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거리가 먼데 달려가는 아버지

서을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03/31 [15:26]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누가복음 15:20)
 
‘사회적 거리두기’, 얼핏 봐도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결합한 이 말을 요즘 자주 접한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이 우울하고 어두운 상황이 짧은 터널로 끝나고, 잠깐 근심 후에 크게 기쁜 전화위복이 되기를 소망한다.
 
멋진 반전으로 승화하려면, 뒤틀어진 일상에서 수동적 고통만 당하지 말고, 신앙인의 입장에서 이 고통스러운 경험에 능동적으로 잘 대처해야 하겠다.
 
먼저, 눈뜨면 그 자리에 있고 때가 되면 찾아왔기에 간과하기 쉬웠던 작고 적은 것들의 소중한 가치에 새롭게 눈뜨자. 삶에는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다. 감동 없이 대하고 무디게 스쳐 보낸 무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주위에 흔하고, 대수롭지 않아 보이던 맑은 공기, 밝은 햇살, 환한 표정, 즐거운 대화, 갖춰진 인프라처럼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생활의 조건으로 여기던 것이 사실은 지극히 크고 많은 풍요로운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로 삼자. 깊이 그리고 확실히. 그래야 더 감사하고 한층 더 즐길 수 있으리라.
  
다음으로, 풍요 속에서 그동안 생산자보다 소비자로 살아온 삶도 일정 부분 반성해보자. 개인과 가정을 막론하고 소비 위주의 단위가 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간과한 채, 우리는 자본주의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값을 지불했다는 사실 만으로, 남이 생산한 것들을 내 것처럼 자유롭게 가져다 쓰면서도 당연히 누릴 권리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고군분투하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타인에 대한 배려, 섬김, 희생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내재하여 있다.
  
다음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로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진 이웃을 돕자. 초연결 사회에서 초유의 단절을 경험하며 고립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자. 사회적 난민, 경제적 약자로 소외된 이웃에게 마스크, 음식 등 필수품이 담긴 박스를 전달하는 소식, 아름답지 않은가?
 
책임 돌리기를 멈추고 짐을 함께 지자. 곳곳에서 우후죽순으로 보호 장벽이 솟아나 사회가 파편화되면서 짜증, 분노, 두려움이 증폭되니 인내는 쉽게 바닥난다. 몰이해, 오해, 미움, 혐오, 공격의 연쇄 작용이 일어나기 쉽다. 어려울 때 특정 사람이나 단체를 구별해 손가락질하고 책임지라고 몰아세우기 시작하면 동요하는 군중심리는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신중해지자. 누구나 분별할 권리가 있지만, 누구도 쉽게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사회적 종교적으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격리를 경험한 분들이 느꼈을 외로움과 두려움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단 사이비에 빠져 평상시에도 일상이 아닌 비상한 삶을 산 고단한 형제자매들을 품어주자.
  
마지막으로, 우리 믿는 자들은, 강요가 아닌 자발, 통제가 아닌 절제, 그래서 자발적으로 절제 훈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만남, 웃음, 대화, 눈길, 손짓, 표정, 유머, 배려 등이 사무치게 그립도록 축적하자. 자유롭게 거리를 걷고 반갑게 만나 활짝 웃고 뜨겁게 포옹할 수 있는 날에 만개할 웃음꽃, 만남의 빛을 열망하자.
 
이렇게 축적된 순전한 에너지는 분명 우리를 무덤덤한 만남과 제의적인 예배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우리가 고대하며 기다린 반가운 만남이 이뤄지고 거룩함을 향한 열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영적인 예배의 자리에 부르심을 받는 날, 그날에 이해하지 못할 일도 없고, 용서하지 못할 사람도 없이, 못다 한 칭찬과 미처 전하지 못한 격려를 사랑으로 마음껏 쏟아내자.
  
일상의 강물이 삶의 바다로 다시 흘러 이제 곧 생명과 삶을 축복할 것이다. 단지 짧은 멈춤을 통해, 학습할 내용은 확실히 챙기자. 마치 흐르지 아니하듯 자연스럽게 흘러온 일상의 소중함을 재발견하여 깊이 감사하고 서로 돕고 함께 짐을 지는 삶이 선물로 남도록. 교회 안과 밖에서 방탕의 거짓 풍요를 끝내고, 아버지 집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결단을 내린 탕자가 아버지 집에 도착할 때까지 꾸준히 발걸음을 옮길 수 있도록 응원하자. 아직도 거리가 멀지만 그를 측은히 여긴 아버지는 그를 보고 달려간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 틀림없이 성경에 기록된 아버지의 마음이고, 정확히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서을식|버우드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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