한85% 이상의 사람들은 인종적 선입견이 호주사회 안에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할 뿐 아니라 42.3%의 사람들은 영국배경을 가진 백인들이 호주 사회에서 보다 큰 특권과 혜택을 누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Dunn/ Nelson, 2011: 593,599).
 
그리고 호주의 다문화정책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인종주의가 철폐되어야 할 뿐 아니라 백인들의 특권들도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윗글: 589). 이것은 호주의 다문화주의가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인종차별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호주의 다문화주의에 대해 비평하는 대부분의 분석들은 호주의 다문화주의가 반드시 인종 차별과 시민권의 문턱을 넓혀 가는데 더 몰두해야 하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Castles, 2000: 145-146).
 
이러한 연구들은 호주의 다문화주의는 인종차별을 철폐하지 않고는 절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없음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다문화주의가 표면적으로 호주에서 성공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중심에 있는 인종 차별의 어두운 그림자가 백인들의 인식에서 제거 되지 않는 한 다문화주의는 여전히 갈등들을 품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성공적으로 보이는 호주의 다문화주의 이면에 깔린 인종차별의 그림자는 인종우월에 대한 선입견에서 시작되었다.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는 우월한 인종에 대한 선입견은 이미 18-19세기에 유럽의 수많은 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정신속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고 이것이 지금까지 특별한 비판 없이 사람들의 뇌리 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비판한다(들라캉파뉴, 2013: 200).
 
이러한 인종차별은 모든 차별의 원형이라 할 수 있고 인간의 인권에 대한 가장 깊은 심연을 건드리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들라강파뉴는 인종차별은 학습으로 확대 재생산된다고 강조한다(윗글: 22).
 
태어날 때부터 다른 인종에 대해 편견과 차별의식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로를 거치든지 학습된다는 그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 문화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호주에서 인종 차별이 그 기저에 드리워져 있다는 것은 기독교가 얼마나 성서와 예수의 가르침에서 일탈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이것은 호주의 유력한 종교인 ‘기독교’가 그동안 사회에 대해 바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라 할 수 있다.

*이글은 <현상과 인식 41권 3호(통권 132호)>에 실린 글을 허락받아
  게재했으며, 각주와 참고서는 부족한 지면 관계상 생략했다. [편집자]

주경식|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전 시드니신학대학, 웨슬리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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