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일푼으로 일구다

글|주경식,사진|권순형 | 입력 : 2019/09/25 [17:46]
▲ 메탈 리사이클링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AIM 김오준 이사장.     © 크리스찬리뷰


AIM (Agape International Missions Australia)의 김오준 이사장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이사장(52. 시드니온누리교회 집사)은 현재 E-Planet Pty Ltd 회사를 그린에어커(Greenacre)에서 운영하고 있다.
 
E-Planet Recycling은 메탈 리사이클링 회사이다. 쉽게 말하면, 버려지는 고철, 쇠, 철물, 철제 등을 수거해서 재활용할 수 있도록 되파는 회사이다. 맨 처음 그의 그린에이커의 사무실 찾아갔을 때 사무실 주위에 있는 포크레인과 덤프 트럭들이 있어서 무엇을 하는 곳인지 의아했다.
 
그는 메탈 리사이클링 회사를 운영하면서 한편으론 AIM (Agape International Missions Australia, 호주 아가페 국제 선교회)의 이사장 직책을 맡고 있다.

 
호주에 오기까지

 
그는 1987년 어학 연수차 호주에 와서 1년 반을 지내다 돌아갔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 라미네이팅 코팅필름을 만드는 JHC(진흥 코퍼레이션)이라는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JHC(진흥 코퍼레이션)에서 근무하던 부서는 무역부였는데 당시 무역부가 관리하던 여섯 군데의 지사중 한 곳이 호주지사였다. 그의 우연 같은 호주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러한 계기로 그는 호주를 가끔 방문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4년 후 다니던 회사를 사직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같은 업종의 라미네이팅 필름을 취급하는 OJ World를 창업한 것이다. 눈썰미와 사업 머리가 좋은 그가 그동안 배운 것을 토대로 자본도 없이 OJ World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대박(?)이 났다.

 

▲ 수거해 온 재활용품의 하역 작업을 지켜보는 김오준 사장(왼쪽)     © 크리스찬리뷰


공장은 중국 항저우에 두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라미네이팅 필름을 전 세계에 수출하는 삼각 구도의 무역을 했다. 젊은 사업가는 7년간 고속 성장해서 이른 나이에 꽤 많은 돈을 만지게 되었다. 돈을 모은 그는 부동산에도 투자를 하고 주식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업에는 천재였던 그가 부동산과 주식에서는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한동안 사이버 트레이딩에 빠졌던 그는 도박에 빠진 것만큼 그의 삶을 망가트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업도 하기 싫게 되고 한동안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럴 즈음 호주가 생각난 것이다. 아이들도 커가고, 아이들 교육도 시킬 겸 이민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곳이 호주였다.

 
예수를 믿게 되다

 
사월 초파일이 생일인 그는 철저한 불교 신자였다. 부동산 투자와 사이버 트레이딩을 하면서 사업도 접고 잘나가던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려 힘들어 하고 있었을 때 그는 우연히 데일 카네기 최고 경영자 과정에 등록하게 된다. 거기서 인생의 좌절과 어려움에 빠져 있었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제가 그때 슬럼프였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데일 카네기 최고 경영자 과정에 등록해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사람들을 어렵게 하고 힘들게 하는 문제를 실제 보면 인간이 어쩔 수 없는 4% 때문에 고민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사건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때문에 하는 것이고, 오직 4% 만이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96%의 걱정거리는 쓸데없는 것이니, 우리가 바꿀 수 없는 4%의 영역은 신에게 맡기라’는 겁니다. ‘신에게 맡기라!’ 그래서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모 또한 철저한 불교 신자였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모태 신앙인이었다. 부모님 보기에도 그렇고 본인도 불교도였기 때문에 김오준은 결혼할 때 그의 부인은 교회에 가지 않는 조건으로 결혼을 했다. 그러나 다행히 시댁과 떨어져 살게 되어 김오준은 부인이 교회에 가는 것을 핍박하지는 않았다.
 
본인은 교회에 가지 않아도 아내와 아이들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막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결혼 후 여러 해가 지나고 본인이 힘든 나락에 빠져 있을 때 우연히 참석한 데일 카네기 최고 경영자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는 계속 그의 마음을 걸리게 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4%는 신의 영역이니 신에게 맡기라” “내가 바꿀 수 없는 4%는 신에게 맡겨라” 그 이야기가 마음에 걸려 그는 교회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때 제가 분당에 살았는데 아내가 다니던 순복음교회 분당 지성전에 나갔습니다. 마침 그때 명성훈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어쩌면 그렇게 제가 관심있어 하는 리더십에 대한 설교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한 시간이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결신의 시간이 있었는데 일어서라고 해요. 그래서 일어났는데 목사님을 따라 기도를 하라는 거예요.

 

▲ 무일푼으로 시작한 메탈 리사이클링 사업이 하나님의 은혜로 크게 성장했다”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밝게 웃고 있는 김오준 사장.     © 크리스찬리뷰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이 말을 따라 하는데 그때 제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동안 지었던 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저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목사님은 저쪽 강대상에 계시는데 마치 제 앞에서 안수를 해주시는 것은 착시현상까지 느낄 정도였어요. 일종의 성령체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마치 15년 전의 일을 어제 일인양 생생하게 간증했다. 그동안 그의 아내가 새벽마다 흘린 눈물의 기도가 얼마나 쌓였겠는가? 그의 장모도 자기를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지 그는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그동안 좋아했던 담배와 술도 가까이하기 싫어 졌다. 담배를 가까이하려고 하면 구역질이 났다. 성령의 역사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예수를 영접하고 나니 그가 전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이 그가 호주로 이민을 고민하고 있었을 때 벌어진 사건이었다.

 

▲ E-Planet 회사 전경 ©E-Planet    


그리고 또 하나 예비된 사건이 있었다. 호주로 오려고 준비를 할 때 중학교 동창을 만나게 되었다. 그 동창은 호주에 와서 고철사업을 해볼 수 있을까? 현지 답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이렇게 우연같지만 하나님의 섭리 같은 만남이 이루어져 호주에 온 후 5개월을 메탈 리사이클링 사업을 중학교 동창과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 대형트럭으로 운반되는 무거운철제품들. ©E-Planet    

 

늦은 이민, 섭리적 인도

 
그는 2005년에 가족과 함께 이민을 왔다. 그가 호주에 와서 처음 둥지를 튼 곳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스트라스필드였다. 아이들을 일단 학교에 등록시키고 처음 5개월을 중학교 동창과 함께 고철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몇 달을 같이 하면서 그 친구와 사업을 오래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곧 헤어졌다.
 
그리고 혼자 메탈리사이클링 사업을 하려는데 아이템 지식도 없었고 가지고 온 돈도 얼마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호주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나가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동네를 산책할 때였다. 사우스 스트라스필드(South Strathfield)의 워터 스트리트(Water Street)을 지나는데, 그날따라 평상시 그냥 지나쳤던 야적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음에 그 야적장을 얻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고철업(Scrap)하기에 딱 좋아 보이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작정 야적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분에게 이 야적장을 얻고 싶다고 물어보았다. 수중에 충분한 돈이 있어서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그냥 물어보고 싶었다.
 
그랬더니 그분이 아마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 저쪽으로 찾아가서 물어 보라고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찾아가 보니 페스티벌 하이어(Festival Hire)라는 회사가 그 야적장을 포함하여 그 근처의 넓은 야드(Yard)들을 일곱 군데로 쪼개어 임대해 주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페스티벌 하이어 임대회사도 크라운 건설 그룹(Crown Group Construction)으로부터 임대를 받아 재임대를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 집사가 고철업으로 사용하려고 본 2천sqm가 넘는그 넓은 야적장을 임대하는데 일 주일에 $100만 내라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허름하긴했지만 창고와 그 야적장 뒤에 있는 방 4개짜리 주택도 공짜로 함께 써도 된다는 것이었다.
 
입이 쩍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호주에 와서 이미 몇 개월을 지내보았고, 그 전에도 일 년 넘게 호주에서 생활해 보았기 때문에 호주의 집세와 물가를 알고 있었다. 빈 공터이긴 하지만 2천sqm가 넘고 게다가 허름하지만 창고와 집까지 딸린 이 모든 시설(facility)이 한 주에 $100이라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그린에이커 작업장으로 입고되는 철제용품들은 해체 작업과 분류 작업을 거친다(상,하). 철골구조가 15톤에서 30톤되는 무거운 철제품은 크레인으로 옮겨야만 한다.(중) ©E-Planet    

 

무일푼으로 시작하다

 
일이 되려니까 착착 진행되었다. 고철업을 하려면 포크리프트가 필요했다. 그러나 당장 그것을 살 돈이 없었다. 그런데 페스티벌 하이어 임대회사에서 사용하는 포크리프트를 무료로 사용하게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철을 싣고 와야 할 큰 트럭이 필요했는데 트럭 가격도 만만치 않게 비싸다.
 
그런데 때마침 미쯔비시 칸터(Mitsubishi Canter)트럭이 교민잡지에 급하게 매물로 나와 있었다. 비록 30만 km 가까이 뛰었지만 만 불 정도의 값어치가 있는 트럭이었다. 가서 보니 시동도 걸리지 않았다. 그 트럭을 2천 불에 구입하였다. 그리고 배터리를 갈아주니 감사하게 잘 달려 주었다. 다 갖추어졌다. 트럭, 포크리프트, 야적장,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 이 모든 것을 한 주에 $100씩만 내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말 그대로 무일푼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비록 얼마의 돈은 들었지만 호주에서 사업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정도의 돈은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비용도 되지 않는 액수였다.
 
그는 처음에 직원도 두지 않고 혼자 다 감당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직원을 고용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전화도 받고 혼자 고물 트럭을 끌고 고철을 수거하러 가고, 싣고 온 고철을 포크레인을 이용하여 야적장에 내리고 그리고 그것을 좋은 가격에 되팔고, 이 모든 것을 일 년 동안 혼자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확실히 도와주셨다. 되려고 하니까 야적장 옆에 있던 한손 콘크리트(Hanson Concrete)에서 콘크리트가 과적되어 남는 콘크리트를 그의 야적장 앞에 버리는 것이었다. 비가 오면 질척질척 진흙탕이 되는 야적장이었는데 그는 그 버려지는 콘크리트를 야적장에 골고루 넓게 펴 길을 깔았다. 돈도 안들이고 진흙땅을 작업하기 좋은 콘크리트로 잘 다져진 시설물로 바꿔 나갔다. 흥분하여 빨라진 그의 말을 들어보자.
 
“게다가 저희 야적장 옆에 한손(Hanson) 래미콘 회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콘크리트를 실은 래미콘 트럭이 과적을 할 경우 남은 양을 야적장에 버리는 거예요. 저는 버릴 때마다 그 콘크리트를 야금 야금 땅 따먹기 하듯 저희 야적장에 깔아 길을 만들었습니다. 이 사진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절묘한 일은 김 집사가 렌트한 이 야적장이 2년 전에 J Scrap(고철) 이라는 큰 고철 회사가 카운슬과의 문제로 나간 자리였던 것이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J Scrap(고철) 회사가 다시 재 오픈한 것으로 생각했다.

 

▲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작업현황을 점검하는 김오준 사장.     © 크리스찬리뷰


그래서 고철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주위에 금방 소문이 났다. 고철 처분을 하는 사람들이 J Scrap(고철)회사가 다시 오픈한 것으로 생각하고 연락해 오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김 사장의 고철회사는 금방 성장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해 주시더라고요. 카운슬과의 문제로 나간 J Scrap 때문에 제가 어부지리를 얻은 겁니다. 이곳이 전에 고철 회사였으니까 J Scrap이 재 오픈 한 줄로 생각하고 고철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연락을 주기도 하는 겁니다.”
 
열심히 일을 한 그는 금방 고철회사를 키워 나갔다. 한국에서도 OJ World라는 라미네이팅 필름 사업을 했었던 그였다. 사업 감각이 있는 김 사장은 고철업을 해본 것이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사업을 어떻게 하는 줄 알았다. 그는 이미 호주에 자리잡고 있는 굴지의 큰 고철회사들과 경쟁하기에는 자신이 세운 고철회사(회사라 하기에도 민망한 1인 사업장)가 열세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큰 고철회사들과 어떻게 경쟁해야 하나? 마케팅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틈새 시장을 노렸다. 대부분의 호주 고철회사들은 커다랗게 야적장을 꾸며 놓고 고철들을 팔기 원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와서 고철의 무게를 재고, 판 무게만큼 돈을 환산 받아 가지고 가는 형태였다. 그런데 김 사장은 틈새 시장을 노렸다.
 
이동식 저울을 사고 오래된 트럭이었지만 그 트럭을 끌고 고철을 팔기 원하는 곳으로 가서 고철을 사왔다. 고철을 팔기 원하는 사람들이 편해진 것이다. 그래서 김집사에게 모두 고철을 팔기 시작했다. 그의 고철회사는 빠른 시간 안에 커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 가운데서도 왜 어려움이 없었겠는가? 2009년 세계경제위기가 왔을 때 고철업계에서도 큰 타격을 받았다. 부도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어려움에서도 저희 회사는 그 어려움을 다 피해가게 하셨습니다.”
 
그의 이러한 고백을 들으며 그의 믿음이 얼마나 독실한지 느낄 수 있었다.
 
사우스 스트라스필드(Water St. South Strathfield)에서 3년 동안 기반을 다진 그는 그린에이커(Greenacre)로 이사를 오게 된다. 이곳에서의 기적 같은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다. 지면관계상 일일이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도 그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붙여 주시기도 하고 피할 길을 알려 주시는 것을 경험했다.
 
사업이 성장하여 현재 사용하고 있는 현재의 사업장 건물(1-3 Beresford Greenacre)을 구입했다. 맨 처음 구입할 때는 이 사업장이 고철업을 할 수 있는 헤비 인더스테리얼 (Heavy Industrial)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구입을 했다. 그러나 구입을 하고 카운슬에 허가를 받으려고 하니 거절된 것이다.
 
막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를 참석해 기도를 하는데 그날 따라 사업을 위해 기도를 하게 하시는 것이었다. 열심히 기도를 하고 사업장을 나왔는데 그동안 인사만 하고 지내던 인도네시아 이웃을 만났다.
 
우리가 이사갈 건물을 샀지만 허가가 나지 않아 다시 이곳을 렌트하여 이사오게 되었다고 얘기하자 인도네시아 이웃은 그의 삶의 스토리를 이야기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Never give up, don’t be afraid”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그의 가슴에 와 꽂혔다.

 

▲ 바누아트 커뮤니티센터 건설현장과 AIM 설명회(위 오른쪽). ©AIM    


“절대 포기하지 말고 두려워 마라” 그는 이 말을 주님이 주신 말씀인 것처럼 듣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적법한 방법으로 새로 구입한 건물을 허가 받을 수 있도록 지혜도 주시고 사람도 만나게 해주셨다. 결국 카운슬로부터 허가를 받고 현재 주소로 옮기게 된 것이다.

 
AIM (아가페국제선교회) 
(Agape International Missions Australia)


그의 스토리를 듣고 있노라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의 간증과 고백은 드라마틱했다. 지면이 한정되어 다 실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허가를 받은 현재의 그린에이커 공장으로 이전을 한 후 그의 사업은 더욱 안정되어 갔다.
 
그리고 김 사장은 사업이 잘되어도 예전처럼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선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AIM (Agape International Missions Australia, 아가페 국제선교회) 이다. 물론 처음 세워질 때부터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현재 AIM(아가페 국제 선교회)의 대표이사이다.
 
AIM은 2013년 호주 정부의 승인을 받아 설립된 비영리 구호단체이다. AIM은 사업, 교육, 사역(3대 비전)을 기초로 미자립 지역사회가 안정적으로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모양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 2015년에는 태풍으로 큰 피해를 당한 바누아투(Vanuatu) 타나 섬(Tanna Island)에 태양광 패널의 커뮤니티 센터를 준공해 주었다. 이때 국내외 다른 NGO단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한국의 나눔선교회와 호주의 건축선교팀(CTM) 그리고 AIM이 합작하여 태양광 커뮤니티 센터를 준공한 것이다. AIM은 현지에 필요한 필요품들을 조달하고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그리고 CTM은 현지 빌더와 팀을 이루어 기초공사를 하고 자제를 동원하여 센터를 지었다. 그리고 한국의 나눔선교회는 센터에 태양광 전기를 설치해 주었다.
 
이렇게 NGO 단체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대로 힘을 합쳐 미자립 지역사회가 이 커뮤니티 센터를 통해서 안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 준 것이다. 이 커뮤니티 센터는 그 지역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교육을 잘 받을 수 있도록 터전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이곳에서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로도 운영되었다.
 
또한 2016년 9월에는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네팔의 보차(Bocha, 카투만두에서 6시간 거리) 지역에 무너진 학교 건물을 재보수 해주었으며, 이후 네팔정부의 요청을 받아 더 많은 지역에 교육시설을 세울 수 있도록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김오준 이사는 2016년 AIM의 대표이사(이사장)가 되었다. 그때 그는 AIM을 위해 기도하던 중 AIM의 사명을 위해 말씀을 받았다고 한다. 바로 이사야 58:11-12 말씀이다. 
 
“이사야 58장 11절을 보면 메마른 곳에서도 우리 영혼을 만족케 해주셨고, 뼈도 견고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물댄 동산같이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같이 해주신다고 하시쟎아요. 이것은 우리의 삶을 축복해주셨다는 말씀이잖아요. 저는 제 삶을 잘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기 와서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뭐를 위해 이런 축복을 해주시냐는 거예요.
 
12절에 보면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우고,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가 되고 길을 수축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우리 AIM 의 목적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바누아트 커뮤니티센터 건립을 위해 나눔선교회, CTM 건축팀, 그리고 AIM 이사들이 바우아트에 도착해서 기념촬영을 했다. ©AIM    



AIM 이사장 김오준 사장은 AIM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은 바로 “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것(사 58:12)”이라고 믿고 있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 58:12)

 
에필로그

 
지면이 넘쳐도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일명 ‘개 사건”이다.
 
그가 2005년에 호주에 이민와서 스트라스필드에 정착하고 일 년쯤 되어갈 때 개를 좋아하던 가족은 ‘보더콜리’와 ‘불테리어’ 종의 강아지 두 마리를 길렀다. 그런데 이 강아지가 호주 할머니를 문 것이다. 
 
“호주에 온 지 얼마 안되었을 때 ‘개 사건’이 있었어요. 그때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어요. 저희가 그때 ‘보더콜리’종을 사서 길렀는데 교회에서 아는 분이 또 ‘불테리아’ 종 강아지를 주셔서 두 마리를 길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강아지들이 나가서 호주 할머니와 다른 강아지를 문 거예요. 그때 스트라스필드 로컬 신문에도 나오고 떠들썩 했었습니다.”
 
그래서 김오준 집사는 치료비로 7천불을 주고 협상을 끝냈다. 그런데 2개월이 지났을 때쯤 편지가 날라왔다. 그 편지에는 육체적 피해, 정신적 피해와 여러 가지 이유를 대어 $115,000을 변상하라는 그러지 않으면 고소를 하겠다는 변호사의 편지였다. 이 편지를 받고 그는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 까지 고심했다고 한다. 주위분들에게 물어보아도 이런 경우는 다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줄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호주 변호사를 찾아가 편지를 보여주니 일단 답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답장을 하지 않으면 인정하는 것이 되어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변호사를 통해 협상 편지를 보냈다. 편지 한통 보내는데 변호사는 $1,500을 요구했다. 편지를 보내고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그때부터 아내와 함께 새벽기도를 열심히 했다. 매달릴 곳이 하나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서원기도도 했다. 
 
“하나님, 해결해 주십시요. 그러면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면 제가 $10,000을 선한 일에 사용하도록 헌금도 하겠습니다.”
 
부부는 새벽마다 가서 부르짖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도 할머니 편에서 편지가 안 날라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믿음으로 만 불을 먼저 헌금했다. 그리고 김 집사 부부는 계속해서 새벽마다 열심히 기도했다. 6개월이 지났는데도 편지가 안 날라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자 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김 집사는 가끔 그 할머니를 지금도 스트라스필드 거리에서 마주친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 그 할머니를 스트라스필드를 지나다 만나요. 그러면 그 할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여기까지 차오르죠. 할머니 왜 그때 편지를 다시 안 보내셨어요? 근데 못 물어보죠. 하하.”
 
왜 할머니는 김오준 사장이 6만 불에 협상하자는 편지를 받고 그후에 다시 답장 편지를 안 보냈을까? 왜 바로 고소를 하지 않았을까?
 
이것은 아직도 영원한 미스테리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알고 계시지 않을까?〠


글/주경식 |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사진/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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