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이 축복의 전주곡이라구요?

강승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7/29 [14:34]

하나님의 위로는 시간이 지나가면 저절로 해결되는 애매모호한 다독임이 아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아주 구체적인 도움이요 회복의 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고난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고난을 견디어 내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디어 냅니다.”   (고후1:6, 새번역)

 

우리 인생에 고난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이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삶의 현장에서 고난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고난을 관망하지 않으시고 고난에 직접 다가와 개입하신다. 그래서 환란날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우리를 큰 환란에서 건져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나에게 갑자기 닥친 인생의 환란은 축복의 전주곡으로 바뀔 수 있다. 하나님이 고난에 개입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란의 마지막은 기쁨의 탄성이 되고 감사의 축제가 된다. 왜냐하면 사랑의 하나님은 눈물을 닦아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왜 성공한 사람을 칭찬하기보다 우리를 환란의 태풍 속에 던져 놓고 위로하기 원하실까? 그것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위로를 맛보고 나서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위로하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에게 사랑으로 다가오고 우리를 응원하는 힘이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에 동참하신다는 격려가 된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환란 중에서 위로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영적인 지도자로 훈련시키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환란 당한 사람에게 내던진 피상적인 말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암투병을 경험한 환우가 회복된 후에 항암 투병 중인 환우에게 한마디 할 때 그 말이 공감이 되고 큰 위로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진정한 위로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깊은 위로를 경험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 경험한 인생의 환란을 결코 낭비해서는 안된다. 과거를 떠올리며 한탄하거나 탄식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과거의 아픈 경험을 통해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 이웃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힐 때 불우했던 우리의 과거가 아릅답게 사용될 수 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인생이 될 때 우리의 수치스러운 기억도 존귀하게 사용될 수 있다.

 

지금 고난 중에 머물러 탄식하며 눈물 흘리고 있는가? 눈을 들어 환란 뒤에 숨겨진 축복을 바라보라! 환란은 더 이상 슬픔이나 고통이 아니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연한 살 속에 모래를 품고 뱃어내는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하듯이 환란은 진주와 같은 보석을 만들어내는 축복의 전주곡이요, 기쁨의 전주곡이 된다. 위로의 하나님이 개입하시기 때문이다.〠


강승찬|시드니새생명교회 담임목사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