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는 삶의 한 방식
 
서을식/크리스찬리뷰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언 11:25)


20대 초반에 나는 이 성구에 쉽게 ‘아멘’하지 못했다. 벽을 만난 듯 피해가던 내가 점차 변했다. 그 시작은 시드니 정착 초기에 주변 사람들을 통해 받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때 어떻게 그분들은 내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경이롭게 다가와 감사가 깊어지고 감동이 날로 커진다. 하여, 기회 닿는 대로 남을 돕는 시늉이라도 하려 노력해 왔다.
 
예수님처럼 물질, 명예, 권세와 담쌓을 만큼 내 사역 초기의 결단은 그리 확고하지 못했다. 또 바울처럼 풍요와 가난에 잘 적응하며 자족하는 목회자로 한 길을 가지도 못하는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봉사가 일상인 목사이다 보니, 남을 돕는 일이 새삼스럽지 않지만, 시간이 세월 되고, 경험이 인생 되고 보니, 이제 이 구절이 단지 ‘성경 말씀이니’가 아니고, ‘경험해 보니’ 참으로 옳은 말씀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나와 비슷한 혼란을 겪으며 영적 근육을 키워나가고 있을 순례자를 위해, 주제넘지만,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기를 바라 몇 마디 적어본다.
 
부의 기준을 바꿔라. ‘얼마를 소유했느냐?’가 아니고 ‘얼마를 나눴느냐?’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자신의 부를 측정하라. 모아서 쌓아 놓은 양이 아니고, 나눠 덜어내 가난해진 그만큼 하늘에 쌓은 부자가 된다. 그러나 명심하라. 남의 것을 모아서 마치 내 것처럼 주며 생색내는 코디네이터는 되지 마라. 너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담긴 너의 것으로 주라.
 
하나님께서 재물의 주인이고 당신은 재물의 청지기임을 잊지 마라. 이 사실을 잊으면,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했던 돈이 나를 소유하는 진짜 주인이 된다. 돈이 내 주인이 되고 내가 돈의 노예가 되는 역전 현상이 생겨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하라.
 
축복의 채널이 돼라. 나를 통해서 남에게 흘러간 축복이 참 축복이다. 반면에 나에게 와 머무른 축복은 순간의 기분과 신분까지 상승시켜 그에 걸맞게 대접받는 효과가 있겠지만, 이는 잠시, 결국 시궁창 안에서 썩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구제와 대부를 지혜롭게 구분하되 이자를 받는 대부업자는 되지 마라. 구제는 주고 끝나야 한다. 결코, 되로 주고 말로 받으려는 회수금을 노린 투자가 아니다. 구제하고, 희년 정신으로 빚을 면제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마라. 그래야 공덕이 되고 이후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편해진다.
 
‘부로 혹 사람은 살 수 있을지라도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나눠 섬기면, 당장은 아첨하는 입술과 얻어먹는 입이 주변에 북적여도, 나중에는 외롭게 일생을 마칠 수도 있다. 먼저 진실한 친구가 되어주라. 재물이 내 손을 떠나 재물보다 더 높은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면, 현명하고 자애롭게 사용하라.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지 마라. 구제는 선한 일이니, 계속하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기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처음부터 접어라. 하나님의 보상은, 기본적으로 그리고 고맙게도, 하늘에 속한다. 현실은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인색하다, 거만하다, 생색낸다’ 말하며 ‘자기 의에 사로잡힌 자, 불공평론자’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잘살아서 좋겠다’라는 빈정거림, ‘내가 당신처럼 벌면 나는 더 잘한다’라는 말도 듣는다. 빚진 자의 낮고 상처받은 자존감, 채무 의식이 자신의 어려운 현실과 결합하면서 나오는 신세타령이려니 하고 이해하라. ‘나도 열심히 일하고 절약해서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당신처럼 남을 돕고 살겠다.’라고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선을 행하다가 절대 낙심하지 마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 제목을 떠오르게 하는 사람도 자주 만나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라.
 
밀란 쿤테라는 자신의 존재의 가벼움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세상을 대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했으니, 그들이 당신의 위대한 스승인 셈이다.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사도행전 20:35).
 
구제는 특별하지 않다. 그저 삶의 한 방식일 뿐이며, 상식을 뛰어넘어 평균케 하는 하나님의 덧셈과 뺄셈이다.〠


서을식|버우드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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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30 [16:50]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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