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인생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8/12/26 [17:37]
법정에 선고를 들으러 간 사무실 직원이 보낸 문자가 화면에 떴다. 징역 8년이었다. 그는 칠십 대가 되어야 다시 세상에 나올 것이다. 어쩌면 그의 인생은 끝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부자집 아들로 태어났다. 머리도 좋았다. 명문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오고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이제 검사가 될 그는 집안의 중심같이 떠받쳐지는 존재였다. 이상하게도 그는 고시에 합격하지 못했다. 번번이 낙방을 했다. 그는 전자부품 회사를 차렸다.
 
사업을 시작하자 불이 붙은 것처럼 회사가 일어났다. 그가 외국에 갈 때마다 큰 액수의 상품 주문을 받아왔다. 80년대 경제성장의 물결을 타고 회사가 번창했다. 삼십대 중반인 그는 성공한 기업가로서 수출상을 받았다.
 
그에게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졌다. 유럽에 출장을 다녀오니까 갑자기 부도의 위험이 닥쳤다. 돈이 없는 게 아니었다. 경리담당이 나중에 갚아도 될 돈을 먼저 지급하는 바람에 순간 빈혈증상같이 자금회전이 끊긴 것이다. 어처구니없이 부도가 나버렸다.
 
담보로 제공한 집안의 부동산도 빚을 갚기에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필리핀으로 갔다. 26년의 세월을 그곳에서 보내다가 불법체류자로 체포되어 한국으로 송환됐다. 육십대 중반에 재판을 받고 징역 8년을 선고받은 것이다.
 
창살 없는 감옥인 도망자로서 뺏긴 시간과 징역의 시간을 합치면 그의 인생에서 시간이 가루가 되어 공중으로 날아간 것 같았다. 법원은 부도를 내고 도망한 자는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판결이유를 말했다.
 
며칠 후 변호사였던 나는 구치소 접견실의 유리방 안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이제 노인이 된 그는 아무것도 없었다. 깜깜한 절망만이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면회 오는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고시공부 시절 잠시 함께 한 인연으로 그를 무료변호 한 내가 그가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끈이었다. 그 끈마저 재판이라는 절차가 끝난 지금은 끊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곧 겨울이 올 텐데 강원도의 산 속에 있는 교도소로 갈 예정이래. 내년 봄까지만 서울의 구치소에 있으면 좋을 텐데...”
 
그의 마지막 소망이었다. 그는 구깃한 정부에서 내주는 홑 겹의 갈색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그에게서 인생이 무엇이었던가 묻고 싶었다.
 
“이십 대 시절 고시공부 할 때 자네의 꿈이 뭐였어?”
 
내가 물었다. 그의 눈이 과거로 돌아가는 듯 몽롱해 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때는 그의 영혼을 다른 시간으로 이동해 주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시에 합격하고 검사를 하려고 했지. 그런데 30년 만에 잡혀 와서 검사에게 조사를 받아보니까 우리 시절 생각하던 검사하고는 전혀 달랐어. 우리 시절은 검사라고 하면 사회정의의 대변자이고 경찰에서 고문을 당하는 걸 살펴보고 막아주는 인권옹호자였잖아?
 
그런데 그게 아니야. 무조건 너는 외국으로 도주한 사기범이라고 단정하고 얽어매는 존재였어. 내가 부도를 내고 싶어 냈어? 부모가 물려준 담보로 넣었던 토지들만 해도 충분히 보상을 했다고 생각해. 사업을 해보지 않은 검사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거야. 그냥 내게 중형이 선고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고 궤도 위를 기계적으로 달리는 감정 없는 기계였어.
 
차라리 경찰이 들어주기라도 하는 면에서는 인간적이었어. 판사도 거기서 거기야. 검사가 기소한 걸 그대로 따르면서 요식행위인 재판을 진행하는 척만 하는 느낌이야. 선고받는 날 내 앞의 여자가 징역형을 선고받고 분노해서 막 항의하더라고. 그랬더니 재판장이 그 여자를 보고 자기를 한번 설득해 보라고 소리치는 거야. 젊은 시절 가졌던 판검사의 꿈은 헛된 거였지.”
 
“26년 동안 외국에서 도망자로 살 때의 꿈은 뭐였어?”
 
“가족과 함께 쫓기지 않고 평화롭게 먹고 살고 싶었어. 여권도 없지 도망자의 신세지 하니까 노동을 해서 돈이 조금 생겨도 사기꾼들이나 경찰 끄나풀들이 붙어 고발한다고 겁을 주고 돈을 뜯어가는 거야. 나는 사람이 아니라 그늘에 존재 없이 사는 투명 인간이었지.”
 
“이제 남은 꿈은 뭐야?”
 
“아무것도 없지 뭐, 그래서 그런지 자살을 할까 봐 교도관이 자꾸 불러 면담을 하자고 그래.”
 
나는 아득한 벼랑 밑에 추락한 그에게 잔인하게 묻는 질문을 끝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판검사로 사회적 대접을 받고 사는 것도 사업가로 사는 것도 수많은 종류의 삶의 한 방편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껍질 같은 외적인 형태일 수 있었다.
 
“감옥에 들어온 이후 이 안에서 너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내왔니?”
 
내가 물었다. 인생의 절벽 앞에 선 무력한 그는 철저히 성경을 읽었다. 공책에 시편 23편을 천 번을 써서 내게 보내오기도 했다. 그는 무서울 정도로 종교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최악의 절망에 이르는 순간에야 그의 영혼에 밧줄을 내려 보내는 것 같았다.
 
기도한다고 세상에서 감형이란 대가를 받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더 미움을 당하고 중형이 선고된 게 그의 현실이었다.
 
“그냥 성경을 읽으면서 보내왔지 뭐”
 
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이상하게도 그의 표정은 평화스러운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영적인 삶의 면이 육적인 생활보다 더 중요한 인생이 아닐까? 하나님이 너에게 영적인 새로운 삶을 주려고 철저히 이렇게 감옥까지 몰아버리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불교에서 무문관수행이라는 게 있더라.
 
감옥 같은 방에 있으면서 넣어주는 한 끼 밥만 먹고 몇 년을 경전을 읽으면서 깨달음을 구하는 거야. 앞으로 여기서의 생활을 그런 식으로 철저히 경전을 읽으면서 수행을 하면 어떨까?
 
처절한 인생의 실패를 겪어봤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영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 사이에 옥바라지는 내가 해 줄게.
 
그리고 진짜 구원받은 영의 사람이 되면 내가 산자락의 작은 교회에서 네가 여생을 보낼 수 있게 알아봐 줄 테니까 힘내.”
 
“고마워”
 
그의 얼굴에 진심의 빛이 흘렀다. 선입견을 가진 경험 없는 판사에게 그의 내면을 전하기에 실패했지만 절망 속에 있는 그를 위로하는 것도 변호사의 소명이라는 생각이 든 오후였다.〠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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