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4/29 [12:23]

낮 12시다. 나는 탑골공원 뒷골목 허름한 건물 3층에 있는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지월스님의 방 창문가에 서 있었다. 창 아래로 좁고 지저분한 골목길이 내려다 보였다.


영하의 기온인데도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골목길 끝에 앰블런스가 와서 경광등을 비추고 있다. 추운 날씨에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보고 누군가 긴급구조 신고를 한 모양이다. 그 골목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건물 이층은 무료급식소였다. 문 앞에 노인들이 줄지어 서서 기다리고 있다. 밥 한 끼 사 먹을 돈이 없는 노인들이 많은 것 같다. 2017 12월 뉴스에는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 버려져 있는 ‘자니윤’씨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그는 텔레비전에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명 사회자였다.
 

그는 미국의 ‘자니카슨’쇼에도 출연한 인기 연예인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에 도움을 주었던 그에게 공기업의 사장자리를 주려고 하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다. 권력의 정상에 섰던 박근혜 대통령은 노인의 몸으로 감옥에 있고 선거를 돕던 자니윤도 지난 세월을 모두 망각한 채 팔십 대 노인으로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더라는 보도였다.
 
권력과 인기 모두 물거품 같이 허무한 것 같다. 인기척이 나면서 급식소 책임자인 지월 스님의 방으로 칠십 대 중반의 오 변호사 부부가 들어섰다.
 
지월 스님이 다기에 차를 우려 앞에 놓인 작은 찻잔을 채우면서 말했다.
 
“여기 주지 방에 있으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노인들이 목소리를 높여 싸우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 탑골공원 뒷골목은 시간이 정지된 곳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저 같은 중들의 수도도 산 속에서 경전만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저자거리에서 늙고 병든 그들과 함께 고통을 받고 그들을 돕는 보시행이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깨달음이라고 믿습니다.”
 
그곳으로 온 오윤덕 변호사 부부는 소리 없이 선행을 해오는 사람들이다. 대학이나 캐톨릭 단체에 후원도 하고 최근에는 개인 돈 5억 원을 털어 거리의 변호사들을 뒤에서 후원하고 있다. 젊은 변호사들이 거리에 나서서 봉사를 하고 싶어도 생활이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 변호사 부부는 그런 젊은 거리 변호사들에게 한 달 기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판사생활을 한 오윤덕 변호사가 한 번은 지나가는 투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예수님이 오천 명에게 보리떡과 물고기를 먹게 했는데 변호사가 자기가 번 돈으로 오천 명을 먹일 수 있다면 참 좋을 거에요.”
 

그 말이 나의 가슴속에 들어와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했었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이런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성경을 보면 세리인 삭개오는 자기 집에 온 예수에게 잘못한 일은 돈으로 몇 배 배상하고 재산의 일부를 바치겠다고 했어요. 나도 삭개오처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동창회나 고향모임 같은 곳에 가면 아무런 재미가 없어요. 어려운 곳을 찾아가 봉사하는 게 훨씬 기뻐요. 봉사할 때 속에서 우러나오는 이런 기쁨은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모를 거에요.”
 
오 변호사 부부는 무엇이 진짜 기쁨인지 깨달은 사람 같았다. 무료급식소는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조금씩 보내주는 돈으로 밥과 국을 만들어 노인들에게 제공을 한다고 했다.
 
오 변호사 부부가 작은 봉투 하나를 지월 스님에게 내놓았다. 스님은 그 자리에서 옆에 있는 총무에게 그 봉투를 전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들은 잠시 후 골목 뒤쪽에 있는 허름한 밥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몇 개의 탁자와 등받이 없는 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 좁은 문 바로 옆의 주방에서 육십 대 중반은 넘어 보이는 여자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상이었다. 우리가 식당 구석에 있는 탁자에 자리 잡고 앉았다. 지월 스님이 주방쪽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무료급식소를 뒤에서 소리 없이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기 주방에 계시는 아주머니도 그런 분 중의 한 분입니다. 저 아주머니는 중국인입니다. 그런데도 중국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집 밥을 만들어 팝니다. 된장국에 두부김치도 내 놓구요. 나물도 무치고 음식을 잘합니다.
 
처음에는 늙은 어머니를 가게 한쪽에 모시고 장사를 했어요. 힘들게 가게를 하면서도 저희 무료급식소에 소리 없이 돈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정말 고마운 분이시죠.”
 
아름다운 얘기였다. 점심을 먹고 나오다가 주방에 있는 그 중국인 여자를 보고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물었다.
 
“고향이 어디세요?”
 

“고향? 대구요”
 
그녀가 싱긋 웃으면서 한 대답이었다. 끝까지 나는 중국인이라고 자존심을 보이는 조선족 분들과도 약간 다른 느낌이었다. 오 변호사 부부는 다음 목적지인 서울역 노숙자 합숙소로 향하면서 말했다.
 
“참 마트에 가서 노숙자들이 좋아하는 봉지커피를 몇 상자 사가지고 가죠.”
 

이런 분들이 세상 곳곳에서 풀꽃향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살 만한 세상인 것 같다.〠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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