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9/24 [17:50]

우리는 지금 고 XXX 형제님의 장례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51년의 짧은 삶을 살았습니다. 현대는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반 정도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정말 아쉽고 애통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불행은 짧은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을 너무 늦게 깨닫는데 있습니다.
 
인간은 어리석어 죽음 앞에 서서야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건강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가족이 떠나고 나서야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것들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세상이란 학교에 등록해서 다양한 과목을 배웁니다. 내가 잘하는 과목도 있지만 못하는 과목도 있습니다. 필수과목도 있지만 선택과목도 있습니다. 기쁨과 행복과 같은 좋아하는 과목도 있지만, 슬픔과 불행과 같은 싫어하는 과목도 있습니다.
 
인생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각 과목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대충대충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졸업할 시간이 되었을 때, 자신이 얼마나 공부를 게을리했는가를 깨닫고 후회합니다.
 
인간은 시공간의 한계적인 존재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아는 일보다 모르는 일이 많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교만한 자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사는 자이고, 어리석은 자는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정작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오늘 성서 본문은 사도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쓴 서신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가 동일해야 합니다. 만약 이것이 다르면 죽음의 끝자락에 섰을 때 살아왔던 삶에 대하여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 살 수는 있지만, 자신을 위해서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언젠가는 죽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살아야 될 이유와 죽어야 될 이유가 동일하였기에 죽고 사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삶과 죽음의 이유가 동일할 때, 죽음의 순간에 비겁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스테반은 자신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주인이 바뀐 것이고, 중심이 이동된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죽음에 관하여 연구한 세계적인 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즈’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녀가 70세가 되던 해에 썼던 자서전인 ‘생의 수레바퀴 (The Wheel of Life)란 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의사라 부른다. 30년 이상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나를 죽음의 전문가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 인간은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사람은 죽음을 선고받는 그 순간에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녀가 쓴 '인생 수업'이란 책에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십시오”
 
전도서 7장 2절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끝에서 처음을 볼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다면, 죽음에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명철이 있다면, 하늘에서 땅을 보는 혜안이 있다면 지금과 같이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완성입니다.
 
오늘의 말씀이 유가족과 조문객들에게 큰 위로와 함께, 우리의 삶을 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김환기|본지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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