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나님) 존재의 증명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8/08/29 [17:03]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태초부터 존재하신 분으로 선포하므로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철학적으로 규명해 보려고 시도해 왔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합리적으로 입증하고 증명하려 고 하기보다는 그가 태초부터 존재하셨던 분으로 의심할 수 없는 실재성을 선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에 의존하기보다는 바른 신앙을 확립하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일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무신론자의 숫자는 사실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문화인류학자들은 모든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종교심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사실 신자들을 위해서는 신 존재 증명이 도움을 주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 이래로 신 존재 증명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는 아마도 인간들이 절대자 또는 신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과 그것을 인간의 이성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시도들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기독교 지성인들이 변증적 차원에서 신 존재 증명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밝히려는 시도들이 있어 왔다. 물론 하나님의 존재 증명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지만 세상 안에 있는 요소들을 통해 신의 존재함을 증명해 보려는 시도들을 일반적으로 ‘자연신학’이라고 부른다. 신 존재 증명에 대한 전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증명들은 다음의 네 가지가 있다.
 
존재론적 증명 (Ontological Argument)

 
이 논증은 켄터베리의 안셀름(Anselm 1033-1108)에 의해 제시된 논증이다. 안셀름은 그의 프로슬로기온 (Proslogion) 에서 신 존재 증명을 기술하고 있다. 안셀름은 하나님을 “그보다 더 큰 (위대하신)것을 생각할 수 없는 가장 크신(위대하신)분”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하나님은 반드시 존재하시는 분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설명하면 인간은 두 가지 종류의 존재를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인간의 이해(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고, 둘째는 인간의 이해(관념) 속에서도 존재하고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그보다 더 큰 (위대하신) 것을 생각할 수 없는 크신(위대하신) 분이 인간의 이해 속에만 존재하는 분이라면 그 존재는 실제로 존재하는 자보다 더 큰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보다 더 큰(위대하신) 것을 생각할 수 없는 분”은 인간의 이해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반대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분”이신 하나님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안셀름의 논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1. 신은 정의상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더 큰(위대한) 존재다. (가장 큰 존재다.)
 
2.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보다 크다.(상상<실재)
 
3. 따라서 신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상상될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상상된 가장 큰 존재보다 더 큰 실재 존재가 존재하지 않으면 상상될 수 있는 존재보다 클 수 없다).
 
이 안셀름의 존재론적 증명은 칸트에 의해서 비판을 받았다. 칸트는 존재론적 증명을 비판하기를 “만약 어떤 최상의 존재가 있으면 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우주론적 증명 (Cosmological Argument)
 
우주론적 증명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에 의해 체계화된 고전적인 신존재 논증으로 멀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첫 자동력(first-self-moving power)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우주론적 논증은 결과에서 원인을 찾는 논증이다.
 
즉 세상의 존재를 설명하려면 반드시 최상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인과율을 중요시 생각하는 논증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사건은 원인을 갖고 있으며 그 원인은 또 다시 원인을 갖고 있는데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제1원인 곧 절대 무한자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신학대전에서 다음과 같이 신존재 증명을 하고 있다. 첫 번째는 ‘운동과 변화’로부터 의 논증이다. 이 세상에 움직이는 사물을 볼 때 그 물체가 스스로 자의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그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에 의해 움직여 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다른 것을 운동시키는 제일의 원인으로써의 운동자(prime mover)인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가 있어야 한다. 그 ‘부동의 동자’가 바로 신이다.
 
두 번째는 인과율에 따른 능동 원인을 통한 논증이라 할 수 있다. 즉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원인이 있다. 모든 것은 그것과 구분되는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생겨난다. 모든 것은 원인을 가지고 있고 그 원인은 또 다시 원인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든 것을 있게 한 제일의 원인 혹은 능동원인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제일의 능동원인을 ‘신’이라 부른다.  우주론적 논증은 쉽게 우주에 있는 모든 것들에는 원인이 있다는 것에 착안을 두고 거슬러 올라 가는 것이다. 우주 자체도 원인이 있어야 하는데 이와 같은 엄청난 우주의 원인은 ‘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목적론적 증명 (Theological Argument)

 
신 존재 증명 중 목적론적 증명이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논증이라 할 수 있다. 목적론적 논증은 플라톤의 대화록 <티매우스: Timaeus>를 통해서도 세상에 알려졌다. 이 논증은 우주가 질서와 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우주를 만든 설계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데 우주가 그렇게 기능을 발휘하도록 창조하신 지적인 분이 반드시 목적을 가지고 만드신 사실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사실 목적론적 논증도 우주론적 논증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시계가 그것을 만든 제작자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고 하면서 우주는 그 대설계자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다고 하면 나는 어리석은 자로 불리기를 원한다”라고 목적론적 증명을 단순하게 설명하고 있다.
 
윌리엄 패리(willia paley 1743-1805)는 그의 <자연신학 Natural Theology>에서 시계를 예로 들어 목적론적 논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째깍거리며 작동하고 있는 시계가 어쩌다가 땅바닥에 놓여 있다. 이 시계가 바람, 비, 태양열, 화산작용 같은 자연작용들이 우연히 합쳐져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지성을 갖춘 시계 제조공이 만들었다는 것이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는 답변일 것이다.
 
이와 같이 정밀하게 돌아가고 있고 체계적으로 짜여있는 우주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러나 목적론적 논증도 우주에 어떤 설계자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기는 하지만 그 설계자가 기독교가 주장하는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해 내지 못할 뿐더러 어떤 절대자, 신이 우주를 창조한 다음 하나님과의 관계는 무시되고 자연 법칙에 의해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이신론(deism)에 빠질 우려도 있게 한다.      
 
도덕론적 증명 (Moral argument)
 
도덕론적 논증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 의해 주창되었다. 칸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과 자유는 도덕적 생활의 ‘전제조건들’이요, 우리가 느끼는 무조건적 도덕의무를 해명해 주는 신앙의 문제이지 감각에 제한을 받는 일반 사변적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인간이 선과 악에 관한 의식 및 공의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 영혼에 대한 의식 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언젠가 모든 사람에게 정의를 보이실 참과 거짓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존재하심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과 기준이 있다. 어떤 사회이든, 어떤 집단이든 반드시 정당한 기준과 가치 척도가 있다. 왜 인간이 그렇게 살게 되었는가? 이처럼 인간이 정의롭고 올바른 법의 체계를 만들 수 있는 근거와 긍극적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누가 인간에게 이러한 도적적인 체계를 따르게 했는가?
 
이러한 질문에 가장 타당한 대답은 최고의 도덕적인 신의 존재만이 답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도덕적 논증은 우주에 편재하고 있는 도덕적 법칙과 인간의 마음속에는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법이 새겨져 있고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똑같은 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공통된 법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하려면 최고의 입법자이신 신의 존재가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논증이다. 〠

주경식|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전 시드니신학대학, 웨슬리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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