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점심

최주호/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10/30 [15:43]

교회 건축을 하다 보면 사단의 방해로 꼭 어려운 시기를 만나게 된다. 이전에 섬기던 교회를 건축할 때도 사단의 방해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기존에 있던 성전을 리모델링하면서 함께 건물을 신축하는 중에 식당 자리에 대한 갑작스러운 허가 취소로 1년 반 동안 교회 식당이 운영되지 못했다.
 
이 말은 교회에 점심이 없었다는 말인데, 나는 그 일을 통해 이민 교회에서 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 교회 식당에서 밥을 먹지 못한다는 광고를 냈을 때 성도들의 반응은 덤덤했다. 하기야 교회 식사야 매주마다 하는 일상적인 루틴이고 밥이야 한 끼 먹고 때우는 것이니 그럴 만도 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이번 기회에 교회 근처의 식당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는 분도 있었다. (실은 성도님들보다 교회 근처 식당 주인들이 더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처음 몇 주 동안은 별 일 없이 시간이 흘렀다. 11시에 시작하는 2부 예배를 마친 후 성도들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나 구역 식구와 함께 교회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 교제를 나누면서 점심 시간의 일탈(?)을 즐겼고 그 후에 오후 예배로 돌아왔다.
 
“식당 가서 밥 먹으니 반찬 신경 쓸 필요도 설거지할 필요도 없으니 편하고 좋네요” 평소 교회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 들렸다.  
 
하지만 이런 성도들의 생각과 태도는 몇 주가 지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점심 식사 후에 모이는 오후 예배의 참석 숫자가 현저히 줄어서 사정을 알아 보니 성도들이 예배가 끝난 후에 교회 근처의 식당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식당밥을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집 밥보다 나을 수는 없고 게다가 식사비로 지출되는 돈이 만만치 않으니 그냥 집에 돌아가 밥 먹는 것이 낫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렇게 되자 교회는 주일 오전에만 잠시 북적이다가 점심 시간이 되면 썰물 빠지듯 한산해졌고 식탁 교제를 통해 이루어지던 성도 간의 교제도 약해졌다. 당연히 주일 오후에 야심 차게 계획했던 특별 행사들도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식사가 중단되고 난 몇 주 후에 난 교회 출석이 뜸해진 성도를 심방했는데 그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요즘 교회에서 보기 힘듭니다”라고 묻자 그분의 대답했다. “밥도 먹지 않는데 교회엔 왜 갑니까?”
 
나는 그분이 농담(?)으로 말했다고 진짜 믿고 싶다. 하지만 당시 내 귀에 들린 그 분의 말이 슬프게도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농담 속에 진담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 성도의 말을 곱씹어 보니 어떤 이들에게는 교회 밥이 목사의 설교만큼 아니 설교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이민 교회를 하던 목회자께 들었던 말 중에 비슷한 말이 있다. “이민 교회 성도들은 목사가 설교를 못하는 것은 참아 주지만 김치가 없으면 못 참습니다” 교회 점심의 파워를 달리 표현한 말이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예전 유학하던 시절에 유학생이 주축을 이룬 한 지방 교회가 점심을 준비할 집사들의 부족으로 점심으로 밥을 먹을 것인지 빵을 먹을 것인지를 토의했던 사건도 떠올랐다.
 
이 교회는 격렬한 논쟁 끝에 밥 팀이 승리했는데 이유는 교회에 출석하던 유학생들의 이런 외침 때문이었다.
 
"우리는 교회 와야 그나마 한국 밥 구경을 하는데 밥이 아닌 빵으로 점심을 먹는다면 교회 올 이유가 없어집니다"
 
가끔 나이 드신 분들이 빵은 그저 간식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지만, 젊은 유학생들도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한국인의 밥 사랑이 얼마나 뿌리깊은지를 알았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은 아예 성도들에게 이렇게 선포했다고 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 교회의 점심은 밥입니다.”
 
별 것 아닌 일을 심각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민 목회하는 사람들은 격하게 공감하는 문제다. 
 
내가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여행을 잘 다니는 한 집사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했더니 이분은 한 술 더 떠서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저는 어느 곳을 가던지 반드시 주일에는 교회를 찾아가는데 예배는 좀 시원찮게 드려도 교회 점심은 꼭 먹고 옵니다. 그래야 저에게는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참 별난 사람도 많지만 목사님의 말씀(?)이 아니라 교회 밥(?)을 먹어야 한 주를 시작하는 힘이 생긴다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성경을 공부하다 보니 창세기 1장과 2장에는 먹는 것에 대한 중요한 구절들이 나온다. 창세기 1장은 전체적인 창조의 과정을, 창세기 2장은 여섯째 날에 집중해서 사람을 중심으로 한 창조 이야기를 적고 있다. 같은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지만 실은 두 창조 기사 모두가 먹는 문제만큼은 공히 언급하고 있다.
 
창세기 1장의 하일라이트는 아담에게 사명을 부여하는 1장 28절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시니라”(창 1:28)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절에 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창 1:29)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서 사명자로 삼으실 때에 먹을 것도 함께 주신다고 약속하신다. 이는 이 땅을 사는 우리에게 먹고 사는 기본적인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구절인데 2장의 전개도 이와 같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첫 사람 아담의 사명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었다는 점만 다를 뿐 그 다음에 등장하는 구절은 역시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창 2:16)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 하나님은 먹을 것만큼은 확실하게 책임져 주는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잘 아는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우리를 향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한다. 성경은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명을 감당하는 일과 때를 따라 먹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 점심이 예배만큼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믿음 좋은 누군가는 믿음 없는 사람들의 넋두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인생을 살다 보니 우리라는 존재가 그리 고상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매일 아침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일하고 자고…. 하나님은 우리의 가까이에 있는 일상적인 일들을 통해 당신의 은혜를 베푸신다. 그렇기에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구분하면서 교회가 영적인 일만 한다는 생각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의 편협한 생각이다.
 
교회는 예배와 함께 성도들이 함께 먹고 마시는 식탁의 교제 즉 밥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이 말하는 진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데 이 말은 내가 아니라 솔로몬이 한 말이다.(전 2:24)
 
당신은 그 사실을 아는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최고의 특권이듯이 예배 후 지체들이 함께 밥을 먹는 것도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리는 또 다른 특권이라는 사실을! 실은 이 일들은 모두 구원받았기에 가능한 것이지 아무나 누릴 수 있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일에 말씀을 기대하면서 교회를 가야 하지만 그와 함께 식탁의 교제도 기대하면서 가야 한다.
 
단언컨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교회밥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만든 음식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도 어김없이 주일은 돌아올 것이고 당연히 밥도 돌아올 것이다. 그 주일의 은혜에 푹 빠지고 싶다. 샬롬.〠   


최주호|멜번순복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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