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를 맞으며
 
홍관표/크리스찬리뷰

2019년 한 해도 어느덧 지나고 2020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인사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우리는 복을 많이 좋아한다. 그래서 복(福) 이라는 글자를 새해를 시작할 때마다 우리가 사용하는 곳곳에 새겨 놓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복이 무엇인가? 그 답이 각각 다를 수 있지만 한국의 서민 사이에 구전되어 온 5복은 장수, 부요, 건강, 자손 그리고 치아가 튼튼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가운데 기복신앙에 대한 비판이 교회 안팎에서 매우 강하다.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의 복을 추구하고 현세적인 복을 갈망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은 우리가 회개해야 할 문제이다.

 

물론 한국인들의 정신적 토양과도 연결되어 있다. 한국인의 정신적 토양은 샤머니즘과 불교와 유교의 토양 위에 기독교가 전래되었다. 기복신앙은 복음으로 정신적인 세계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타협된 부분이다.

 

사실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복으로 가득 차 있다. 복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이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처음 주신 것이 복이다(창 1:28).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복이라는 개념이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창 12:1-3). 그 복이 이삭 (창 26장)과 야곱 (창 28장), 그리고 요셉에게 계속해서 내려간다.

 

족장시대 족장의 가장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는 제사장의 사명처럼 자녀들을 복 주는 것이다. 창세기의 시작은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시작하고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은 야곱이 모든 자녀들에게 하는 예언적 축복(창 49장)으로 끝난다.

 

신명기는 순종하면 복을 주신다고 강조한다(신 28장).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십일조를 통해서 주시는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시는 복을 약속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도 복으로 시작해서(계 1:3) 복으로 끝난다(계 22:7). 성경의 마지막 복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계 22:14).

 

이처럼 성경의 복은 엄청나다. 사모해야 하고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복을 무시하는 것은 교만이다. 하나님의 복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큰 죄이다. 하나님이 복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단 1초도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복이 무엇인가?

 

성경적인 복은 총체적인 복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원론적인 사고 중의 하나가 아니다. 영적인 복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육적인 복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영육의 복이다.

 

성경적인 복은 예수를 믿고 내가 잘 사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예수를 믿는 내가 복의 근원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이다.

 

새해를 보는 세계의 전망은 밝지 않다. 우리의 조국이 시끄럽다. 동성애 합법화로 소돔과 고모라가 되고 있다. 마치 노아 홍수 심판 직전의 사회처럼 폭도들이 (네피림) 거리마다 난동을 부리고 있다.

 

술과 마약으로 중독된 사람들로 인해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재정적인 압박으로 사람들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2020년 새해를 맞아 말라기에 약속한 모든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삶의 모든 현장에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심”을 받기를 바란다. 또한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받은 우리가 복의 근원으로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 받는 귀한 도구가 되기를 기원한다.〠

 
홍관표|크리스찬리뷰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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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23 [11:23]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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