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S 정명석 전자팔찌 차고 10년 만기출소 대전교도소서 외제차 타고 빠져나가… 성범죄 우려 커

이단 & 이슈 기독교복음선교회

윤지숙/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8/02/28 [12:44]
▲ 정명석 교주가 수감되었다가 출소한 대전교도소 정문. ©교회와신앙  

지난 2008년 8월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강간치상·준강간 등으로 ‘징역 6년형’을 2심에서 ‘징역 10년형’으로 형량이 늘어나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으로 실형 10년이 확정되어 대전교도소에서 수감 중이었던 기독교복음선교회 총재 정명석 씨(JMS· Jesus Morning Star)가 2월 18일 오전 9시 20분경 만기 출소했다.

'옥중 재림주' JMS 만기출소

▲ 대전교도소에서 징역 10년형의 만기로 출소하는 JMS 정명석 씨. 다리에는 전자발찌가 채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제공: CTS기독교TV   

출소 예정일에 대한 여러 관측은 있었으나 당시 판결문을 기준으로 원심 판결 선고일인 2008년 8월 12일에서 10년 후인 2018년 8월 12일.
 
그중 “원심판결 중 공소기각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모두 파기”하며, “원심판결 선고 전의 구금일수 174일을 위 형에 산입한다.”라는 조항에 따라 174일(출소일 제외)를 감해 만기 출소일이 2018년 2월 18일로 추정됐다.
 
취재팀은 사전에 해당 교도소로 전화해 출소 예정시간을 물었으나 안내 교도관은 “개인 신변보호를 위해 말해 줄 수 없다.”고 일관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자정에 출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꼭두새벽부터 가서 마냥 기다릴 수 없으니 가장 빠른 시간을 알려달라고 채근하자, 오전 5시에 출소한다고 알려줬다.
 
출소 당일, 칠흑같이 깜깜한 오전 4시 45분부터 취재차량이 하나둘 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전 5시를 훌쩍 넘기고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기자들이 돌아가며 안내 교도관에게 언제 나오는지 재차 물었으나 “말해줄 수 없다”고 하다가, “아마도 오전 6시 30분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올 수 있다”고 답하고는 취재를 나온 교계언론사 명단을 적어갔다.
 
밖에서 3시간을 속절없이 대기하고 있다 기자가 교도관에게 다시 되묻자 “보통 형기 종료자가 출소할 때는 오전 5시 이후에 출소하지만, 성범죄자의 경우 보호관찰소 직원이 나와 전자 발찌를 채우기 때문에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일반 출소자들보다 다소 늦게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전 8시가 넘자 JMS 신도인 듯한 검은 복장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청년 4명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곁에 모른 척 서 있었다. 서로 상의를 하더니 “두 명이 먼저 들어가서 (정명석) 대표님을 접견하면 나머지 2명이 따라들어 가겠다”고 했다. 이윽고 두 명이 먼저 교도소 안으로 들어갔으나 나머지 2명은 “블로킹 당했다”며 되돌아 왔다. 하지만 들어간지 1시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 정문을 통과해 대전교도소 안으로 들어가 정명석 씨의 탑승을 기다리는 외제 승용차. 정명석 씨는 이 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교회와신앙

오전 9시가 조금 넘자 안에 들어갔던 청년 두 명이 밖으로 나왔다. 나머지 두 명의 발걸음도 갑자기 빨라졌다. 교소도 정문 밖 수상한 움직임의 몇 대의 차량 중에 하나가 교소도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다 몇 차례 제지를 당했다. 그러다 9시 20분경, 교도소 정문 50m 안에서 갑자기 외제차 한 대가 나오더니 교도관 몇 명에 둘러 싸여 걸어 나오던 정명석 씨 옆에서 멈췄다. 정 씨의 발목에는 전자 발찌가 채워져 있는 듯 바지 단으로 두툼하게 덮여져 있었다.

▲ 충남 금산군 월명동 마을 입구에 걸려 있는 환영 현수막. ©교회와신앙  

취재진들이 일제히 차량을 에워싸고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흠짓 놀란 정 씨는 황급히 차량에 올라탔다. 하지만 막으려는 경호원들과 취재진들과 불가피한 몸싸움도 있었다.
 
그 사이 차량은 조롱하듯 유유히 교도소 정문을 빠져나갔다. 이에 취재진들이 교도관들을 향해 “출소자들이 보통 정문을 걸어 나오는 데 이렇게 차량에 태우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 하자, 한 교도관은 “(정명석 씨가) 교도소를 걸어 나오지 않았느냐? 다 끝났다”고 했다.
 
JMS 고향 월명동 자연성전으로 성지화(聖地化)
 
4시간 20분의 기다림은 그렇게 끝났다. 내친 김에 그 길로 JMS 측이 ‘성지’(聖地)라고 부르는 충남 금산군 월명동에 있는 본부를 찾아갔다. 먼저 월명동 초입 걸려있는 기독교복음선교회 100m 표지판을 따라 세계선교본부로 들어갔다.
 
해당건물 1층에는 출판국, 선교본부, 계시국이, 2층에는 방송국, 미디어실과 정명석 씨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을 법한 ‘스타 사진국’과 자료실이 있었다. 그리고 3층 301호 ‘총재 집무실’을 정 씨가 사용하는 듯했으며, 305호의 ‘섭리 신학연구소’에서 교리화 작업이 되어지는 듯했다.

▲ 세계선교본부 입구 ©교회와신앙    

월명동 수련원이 있는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정명석 총재님 고향에 돌아오심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경운기에서 작업을 하던 청년 하나가 촬영을 하던 기자의 눈치를 보더니 어딘가로 전화통화를 하는 것이 보였다. 수련원 가까이 가자 차량 안내봉을 들고 있던 50중반의 남자가 전언을 들은 듯 진입을 막고는 기자를 향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 세계선교본부 건물. 3층에 총재 집무실이 있다. ©교회와신앙    

명절에 친척집을 방문하고 마지막 날에 수련원이 있다고 해서 산책을 나왔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오늘은 입실이 안 되니, 3~4월에 다시 오라.” 했다. “오늘 입실이 안 되는 건 안에 정명석 총재가 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라고 묻자, 놀라는 표정으로 “회원이냐?”고 되물었다. JMS 신도들 사이에서는 서로를 ‘회원’이라고 하는 듯했다.
 
그러고는 “(수련원) 안을 공사하고 있어, 오늘 오시지 않았다.”고 했다. 3~4월에 오라는 것은 3월 16일에 있는 성자승천일(정명석 생일) 때문인가라고 다시 묻자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느냐?”고 했다. 관심이 있어 알아봤다고 하자, 내심 반색을 하며 자세한 일정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곳은 정명석 총재의 고향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정 총재를 좋아한다”며 “그런데도 사법권의 희생양이 되어 억울하게 10년이나 수감생활을 했다”고 두둔했다.

▲ JMS 정명석 씨(왼쪽)와 해외 도피 중에 여신도와 노출된 옷차림으로 같이 있다가 취재진을 발견하고 황급히 자리를 피하던 모습(오른쪽). ©교회와신앙    

이단전문가들 JMS 성폭행 재범 우려

▲ 정명석 교주의 성행각에 대해 보도한 일본 아사히 신문 2006년 7월 28일자 신문. ©기독교포털뉴스  

하지만 정명석 씨는 자신을 재림주, 메시아로 믿는 여성 신도 네 명을 성폭행해 준강간, 강제추행, 준강제추행, 강간치상죄 등의 혐의로 2008년 1심판결에서는 징역 6년을, 항소심에서는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2009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항소심이 확정돼 수감생활을 해왔다.
 
정 씨는 특히 1999년부터 다수의 성폭행 혐의로 국내에서도 조사를 받아 왔으며, 2001년 말레이시아에서 성추행을 하고, 대만으로 도주한 뒤 홍콩과 중국에서 전전하다 2007년 5월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2008년 2월 한국으로 강제송환됐다.
 
그는 도피 중이었던 2003년에도 피해 여성 두 명에게 성폭행을 가해 인터폴 수배 중 7월 홍콩 이민국에 구속됐다가 이후 보석금으로 풀려나 중국으로 넘어갔다. 이런 와중에도 2006년 4월 또 다른 피해 여성이 발생됐다.
 
한편, JMS 탈퇴자들과 이단 전문가들은 “이번 정명석 씨의 출소로 인해 젊고 예쁜 여대생들을 타겟 삼아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작년 5월 뉴질랜드의 한 언론도 JMS가 학교나 쇼핑몰 등에서 젊은 여성을 모집 중이라고 보도했으며, 최근에는 호주에서 피해자의 증언도 유튜브를 통해 소개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일명 JMS라고 불리는 기독교복음선교회는 통일교 전력이 있는 정명석 씨에 의해 창설된 국내 자생 신비주의 계통의 이단으로 1980년 애천선교회, 1984년 예수교대한감리회(진리)를 세우고 1989년 세계청년대학생MS연맹, 1995년 국제크리스천연합 등으로 교단을 개편했다.

1990년 낙성대서울교회가 JMS의 최고의 전성기였으며 1999년까지 신도수가 10만 명 가량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해 <그것이 알고 싶다>에 보도된 후 신도 절반 이상이 이탈해 현재 신도 수는 3만 또는 4만 가량으로 추정된다.
 
기본교리로는 정명석이 제작한 120개의 도표를 토대로 안구현, 김형만 등이 정리한 '30개론'을 사용해 입문 5과목, 초급 7과목, 중급 8과목, 고급 10과목을 교육했었다. 하지만 성경론, 비유론, 사탄론, 말세론, 영계론, 공중휴거 등으로 고신(1991/41/이단), 통합(2002/87/반기독교적 이단-성경해석, 교회, 삼위일체, 부활, 그리스도의 재림), 이대협(2003/이단), 합동(2008/93/이단-성경관, 부활, 재림관 등 전 분야에서 반기독교적), 미주합동(2014/35/이단), 그 외 기장, 기성, 기감 등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됐다.?

윤지숙|교회와 신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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