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찰스 그린 중령 을지무공훈장 추서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 16개국 참전용사 참석

글|정지수,사진|권순형 | 입력 : 2019/08/27 [14:57]

국가보훈처는 지난 7월 27일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 알림1관에서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을 가졌다.

 

보훈처는 이날 국내외 6·25전쟁 참전용사, 참전국 주한 외교사절, 정부 주요인사, 각계대표, 시민, 군장병 등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거행했다.
 
‘함께 지킨 대한민국, 평화와 번영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는 주제로 열린 기념식은 보훈처가 초청한 유엔군 참전용사 40명을 박수로 환영하며 시작됐다.
 
보훈처는 23~28일 16개국 유엔 참전용사와 가족 등 107명을 초청했는데, 이날 참전국 국기는 전투병  파병국과 의료지원국가의 국내 도착 순으로 입장했고, 마지막에 유엔기와 태극기가 들어왔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기념사에서 "6·25전쟁과 전후 복구에는 세계 60개국이 참여했고,  많은 국가의 지원으로 대한민국은 평화를 되찾고 번영을 실현했지만, 평화를 완성하지는 못했다"면서 "대한민국은 2018년에 시작된 남북한과 미국의 대화를 발전시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꿈은 바로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유엔의 꿈이고, 한국민의 꿈이 바로 유엔군 참전용사 여러분의 꿈"이라며 "그 꿈이 이뤄지도록 유엔군 참전용사와 가족 여러분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성원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념식에서 호주 참전용사인 고(故) 찰스 허큘리스 그린 중령은 을지무공훈장을 추서받았다. 그린 중령은 호주 정규군 첫 지휘관이며, 제3연대 3대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연천전투와 박천전투 등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그린 중령은 1947년 호주 무공훈장을 수여받았고, 6·25전쟁에서 전사한 후 1951년 미국으로부터 은성훈장을 수여 받기도 했다.
 
현재 고인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으며, 2015년 11월에 ‘이 달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다.
 
특히 올해 5월 초에 호주 멜번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에서 피우진 보훈처장은 그린 중령의 미망인인 올윈 그린 여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본지는 한국 전쟁의 영웅 고(故) 찰스 허큘리스 그린 중령(Charles Hercules Green)의 미망인 올윈 그린 여사를 지난 8월 3일 멜번에 있는 양로원(Blue Cross Ivanhoe Nursing Home)에서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 한국 전쟁의 영웅 찰스 그린 중령. 그는 북한군이 쏜 폭탄의 파편으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고, 1950년 11월 2일 오후 8시, 30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현재 그의 유해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7월 27일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호주 출신의 고(故) 찰스 그린 중령의 외손자 알렉산더 찰스 노먼에게 대한민국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편집자>

 
- 먼저 고(故) 찰스 그린 중령이 을지무공훈장을 받은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 훈장을 받게 된 것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사한 제 남편에게 이렇게 귀한 훈장을 수여해 주신 대한민국 정부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저는 건강상의 이유로 지난 달에 열린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저의 외손자(알렉산더 찰스 노먼)가 대신 기념식에 참석해 훈장을 받았습니다.
 
알렉산더는 할아버지를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정말 좋아하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시드니에 사셨는데, 멜번으로 오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 이낙연 국무총리가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호주 출신의 찰스 그린 중령 후손에게 대한민국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그린중령 후손에게 대한민국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그린중령은 호주 제3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38선 돌파 후  20여일만에 의주까지 진격하는 등 전공을 세웠다. 사리원 북쪽에서 적의 퇴로차단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북항하는 적을 발견, 단 한발의 총탄도 쏘지않고, 북한군 1천 982명을 사로잡았다 ©국민일보
▲     © 국민일보


“멜번에 살고 있는 딸을 자주 만나고 싶어서 멜번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현재 제 딸 앤씨아(Anthea Green)는 여성운동가로 여성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Women Who Stand Up, https://www.womenwhostandup.com). 제가 시드니에 있을 때, 제 딸이 자주 방문해 주었는데,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서로 가까이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제가 멜번으로 왔습니다.
 

저는 원래 그래프톤(Grafton)에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사는 동안 한국 전쟁에 참전한 남편 (찰리 그린 중령)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래프톤에서 지내다가 시드니로 이주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지난 상처를 잊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남동생과 함께 시드니에 살 때,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어떤 분이 저에게 ‘국가 보훈처’(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 멜번에서 다시 만난 오웬 그린 여사는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 크리스찬리뷰


그래서 저는 대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시드니대학에서 문학학사 학위(Bachelor of Arts)를 받았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메도뱅크 TAFE에서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 : 멜번에 있는 오웬 그린 여사가 거주하고 있는 양로원에 바바라 마틴(한국명 민보은) 선교사와 본지 취재진이 방문했다. 민보은 선교사는최근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방문, 그린 중령의 묘지를 촬영해서 오웬 그린 여사에게 보여 주었다.     © 크리스찬리뷰


- 시드니를 떠나 오셨는데, 어떤 것이 기억에 남고 그리우신가요?
 
“먼저 제가 살던 집이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살았던 집에 한번 더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리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무척이나 보고 싶습니다. 특히 가깝게 지냈던 한국 분들이 그립습니다. 많은 한국 분들이 저를 비롯해 한국 전쟁 참전용사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많이 주셨습니다."

▲ ‘그대 이름은 아직도 찰리(The name’s still Charlie)’ 책자 표지.                         


- ‘그대 이름은 아직도 찰리(The name’s still Charlie)’라는 책을 쓰셨는데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시지요.
 
“제가 대학에서 공부할 때 학교 과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전에서 전사한 제 남편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하고 자료를 모아서 남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을 아는 참전 용사들과 인터뷰하고, 역사적 자료들을 참고해서 남편의 이야기를 써내려 갔습니다. 이렇게 쓴 내용들을 잘 정리해서 ‘그대 이름은 아직도 찰리(The name’s still Charlie)’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 호주 육군 제3대대는 1950년 10월 2일, 한국전 출정을 개시했다. 사진은 전투를 지휘하는 그린 중령의 생전 모습.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역사에 대해 제가 너무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완성하고 저는 대학원에서 역사 공부를 더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암에 걸려서 공부를 미루어야 했습니다.”
 
- 현재 멜번에서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96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멜번대학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오웬 그린 여사.     © 크리스찬리뷰


“제가 머물고 있는 양로원은 정말로 좋은 시설과 프로그램을 제공해 주는 곳입니다. 모든 직원들이 친절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운동을 하거나 미술 프로그램에 참석해 그림을 그리곤 합니다. 
 

가끔씩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다 가곤 합니다. 한국에서 선교 사역을 하셨던 바바라 마틴 선교사님도 가끔씩 방문해 주십니다. 그리고, 총영사관에서 관련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저를 초청해 주셔서 참석하곤 합니다.
 
저는 지금 96살인데 아직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일 주일에 한 번씩 멜번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 프로그램에 참석해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저는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면서 제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 더욱 복 되고 건강한 삶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정지수 |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사진/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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